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91화 (91/577)

────────────────────────────────────

────────────────────────────────────

우리도 뿔났다

《- 구운몽 : 플레지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인기가 너무나도 많은 만큼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이 일부 일어나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죠. 또한 이런 부분들만 비춰지는 것을 심히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훗날 유명해지는 말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듣자마자 바로 기분 나쁜 말은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라고 시작하는 충고라고.

그러니 나 역시 아낌없이 칭찬해주면서 좋게 밑밥을 깔고 시작했다.

《- 구운몽 : 외부적인 문제를 논외로 치고, 유저로서의 제 견해를 전하자면 플레지에는 치명적인 문제 몇 가지가 존재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정이 없다면 앞으로 나가는 길이 매우 험난할 것이라 봅니다.

- 게이머스 포럼 : 치명적인 문제요? 어떤 문제일까요?

- 구운몽 : 첫 번째 문제는 주사위를 이용한 캐릭터 생성입니다.

주사위 시스템이라는 것은 초반에는 아주 신선한 시스템으로 유저들에게 각광을 받았고 저 역시 캐릭터 생성 당시에는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최초의 경험일 뿐, 차후 이뤄질 신규 유저들의 추가 유입을 막아버리는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메시지를 띄웠을 때, 지금까지는 참관인으로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던 캐릭터가 관심을 보였다. 그는 ‘MCSoft’라는 아이디를 가진 게임사의 대표다.

‘이때 기분이 정말 미묘했지.’

향후 20년을 즐긴 올드 유저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이 비로소 만들어진 셈이다. 여러모로 싱숭생숭했었다.

《- MCSoft : 갑자기 끼어 들어서 죄송합니다. 혹시 첫 번째라는 건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구운몽 : 물론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스테이터스입니다.

- MCSoft : 스테이터스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 구운몽 : 플레지는 여타의 게임과 다르게 스테이터스를 조정하는 것이 없는 게임입니다. 그로 인한 편의성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한계 역시 뚜렷하죠. 다양한 캐릭터가 생성될 수 없는 획일성입니다. 이 때문에 결국 모두가 지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MCSoft :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네요. 확실히 도움이 되는 말씀이십니다. 혹시 문제점 중에 세 번째도 있습니까?

- 구운몽 : 네. 헤이스트가 걱정됩니다.

- MCSoft : 헤이스트 마법에 문제가 있던가요?

- 구운몽 : 마법 자체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부분이 크게 우려될 뿐이죠. 혹시 근래에 헤이스트를 가지고 하는 장사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일명 헤이 샵이라고 하는 겁니다만.

- MCSoft : 네. 다만 이 역시 게임 시스템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딱히 막을 생각은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 구운몽 : 아니요. 감히 장담하는데 플레지는 필히 이것을 막아야만 합니다.

- MCSoft :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가속 포션의 효과와 동일한 헤이스트 마법. 이 효과는 축적되어서 시간이 늘어나는 형태로 적용된다. 이를 이용하여 매지션들은 골드를 지급받으면 수십 개의 캐릭터가 마법을 부여하는데 이것이 바로 헤이 샵이었다.

플레지로 돈을 버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당연히 존재했을 만큼 돈벌이가 충분히 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시점이 된 마당에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거 아니어도 나는 부자거든.’

1차원적인 이유.

플레지 안에서의 골드 벌이에 탐욕을 부려야 할 만큼 나는 궁핍하지 않았다. 그러니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게임이 승승장구하고 팬으로서 훨훨 날기를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내 시점으로 볼 때 헤이샵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플레지를 확 꺾이게 만든 가장 큰 사건이 헤이샵 몰락이니까.’

이것이 2차원적인 이유다.

용의 협곡이 생기고 플레지는 게임 내에서 상당한 양의 골드가 풀려나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증거로는 슬라임 레이스를 들 수 있다. 도박판의 수익이 매우 상승했다는 것은 주머니가 두둑해진 만큼 소비할 곳을 찾은 유저들의 수 역시 급증했다는 증거다.

쌓여가는 부. 흐르는 골드.

이 시점에서 헤이샵이 부흥한다. 부유해진 만큼 편의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인데 광전사의 도끼를 들고 다른 것으로 갈아 끼는 등의 수고보다도 헤이스트 마법 수십 번을 축적하는 편이 쉽고 용이하다.

이때부터는 시장논리가 적용된다.

수요가 늘면 공급 역시도 늘어난다. 돈 냄새를 맡고 헤이샵이 성행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헤이샵의 운영구조를 보면 플레지에 왜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마법은 매지션 캐릭터가 사용한다.

헤이샵은 마을 내에 수십명의 매지션 캐릭터들이 대기한 상태로 존재해야 만이 운영된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캐릭터들은 어떻게 양성하고 관리할까?

