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79화 (79/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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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뉴 온라인

“우선 들어 봐. 배추가 아니었으면 회사가 이 정도까지 성장할 수 없었을 거야. 녀석은 우리 회사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또 걔가 있어야 더 성장할 수 있게 됐어.”

“하지만 우리 둘은 아니다?”

“너희가 없었으면 회사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거야. 문제는 거기에서 그만이라는 점이지. 생각해봐. 더 커지고 더 확장되고 세분화되는 사업에서 너희 둘은 어떤 포지션을 맡을까?”

“아마 똑같겠지?”

“인정.”

‘배우고 뭘 더 해볼 생각은 역시나 없네.’

물론 다른 고학력 직원들과 경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그쪽으로는 아예 엄두도 내지 않는 두 녀석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나 역시 잘 안다.

나처럼 미래의 꿈을 꾸거나 특별한 능력이 더해지지도 않았다. 작심하고 노력해서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말만 쉽지 실천하기는 지극히 어렵고 달성하기는 더욱 힘들다. 때문에 친구들의 사정을 십분 이해하고 이에 맞춰서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희 둘한테 이사 자리를 주면 어떻게 되겠냐?”

“말도 안 되지. 해도 문제고 받아도 우리가 개새끼잖아.”

“이사는커녕 팀장이나 부장 자리도 부담이야.”

“왜 독립하라는 건지 이해됐냐?”

“으음!”

“월급은 빵빵한데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

업무의 성격과 성향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그제야 진수와 성찬이가 제대로 수긍했다.

현재 플레지에서 장사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3,800만원이었다.

‘골드를 현금화해서 가지는 수익만으로 이 정도지.’

그 중 절반은 내가. 나머지 절반은 진수와 성찬이 나눠 가져가고 있으니 녀석들은 월급이 950만원이나 되는 셈이다. 오로지 돈으로만 따지고 보면 부장으로 승진한 배추보다 훨씬 많았다. 규환이의 월급은 220만원이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군말 없이 잘 지내온 거였다. 직함이 없고 회사에서 살짝 별개로 노는 느낌을 받더라도 급여는 최고다.

게임을 하면서 버는 것이니 이토록 환상적인 직장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이 직장을 날릴 뻔 했으니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에 친구 관계이기도 하기에 모든 것을 고려하고 나는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을 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던 성찬이가 물었다.

“농담 따먹기는 싹 치우고 말할게. 우리는 어차피 너 하나만 믿고 시작한 거고 네가 독립하라면 아무 불만 없이 따를 거야. 그런데 이거 하나만 묻자. 네 생각에 이 사업은 언제까지 가능할 거라고 보냐?”

“게임 내의 장사꾼 사업?”

“응.”

“앞으로 15년은 끄떡없다. 다른 장사꾼들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말이야.”

“그거야 지금까지처럼 하면 무난한 거 맞지?”

“그래. 독점적이니까.”

“오케이.”

성찬이가 대답하며 빠지자 진수 역시 해쭉 웃었다.

“이렇게만 진행 된다면 15년이 아니라 3년만 더 해도 너처럼 건물사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배추보다 우리가 훨씬 낫네! 그러니까 태식아. 너무 이런 거 가지고 미안해하지 마라.”

“맞아. 나도 올해에는 부평에 아파트 샀어. 솔직히 너 아니었으면 내가 평생을 일한다고 거기 아파트를 살 수 있었겠냐? 다 네 덕분이야.”

“우리는 너한테 평생 고마워만 할 거라고.”

“암! 물론이지. 우리 윤 사장이 최고란 말씀!”

훈훈한 이야기에 썩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지랄하네. 아까는 꼬리 자르기니 천하에 개새키 취급을 하던데?”

“뭐!? 아니! 누가 우리 베프 윤태식이를 욕해? 어떤 놈이냐!?”

“안심해. 언제나 우리는 네 편이 되어줄 테니까. 그건 그렇고 감히 윤 사장을 욕하다니! 나도 못 참겠군. 당장 잡으러 가자!”

그러더니 서로 멱살을 잡고는 내게 내밀었다.

“이 말라깽이가 범인입니다!”

“아니오! 이 드워프 돼지가 범인입니다!”

내가 두 손을 들었다.

“됐으니까 닥치고 플레지나 하자.”

“오케바리!”

“고고! 고고!”

한 가지 일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45. 프로젝트 뉴 온라인

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 역시 달라진다. 이 말을 최근에 들어서는 정말 많이 실감하게 된다. 아울러 정보라는 것이 갖고 있는 힘도 크게 깨닫고 있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이러하다.

레벨업에 허덕이는 게이머와 게임 내의 상권을 뒤흔드는 자판기 주인.

스타 드래프트의 방청객과 대회 개최를 가능케 하는 스폰서.

프로게이머의 팬과 프로게이머 팀의 모기업 사장.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두 가지.’

전에는 갈팡질팡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후에는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꾸준하게 노력했다.

‘여기에 미래의 정보가 제 몫을 톡톡하게 했고.’

