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01화 (101/577)

< 지룡 공략 > 끝< 지룡 공략 >

공략 시점은 올포원이 우리가 거는 싸움에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때로 잡았

다. 사실상 안사락스의 공략법은 내가 확실하게 파악한 상태이고 길드원들 역시

공성전으로 다져진 만큼 딱히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손발이 잘 맞았다.

변수는 오직 올포원이었기에 이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타이밍을 잘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에 걸린 시간이 3일이었다.

“쟁을 걸어보는 것도 진짜 오랜만이네.”

길드간에 싸움을 건다는 것은 알고 보면 특별할 것이 없었다. 용의협곡에서 가

장 많은 몬스터들이 몰리고 사냥하기 좋은 장소를 완벽하게 우리 길드원이 선점

하게 되면 이 지역을 되찾기 위해서 올포원이 쟁탈전을 벌인다.

여기서의 싸움을 팽팽하게 유지하면 해결이었다.

우리 쪽의 길드원이 총 120명이고 올포원 연합은 180명 정도이지만 솔직히 모

든 길드원들이 100%로 참여하여 전투를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올

포원에서 약 40명 정도가 보이면 접속자들 대부분이 왔다고 판단하고 레이드를 시

작해도 된다.

‘이 숫자만 해도 결코 적은 건 아니거든.’

게임에서 단체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 싸움을 하다보면 유저들은 4부류중 하나

에 반드시 속하기 마련이다.

1번은 쟁이 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자신이 하던 것을 다 제쳐두고 싸움부터 하려

는 부류.

2번은 일단 하던 걸 대충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철저하게 싸움에서 죽지 않을

아이템을 정비해서 싸움터로 나서는 부류.

3번은 한창 치열해질 때쯤에 나타나서 마치 할 건 다 했다고 생색을 내는 부류.

마지막인 4번은 싸움의 끝물에 등장하고는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는 부류였다.

‘40명이 모였다는 건 앞의 두 가지 부류는 다 왔다는 거지. 3번 부류가 모이면

70명 정도는 될 거고 4번까지 합류하면 절반이 넘는 거야.’

여기서 1번과 2번만 신경 쓰는 이유는 그들이 대부분 길드의 주요 강자군에 속

하기 때문이다. 3번과 4번은 그냥 숫자만 채우는 즉시전력 이하에 해당한다.

이 분류법에 따라 삼일간 상대 길드의 움직임과 싸움을 관찰하면서 스케줄을 거

듭 확인했다.

이를 보며 진수와 성찬이가 말했다.

“돌아왔구나, 진성 플레지 폐인! 게임에서 진짜 전술을 짜는 든든한 우리 친구!”

“이러니 너랑 함께 하면 그 누가 우리 길드를 막을쏘냐!”

“···이 문디 자식들이!”

그렇게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대망의 안사락스 공략을 개시했다.

*

회사에서 퇴근하고 간석동의 사무실에 와서 진수와 성찬이와 자리를 딱 잡았다.

여기까지 몸소 출두한 이유는 안사락스를 상대하면서 채팅으로 지시까지 내리기

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진수와 성찬이가 나의 나팔수가 되어서 팀원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줄 것이다.

‘잘해보자.’

이번 드래곤 레이드에 힘을 한껏 주는 이유는 한낱 라이트 유저였던 나로서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첫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안사락스 레이드는커녕 사실 제대로 싸우는 것조차 본 적이 없지.’

사실 플레지는 하드코어 유저들의 입맛에 맞추어진 게임이다. 그러다보니 꿈속

의 나와 같은 일반 유저들은 평생 게임하면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해본 일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긴장도 되고 흥분도 적잖았다.

이때 지옥검이 메시지를 띄웠다.

- 지옥검 : 내 생각인데, 우리가 안사락스를 잡아내기까지 꽤 많은 트라이가 있

을 거라고 생각해. 위기가 있겠지. 그러니까 우리 모두 상의한 부분이 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구운몽, 너는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도망가라.

