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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해라
“대회 시작 전과 후를 중점으로 트레이더스 포럼과 게이머스 포럼의 변화를 보고해 주십시오.”
“네. 팀에 대하여 부정적인 여론이 다수 있었으나 방송 직후부터는 많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김요환 선수의 활약으로 스드 겜포의 휴먼 유저가 300% 상승했습니다.”
300% 상승. 좋은 지표였다.
“이용자의 변화에 대한 건 어떻게 되나요?”
“겜포의 총 회원수는 44만 명이었으나 대회가 방영된 현재는 11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는 250% 상승한 수치입니다.”
“많이 올랐네요.”
“예, 사장님. 베스트 팁의 선정 기준 또한 매우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가장 큰 포럼인 플레지 포럼은 조회수 2,000건 이상. 추천 100건 이상을 받은 것들을 후보로 등록하는 상태입니다. 또한 스드 포럼은 조회수 1,500건 이상. 추천 75건 이상이 후보로 등록 중입니다.”
한 달 전의 ‘스드 포럼 베스트 팁 조건’은 조회수 500건에 추천 30이었다. 그러던 것이 3배나 껑충 뛰었으니 엄청난 성장이었다.
“놀라운 부분은 스드 포럼과 플레지 포럼은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만간 스드 포럼이 플레지 포럼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무적인 성과군요. 아주 좋습니다. 올게임 측에서는 이번 대회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김요환 선수에게 ‘휴먼의 희망’이라는 타이틀이 붙고 한창 흥행을 몰고 있는 상황인 지라, 매우 만족스러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이트가 홍보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세요. 좋은 파트너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상이 게이머스 포럼의 이슈였다.
하지만 여기서 회의를 끝낼 수는 없었다. 큰 안건에만 집착하고 작은 사항들을 간과했다가 한 번에 훅 사라지는 IT회사들이 적잖다. 때문에 김정규 씨에게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온라인 4대 게임의 포럼들은 지금 어떻게 관리가 되고 있습니까? 플레지와 스타 드래프트에 비하자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운영이 되고 있나요?”
“바람의 왕국은 플레지의 30%에 달하지만 정체된 상태입니다. 분위기는 좋지만 규모가 더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제국은 게임 자체의 규모는 플레지의 5%지만 사이트 이용자의 숫자는 20%에 달합니다. 사이트에서 친목을 하는 형태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플레지의 2할이라고 하면 작은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플레지는 온라인 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것과 비교하여 20%라는 것은 상당한 규모임을 증명한다.
이상의 보고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친목’이었다.
“현재 바람의 왕국이나 플레지에서도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 많습니까?”
“네. 정보의 공유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니 서로간의 친목을 과시하는 성향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편입니다. 게임 내에서 풀? 어려운 싸움도 사이트 내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고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네?”
“각 게임 포럼에 서버 별 게시판을 추가하도록 하세요. 자유 게시판은 전체 서버용으로 하나. 서버별로 하나. 이렇게 해서 두 개의 자유 게시판으로 운영합니다. 이는 자신의 캐릭터를 과시할 수 있는 자랑용 스크린샷 게시판 역시도 두 개가 되는 겁니다.”
“굳이 서버별 게시판이 필요할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필요합니다.”
유저의 입장으로 생각했을 때, 아무리 자신과 같은 게임을 하고 있어도 서버가 다르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에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옆 동네의 일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건처럼 여겨지고 공감과 호응의 정도가 매우 줄어들게 된다.
소속이 갈리는 탓이다. 그러니 플레이어는 자신이 속한 ‘우리 서버 게시판’에 올리고 반응을 느끼는 쪽이 훨씬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배추의 대답이 필요해진다.
“규환씨. 가능하겠습니까?”
김정규 씨가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기는 하지만 게시판을 생성하고 넣는 기술적인 업무는 배추의 소관이다. 회의의 바통이 자연스레 배추에게 넘어가자 친구가 말했다.
“서버별 게시판에 들어가기 위해서 조건이 따로 필요합니까? 가령 해당 서버를 이용하고 있다는 인증을 해야 한다거나?”
“전혀요. 게시판이 있을 뿐 이용은 자유롭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없습니다. 이틀이면 충분히 모든 포럼에 이식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배추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고 그를 만나게 되면 상대방은 굉장히 당황할 것이다. 지금의 규환이에게는 머뭇거림과 주저주저함 같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실력만큼 대우받으며 자존감이 자연스레 회복된 덕분이었다.
“오케이. 좋아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으면 좋겠군요. 바로 카페입니다.”
