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03화 (103/577)

< 운영자의 요청 >

“이 새끼 누웠다! 누웠다고!”

“으아! 태식아! 우리 잡은 거 맞지?”

뛸 듯이 환호하는 진수와 성찬.

- 지옥검 : 해냈다! 와··· 이 징글징글 한 놈!

- 범 : 절대 안 죽을 거 같더니! 결국 죽긴 죽었네요!

- 구두룡검 : 잡았다! ㅎㅎㅎㅎㅎ 우리가 해냈다고!

버그나 오류가 아니었다.

우리의 노고를 치하라도 하는 듯이 안사락스는 엄청난 양의 아이템을 뿌려주었

다. 번쩍번쩍한 골드와 온갖 장비들이 이 싸움이 끝났음을 증명했다.

- 지옥활 : 와. 도저히 죽을 거 같지 않아서 그런가? 혹시 이러다가 갑자기 발딱

일어나서 공격할 것도 같아. 긴장감이 아직도 안 풀려!

- 분노의활질 : 나도 지금 엄청 얼떨떨하다.

- 구도자의길 : 그것보다 파밍부터 하는 게 어떻습니까? 소감은 안전한 여관에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내가 멀뚱히 있어서일까. 다른 팀원들 역시 아이템에는 손을 대지 않는 상태였

다.

사실 내가 별반 관심을 보지 않은 이유는 어떤 것들을 드롭했는지 조금도 궁금

하지 않아서다. 딱 한 마디로 충분하다.

대박!

- 구운몽 : 좋습니다. 수거해봅시다!

하나씩 둘씩 챙긴 아이템들이 인벤토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후 여관에 돌아와

서 함께 공유하는 축제의 시간을 가졌다.

우선 『판금 갑옷』 2개.

이건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못했다.

‘쓰레기지.’

상점에 처분해 버릴 골드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는 이렇게 천대받을 놈들이 아

니지만 안사락스에게서 나왔기에 무시당하는 것이다.

다음은 『싸울아비 장검』 2자루.

‘저 중에 한 개는 축복 받은 싸울아비 장검이겠지.’

예상대로다.

그리고 내가 짐작하지 못했던 장비도 나왔다.

『수정갑옷』 2개!

‘이게 벌써부터 구현 된 거였어?’

방어력이 무려 8이나 되는 이 방어구는 현존하는 최고이자 최종 테크트리 장비

인 엘프족 판금갑옷과 동급이다. 단, 무게가 100이나 더 나가기 때문에 굳이 내가

장비를 교체할 정도는 되지 않았다.

‘이건 레이드 멤버중에서 지원자한테 분배하고 남아돌면 길드의 나이트들한테

풀어야겠어.’

다음은 액세서리인 『근력의 목걸이』 5개!

한낱 국민 유저에 불과하던 나에게는 아이템 소개 게시판을 통해서만 눈으로 구

경했던 먼 나라의 진귀한 물건!

‘용이 주는 거였구나.’

이건 싸울아비 장검만큼이나 대박 아이템이다.

현재까지 ‘오크 투사의 목걸이’가 전부인 상황이었는데 최초로 스탯을 올려주는

아이템이 등장한 것이다. 숫자도 넉넉하니 레이드에 참여한 나이트들에게 몽땅 주

고도 무려 2개가 남는다.

이건 팀은 로테이션으로 돌릴 때 이후 참여할 나이트들에게 나누면 되겠다.

다음은 『지력의 목걸이』

“요건 너님들 것.”

“땡큐! 흐흐. 역시 용이 부자구나.”

“우리도 액세서리를 끼는구만!”

딱 4개가 나왔다. 참여하는 매지션들이 4명이니 싸울 것도 없이 공평하게 분배

하면 된다.

그리고 대망의 최고 대박 아이템!

개당 4천만 골드이며 현금으로는 1,200만 원 짜리인 바로 그것!

“얘들아, 고생한 보람이 있다. 이걸 봐라! 투명망토만 무려 5개!”

“캬! 이것만으로도 6천 만원!”

“안사락스 사랑합니다!”

무려 5개나 나왔다는 점이다. 이 투명망토만 해도 지금 6천만 원 수준의 수익을

올린 셈이 되는 거다.

‘엠씨가 진짜 전혀 생각도 못했던 거구나. 아무리 용이라고 해도 이걸 이만큼이

나 넣어놓다니.’

이건 진짜로 내 예상 바깥이었다. 투명망토 급의 초고가 아이템은 고작해야 하

나 정도 나오는 게 게임 경제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잡을 때마다 매번 다섯 개씩

풀어버린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 지옥검 : 비밀 유지를 강조한 이유가 있었네. 이거 소문나면···

- 범 : 분명히 너프지.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못 잡는 거니까. ㅋㅋㅋㅋ

- 세이하 : 운영진이 평생 로그 자료 확인하지 않았으면 좋겠당~! ^ㅡ^

이외에도 『지룡비늘』 6개, 『다이아몬드』 50개, 『고급 다이아몬스』 50개, 『최고

급 다이아몬드』 50개가 나왔다. 등급별로 풍성하게 부려준 셈.

하지만 앞전의 아이템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별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역시 사람 기분이란 게 참 애매하다니까. 종류별로 팍팍 먹었는데도 그냥 그러

려니 하게 되다니.’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순간이동조종반지』와 『변신조종반지』의 쌍가락지를 챙

겼다. 이만하면 현존하는 비싼 아이템은 몽땅 먹은 셈이다.

- 지옥검 : 다시 생각해도 이건 미쳤네요. 진짜··· 말이 안 나오네··· 히야··· 황당할

정도야.

- 비전 : 골드만으로도 무려! 30만 골드였습니닷! 역시 판타지에선 용이 짱짱!