- 구운몽 : 뭐? 내가 도망치면 아무도 못 살아.

- 지옥검 : 알고 있어.

- 구운몽 : 그런데 무조건 도망가라고?

- 지옥검 : 구운몽은 지금 누가 뭐라해도 우리 길드와 서버의 상징이야.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레벨이 뒤쳐져서는 안 돼. 나도 그렇고 다른 애들도 이제 슬슬 경

험치 올리기가 힘든 시기라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네 캐릭터에 비할 건 아니지.

이것이 안사락스의 레이드 파티가 용의 협곡 던전에 들어오기 직전에 전해준 말

들이었다.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고 나 역시 같은 무게로 받아들였다.

게임 캐릭터는 한낱 데이터에 불과하지만 유저에게는 인생의 한 부분이고 소속

된 이들에게는 자부심이기도 했다. 이 의미는 커뮤니티 내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나 역시 똑같은 책임감으로 파티의 사기를 독려했다.

- 구운몽 : 아무도 죽지 않을 거라는 희망만 가득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

만 우리는 이 사냥을 성공하는 것으로 플레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전설이 될 것

입니다.

12명의 드래곤 레이드 팀원들!

구운몽, 황성찬허좁, 윤진수허좁, 지옥검, 구두룡검, 분노의활질, 세이하, 지옥활,

비전, 범, 구도자의길, 좌호법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를 제외하고 최고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검’이 함께 했으면

싶었지만 그는 최초의 영예를 지옥검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올포원과의 쟁을 전면

에서 지휘하기로 하였다.

빠지게 된 원년 멤버인 악마혈은 구두룡검과의 가위 바위 보로 결정됐다. 이 승

부에서 패배한 그는 ‘안사락스는 잡아도 룡검이는 렙따해 버려라!’의 저주를 퍼붓

고 쟁을 지휘하고자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들 12명이 진입했다.

협소한 동굴의 지형 특성상 서먼 몬스터 소환은 없었으며 담백하게 우리들이 파

죽지세로 돌파했다.

위치는 용의 협곡 던전 6층!

드래곤 슬레이어를 획득하기 위해서 뻔질나게 찾아와 크리아에게 시련을 받았

던 그곳.

바로 이 장소가 안사락스의 레어로 이어지는 입구다.

“휴우. 으으··· 이게 뭐라고. 고작 게임인데··· 손에서 땀이 다 차냐.”

두 손을 수건으로 닦고 정신 차릴 겸 냉수를 들이켰다.

‘잘하자. 내가 중심이야. 할 수 있다!’

모든 게임이 다 그렇듯이 보스 레이드에서 탱커의 자리는 중요한 부분에 속한

다. 전위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아줘야 원거리 딜러가 안정적으로 딜링을 할 수 있

고 또한 힐러들이 힐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이들이 최적의 위치를 잡을 수 있도록 나는 안사락스를 인도해야 한다.

노파심에 진수와 성찬이에게 다시금 당부했다.

“부르면 바로바로 움직여줘야 한다. 알았지?”

“오케이.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부르면 우리가 쪼르르 찾아갈 테니까.”

이를 끝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안사락스의 레어에 진입!

곧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터널과 같은 형태의 던전과 달리 자연 형태의 동굴 지

역이 나타났다. 뾰족한 석회암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는데 사방에 용암지대도 존재

하여서 이곳을 지룡의 안식처가 아닌 화룡의 레어라고 해도 납득할 정도였다.

진수와 성찬이의 소감이 들렸다.

“다른 층이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장난 아니네?”

“그런데 안사락스는 아직 안 보이냐?”

반면 나는 알고 있는 내용을 거듭 점검하기 바빴다.

용던 7층인 지룡의 안식처는 철저하게 유저보다는 안사락스를 위해 만들어진 공

간 같았다.  길이 구부러진 부분은 안사락스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서 공격하지 못

하는 지점이 생기지 않도록 자리했고 그 탓에 힐러 대부분이 탱커에게 힐을 주기

위해서는 범위내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즈음이었다.

