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81화 (8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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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협곡

‘대답해드리리다.’

공부해온 만큼 확실하게 짚어주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온라인 게임은 유사한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유럽의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다면 동일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흡사하다.

“그러나 게임 월드 속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양쪽의 게임이 발전해온 방향을 보아야 합니다.”

뒤이어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서구형 게임은 게임계의 주류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PC. 혹은 콘솔 게임에서 계승되어 넘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조금 전에 설명한 온라인 게임의 명칭으로도 설명할 수 있죠. RPG에서 서양은 명칭 자체가 MMORPG이고 우리는 MUG입니다. 이유는 바로 우리가 계승한 것이 RPG가 아닌 MUD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단순한 설명이었다. 누군가가 붙잡고 늘어져서 오류를 찾으려면 너끈하게 반박거리를 찾아낼 정도였다. 그럼에도 저들은 반박은커녕 오히려 감탄을 쏟아냈다.

이는 아직 게임이라는 시장을 분석한 사람이 없기에 가능했다.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결과에 따라서 해석하면 된다. 이는 기가 막히게 마감한 주가의 동향을 분석하는 증권사 전문가와도 같았다.

하지만 당장의 변화에 주목하여 확실한 방향을 짚어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를 미래의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말하고 있기에 서당 개가 전문가들 앞에서 유세를 떨 수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설명하자면 서구의 온라인 게임은 RPG를 계승했기에 게임 스토리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퀘스트 혹은 미션이 존재하며 이를 따라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한국의 온라인 게임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입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퀘스트나 미션은 전혀 독창적이지 못합니다.”

“게임 내에서 차지하는 역할 또한 매우 미미한 편이고.”

이는 원칙 없이 촉박한 개발 일정에 맞춰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 만들고 보충하는 탓이 컸다. 나중에는 누가 무슨 스토리를 써넣었는지 개발팀도 잊어버리고 마는 촌극이 펼쳐지기도 했다. 게임 내의 역사를 기술한 사람보다 읽은 사람이 더 정통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아예 스토리를 포기하게 된다. 대신 사용자들의 관계를 극한으로 몰고 가능한 한 갈등상황으로 발전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스토리의 상당 부분은 사용자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버린 뒤 이렇게 말하였다.

- 우리 게임의 스토리는 유저들이 직접 만들어갑니다!

게임 인생 20년차를 훌쩍 넘긴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비겁한 변명이라고 본다.

또 진짜인지 핑계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말도 있었다.

- 서양이 게임 내부의 스토리를 중요시 한 것은 우리나라보다 인터넷 보급률이 똥 같아서입니다!

한국보다 인터넷 보급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유저들이 참여해가며 만드는 게임 속 사회가 불가능했다는 이야기. 초고속 통신망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자부심과 함께 콧대를 높이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이를 떠올리면서 내가 변명이라는 단어를 함께 연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차후의 한국 게임들이 퀘스트와 미션을 추가하면서 서구형 게임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한국형 게임이 자부심 넘치는 완성체였으면 그걸 고수했어야 말이 맞잖아.’

결국 다 핑계인 셈이다.

이런 나의 설명에 개발자들이 호기롭게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스토리를 살려서 개발하겠습니다.”

“최고의 게임! 선두를 향해 달려보지요!”

“새로운 콘텐츠로 가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찬물을 끼얹어준다.

“아뇨. 그러시면 심히 곤란합니다. 지난 번 미팅 때에도 설명을 드렸듯이 우리는 한국형 온라인 게임을 계승합니다. 바로 플레지를 말이지요.”

“네?”

“아직 한국 게이머들은 그런 종류의 온라인 게임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지 못해요. 새로운 게임? 새로운 콘텐츠? 아주 좋죠. 하지만 그것들을 새로 배우면서 즐기는 데에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유저들은 익숙하고 쉬운 방식을 훨씬 많이 선호한다. 아직 3D라는 것에서부터 낯섦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서구형 스토리 텔링까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무조건 외면당한다.

“시장의 속도보다 딱 반걸음 앞서야 합니다. 한 걸음의 차이가 나면 하나의 선례로만 남을 뿐이거든요. 실패했으나 바람직한 시도였다, 라는 한줄 평가와 함께 말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그런 말이 싫습니다. 의미 있는 도전은 성공을 거머쥐어야 한다고 봅니다.”

“음! 그렇군요!”

“성공···해야지요!”

게임 개발의 열정에 훌륭한 동기부여가 되는 욕망이 더해졌다.

