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82화 (8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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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협곡

“기사는 씁니다. 고료 역시 주면 받으세요. 단, 저들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굳이 신경 쓰는 기사를 작성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트레이더스 포럼을 통해 수익을 확보한 만큼 게이머스 포럼의 이익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우선시 하세요.”

서운하다 하면 고료 같은 것은 일절 거절하면 된다고도 덧붙였다.

고진환 팀장이 우려를 보였다.

“그렇게 되면 게임사와 우리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을까요?”

온라인 게임에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이니만큼 게임사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트레이더스 포럼은 게임사와 관계가 틀어져서 서로 소송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면 양측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저울의 무게추가 자신들 쪽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때의 일이다.

“게이머스 포럼이 더 확고한 위치를 잡으면 해결될 일입니다.”

싸워서 볼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한다.

“우리는 게임의 인기에 편승해서 자리를 잡은 회사가 맞습니다. 하지만 저들 역시도 우리를 통해서만이 자신들의 게임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 이를 알려줘야 합니다.”

회사의 기존 멤버들이 능력자인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알겠습니다.”

두루뭉술하게 방향을 짚어도 척척 자신들의 능력껏 알아듣는 것이다. 덕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일이 매우 적었고 나는 보고서를 토대로 가부를 결정하면 됐다.

“포럼 카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각 게임의 클랜들에서 사용을 시작한 이후의 동향에 관한 물음에 김정규 팀장이 대답했다..

“플레지보다는 현재 스드 포럼에서 아주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클랜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을 다룰 수 있도록 디자인된 만큼 어지간한 홈페이지 제작보다 낫고 편하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알겠습니다. 다들 그럼 회사의 성장을 위해 다들 더 집중해 주시고 회의는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외의 주요 안건들을 처리한 후 회의를 파했다. 이후 대표 이사실에 들어와서 두 다리 쫙 뻗고 누웠다.

‘아이고 편하다. 괜히 사장님들이 이런 것을 만드는 게 아니구나.’

강남 사옥으로 이전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에 하나는 바로 대표 이사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서 이런 공간을 만들지 않으려 했는데, 의외로 직원들이 내게 은근하게 요청했다.

‘대표랑 같은 눈높이에서 일하면 불편하다는 거였지.’

사실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부분이었다. 상사가 제아무리 ‘편하게 있어, 편하게.’라고 말한다 한들 어떤 부하 직원이 정말로 편하게 대하겠는가. 제일 좋은 것은 카드만 주고 회식 자리에서 빠지는 거라는 말이 버젓하게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부담감을 없앴으면 하는 여론이 생각보다 강했고 이 의견에 따라서 대표 이사실을 만들었다. 나름 젊은 사장이고 직원들과 최대한 가깝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우리 회사가 이 정도이니 다른 회사는 오죽하랴 싶은 순간이었다.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던 만큼 서운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웬걸.

‘막상 만들어지니까 너무 좋아! 마음껏 농땡이를 쳐도 되거든~’

대표 이사실은 나 혼자 사용한다. 누군가 갑자기 들어오는 일도 존재할 수 없다. 내가 가장 위쪽인 만큼 누구든지 들어오기 전에는 방문 목적을 밝히고 허락을 구한 뒤에야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니  자유롭게 내 사무실에서 하고 싶은 게임을 원 없이 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놓고 게임 타임을 갖자. 이제 어지간한 회사 일들은 죄다 기다리는 것만 남았잖아.’

동종업계 어디보다도 복지와 급여가 높은 탓일까.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기에 더욱 효율적으로 일하는 덕분이려나. 열정이 곧 높은 페이로 이어지고 보상체계가 확실하기 때문일 것 같다.

덕분에 우리 회사는 굳이 사장이 돌아다니며 감시하거나 채근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잡혀 있었다. 남은 것은 각각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움직이며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까지 기다리는 일 뿐이다.

바로 이때, 하늘이 안배라도 한 것처럼 플레지가 업데이트 되었다.

“게임으로 복귀하라는 신의 계시다.”

스타 드래프트 팀에 가서 굳이 잘하고 있는 선수들의 사기를 꺾을 이유가 없다. 프로젝트 뉴 온라인 팀에 기웃기웃하다가는 얼마 없는 밑천마저 탈탈 털릴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마음 편하고 유쾌하게 즐기는 마음의 고향, 플레지 월드에 가기로 결정했다.

기분 좋게 접속하여 공지를 읽었다.

『안녕하세요. 플레지 운영팀입니다.

용의 협곡 업데이트는 총 2차에 걸쳐서 진행됩니다.

이번 1차 업데이트에서는 맵과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하며 최강검 '드래곤 슬레이어'를 얻을 수 있는 이벤트가 시행됩니다.

2차 업데이트에서는 새로운 몬스터와 아이템. 그리고 최강의 몬스터인 지룡이 등장합니다 이는 내달 중으로 시행될 예정입니다.』

플레지는 오픈 초기부터 높은 인기를 누린 게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성기의 시작점은 바로 용의 협곡 업데이트였다. 강력한 몬스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드디어 골드의 무게가 없어지는 패치가 이뤄진 덕분이었다.