- 지옥검 : 지금 저 아이템들 놓고 그깟 푼돈이 눈에 들어오냐?

- 범 : 푼돈 ㅋㅋㅋ 티끌 같은 30만 골드~ ㅋㅋ

- 분노의활질 :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 평생 잡몹만 열심히 잡아서 골드 모아보

라고 해. 오늘 우리가 번 거 만큼 벌리나.

- 지옥검 : 원래 게임이나 현실이나 인생은 한 방이닷!

- 비전 : 저는 그래도 티끌을 영혼까지 모아서 부자가 될 겁니당~

- 지옥검 : 총군주님. 비전이한테는 30만 골드를 몽땅 주고 아이템 분배는 제외

함이 어떨는지요?

- 구운몽 : 바람직하군요. 그리합시다!

- 비전 : 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 지옥검 : 여기!

- 구운몽 : 여기!

꾸준하게 서로 경어를 유지하는 콘셉트였지만 그나마 잠깐잠깐 잊어버릴 정도

로 즐거운 분위기였다. 한참 유치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아이템 처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 좌호법 : 확실히 주군께서 공략법은 물론이고 사냥의 승패조차도 숨기려 하신

까닭을 이해했습니다. 이건 처음부터 결과까지 모두 극비로 관리해야 합니다.

- 분노의활질 : 같은 의견입니다. 획득한 아이템은 외부에 풀지 않는 데에 한 표

던집니다.

- 지옥검 : 보관은 모두 총군주님이 하시는 게 좋다고 봅니다.

- 구운몽 : 제가 말입니까?

- 지옥검 : 위치로 보나 재산으로 보나 절대로 잠적하지 않을 분이니까요.

이 부분에 혹시나 싶어서 진수와 성찬이에게 물었다.

“내가 넷젠 대표이사라는 거 아는 사람 있어?”

“아니. 그런데 그게 상관있다고 보냐?

“여태 ‘나 졸라 부자임’하는 티를 줄줄 냈으면서?”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길드의 원년멤버들 대부

분이 나 못잖은 돈과 여유를 갖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넉넉하게 플레이할 시간. 아이템에 투자할 자본. 이런 건 일반적인 샐러리맨이

나 학생이 감당할 리 만무하다. 물론 일상사를 몽땅 때려치우고 24시간을 투자하

는 식으로 차이를 좁힐 수는 있다.

그러나 라이트 유저가 골드 수급에 쓰는 시간을 하드 유저는 현금으로 해치우

는 게 가능하다. 여기서 생기는 차이는 좁힐 수 없다.

‘이 사람들 현실에서는 다들 무슨 직장이고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네. 한번 정

모를 해볼까?’

일이 적당히 궤도에 오르고 한가해지면 한번 추진해봐야겠다. 지금 당장은 별로

이고 말이다. 여태 하지 않다가 안사락스라는 비밀을 지켜야 하는 타이밍에 보자

고 하는 건 오히려 속물스럽게 여겨진다.

인간은 누구나 속물이고 저속한 동물이지만 막상 ‘나 그런 사람입니다.’라고 인

정하는 건 또 꺼려지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을 마치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 구운몽 : 알겠습니다. 그리고 싸울아비 장검은 최대한 고강까지 제작해서 분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강화 쪽에는 촉이 좋으니, 만족스러운 물

건이 나올 거예요.

- 지옥검 : 오! 황금의 손!

- 구두룡검 : 강화의 신이 은혜를 베풀어주는 겁니까!!!

- 비전 : 우와아아! 완전 부럽!

아이템의 절대적인 제어권한을 위임받는 대신에 어떻게든 +9 축 싸울을 만들어

서 참여한 나이트 전원에게 나누어줄 계획이다. 그리고 모든 길드 소속 나이트들

에게 싸울아비 장검이 분배될 때까지는 용이 드롭한 아이템을 시장에 판매하지 않

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로서 플레지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강의 세력.

소속 유저 모두가 투명 망토와 싸울아비 장검으로 무장한 길드가 탄생할 것이

다.

다만 딱 하나가 문제였다.

- 구운몽 : 엘프들과 매지션이 문제네요. 이거 너무 나이트 위주의 보상들이라서

요.

- 구도자의길 : 저희는 일단 지력의 목걸이가 있기는 하니 아예 없지는 않습니

다. 단지 엘프는··· 정말 없네요.

- 범 : 에이! 총군주님. 그거 주세요!

- 구운몽 : 그거요?

- 범 : 현찰! 캐쉬! 투망! 투망!

- 구운몽 : 투망?

- 범 : 네. 나중 말고 먼저 주시면 소소하게 팔아서 용돈 삼겠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모습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투명 망토는 원래부터 주려고 했던 물건이니 이것을 싸울아비 장검 대신으로 치

면 엘프들에게 불리하게 된다. 어차피 길드의 모든 유저가 갖고 있는 흔한 물건이

될 테니까.

그러나 대체제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 구운몽 : 알겠습니다. 그리고 엘프들은 나중에 싸울아비 장검 급의 활이 나오

면 무조건 해당 아이템을 우선순위로 받게 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매지션 역시 마

법서나 관련 아이템이 나오면 같은 조처를 하겠습니다.

- 범 : 넵!

- 좌호법 : 존명!

과거의 소문에는 용을 잡으면 최강의 마법을 획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

작 잡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면 메일브레이커나 판금갑옷과 같은 한낱 낭

설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판타지에서 드래곤은 마법의 주인이나 창조자로 나오던데, 아쉽네.’

이리 생각하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지금만 해도 남들은 입을 떡 벌릴 만큼의 초대박이다.

“아무튼 해냈다. 우리가 진짜로 드래곤 슬레이어다!”

“잡을 때 마다 6천 만원!”

“소고기 먹자!”

기쁨의 축배를 들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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