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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기 글렀네
“좋습니다. 김지애 팀장님은 중국 출장을 준비하시고 다른 분들은 지금 눈앞에 놓인 안건들을 처리해주세요. 그리고 김팀장님.”
“네, 대표님.”
“출장 가신 동안에 다른 직원들이 실수 없도록 잘 맡겨두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네!”
이후의 일들은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다.
김지애 팀장이 출장 준비를 하는 기간에 천년비가 오픈했다. 그리고 기사들 역시 들끓었다.
【‘천년비’ 오픈베타 게임 중 1위 ‘기염’】
액터즈 소프트의 MMORPG게임 ‘천년비’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액터즈 소프트는 새로운 무협 온라인 ‘천년비’가 온라인게임 순위 조사업체인 게임트럭의 각종 순위 집계에서 최상위권에 랭크되고 있으며 집계한 순위에서 오픈베타테스트 작품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오픈 첫날 동시접속자 수 ‘천년비’가 경신!】
어제 오픈한 ‘천년비’의 동시접속자는 15,000명으로 역대 오픈 첫날 동시접속자 최대치를 경신했다. 장르별 점유율에서 기존 인기작인 '미르의 전사'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천년비’가 뜨거운 반응을 불러 모으고 있다.
【뜨거운 감자 ‘천년비’의 수상한 인기비결?】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천년비’와 게임 아이템 중개사이트 트레이더스 포럼과의 뒷거래가 의심을 받고 있다. 게임의 현금거래를 용인하는 부도덕한 게임개발사라는 우려 섞인 비난에 액터스 소프트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으며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갖가지 기사들을 읽다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하여간 물 흐리는 놈들이 꼭 있다니까.’
그냥 감탄만 하면 오히려 내 쪽에서 서운해 했을 것이다.
“어쨌건 한 방 먹였고.”
이번의 고무적인 성과를 보며 나는 더욱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단박에 게임회사의 단합된 움직임이 주춤하는 게 보인다. 우리 회사를 길들이고 눌러줘야 할 적이 아닌 파트너로 볼 만큼 영향력을 인지한 덕분이었다.
그만큼 1만 5천명은 정말 대단한 숫자였다.
일단 게임 개발사인 액터즈 소프트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어서 서버가 인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했었다. 덕분에 한 시간에 한 번씩 점검을 해야 했을 정도다.
이제 준비해둔 진짜 총알을 발사하기 위해 준비할 차례였다.
‘뉴 온라인으로 내 능력을 증명해주마.’
본래의 기억보다 훨씬 훌륭한 출발선에서 시작한 천년비를 토대로, 뉴 온라인은 동시접속자 수 5만 명은 받아들일 수 있는 규모로 시작할 예정이었다.
5만 명!
이는 십년만 지나면 대단한 것이 아니게 될 숫자지만 지금은 기함을 해야 하는 단위였다. 아마도 첫날에 5만의 동시접속자가 나온다면 기네스북에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
52. 퇴근하기 글렀네
뉴 온라인은 클로즈 베타 기간 없이 바로 오픈 베타를 하기로 결정했고 이 일정에 맞춰 정신없이 움직이다보니 스무날이 금방 지났다.
어느덧 D-day 가 오기까지 열흘이 남았고 즈음의 넷젠은 더 이상 4명의 직원이 일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아낌없는 지원의 결과, 넷젠은 15명의 직원을 더 채용했다. 5개의 각 서버별로 운영자 역할의 직원이 2명씩 붙었다. 추가 그래픽 작업을 담당할 직원이 2명이었으며 소스를 다룰 이 역시 3명을 추가 고용하였다. 그 결과 이제는 제법 회사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게임의 오픈을 앞둔 지금 나는 넷젠의 메인 개발자 4명과 게이머스 포럼의 팀장이상 급을 불러서 필요할 때마다 회의를 진행했다. 아무래도 미래 지식이 있는 내게는 미흡한 점들이 곳곳에서 보였고 간과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좋은 게임은 물론 성공의 가장 큰 요인입니다. 하지만 그 못잖게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도 중요합니다.”
“메인 페이지요?”
“만약 플레지나 바람의 왕국 같은 인기 게임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면 그런 고민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기존의 게임이 신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게임은 어떨까요?”
오픈 베타를 준비하면서 직원들에게 우리의 전략을 확실하게 각인 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우리의 게임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게임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입니다. 그냥 메인에 들어와 보기만 해도 ‘이 게임 재미있겠다!’ ‘다운로드 받아도 괜찮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홈페이지는 내가 합류하기 전부터 자체 제작하여 보유한 상태였다. 내 눈에는 한없이 촌스럽기 그지없는 모양새로 말이다.