‘회의를 여태 해 와서 그런지, 제법 말을 잘하게 되었다니까.’

스스로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간단한 질문입니다.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거야. 사냥이죠.”

“닥치고 사냥입니다.”

“플레지의 형태라 하셨으니까요.”

참여율이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열의를 보이는 학생들에게 나는 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고정관념입니다.”

한국과 서구의 게임은 기본적으로 목적이 다르니, 레벨과 경험치에 대한 개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를 무지막지하게 늘려버리는 우리의 방식과 달리 서구는 의문을 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안을 만들었다.

“생각해 보세요. 레벨업은 곧 사냥이 아닙니다. 핵심은 경험치를 획득하는 거예요. 여기에 주목해 봅시다. 경험치! 이 말은 글자 그대로 ‘경험한 무언가를 수치화 한 것’입니다. 즉, 반드시 전투와 사냥이어야만 한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

“···맞네요?”

“그러네.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지?”

바로 이점이 한국게임의 한계였다.

“플레지가 국내에서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서양에서는 성공하지 못하리라 확신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들은 ‘닥치고 사냥!’이라는 불합리한 방식 이외의 것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죠. 고정관념이 확고한 우리 게이머들과는 다른 겁니다.”

사냥 중심의 한국형 방식은 중국과 일본까지는 먹혀 든다. 그러나 서고로 가면 죽을 쑤고 처참한 성적만을 가진 채 결국 내수형으로 돌아오는 결과를 얻었다. 핵심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며 때문에 나중에는 퀘스트와 미션을 추가하는 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알면서도 플레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거군요. 우선 성공을 해야 하니까.”

“대표님 말씀대로 일단 국내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거니까요.”

“당장 서구권에서 인기를 누리지 못해도 중국에는 먹히는 방식이니 이 방식을 버릴 이유가 없는 것이고.”

“이래서 에더퀘스트가 아닌 플레지를 따라야 한다고 하시는 거구나.”

똑같은 이야기라 해도 전후사정을 명확히 이해했을 때의 반응은 다르기 마련이다. 저들은 깊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개발자들이 게임의 작품성과 함께 시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면 더욱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사장님··· 아니 대표님이 괜히 젊은 나이에 그런 성공을 하신 것이 아니군요. 게임을 이렇게까지 분석할 수 있는 분은 대한민국에 대표님밖에 없을 겁니다.”

조기웅 프로그래머의 말에 적당한 웃음을 보이고 말했다.

준비한 마지막 이야기였다.

“게임은 문화입니다. 당연히 이 분야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해선 문화를 이해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죠. 이를 게임에 적용할 때 우리는 파티 플레이와 솔로 플레이를 알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성향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라는 말이십니까?”

“그렇지요.”

이는 온라인 게임 2세대에서 생기는 새로운 차이점이다.

“아까 게임의 배경은 ‘한국이나 서양 모두 중세 유럽과 판타지의 이미지를 사용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판타지가 배경이라 해도 서양과 한국의 판타지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용이 나오고 마법사와 몬스터들이 나오는데··· 다르다고요?”

“대표님 덕분에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굉장히 다르게 보이는군요.”

“그런데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

감을 잡지 못하는 저들 사이에서 임경목 씨가 대답했다.

“무협지군요.”

‘역시 최고 전문가라 이건가?’

한참이나 뒤에 파고 들어서 분석해야 알게 될 내용인데 이 정도의 설명만 듣고 바로 핵심을 파고 든다. 이쯤 되니 다시금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왜 개발 도중에 나가게 된 것인지 말이다.

‘절대로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닐 텐데.’

아무래도 좋다. 능력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환영할 따름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이해하기 쉽게 이해하려는 성향이 있죠. 그래서 서구의 판타지를 우리나라는 익숙한 허구장르인 무협지에 놓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한국형 판타지입니다.”

“아! 이래서 문화로부터 파티와 솔로의 차이가 나온다는 말이었군요.”

이 형태는 소설에서도 익숙하게 볼 수 있었다.

서양의 판타지를 보면 최종 보스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용사와 그를 지원하는 동료들이 존재한다. 일명 마왕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최종보스는 엄청난 힘을 가졌으나 ‘용사 파티의 조합’을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쓰러진다.

하지만 한국의 판타지는 다르게 성장했다.

영웅! 올 마스터!

- 최고의 무공을 익힌 천하제일검이 모두 캐리한다.

‘합리적인 것은 배제하지. 나눠 가지면 호구. 독식해서 짱짱맨이 되어야 대만족! 오로지 사이다!’

