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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기 글렀네
아직까지 오픈 베타를 하면서 이런 이벤트를 기획하는 회사들은 없다.
우리가 처음이다.
당연히 고객들은 기왕 게임을 할 거, 이득이 되는 쪽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회의가 이쯤 진행되었을 때부터는 다들 열심히 필기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추가로 게임 아이디를 만들 때 추천인 아이디를 넣을 수 있도록 하세요. 그리고 추천인으로 등록될 경우 추천을 한 유저와 추천을 받은 유저 둘 다 포인트를 받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저 경품 응모만 한다면 일부는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서 주변에 이야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체리피커들이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도록 할 방법이 바로 이 추천인 시스템이다.
‘내가 경험한 온갖 이벤트들의 총화를 아낌없이 붓는다.’
뉴 온라인의 1,000퍼센트 성공.
내 손으로 반드시 이룩하고 말 것이다. 나는 게임사의 대표이자 게이머의 대표라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조율하고자 전심전력을 다했다.
이를 위해 향후 발생할 문제와 대안까지 미리 안배한다.
“이규환 팀장님.
“네, 대표님.
“서버의 안정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 예산이 더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하세요. 서버는 무조건 안정되어야만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정규 팀장님.”
“예!”
“유저들은 언제나 교류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제대로 의사소통 할 수 있도록 게이머스 포럼에 확실한 교류의 장을 만드세요. 뉴 온라인에서는 늘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회의의 마무리를 짓기 전에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군요.”
빠르게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조금 느리게 그리고 낮게 말을 하는 내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다시 한 번 집중 된다.
“우리는 어떤 회사일까요. 뉴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판매하는 곳일까요?”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플레지의 고객이었다.
매달 29,700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플레지를 해왔다.
이러한 윤태식은 플레지의 구매자였을까?
플레지를 하고 있던 시절에도 이따금씩 했던 고민이었다.
이 물음에는 고진환 팀장이나 임경목 디렉터가 대답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답한 이는 김정규 팀장이었다.
“아닙니다. 뉴 온라인은 매달 정액제로 일정 금액을 받고 서비스를 하는 겁니다. 이것은 판매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답이다.
“제 생각 역시 그러합니다.”
서비스와 판매.
이것은 작지만 아주 큰 차이를 가진다.
“서비스는 생각보다 많은 클레임이 생기는 분야입니다. 이것은 뉴 온라인만이 아니라 게이머스 포럼과 트레이더스 포럼도 마찬가지지요. 그렇기에 새로운 부서를 추가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고객만족부서입니다.”
“고객만족부서라면···?”
“지금까지는 사업운영팀에서 고객에게 걸려오는 클레임 전화까지 다 받으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고객만족부서에서 전담하도록 합니다.”
고객만족부서는 뉴 온라인을 담당하는 ‘뉴 온라인 팀’과 게이머스 포럼과 트레이더스 포럼을 담당하는 ‘포럼 팀’ 두 개로 구성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고진환 팀장님이 준비해서 올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서비스라는 것은 무엇보다 CS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CS는 당장에 바로 대화가 가능한 전화만이 아닙니다. 이메일과 메시지를 통한 CS처리도 가능해야 하니 그에 대한 인력도 준비하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CS의 인력이 부족하면 그것이 또 다른 불만을 만들어내고 이는 곧 또 다른 클레임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는 유저들이 지치고 다른 게임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가 무조건 다 먹히지는 않는다.
‘배짱 영업을 하던 플레지가 그렇게 오래도록 1위를 한 걸 보면 이론은 개나 줘버려, 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만.’
철저하게 사업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지금 새 부서를 만들고 이런 대응책을 굳이 만들지는 않아도 괜찮았다. 이 인원을 줄이면 그만큼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외국 게임을 보면 CS 대응이 국내 게임보다 늘 훨씬 좋아.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지.’
대표이기 이전에 나는 게이머로 더욱 오래 경험했다. 이러한 불만을 가졌던 일반 유저로서 적어도 내가 운영하는 게임만큼은 외국에서 들어온 수준의 CS를 갖추고 싶다.
그리고 회사 전체가 합심해서 전력투구하는 와중에 중국으로부터 희소식이 도착했다.