드드드드드-!

화면이 떨리는 것과 같은 진동이 생겨났다.

“태식아. 이거 뭐냐?”

“뭘 묻고 있냐. 당연히 안사락스님의 등장이지.”

두 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의 30% 정도는 차지하는 것 같은 압도적인

사이즈의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놈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스케일!

초록색으로 뒤덥힌 거대한 동체에는 무시무시한 창이 달린 것 같은 뼈와 뿔이

존재한다. 나이트 따위는 한 입에 삼켜버릴 수 있을 듯한 무시무시한 이빨이 달렸

는데 드래곤보다 고질라와 비슷한 외모였다.

하지만 그 이질감 때문에 익숙한 드래곤의 모습보다도 더 큰 압박감을 주었다.

놈을 향해서 내가 움직였다.

드래곤 슬레이어를 착용한 채로 단독 질주!

강력한 브레스 데미지를 반감하며 계속 파고든다.

“우와. 생김새가 데스나이트 쌈싸먹을 기세네. 그런데 성찬아, 이거 이상하지 않

냐? 설정 상 데스 나이트가 용 죽이고 저주 받은 거 아님?”

“어? 맞다. 그러면 데스보다 용이 약해야 하는데 얘는 왜 이리 세 보여?”

그 사이 안사락스의 레어 깊숙한 곳에 조금 넓은 공터를 찾아냈다. 뒤이어 그곳

까지 끌어들인 뒤 놈을 공격하면서 소리쳤다.

“잔말 말고 튀어 들어와! 자리 잡았다!”

“예쓰! 캡틴!”

- 황성찬허좁 : 자리 잡았답니다. 들어갑시다.

드디어 첫 안사락스의 공략으로의 도전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실전을 통해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들이 나타났다.

‘젠장. 드슬은 딱 브레스 경감용으로만 쓰는 거였군.’

안사락스 공략을 준비하면서 했던 생각 중 가장 컸던 착각이 바로 최강의 검, 드

래곤 슬레이어다. 용종 몬스터에게 막강한 데미지를 안겨주는 장비임에는 틀림없

으나 이 장비는 오직 ‘브레스 공격’만 반감시켜주는 게 단점이다.

때문에 막상 가까이 붙어버리니 막대한 데미지를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건 방패 없이 그냥 맞으면서 피를 채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크리아의 시련 때와 마찬가지였다. ‘드래곤 계열’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장

비를 적절하게 교체해야 되었다.

‘끊기지 좀 마라!’

두 번째 문제는 바로 렉이었다.

안사락스의 앞발이 한 번 내리칠 때마다 200 가량의 체력이 날아간다. 아무리

맑은 물약을 두둑하게 챙겨왔고 물약의 회복량이 따라가지 못할 때는 매지션들이

힐을 넣어주고는 있다지만 위기는 존재했다.

공격을 받을 때, 한 번에 체력이 날아가는 게 아니고 가끔 두 번에서 세 번의 공

격이 누적되어 들어오는 타이밍이 생긴다. 바로 이때 매지션이 재빨리 힐을 넣어

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구운몽 캐릭터라고 해도 그냥 찢겨져 버릴 것이다.

여기에서는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는 좌호법의 센스가 빛을 발했다.

『Hit Point : 38/626』

···

『Hit Point : 626/626』

하얀색으로 텅 비었다가 빨간 색의 체력이 화끈하게 채워진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

이때마다 땀이 흐른다.

세 번째 문제점은 간과했던 패치 부분이다.

‘물약 딜레이 업데이트를 왜 간과했었냐고.’

안사락스를 잡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 이번 업데이트는

바로 물약의 딜레이였다.

예전에는 회복 물약을 먹으면 한 번의 번쩍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네 번의

번쩍임을 통해 회복하며 네 번 번쩍임이 종료될 때까지는 추가로 물약을 먹지 못

하게 되었다.