게임 좋아하는 아이들 수십명을 데려다 놓고 아르바이트 비용을 지불하면서 손가락만 클릭하게 하는 일일 리가 없다.

‘내가 했던 것처럼 불법프로그램을 돌리는 거지. 자판기들이고.’

기업형 헤이샵은 불법프로그램을 필연적으로 이용한다.

이것의 발전형태가 바로 자동사냥이다. 먼 훗날에는 수많은 모바일 게임에서 당연하게 넣는 기능인데 사실 자동사냥이라는 시스템은 없어야 정상이다. 회사에서 유료로 버젓이 제공해서는 안 되는 거다.

‘이건 나중의 일이니 지금의 플레지만 봐도 답이 딱 나와.’

게임 세상에 캐릭터들이 득실거리는데 막상 진짜 유저는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그때가 되어서야 엠씨 소프트는 불법프로그램 근절을 위해서 부랴부랴 헤이샵이 망하게끔 만든다. 대체품으로 가속 효과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강력 초록 물약’이라는 아이템을 업데이트 하면서다.

그러나 저렴하면서 편리한 시스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강력 초록 물약이라는 대체품을 외려 불편하게 여겼다. 때문에 만족하지 못했고 이탈자가 급증하게 되어버린다.

‘엎친데 덮친 격!’

최종적으로는 자동사냥이 크리티컬이지만 사태의 시작은 헤이샵을 묵인하는 것에서부터 비롯했다. 그러니 헤이샵은 분명하게 플레지의 몰락에 가장 가까운 문화 중 하나가 되고 당초에 근절하는 것이 백배 나았다.

《- 구운몽 : 분명하게 말씀드리자면 헤이샵은 기업형이 되었을 때 돈이 되는 분야입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 테죠. 그리고 그때가 되면? 불법프로그램이 게임 상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게 될 겁니다.

- MCSoft : 그렇다면 구운몽님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 구운몽 : 헤이스트를 굳이 돈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게 만들면 됩니다.

- MCSoft : 돈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게라··· 어떤 방식이 있을까요?

- 구운몽 : 일종의 농축 개념을 넣으면 됩니다.

초록물약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해서 30분에서 1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소모품. 그러면서도 최소 한 번에 3~4시간 분량을 가지고 다녀도 부담이 되지 않는 무게. 추가로 1시간 유지비용이 2,000골드 수준까지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MCSoft : 한 시간 유지에 2,000골드라면 현재의 초록 물약에 비해서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입니다. 골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 구운몽 : 골드 인플레이션보다는 오히려 더 큰 소모를 만들 겁니다. 구매자 전체의 층위를 확장시킬 테니까요.

- MCSoft : 총 구매자의 수가 늘어난다?

- 구운몽 : 지금 꾸준히 초록 물약을 사용하는 유저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용하는 이들만 사용합니다. 그런데 한 시간에 2,000골드라면? 너도나도 쓰기 시작하겠죠. 오히려 골드의 소모를 더 만들면 만들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겁니다.

- MCSoft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내부적으로 검토해서 꼭 좋은 방향으로 플레지를 이끌어 가도록하겠습니다.》

뉴 온라인이 오픈하면 플레지와 경쟁하게 될 텐데 경쟁사에 좋은 충고를 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게임만 제작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내의 아이템 거래로 주요 수익이 나오는 만큼 장수하는 게임이 많아질수록 회사에도 이득이 된다.

‘물론 팬심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 게이머스 포럼 : 마지막으로 플레지를 즐기는 이용 고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 구운몽 : 플레지는 게임이며 좋은 취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안타까운 점은 게임을 취미의 대상이 아닌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체로 보고 과대해석을 하는 사례가 보인다는 부분입니다.

게임을 지나치게 하는 것은 물론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했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우리 유저들은 게임에만 빠져서 현실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반대로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 분들도 저희 가족이 그런 것처럼 편견없이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의 삶에도 충실하다면 게임을 화근이 아닌 취미이자 문화생활의 하나로 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 플레지보도국장 》

인터뷰는 여기까지다. 그리고 플레지 게임사에서는 굉장히 의외의 선물을 약속했다.

‘자동차 생겼다!’

이건 진짜 의외였던 부분이다. 돈을 무진장 밝히기만 한다고 여겼던 회사인데 말이다. 무려 풀 옵션의 중형 국산차량을 50레벨 달성 축하 선물로 준단다.

물론 이 선물을 내 명의로 받을 생각은 없다. 선물을 받기 위해선 이쪽의 정보를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데 고스란히 밝히면 ‘지난 번 그 녀석 뉴 온라인 대표!?’라고 또 말이 나올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명의이자 자동차 선물을 해드리게 되었다.

이후 한달이 지났을 무렵, 게임사에서 약속한 차량을 인도받고 깜짝 놀랐다.