유저의 편의성을 가로막던 요소인 돈의 무게가 사라진다는 것.

이는 상거래가 제대로 활성화된다는 의미이며 수입이 더욱 짭짤해진다는 뜻이었다. 진수와 성찬이가 열심히 파는 만큼 나에게도 수익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꽂혀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딱 이때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지.’

플레지의 설정에 따르면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이 최강의 검은 용의 협곡까지 찾아갔던 나이트가 남긴 강력한 무기였다. 이 장비는 크리아의 시련이라는 퀘스트를 통해 획득할 수 있으며 진행자 중에서 1위의 점수를 얻은 플레이어만이 소유할 수 있다.

즉, 서버에 단 1명만이 보유할 수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게다가 이조차도 다른 유저가 1위 점수를 갱신하면 박탈당하고 만다.

‘물론 이건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까지 점수를 높여버리면 돼.’

얼마만큼의 점수를 획득해야 그 어떤 플레이어도 넘볼 수 없게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2위의 점수는 대충 알고 있다.

‘2등 보상 아이템이 투 핸드 소드였었지.’

크리아의 시련 퀘스트는 일정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게 되면 보상 아이템을 주는데 내가 기억하는 바로 서버의 2위가 받았던 무기가 투 핸드 소드였다. 그러니 그 점수 이상만 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좋아. 그럼 나머지 업데이트 내용도 확인해보자.’

회사 서류와는 읽는 재미가 다른 게임 공지들!

추억을 되새길 겸 차분히 읽기 시작했다.

『Ⅰ - 용의 협곡 위치

엘븐 우즈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협곡 지형의 장소입니다. 곳곳에 용의 화석이 묻혀있고 던전 최하층에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기에 '용의 협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입구는 두 군데로서 하딘의 사숙 아래쪽에 있는 해안절벽을 따라 들어가는 길, 요정의 숲 북동쪽의 협곡 지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약간 위험한 진입로가 하나 존재합니다. 요정의 숲 던전을 통해 곧장 용의 던전으로 가는 방법이 그것인데 이는 직접 던전으로 통하는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Ⅱ - 용의 협곡에 서식하는 주요 몬스터

하피(Lv 24), 코카트리스(Lv 32), 드레이크(Lv 40), 트롤(Lv 26), 무리안(Lv 27), 흑장로(Lv 35), 에틴(Lv 33), 서큐버스(Lv 38).

Ⅲ - 크리아의 시련

자신을 대신하여 지룡 안사락스를 죽여줄 사람을 찾는 크리아. 그에게 시련의 열쇠를를 들고 찾아가면 드래곤 슬레이어를 획득할 수 있는 퀘스트를 받게 됩니다.

1) 특정 아이템(드레이크의 발톱, 오크투사의 목걸이, 바실리스크의 뿔, 네크로맨서의 수정구)을 가진 플레이어가 크리아에게 말을 걸고 퀘스트의 참여를 선택합니다.

2) 즉시 해당자는 '시련의 방'으로 이동됩니다.

3) 시련의 방에서는 일정 간격으로 계속 몬스터가 소환됩니다. 소환되는 몬스터의 강함은 계속 증가합니다.

4)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계속 죽여서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 소환되는 몬스터 죽더라도 아이템은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5) 시련의 방 가운데에 있는 하얀 마법진을 밟으면 크리아가 있던 장소로 되돌아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무효가 되면서 칸트성 앞마을이나 엘븐 우즈에서 시작하게 됨.)

6) 크리아가 점수를 평가하게 되고 그에 맞게끔 보상을 내립니다.

이 점수는 내부적으로 계산되며 보상은 아래와 같습니다.

3,000 미만 - 아무것도 없음

3,000 이상 ? 투 핸드 소드

7,000 이상 - 다마스커스 검

10,000 이상 - 싸울아비 장검

최고 점수(무조건 1등) - 드래곤 슬레이어

- 최초 최고 점수는 10,000 점

7) 점수는 계속 기록되어서 상위 10위는 크리아가 출몰하는 비석에 새겨집니다. 이는 클릭할 시 누구나 확인 가능합니다.

Ⅳ - 파티 시스템(Party System)

동일한 길드에 속한 길드원끼리는 파티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티 구성원은 최대 8명까지 가능하며 구성원끼리는 체력 바가 생성되어 서로의 체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험치를 공유 합니다.』

이 외에도 인터페이스의 변경과 새로운 단축키 등등 한 번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의 업데이트가 진행된 상태였다. 이상의 내용을 잘 숙지한 뒤 플레지에 접속했다.

곧 새로운 인터페이스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아래에 있는 채팅창이다.

‘이전까지는 위에 있었지.’

게임을 중요시 한다면 당연히 채팅창이 아래에 있는 것이 맞다. 진작 바뀌었어야 할 부분이었기에 금방 적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사소한 부분에서 나 혼자만 불편해할 요소를 발견했다.

바로 체력과 마력을 표시해주는 막대의 위치였다.

‘마력 바가 왼쪽, 체력 바가 오른쪽이라니!’