출장을 간 김지애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
- 대표님. 저 김지애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 텐션의 대표인 마화셩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쾌재를 내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의자에서 몸을 들썩이는 정도로 추스르고는 물어보았다.
“그래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언제 만나기로 했나요?”
- 내일 만나기로 약속을 한 상태입니다.
“혹시 텐션의 현재 가치라던가 그런 정보는 구하셨습니까?”
내 언질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기사를 토대로 하였다. 당연하게도 당장 어려운 상태라는 것만 알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김지애 팀장의 능력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 아직 텐션 자체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좋구나!’
상황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최상이었다.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낮다는 말과도 같다.
“알겠습니다. 내일 만나보시고, 다시 연락을 주세요.”
- 네.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대와 초조함 속에서 하루가 지났다.
김지애 팀장으로부터 학수고대하던 연락이 왔다.
“어때요? 투자에 대해서 긍정적이던가요?”
- 네. ‘긍정적이다’의 수준이 아니라 투자를 해주겠다고 하면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절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던데요?
“그래요?”
- 상황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여기 정말 괜찮을까요 대표님?
“괜찮다마다요. 이 정도면 더 좋죠. 그래요. 텐션 측의 요구 사항은 어떤가요?”
한참 집중한 나의 귀가 그녀의 첫마디를 재빨리 분석했다.
- 280만 달러···
‘280만 달러!’
머릿속의 계산기가 재빨리 두드려진다.
IMF의 여파로 1달러의 환율이 2,000원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가라앉은 상황이다. 현재 환율은 1달러당 1,270원 수준!
그러니 280만 달러라면 36억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다.
‘아깝다.’
36억은 텐션의 성장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푼돈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현재의 내 자금 사정이다. 36억을 감당할 정도의 여유는 없다. 이러면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할 즈음 김지애 팀장의 남은 이야기가 내 귓가에 도착했다.
- ···라 합니다. 회사의 현재 가치가요.
자금이 부족해서 투자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땅을 치며 눈물을 흘릴 뻔했던 나에게 이 말은 정말이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회사의 가치가 280만 달러면 투자금은 그 절반 정도 되겠군요?”
- 네, 대표님.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마화셩 대표의 어머니가 가진 지분인 60% 한도 내에서만 투자를 받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40%만 투자받기를 원하고 있고요.
‘어머니의 지분이 60%라고? IT계의 공룡들은 다들 이런가?’
어딘가의 게임사도 할머니에게 받은 돈으로 회사를 차렸다고 들었는데 텐션은 어머니에게 받은 돈으로 회사를 차린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되면 아주 잘 됐다.
“40%면 얼마입니까?”
- 112만 달러입니다.
‘14억 2240만원!’
매일매일 달라지는 환율 때문에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내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부모님 가게와 집, 자동차는 다 해드렸고 태희 몫으로 모으던 돈이 4억이었지.’
여동생이 대학에 들어간 뒤에 강남에 아파트를 사주려고 계속 돈을 모아두고 있었다.
14억 2,240만원을 4로 나누면 3억 5560만원.
즉 10%는 회사가 아닌 내가 개인적으로 투자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론을 내렸다.
“30%는 회사에서. 10%는 제가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전달하세요.”
- 알겠습니다.
회사에서 전부 투자하는 게 아니라 내 개인 투자까지도 직접 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회사직원에게 사적인 업무를 맡기는 일이기도 했다. 때문에 여러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김지애 팀장의 목소리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다행하게도 불쾌해하지 않은 것이다.
‘두둑했던 잔고가 다시 바닥났지만, 이건 최고의 투자다.’
만약 우리 회사가 주식 상장이 되었다면 투자자들이 길길이 날뛸만한 선택이자 행보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법인이라도 내 개인회사이고 개인의 자본으로 움직이는 것이라서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물론 주식 상장을 하고 본격적으로 투자를 받게 된다면 회사는 폭발적으로 큰 자본을 획득할 수 있다. 넘치는 자금을 토대로 더욱 공격적인 행보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뭐 하러 남의 눈치를 보는 투자를 받아.’
게이머스 포럼은 내 회사고 언제까지나 내 것이다. 또한 함께 고생한 직원들과는 지분을 나눌 의향이 충분하게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과 함께 나눌 마음은 없다.