“제세공과금이 장난 아니네.”

제세공과금은 5만 원 이상이 되는 상품을 취득할 때 발생하는 취득세를 말하는데 나는 자동차 가격의 22%를 지불해야 했다.

금액은 627만원!

‘역시 잘나가는 게임사야. 무려 2,850만 원짜리를 주다니.’

만렙 달성. 인터뷰를 통한 광고 효과. 생각보다 통 큰 선물.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51. 우리도 뿔났다

지난번 회의에서 게임사로부터 돈을 받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일을 진행한 결과, 예상대로의 불만이 접수되었다. 보고하는 김정규 팀장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포럼의 유료화 전략은 생각보다 많은 반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나 대형 게임사에서 분기탱천해서는 언론을 통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입니다.”

게이머스 포럼은 가격 정찰제를 하고 있지 않다. 해당 게임을 어느 정도의 규모로 준비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른 비용을 요구하였고 때문에 소규모 게임사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비용을. 대규모 게임사는 상대적으로 큰 비용을 요구했다.

때문에 대형 게임사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비밀리에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게임사끼리는 정보가 다 퍼져나갔으니까.’

듀크에덴과 미르의 전사2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우리의 요청을 쉽게 받아들였다. 물론 요구 금액이 월간 10만원일 정도로 적은 것도 한 몫 했다. 이 요금 역시도 오픈 베타시기부터 1년간만 받을 뿐, 이후부터는 분기 매출이 10억 이하면 무료로 해준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이익이면 이익이지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공짜로 포럼을 열어준다면 누구나가 동일한 조건으로 홍보를 한다. 하지만 유료화가 된다면 유료로 포럼을 획득한 게임만이 홍보 창구를 보유 하는 것이다.

이 비용이 연간 120만원이면 정말 싼 값이라 자부한다.

‘거의 공짜라고. 매출 1억 당 10만원이면 0.1%고 게임사에서 매출액의 0.1%는 돈도 아니야. 그리고 분기 매출이 10억이 안 된다면 내지 않아도 되잖아.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이게 불합리한 거냐?’

합리적으로 따지고 들수록 대형 게임사들을 잘근잘근 씹게 된다.

이런 식으로 포럼을 운영하면 대박의 성공작이 나오지 않는 이상 무조건 손해를 떠안게 된다. 우리 역시 유지비용이 필요한 회사인데 저들은 이 사정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이지 기본적으로 양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기사 제목이 멋지네요. ‘게임사들이 뿔났다!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의 유료화 선언은 배은망덕!’이라니.”

분기별 매출액이 백억 단위인 대형 게임사들은 그들다운 방식으로 언론을 이용하여 선동했다. 방금 내가 읽은 기사의 내용은 ‘게임사 덕분에 수익을 내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유료화를 선언한다는 것은 키워준 부모의 등에 비수를 꽂는 파렴치하며 배은망덕한 일!’이었다.

“다행인 점은 유저들의 반발은 없다는 점입니다.”

게임사들이 돈을 내는 것이지 유저들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덕분에 여론이 형성되어 우리를 압박하는 사태에 이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방치한 채로 구경만 해서는 곤란하다. 다행하게도 엠씨 소프트는 저들 그룹에 속하지 않았으니 우리 역시 강경하게 대처할 수 있다.

“우리도 대응기사 내도록 합시다. ‘우리가 원하는 돈은 큰돈이 아니다. 다만 포럼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필요하고 그 사람들은 무료봉사자가 아니다. 홍보의 효과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 비용을 지불할 대상은 게임사라고 생각한다.’와 같은 뉘앙스로 말입니다.”

이어서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배은망덕이라고 하는데, 우리를 키운 것은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유저들이지 게임사가 아니라고 확실히 못 박으십시오.”

“네?”

김정규 팀장이 살짝 당황해했다.

“그게, 게임이 없으면 저희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닙니까?”

“시야를 넓혀봅시다. 국내에서 만든 게임만 게임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한국 유저는 온라인 게임의 존재를 인식했어요. 국산 게임이 사라져도 유저들은 하나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왜냐? 해외에서 제작한 게임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예요.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서비스 대상을 바꾸면 됩니다. 그런데 게임사는 어떨까요?”

국산 게임들 중에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게임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들은 어떻게든 국내 시장을 붙잡아 두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회사들이다. 그러니 우리보다는 저들의 애가 타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자존심을 내세우고 기 싸움을 벌이려 드니 짜증만 날 따름이다.

“이 와중에도 우리의 유료화 방침을 수락한 게임이 있다고 했지요? 어떤 게임들입니까?”

“천년비와 듀크에덴, 미르의 전사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주요 게임으로 나와 있던 4개의 게임 중에 3개가 수락했다. 이러면 무조건 우리가 이긴다.

과감하게 대응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