너무 익숙하게 지나간 부분이라서 이런 건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체력은 왼쪽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오른쪽에 있는 체력을 잘 안 보게 된 것이다.

‘어차피 다시 바꿀 거, 왜 이 모양으로 한 거지? ···아! 그러고 보니 이맘때에 인터페이스가 많이 바뀌었었어. 삽질을 몇 번 하는 바람에 수습하느라 그랬던 거구나.’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호소했을 거다. 추후에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면서 차차 나중의 모습이 완성됐을 테고 말이다.

어찌됐건 유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플레이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드래곤 슬레이어니까 인터페이스 따위는 대충 넘어가자.’

접속전까지 내가 상정했던 상황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드래곤 슬레이어의 획득 점수였다.

최초의 1위가 10,000점이란다.

투 핸드 소드는 3,000점 이상이며 7,000점 이상으로 다마스커스가 자리했다. 즉, 내가 기억하는 2위 플레이어는 3,000점에서 6,999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거다.

‘대충 투 핸드 소드 정도의 점수부터 드래곤 슬레이어를 얻고 질러보고, 또 조금 더 올려서 얻고 강화하다가 날려주면서 고강화 아이템을 장만하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살짝 수정해야겠어.’

1위 탈환을 스스로 갱신하면서 아이템을 독식.

강화하다가 아이템을 깨뜨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일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싸울아비 장검의 존재였다.

“아니, 네가 왜 보상으로 나오는 거냐?”

이건 정말이지 예상외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본래 싸울아비 장검은 차후의 콘텐츠인 ‘화룡의 영지’가 업데이트 된 후에야 제작 가능하다고 알려진 장비다. 예외로는 드래곤을 사냥한 파티만이 소유했던 만큼 보통의 유저들에게는 전설처럼 여겨지는 무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버젓이 획득할 방법이 존재했던 것이다.

‘드래곤 슬레이어를 획득하면 싸울아비 장검은 얻지 못하는 건가?’

과거의 나는 레벨업에 헉헉대고 강화주문서 하나를 먹으면 희열을 느낄 만큼의 일반 유저였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통 아는 바가 없었다. 하기야, 애당초 드래곤 슬레이어를 장비했던 플레이어가 전 서버에 몇 명이나 되겠느냐난 말이다.

‘노하우를 공개했다가는 자신의 드슬을 빼앗길 염려까지 있으니 이런 정보는 몰랐던 게 당연하지. 그나마 내가 아는 건 이벤트 종료 때의 최종 스펙이고.’

서버 최초 획득자. 크리아의 시련이 끝날 때까지 드래곤 슬레이어를 소유했던 유저.

당시 경이적으로만 여겨지던 그의 스펙은 9검에 ?53방이었다.

‘현재의 내 장비는 10검에 ?60방.’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강화 장비아이템이 얼마나 희소성을 갖는지, 성공률이 떨어지는 지를 실감해본 이들은 피부로 절감한다.

압도적인 나의 우위라는 것을 말이다.

맡겨둔 물건을 되찾아오듯이 1등은 내 것이고 최강의 검도 대놓고 내 소유라 자부해도 좋았다.

“구운몽 출동.”

용의 협곡!

플레지의 신규 콘텐츠들을 쫙 훑기 위해 게임을 시작했다.

*

방금 업데이트된 따끈따끈한 상태라서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 있다. 크리아의 시련을 치르기 위한 퀘스트 아이템은 딱 1개를 빼고 모두 교환 및 드롭 불가라는 것이다.

즉, 거래 가능한 ‘오크 투사의 목걸이’는 골드로 구매하고 나머지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쪽이 남들보다 한걸음 앞서가는 방식이었다.

‘우선은 바실리스크랑 드레이크 위주로 때려잡아보자.’

본래 사막 지역은 킹 버그베어와 일반 버그베어들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추가되는 업데이트들 덕분에 신종 몬스터인 스콜피온과 거대개미, 바실리스크가 자리를 잡았고 기존의 터주대감이던 버그베어들은 사막 던전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즉, 바실리스크를 잡아서 뿔을 얻으려면 사막으로.

드레이크를 사냥하여 발톱을 획득하려면 용의 협곡으로.

흑장로를 사냥하여 네크로맨서의 수정구를 얻으려면 이 역시도 용의 협곡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정보의 우위가 또 빛을 발하는 거지.’

호기심에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고 탐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 남들보다 시간을 한참 단축할 수 있었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용의 협곡을 한 바퀴 돈 뒤에 사막으로 이동하는 노선을 짰다.

당연히 몬스터들이 잘 생성되는 명당자리를 경유하면서였다.

‘나를 지관이라 불러다오.’

현실의 풍수지리 못잖게 게임 속에도 풍수가 존재한다. 비싼 몬스터들을 유난히 잘 볼 수 있는 곳. 생성되는 포인트들이 바로 이에 해당했다.

이 중에서 용의 협곡의 풍수는 삼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왼쪽으로 쭉 걸어가면~’

이동하면 거대한 용의 뼈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첫 번째 명당.

- [외치기] 흑장로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흑장로 자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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