“네?”
뛰어난 직원들을 마주하면서도 내가 확신을 갖고 방향을 짚어줄 수 있는 것. 뚜렷하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미래를 아는 데에서 기인한다.
나에게 처음부터 완성된 설계도면을 그릴 정도의 능력은 없지만 지금처럼 대화하며 기억을 떠올리고 저들을 이끌 정도는 되었다. 직원들의 유능함이 당연하게 누려온 미래의 시스템을 이끌어낸 덕분이다. 오늘의 회의에서도 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니 먼저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여러분은 우리 사이트를 규정 짓자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매거진? 포털? 커뮤니티? 뉴스?”
김정규 씨에게 시선을 주자 그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매거진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요?”
“틀리지는 않았지만 정답 역시도 아닙니다.”
곧장 기회라는 듯이 고진환 씨가 말했다.
“단순히 매거진으로 분류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리 사이트는 기자단을 이용하여 유저들 스스로의 참여할 수 있는 폭을 넓히고 더 큰 무언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진환 씨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십시오, 사장님.”
‘···너, 엄청 당당하다? 게다가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건데?’
남자의 시선에서 뜨거움이 느껴진다. 적대감이 아닌 호의와 기대에 찬 눈빛이었는데 이게 기분 애매하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때면 나는 김지애 씨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차분하잖아.’
열정적으로 안건을 제시하거나 회의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항상 저 자리에서 맡은 일을 확실하게 처리한다는 믿음을 준다. 나는 생각난 김에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지애 씨의 생각은···”
말하다가 바로 끝을 흐렸다. 차분하게 쏘아보는 눈동자가 ‘닥치고 네가 말해!’하는 듯 보여서다. 말하지 않아도 온전하게 느껴지는 뚜렷한 의사표현이었다.
“커험! 우리 사이트의 형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요즘 우리 회사에는 눈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진 것 같다.
“하나는 각 게임에 대한 정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유게시판과 베스트 팁이죠. 정보의 공유는 매거진의 가장 큰 특징이지요. 그러니 매거진이라 하신 김정규 씨의 답변이 일견 맞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없이 매거진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복합 형태라는 말씀이십니까?”
고진환 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거진과 커뮤니티의 퓨전 사이트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기에 채팅 기능이 우리 사이트의 커뮤니티 활용도를 키워준다는 것이군요.”
“아닙니다.”
“예?”
확신한다. 이 사람은 여전히 게임에 빠져서 사는 게이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채팅은 실시간으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기능은 충분히 게임 내에서도 진행할 수 있지요. 그런데 굳이 우리 사이트에서 채팅을 한다? 크게 의미 있을 리 없습니다. 여기서 처음 말했던 카페에 주목해봅시다.”
이쯤 되자 다들 이해한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알았다는 표정이 보였다. 나는 당신들의 생각이 맞다는 뜻으로 답안지를 보여주었다.
“모든 게임에는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클랜과 길드가 존재합니다. 이름이야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같은 목적을 지닌 단체지요. 또한 이들은 꼭 사이트 혹은 카페를 보유합니다. 우리 사이트에서 그것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줍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뒤이어 배추를 보았다.
“규환씨. 이것은 제작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죠?”
“네. 카페에 들어가는 기능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또 달라지긴 하겠지만, 꽤나 큰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필요할 것 같습니까?”
“적어도 한 달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한 달에 나온 것이 현재 ‘나음’에서 운영하는 카페만큼의 기능을 가지지는 못할 겁니다.”
괜찮다며 내가 말했다.
“중요기능만 있으면 됩니다. 어차피 게이머들이 편하게 커뮤니티와 카페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심 목적이니까요. 결국은 편의성 부분에서 우리를 선택하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 말씀하신 기능들을 추가하려면 아무래도 서버를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자원이 많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서버 증설은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인 셈이다.
“우리는 서버와 통신. 이 두 가지로 먹고사는 회사입니다. 아끼지 말고 예산을 받아가세요.”
“네.”
“그럼 여기까지는 정리가 꽤 된 것 같군요. 다음은 트레이더스 포럼 쪽의 보고를 들어봅시다.”
트레이더스 포럼은 현재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서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TFA를 응원하고 포인트를 받는 행사였다.
스타 드래프트에는 딱히 포인트를 사용할 곳이 없으니 타 게임에 투자를 해야 하는 셈! 여기서 불명예를 얻고야 말았다.
“현질을 조장하는 기업이 만든 팀이라고 해서 ‘트레이더스 포럼 현질러스’라는 이상한 별명이 생긴 상태입니다.”