모든 기연은 전부 주인공만 가져야 한다.

최고의 무기.

최고의 무공.

최고의 인재.

최고의 미녀.

모든 종류의 최고들은 전부 한 사람의 소유물이다.

용사는 모든 것을 가졌고 그 혼자서 무적의 활약을 펼친다. 서양의 판타지를 따라서 동료를 모으기는 하지만 이 파티는 서로 협조하고 도움을 주면서도 받는 식의 파티가 아니다.

‘해결해주시는 초인이나 왕을 받드는 신하의 모습이지.’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주인과 몸종이랄 만큼 확실한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그들은 용사의 도우미가 아니라 용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이며 들러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영웅물이라 대변되는 동양의 판타지! 무협지의 방식이다.

이 문화적 차이는 당연하게도 게임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무엇이 낫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게임을 개발하는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여기에 걸맞은 게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겁니다.”

다들 이해하는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늘어난 모양이다.

대화가 오갔다.

“이미지는 판타지이지만 개개인이 강력한 초고수로 성장할 수 있는 무협지와 같은 게임···!”

“제가 아는 영화중에 의천도룡기라고 있던데 대표님 말씀대로라면 이게 딱인 것 같습니다.”

“오! 태섭아, 그거 좋다. 무기 하나를 얻음으로 천하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환상을 심어주는 거잖아.”

“좋은 무기를 얻으면 그 무기에서 마법이 나가거나 하는 것도 좋겠어.”

‘어? 그건 나중에 나오는 건데?’

깜짝 놀랐다. 공격수가 캐릭터 보유 스킬이 아닌 스킬이 부여된 장비를 획득하여 이를 사용하며 사냥하는 방법. 이것은 차후에 뉴 온라인에서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다. 이것이 초기 회의에 나온 것이다.

이런 발전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는 아낌없이 칭찬한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 환상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모두가 꿈꾸는 것이죠. 게임을 통해서 꿈을 현실로 가져오는 겁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표님의 설명을 듣고서 어떤 게임을 제작할지 선명하게 안 덕분인걸요.”

감명 받은 얼굴로 내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적극적인 환호에 적잖게 민망함을 느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느낌이 좋다.’

마치 게임 속 강화 확률이 피부로 느껴질 때와 흡사했다. 이번 도전은 아주 좋은 결과물을 얻을 것 같았다.

46. 용의 협곡

프로젝트 뉴 온라인 팀이 열심히 일하는 사이, 회사의 일정들 역시 순조롭게 이행했다.

신규직원을 채용하여 총 80명이 되었고 강남 사옥으로 순조롭게 이전을 마쳤다. 이쯤 규모가 커지니 사원 모두가 회의에 참여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 되었다.

때문에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은 부서 내부 회의를 진행하고 월요일과 수요일은 각 부서의 팀장급 이상의 인원만 모이는 간부 회의로 변경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두 가지의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대표라는 직함을 달면서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고 권한 역시 커졌다. 그런데 요소요소에 사람들이 투입되니 정작 자유 시간은 더 늘어났다. 이 시간을 어찌 활용하느냐는 누구의 감시나 채찍질도 없이 오직 나에게 달린 것이다.

여기서 내가 내린 결정은 ‘처음처럼 하자’였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까 이 위치에 오른 거잖아. 그러니 계속해서 이렇게 하면 돼. 더 무리하지 말고.’

아울러 한 가지를 더했으니 그것은 바로 과거의 꿈을 가만히 되짚는 연습을 하는 작업이었다. 사실 내가 확신을 갖고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모든 근간은 20년간의 미래 경험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꿈속 지식은 절대 하찮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무의식으로 놓치고 간과했던 기억들이 혹시나 있지는 않은지, 처음에는 오직 플레지 업데이트에만 집중했던 만큼 가만히 되새김질을 했다.

이것이 근래 추가된 내 변화된 일상의 전부였다.

‘이제는 복권 1등 당첨번호가 안 궁금해.’

전역일 당시에는 미친 듯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알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심정이었다. 나름 부자라고 할 위치에 올랐고 회사 간에 알력싸움을 벌일 자리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오늘 간부회의 때 고진환 팀장이 가져온 안건이 바로 여기에 해당했다.

“사이트의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몇몇 게임사 측에서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게임에 관한 기사를 써 달라는 것이고 고료를 지불하겠다고도 합니다.”

몇몇이라 말한 게임들은 점유율 5위 이내에 드는 상위권 게임이었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한 행사였다. 여기서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고료다. 돈을 준다는 의미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써달라는 압박도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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