‘이대로 내보내면 안 될 것 같거든.’
이런 홈페이지를 보고도 겁 없이 게임을 다운 받고 플레이할 유저들이 신기할 수준이니 어쩌겠는가. 잔소리를 퍼붓고 개선시킬 수밖에 없다.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자 공부를 무진장 하고도 있는데 요즘 같아서는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 노력으로 학창시절에 공부를 했다면 서울대는 그냥 들어갔을 것이라고.
‘물론 그 시절의 내가 재미도 없는 교과서를 봤을 리가 없지만.’
당장 배워서 바로 써먹을 수 있고 바로바로 회사에 반영이 되니까 노력하지 고작 시험 점수와 1등급 평가를 받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할 근성은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우등생과 모범생을 높이 평가한다.
훌륭한 범생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요? 그런 생각이 들려면요.”
“홈페이지는 심플하게! 하지만 첫 페이지에서부터 강렬함을 느끼게 디자인하세요.”
물론 이 디자인은 넷젠 직원들이 할 일이 아니었다.
‘배추가 해야지.’
다만 녀석이 디자인하기 위해 게임 소스를 넷젠 직원들에게서 받아야 한다. 이러한 내 말에 배추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심플하면서 강렬해야 한다’는 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모양이다.
바로 짚어주었다.
“우리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강점이 뭡니까?”
“국내 최초의 풀 3D 그래픽입니다.”
“그래요. 국내 최초의 3D. 처음 홈페이지를 들어왔을 때 강조해야 하는 포인트가 그겁니다. 3D를 느낄 수 있게 해주란 말입니다.”
아직 대한민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엄청 높은 편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률이 아직 미흡했고 당연하게도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홈페이지 디잔인에는 최대한 플래시를 활용해야 한다.
“게임이라는 건 결국 게이머를 많이 모아야 성공합니다. 실제 캐릭터의 움직임! 실제 전투! 이것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메인 페이지를 제작하도록 하세요.”
3D 그래픽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자극이 될 것이다. 그러니 첫 페이지에서 그것을 보고 자극을 느껴서 다운로드를 받게 해야 한다.
나는 거듭 강조했다.
“오픈 베타에서 얼마나 입소문을 타느냐가 게임의 성공을 판가름합니다. 이것은 모두들 이해하시고 있을 겁니다.”
“네.”
“우리가 지금 확보해야 하는 고객은 단순히 게임을 즐길 게이머가 아닙니다. 여기저기 입소문을 내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줄 수 있는 게이머여야 합니다.”
그러자 김정규 팀장이 질문했다.
“어떤 고객이 입소문을 내줄 게이머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리고 게임은 게이머가 선택하는 거지 저희가 선택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게이머는 바로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바로 뱉어버리는 게이머입니다. 일명 체리피커죠.”
“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쇼핑몰들이 과거에는 툭하면 반품을 해버리는 고객들을 ‘악성 소비자’라 부르며 외면하다시피 취급했고 말없이 구매하는 고객을 ‘착한 손님’이라며 계속 영업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매출을 확인해 보고서는 깜짝 놀라고 만다.
잘못된 표현인 ‘블랙컨슈머’로 판단했던 고객들이 실질적으로는 일반 고객보다 훨씬 구매력이 높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가차 없이 뱉어버린다. 이런 행태는 비단 한 가게에서만 하는 행패가 아니라 다른 모든 곳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쓰면 가차 없이 뱉어버리는 고객!
불평과 불만이 많은 소비자!
그런데 이들이 달콤한 것을 찾게 된다면 이야기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저들은 마음에 들었을 때 아낌없이 소비한다. 더욱 달콤한 무언가를 찾기 전까지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되어주어서 구매하는 것이다.
‘출발점에서는 이들이 큰 역할을 맡는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확인하면서 존재감을 느낀다. 때문에 게임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한 요소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가진 달콤한 것을 더욱 달콤하게 느끼는 방법! 이를 위해서 본능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러니 우리는 케이크에서 하나뿐인 체리만 쏙 빼먹는 까다로운 손님인 체리피커에게 뉴 온라인이 달콤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했다.
“한 재테크의 전문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정가에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돈이 많거나 아니면 생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바늘이 떨어져도 소음처럼 여겨질 만큼 모두가 내 말을 경청했다.