“괜찮습니다. 예상하고 있는 범위이고 어차피 팬이 생기면 안티 역시 생기는 법입니다.”
그리고 안티를 불식시킬 규모의 팬을 얻었으니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이달의 예상 매출액은 얼마입니까?”
“기대 거래액은 약 150억이며 우리 회사의 매출은 7억 가량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7억의 매출.
아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직원을 더 뽑아야겠군요.”
포화 상태 도달!
고용이 불가피해졌다.
‘이번에 채용하면 규환이를 비롯한 기존 직원들은 팀장으로 올려야겠구나.’
참으로 회사가 콩나물처럼 쑥쑥 잘도 자란다.
회의를 끝내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어서 우리 회사의 사옥을 보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30명의 직원들이 보인다. 바쁘게 오가는 모든 이들의 면면이 낯익었다. 전부 내 식구들이어서다.
그리고 신규 채용과 더불어서 저들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 건물을 샀을 때가 불과 몇 달 전이었지.’
묘한 감흥이 일었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았기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처음 건물을 구매했을 때의 감정과 건물주가 되었다는 기쁨.
‘넓게만 보이던 세상.’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의 공간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만 여겨졌다. 미래의 청사진은 존재했으나 현실적으로 실감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작다.”
트레이더스 포럼 직원 20명.
게이머스 포럼의 직원이 10명.
사이트 개발진 10명.
회사 운영에 3명.
추가 모집하기로 한 신규직원의 숫자다. 73명이 소속되어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러니 자연스레 건물이 비좁게만 보였다.
‘많이 컸다. 정말 변했어.’
나는 여전히 플레지를 좋아하는 게이머다. 단지 업데이트 전까지의 시간을 이모저모로 활용하였을 뿐이고 그 모두가 성공했을 뿐이었다. 게임과 관련된 미래의 경험들이 안정적인 성공을 계속 누리게 해주었으며 인재들이 일을 키우니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역시도 게임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라는 것. 때문에 부담스러운 사업이라기보다는 추억의 사건들을 하나씩 경험하며 이뤄나가는 즐거움이 크다는 점이었다.
‘또 도전할 필요가 있나?’
여기서 멈춰도 된다.
하던 일만 계속해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무슨 재벌이 되고 싶어서 안달난 적은 없었으니 지금만 해도 충분히 성공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포기할 이유도 없지.’
가족과 함께하고 행복을 소소하게 늘려가는 일들을 제외한 내 모든 활동은 게임과 관련되어 있다. 차를 시작으로 집과 가게 이전을 병행으로 해결했고 동생은 좋아하는 공부를 즐겁게 하는 중이다.
‘욕심이 아니라 회사의 규모 확장은 필연적이야. 내가 무모한 욕심으로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 때려 박는 것도 아니고.’
결정했다.
장남으로서의 책임은 확실하게 하고 있으니 남은 재산은 아낌없이 사업에 재투자하는 것이다.
“옮기자.”
새로운 사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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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역 부근으로 온 뒤 연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남은 역시 강남이네.”
IMF의 한파 이후로 죽었네 어쩌네 말이 많지만 역시 인천이랑은 비교 불가의 도시다. 여전히 번화가였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괜히 아우성을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겉보기에 화려한 저 건물들 중에 속이 텅텅 비어있는 곳이 있을 터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매우 많았으면 좋겠다. 바로 그곳을 사옥으로 삼고자 여기까지 원정을 왔으니 말이다.
사실 경매와 급매물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경매 쪽이 큰 이득을 보기에는 좋지.’
현재 빌딩들의 시가는 IMF이전에 비해서 70%수준이다. 여기서 경매를 잘 성공한다면 이 가격의 80% 수준으로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경매는 가이드 없이 성공하기 어렵고 설사 성공한더라도 가이드에게 비용을 줘야 한다. 이를 합산하면 결과적으로는 급매물보다 비싸진다.
때문에 경매보다는 급매물을 사자는 쪽으로 결론내리고 무작정 강남으로 왔다. 경기가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는 보도가 연신 나오는 만큼 내가 가진 자산으로 충분히 구매할 건물이 존재한다고 예상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발품을 팔아가며 뛰어보니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미친 가격! 역시 강남은 강남이었군!”
지하 4층부터 지상 22층으로 되어 있는 역삼동 테헤란로에 위치한 빌딩.
가격은 138억 원!
‘이런 건 도저히 방법이 없다.’
엄두도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