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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해라
“정말 놀라워요! 송진호 선수가 이렇게 접전을 벌이다는 것은 팀원 누구라도 지욤 선수와 승부해볼만 하다는 뜻이잖아요? 세계 최고랑 말이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박민희 매니저에 대한 평가는 나의 내부 평가는 살짝 변경되었다.
‘매니저가 적격이야. 감독으로는 다소 미흡하고.’
이번 대화로 알 수 있었던 부분이다. 나름대로 잘 해주고 있어서 ‘감독의 자리를 주어도 될 듯’여겼는데 아무래도 이는 철회해야 할 모양이다. 역시 초기 생각대로 선수 출신에서 찾아야 할 성 싶었다.
그때 진호의 손이 하늘 위로 번쩍 올라갔다.
“으랴!”
“이겼다! 이겼어요! 송진호 선수가 지욤 선수를 이겼어요!”
너무 신나서 어쩔 줄을 모르는 박민희 매니저.
‘누가 보면 우승한 줄 알겠어.’
재차 경고를 받는 송진호를 보며 나는 오늘 변경된 작은 역사의 한 장면을 실감했다. 오늘 사건은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사나이의 예선탈락이자 ‘그의 우승’이라는 미래의 한 페이지가 뒤바뀐 것이다.
그간 우리 가족에서부터 사업을 이뤄나가며 여러모로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소시민적이고 게임 중심으로 삶을 살아와서일까. 그간 골드 벌이 등등 다양하게 바꿔온 일들보다 당장의 일이 크게만 여겨졌다.
‘내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
긍정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부정적으로도 지대하게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고민의 대답은 예전에 얻은 것과 동일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고 누구에게도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다.
지금의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 여유만큼 나눌 수 있는 삶이면 최고로 좋을 것이다. 여기에 소시민적인 자기 위로와 합리화를 덧붙였다.
‘혹시 또 모르지. 지욤 선수의 스드 인생이 금방 내리막으로 변한 게 자극이 없어서였을지도. 오늘의 패배로 진짜 엄청난 전성기를 만들어낼 지도 말이야.’
이슈를 위해서는 엄청난 강자의 등장도 중요하지만 경쟁할 수 있는 대상 역시 필요한 법이다. 당장 김요환을 막아낼 수 있는 선수들이 다 같은 팀 소속인 만큼 지욤 선수가 그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한다.
‘아예 꺾여버리면 소고기 사주면서 접근해봐야지. 나중에 예능 나온 거 보니까 말도 잘 하고 재능 많더라.’
이런 속내를 누군가에게 말하면 ‘비겁한 변명이다!’라고 할 테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나 혼자 생각하는 것이고 변명이 맞으니 말이다. 물어보면 ‘인정함.’이라고 시원하게 대답해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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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내심 웃으며 내가 관전하는 쪽은 바로 주최 측인 올게임이었다.
‘완전히 비상사태일걸?’
시청자일 때와는 달리 사장의 시각이 되니 저들의 계획이 훤하게 읽혔다. 세계 탑 랭커인 지욤은 한국에도 팬들이 많았고 푸른 눈의 전사를 초빙해서 많은 이슈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려 계획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초장에 실패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선수한테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식이면 우리 선수들끼리 결승전을 붙을 걸?’
예선전과는 달리 16강부터는 올게임 측에서 대진조를 조작할 수 없다. 조 추첨을 통해서 잡힌다. 즉, 어지간히 재수 없지 않으면 우리 팀원들이 8강에서 마주치는 일은 매우 드물고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결승은 TFA 팀원끼리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은 소속 회사에서 대회에 후원을 했단다.
잘못하면 몰아주기나 부정행위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나야 신경 쓸 것 없다만.’
우리 팀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올 수 있지 않냐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이번 대회에서만 반짝 스타로 활약하고 사라진다면 모를까, 선수들이 다른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낸다면 조작 의혹은 금방 불식이 된다.
진호는 무려 지욤 패트리를 쓰러뜨리고 본선에 진출!
김요환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 역시 4승 0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으로 본선 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진실을 기반으로 실력으로 무장했으니 충분한 것이다.
반면에 올게임측은 이야기가 다르다.
‘과연 어떻게 해결하려나. 이런 것은 미리미리 생각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서 초장에 잘 잡아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2명만 출전 가능하다는 규칙과 달리 한 팀에서 5명이 출전했고 이중에 4명이 본선에 올라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고 말았다. 역시나 회사보다는 논란이 빠른 법이다. 아울러 우리 사이트의 트래픽이 두 배로 늘어나는 현상도 생겼다.
‘좋아. 예상 범위 안이야.’
게시물들 사이에서 찬반논쟁이 치열했는데 대략 두 가지 의견이었다.