겉보기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거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에는 4개

먹을 수 있었던 시간에 지금은 달랑 1개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힐의 도움으로 간당간당하게 버티는 중이다.

‘지금 물약이 몇 개 남았더라?’

게임은 계속해서 발전해나간다.

플레지 역시 시간의 흐름만큼 꾸준하게 보완되어갔는데 그 중의 하나가 단축창

에 들어간 아이템을 찍어서 남은 수량을 확인하는 유저 편의성 기능이었다.

다만 안사락스의 발톱에 한창 당하는 중인 나로서는 ‘아이템 창을 여는’ 것조차

도 조마조마하다는 게 문제였다. 물약 버튼에 손을 넣는 순간 그때부터 내 캐릭터

의 목숨은 도박판에 오르게 된다.

‘얼마나 당부를 들었는데. 절대로 죽으면 안 돼!’

심지어 지금은 체력이 최대치라고 해도 물약을 사용하면 그대로 소모가 되는 시

기였다. 때문에 현재 만피의 상태에도 비싸디 비싼 맑은 물약을 꾸준하게 소모하

고 있다.

그때 믿음직하던 좌호법이 메시지를 전달했다.

- 좌호법 : 오링!

오링.

도박판의 All in에서 유래 된 이 말은 판돈 전부를 한 번에 걸겠다는 의미였는데

이것이 와전되면서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태’를 게임에서는 오링이라고 말하기 시

작했다.

‘일단 좌호법의 마나가 바닥났다면 다음은 구도자의길이 힐을 해줄 테지. 문제

는 내 물약 상태란 말이야.’

여기서 스타 드래프트를 할 때처럼 최고로 집중해서 손을 움직였다. 그 결과 『맑

은 물약 (23)』이라는 숫자를 확인했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량이다.

확인하지 않았다면 아마 물약이 떨어져서 죽었을 거다.

‘무게 게이지를 늘려주는 벨트가 없다는 것이 새삼 아쉽네.’

생각을 마치고 짧게 키보드를 쳤다.

- 구운몽 : ㅁㅇ

물약 오링의 표시.

보통 우리 길드에서 수성전 중에 최전방에서 탱킹을 하는 나이트들이 주로 사

용하는 용어로 ‘물약이 오링 났으니까 누가 좀 보급을 해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내가 움직이면 안사락스는 마법을 사용할 것이니, 나는 이 자리에서 이동을 해

서는 곤란했다. 그러니 다른 팀원이 내게 와서 보급을 해줘야 했고 지옥검이 재빨

리 내 옆에 붙어서 물약을 떨어뜨렸다.

『맑은 물약(66)』

재빨리 챙겼다.

그때 두 번째 매지션이 외쳤다.

- 구도자의길 : 오링!

‘예상보다 빨라. 이건 안사락스의 공격 속도가 빨라졌다는 뜻인데, 이 자식. 체력

이 떨어질수록 공속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었구나!’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레이드에 성공

할 수 있을까?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물약이 부족해.’

안사락스의 공격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일종의 2페이즈로 넘어갔다는 개념과

도 같다. 좋게만 여기면 해당 몬스터의 체력이 상당히 소모되었고 고지 점령이 멀

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는 물약도, 체력도, 매지션들의 마나도,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잡게 되더라도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사냥할 바에는 더 안정

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다.

‘내 캐릭터만큼이나 다른 사람들 캐릭터도 중요해. 도박할 필요가 없어.’

결단을 내렸다.

“귀환!!”

“뭐? 잘 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어! 못 잡아!”

“옛써!”

- 황성찬허좁 : 포기! 귀환! 귀환하세요!

금빛의 밝은 빛 무리와 함께 안사락스의 공략대원 전부가 기단 마을의 광장으

로 떨어졌다.

1차시도 실패!

‘재도전하자.’

단점을 즉시 보완해서 다시 시도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