“요즘처럼 경기침체로 지갑이 가벼운 시기에는 단 한 푼이라도 아까워하거나 혹은 공짜의 부가혜택은 꼬박꼬박 챙겨가는 소비자가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손가락을 들었다.
“과연 이들 소비자는 경제관념이 뛰어난 소비자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무례한 소비자일까요?”
내 물음은 평가하려는 시험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회의에 참여한 이들은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아끼는 것으로 소비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경제관념이 뛰어난 소비가 아닐까요?”
“하지만 체리피커들이 쓸어 담는 다양한 부가혜택은 실제적으로는 일반 소비자들의 몫입니다. 구매라는 이름의 기여행동을 한 이들의 몫이라는 것. 이를 간과해서는 곤란하죠.”
잡아야 하는 데 막상 저들을 나무라는 이야기를 한다. 다시금 회의실은 경청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주어진 부가혜택들은 일반 소비자들이 챙기지 못한다면 사장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두 손해가 될 터인데 누군가는 이 혜택을 취합니다. 이를 사회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착각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합니다.”
“그렇다면 체리피커를 왜 잡아야 하는 거죠?”
“저희가 그런 게이머들을 잡아야 할 이유가 뭔가요?”
공통된 질문들에 큰 원을 그리며 대답했다.
“초반의 흥행은 어떤 사람이 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포인트는 얼마나 왔느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그런 게이머들을 고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경험을 해보았어요.
“네?”
“천년비입니다.”
3주전에 오픈했던 이 게임에서 우리는 엄청난 체리피커들을 불러 모았다. 덕분에 오픈 당일에 1만 5천 명의 동시접속자가 몰려들었던 천년비는 3주가 지난 지금, 약 5천명의 동시접속자를 유지하는 상태였다.
“트레이더스 포럼의 이벤트를 통해서 천년비에 체리피커들을 불러 모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런 이벤트를 준비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또 동일한 이벤트를 했다가는 우리의 운영비용이 남아나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반복한다면 나중엔 포인트를 주지 않을 때 오히려 반발심을 가지게 되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신지···?”
충분한 이론들은 후차적으로 공부했다. 하지만 나는 게이머로서 결과물들인 이벤트들을 숱하게 경험한 기억들이 있다.
윤태식이라는 일반 게이머뿐만이 아니라 모든 유저들이 늘 관심 깊게 지켜보는 것들. 그중에서도 어떤 이벤트가 만족감과 참여율이 높았던가. 나는 개발자가 아닌 이용자의 관점에서 이를 보고 원칙을 정했다.
첫째. 이벤트는 명확하고 간결한 게 좋다.
둘째. 참여가 쉬워야 한다.
셋째. 보상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넷째. 유저의 욕심과 두려움을 자극해야 한다.
여기서 욕심이란 게이머들이 선호하는 아이템과 메리트를 확실하게 심어주는 것을 의미했다.
“뉴 온라인의 이벤트는 트레이더스 포럼과는 완전한 별개의 이벤트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말했다.
“레벨업을 할 때마다 일정의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또한 각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또 일정한 포인트를 지급 받을 수 있게 하세요. 그리고 적립된 포인트는 매일 자정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게임이 아니라 홈페이지까지 서버의 포인트 정보를 받아올 이유가 있는 건가요?”
“다들 경품 응모를 직접 해본 적은 없어도 그런 게 있다는 것은 물건을 사면서 경험 해보셨을 거라고 봅니다.”
“네.”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게임 내의 포인트로 경품 응모를 할 겁니다. 금액의 총 합은 2,000만원!”
“아!”
역시 현금이 나오니 확 이해되는 모양이다.
“컴퓨터 1대, 모니터 3대, 스피커 10대, 키보드 마우스 세트 10대, 뭐 나머지는 대충 문화상품권 5만원 권과 1만원 권이면 됩니다. 그리고 이 경품마다 응모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맞추도록 하세요.”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으리라 본다.
“경품을 타기 위해서 그런 게이머들··· 체리피커들이 몰리게 될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짚어준다.
“각 포인트는 매일 자정에 적립되고 그 전 날의 포인트는 소멸이 되어야 합니다.”
“네? 소멸이요?”
“열심히 모은 포인트인데 그렇게 사라지면 반발이 생기지 않을까요?”
두려움이란 바로 기간한정, 수량한정이다.
유저들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위해서 ‘한정 이벤트는 나중에 얻을 수 없다’는 불안감을 주어야 했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신선한 재미와 보상을 얻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다는 것을 고지하고 모두가 동일한 조건이라면 반발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냥 ‘아 원래 그런 거구나’ 하게 되죠. 형평성의 문제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