똑같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확연하게 다른 결과를 얻은 것은 바로 이 방향성의 차이인 셈이었다. 그리고 오늘날이 되자 매순간 기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지나가다가 5천원을 줍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묵직한 행운으로 말이다.

회사에서 난데없이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을 사랑하는 최강의 직원. 기획운용팀의 고진환 팀장이 투자 정보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개발자는 조기웅이라는 프로그래머입니다.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투자를 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있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중으로 보입니다. 현재 게임 커뮤니티 회사인 우리에게 큰 기대를 안고 있으며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꽤 성공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여기를 보시면···”

그가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합리성을 열심히 나열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이름과 더불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억들이 머리를 스친 탓이다.

‘왜 지금까지 이걸 생각하지 못했지?’

플레지의 성공 이후로 대한민국은 초유의 온라인 게임 붐이 일어난다. 매달 수십 가지의 신작 게임이 쏟아져 나왔고 그만큼 많은 게임이 사라진다.

제2의 성공을 꿈꾸며 저들이 고군분투 하던 그때. 성공은 요원한 일인가 싶을 즈음 하나의 게임이 폭풍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신화를 써 내려가는데 그 주역이 바로 조기웅이었다.

게임의 이름은 뉴 온라인. 한국 최초의 3D 그래픽 MMORPG였다.

‘엄청 열악한 환경에서 개발했고 전설이랄 만큼 성공했어.’

수백, 수천가지의 게임이 쏟아지는 대한민국의 온라인 게임역사인 만큼 이것 말고도 성공하는 게임들은 다수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뉴 온라인에 대해서 개발자들의 이름과 사정까지 떠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개천에서 용이 난 대표적인 사례여서다.

‘초창기에 커피 값은 물론이고 차비마저 아끼기 위해 개발자들은 서로 집에서 작업하고 이메일로 작업물을 교환하면서 게임을 제작했다지.’

뉴 온라인은 이전에 나왔던 게임의 개발자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이들 중에는 카이스트나 서울대 출신이 없으며 핵심 개발자들 중의 2명은 고졸이기까지 했다. 유학파이자 초대 CEO로 활동하는 인물 역시도 전공은 발레였다.

즉, 게임 개발의 프로페셔널이라기보다는 비전문가들인 셈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였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성공은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열풍은 초창기가 가장 뜨거웠고 ‘개성이 없다’ ‘오픈 베타가 제일 나았다’는 언급과 함께 각종 문제와 비판이 수두룩한 과거의 전설로 그치게 된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미완의 전설이라는 것이다.

‘잘만 하면 대박을 초대박으로. 한 때가 아니라 명품이자 장기적으로 사랑받는 게임으로 견인할 수가 있어. 그때 나온 불편사항들이나 개선점들을 잘 아니까.’

플레지 폐인이라고 해도 게임방에서 주야장천 딱 하나만 하지는 않는다. 지겨울 때면 스타 드래프트처럼 다른 게임도 플레이하는데 뉴 온라인도 이에 해당했다.

기술적으로는 몰라도 게이머라서 아쉽고 불편했던 부분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플레지 수준으로 하나하나의 업데이트를 모조리 꿰지는 못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투자는 덤이었다.

‘이것을 놓칠 수는 없지.’

참으로 운이 좋은 셈이다. 이 역시 게임 관련 회사의 사장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복권 당첨으로 돈만 많았다면 저들이 내게 이런 식으로 접근해 왔을 리가 없다.

한창 설명하는 고진환 팀장에게 물었다.

“투자라면 어느 정도 규모의 투자를 원하는 겁니까?”

“2억입니다.”

‘그 정도쯤이야.’

큰돈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거물급 게임의 제작비용으로 보자면 아주 작은 돈이었다.

결단을 내리고 말했다.

“좋습니다. 고진환 팀장님. 조기웅이라는 사람과 만나봐야겠습니다. 시간 약속을 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를 끝으로 회의를 마쳤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번의 투자가 정말 잘 이루어진다면, 대성공을 이뤄서 향후 20년간 손에 꼽히도록 만들어 낼 정도가 된다면.’

안타깝게 망해버린 다른 대작들도 서비스를 지속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성공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일구어내며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

내 입장에서 뉴 온라인 개발자들은 꼭 붙잡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는 나만의 속사정일 뿐, 대외적으로는 현 시점으로 볼 때 아쉬운 쪽은 바로 저들이었다. 성공을 꿈 꿀 뿐, 자신하지는 못하는 상태이며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이 이점들을 잘 살릴 필요가 있었다. 아울러 고삐를 쥐어야 한다. 그래야 방향을 짚어주고 발언권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정치적으로 움직여보자.’

그 시작으로서 약속 장소를 우리 회사의 신사옥. 한창 입주를 준비 중인 강남의 빌딩으로 결정했다. 이는 비싼 차와 양복을 입고 권위를 두르는 것과 같은 의도였다. 이래야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더욱 설득력 있게 들을 것이다.