저들이 없어도 더욱 성장할 자신이 있으니 이 과실은 함께 땀흘리고 노력한 이들이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계획했던 일들이 착착 진행되어갔고 투자 계약 완료와 함께 대망의 뉴 온라인 오픈일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완성된 형태.
중간에 이탈했던 임경목 디렉터가 그대로 남았기에 본래는 빈약했던 스토리 라인이 보강되었고 초보 유저들에 대한 시스템적인 배려까지 보완된 게임이었다.
*
<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리뉴 제국이 대륙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진 가운데 수많은 지방영주들은 리뉴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길고 긴 전쟁 속에 반복되는 살육으로 인해 아름다운 리뉴 대륙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 버렸지요.
리뉴 대륙이 피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것은 바로 그 때입니다.>
뉴 온라인의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용사에게 전달 된 편지를 클릭할 수 있다. 지금 귀에 감기는 감미로운 목소리는 바로 이 플래시에서 들을 수 있는 내레이션이었다.
<자신의 야망을 주체하지 못한 안코니아스.
리뉴 대륙의 통치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그는 마도사 리노리아의 꼬임에 넘어가 암흑의 제왕 카둔을 부활시키게 됩니다.
안코니아스는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스러운 딸이 카둔의 이빨에 갈가리 찢겨지는 장면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결국 마도사 리노리아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지요.
애석하게도 그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미 카둔은 부활된 후였기 때문입니다.>
바뀌는 장면과 함께 내래이션이 끝을 향했다.
<잘못된 욕망이 빚어낸 리뉴 대륙의 비극을 막아내는 길은 사라진 8개의 봉인석을 찾아 다시 카둔을 봉인시키는 방법뿐입니다.
누가 그런 무시무시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암흑의 제왕은 리뉴 대륙을 멸망시키기 위해 이미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어서 출발하세요. 당신이 거머쥔 그 검만이 카둔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역시 우리 회사에는 인재가 많아. 완전히 성우라니까.’
의외로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
그냥 회사의 여직원들 중에 목소리에 자신 있는 직원의 지원을 받아서 제작했다. 백화점 상품권으로 나온 퀄리티라고 어느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직원과 회사가 모두 행복한 진정한 윈윈이 아닐 수 없다.
펼쳐지는 장면들은 딱히 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았고 게임의 GM이 직접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을 플래시화해서 넣어주었다.
‘GM의 사냥이니까 당연히 장비도 스킬도 화려하지.’
그리고 게이머들은 플레이를 해보기도 전에 유래 없는 홈페이지의 퀄리티에 일단 열광했다.
<집구석폐인 : 앞으로 무덤까지 가져갈 게임을 드디어 찾았다! 이 게임 진짜 심각하다!
<마지막제국짱 : 와. 플레지고 바람의 왕국이고 나는 무조건 마지막제국만 하기로 마음먹었었는데, 이건 정말··· 마지막제국아 미안하다! 이제 뉴짱으로 이름을 바꿀 거 같아.>
<놀던형아 : 이 게임은 정말로 미쳤어! 그래픽부터 이건 정신 나간 수준이라고! 플레지를 능가하는 게임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나왔다!>
<파멸해라전여친 : 이건 역대 최고다! 오오! 이젠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거야!>
<멸망해라전남친 : ㅉㅉㅉ
뉴 온라인의 홈페이지를 보고 나온 뜨거운 반응은 바로 동시접속자의 숫자로 나타났다. 오픈 한 시간 만에 3만 명을 달성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늘고 있는 마당이라서 넷젠은 축제이면서 동시에 비상사태였다.
“서버! 서버 지금 얼마나 더 늘릴 수 있어?”
“현재 최대 5만까지만 상정하고 준비한 거라 그 이상은 오늘 안에 불가능 합니다.”
“그럼 언제까지 추가 가능한 건데?”
“빨라야 내일입니다! 그것도 고작해야 만 명 정도 가능할 거로 보입니다.”
“젠장. 그만 접속해달라고 빌어야 하는 거냐? 이게 말이 돼!?”
2000년도의 게임들이 보통 오픈을 하면 5,000명 정도를 기대치로 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 뉴 온라인은 그 10배인 5만 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도 비상사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