‘사실 이 사옥이 우리 회사의 전 재산이지만 말이야. 게다가 이런 식으로 뻥을 쳐 놔야 2억 투자를 분납으로 하면서도 큰 체 할 수 있거든.’

현재 우리 회사의 모든 자본은 건물을 구매하고 입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모두 소진되는 실정이다. 제아무리 매일 천만 원 단위의 매출을 올려도 씀씀이가 그 못지않다. 때문에 2억을 시원하게 주지 못하고 단계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티내지 않기 위한 허세로 강남의 사옥은 충분한 몫을 해줄 것이다.

‘월간 3000만원씩 투자해주고 게임 개발을 위한 사무실 제공. 이 두 가지로도 충분해.’

이 같은 생각으로 초대하고 맞이한 뉴 온라인의 개발자들.

‘이상하네. 왜 한 사람이 없지?’

그들을 직접 마주하면서 나는 기억과의 괴리감을 느꼈다. 내가 아는 이들의 창업 멤버는 총 4명인데 지금 방문한 이들은 3명이었다. 길남주와 조기웅, 송태섭이었는데 빠진 사람은 서버 담당자이자 초기 대표이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물론 꿈속의 나는 이들의 이야기만 들었고 면면까지는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어느 인원이 빠졌는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앞에 있는 3명이 몽땅 남자여서다.

‘초기 대표이사는 발레 전공을 했던 여성이었거든.’

지금 내 앞에는 남자만 있으니 이들 중에 한 명이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는 한, 빠진 사람은 그녀가 틀림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정말로 성전환을 해서 성공했다면 게임 대박 이외의 다른 이유로 엄청나게 회자 됐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

“저희가 이번에 저희들이 가진 최고의 장점 3D를 이용해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게임 3D슈팅게임을 만들려고 합니다.”

‘슈팅게임에 왜 이리 열변을 토하는 거냐?’

혹시 뭔가가 있었나 해서 귀담아 들었는데 이는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필시 저들도 슈팅 게임을 기획했다가 중간에 방향을 바꿔서 진행했을 것이다. 즉, 나는 시간만 낭비할 게 뻔한 저 슈팅 게임 이야기부터 틀어버려야 했다.

때문에 열심히 투자 유치를 설명하는 저들의 이야기는 반쯤 흘려듣는 중이었다. 마치 집중해서 들어주는 척, 연기만 할 따름이다. 이윽고 한참이 지나서 슈팅 게임의 장밋빛 미래가 종료되었다.

드디어 내가 반문해도 되는 타이밍이다.

“저희가 다른 건 몰라도 게임 하나 만큼은 정말 잘 만들어 낼 자신이 있습니다. 투자와 더불어 사업적인 부분을 맡아주신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게임을 만들어내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겁니까?”

들어오기 전에 서로 협의하고 총대를 멘 인물은 조기웅 프로그래머인 듯 보였다. 그래도 공통적인 것은 피곤에 절어 있는 외모면서도 다들 희망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는 점이었다. 열정과 패기로 무장한 스타트 업의 표본 같았다.

그가 거듭해서 대표로 이야기했다.

“게임은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단순 투자가 아니라 게임사의 운영을 맡아달라는 겁니까?”

“네.”

나쁘지 않다. 아니. 내게는 더 좋은 기회다.

‘어차피 어떻게든 구슬려서 운영을 내게 맡겨달라고 할 계획이었으니까 물론 땡큐지. 그런데 왜 선뜻 양보하는 거지?’

이들 3명의 나이는 모두가 나보다 많았다. 그럼에도 단순히 투자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흡사 전문가와 마주한 것 같은 공손함을 보이고 있었다. 어린 나의 사업적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다.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제가 이런 경험이 많지 않아서 돌려서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하여 터놓고 여쭙겠습니다. 도대체 저의 무엇을 믿고 회사 운영을 부탁하시는 겁니까?”

“게이머스 포럼은 저희도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입니다. 이를 보며 아이디어에 감탄했고 이후의 기민한 행보에도 거듭 놀랐어요. 젊은 나이에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성공했으며 강남에 이런 빌딩을 구매하신 사업가입니다. 이 이상 많은 말이 필요할까요?”

‘나에 대한 칭찬을 이렇게 들으니 꽤 새롭네?’

솔직히 이런 좋은 평가를 들으면서 불쾌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멋쩍은 한편 뿌듯한 심정으로 저들을 보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가 운영을 담당해야 한다고 치고 이야기를 진행해 보죠. 이렇게 되면 단순 투자 이상으로 저희 쪽에서 해결해야 하는 게 많아집니다. 요구하는 지분이 늘어나리라는 것도 이해하시리라 봅니다만?”

“당연합니다. 염두에 둔 지분 비율은 저희와 회사가 7대 3으로 나누는 겁니다.”

‘응?’

흔쾌히 듣던 내 기분이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지금 세 분이 7할. 회사가 3할이라고 말씀하신 건가요?”

“네.”

나는 앞으로 살짝 내밀어졌던 고개를 뒤로 당기고 생각에 잠겼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냉정하게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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