- 게임 대회에 후원하는 입장이니 더 많은 추천을 얻을 수 있는 건 당연하지. 그 정도 혜택은 주어지는 게 맞는 거 아니냐?
- 규칙이잖아! 입맛대로 먹고 뱉을 거면 규칙이 왜 필요한 건데?!
참으로 옳은 말씀들이라서 나는 전혀 끼어들지 않았다.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난리법석에 합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소리가 크게 날수록 시선이 모이고 이를 통해서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로서 세계 랭커 수준의 실력자들로 평가받는다! 그러니 더 파헤쳐라, 플레이까지 파헤쳐!’
웃으며 게시판 이모저모를 살피는데 유난히 댓글이 많은 게시물이 보였다. 제목은 역시나 매우 도발적인 였다.
내용인즉슨 진출한 4명 중 연성철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배틀라인에서도 크게 유명하지 않은 듣도 보도 못한 출신이라는 것. 그런데 여기에 의외의 댓글이 달렸다.
예선에서 곽도경 선수에게 패배한 다른 팀 소속 선수의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곽도경 선수만큼은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게임을 해봤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본선은 방송으로 방영되니까 부정 논란은 그때 가서 다시 꺼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지도 있는 몇몇 인물들의 실드였다. 명성은 때로는 권력 그 자체가 된다는 말처럼 영향력 있는 이들의 말 몇 마디에 부정적인 여론이 삽시간에 바뀌어갔다. 저들의 댓글을 기점으로 위와 아래가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이제 대회에서 실력검증만 되면 털끝만큼의 타격 없이 팬을 확보하게 된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립적이 되니 무조건 남는 장사였다.
“대박 홍보. 완전 이득!”
역시 칭찬보다는 욕 하려는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큰 것 같다.
‘그래도 한번 돌아봐야지. 내 멘탈이야 굳건하다지만 선수들은 다를 지도 모르거든.’
똑같이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프다고 울거나 주저앉는 이도 있다. 제각각 성향이 다른 만큼 이에 합당한 조치를 취함이 좋았다.
살짝 걱정하며 연습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바로 반성했다.
“으하하하! 형들 보셨죠? 보셨죠? 제가 세계 1위를 멋지게 패배시키는 거! 상대가 무려! 무으~려! 지욤이었습니다!”
‘아, 괜히 걱정했다.’
자아도취에 빠진 송진호의 콧대가 한없이 높아진 상태였다. 오프라인이 저 모양이니 온라인의 평가가 신경 쓰일 리 없었다.
“푸하하핫! 이제부터는 일인자 진호라고 불러주십쇼! 제가 바로 세계 1등입니다!”
“입 싸물어. 짜샤, 넌 운이 좋은 거야. 우리 중 누가 붙었어도 이겼을 선수를 가지고 1인자는 무슨 얼어죽을.”
“아이고. 팀 유일의 예선 탈락자이신 동수 형님 아니세요?”
“으으!”
“게다가 그런 가정은 틀렸다고요. 형은 지욤 선수랑 못 붙어봤잖아요? 하지만 저는 해봤다 는 말씀~! 김요환 형은 여기 보듯이 듣보! 지욤은 랭킹 1위! 이게 바로 핵심이란 겁니다. 캬~ 저 나중에 학원 강사라도 할까봐요. 어쩌면 이렇게 이해를 잘 시킬 수 있을까?”
“저 녀석이··· 아오!”
“문화시민은 말로만 하기. 싸우기 없기~”
머리를 움켜쥐는 임동수를 보고 송진호가 웃었다. 이를 보며 다른 선수둘이 고개를 흔들었다.
“쟤 도발 쩌는데요? 평소에 은근히 당했다손 쳐도···”
“평소에 이겨도 너무 놀리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자칫 대회에서 진호한테 지면 평생 놀림 당한다.”
“버그 전략 남는 거 있으면 공유 좀요. 우리끼리는 돕고 살죠.”
그 사이 한참 부들부들 떨던 임동수는 이내 할 말을 찾은 듯이 냉소를 지었다.
“그래! 랭킹 1위가 지욤이고 네가 그를 잡았다고 하자. 이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너는 절대로 1인자가 될 수 없어.”
‘그렇지. 진호는 2의 상징이야. 그냥 생김새부터 2등이라고.’
나도 모르게 수긍했다. 이유와 근거는 필요 없었다.
2등이 아닌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송진호의 아이덴티티는 2라는 숫자와 영원히 함께한다.
“시원하게 인정하세요. 당장은 제가 1등입니다~”
“진 보스를 잡아봐. 그러면 정말로 떠 받들어 주마.”
“그게 누군데요?”
“사장님.”
“컥!”
당황하는 송진호에게 임동수가 주위 선수들을 가리키며 동의를 구했다.
“다른 사람들은 지욤을 1인자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 팀원들은 확실히 알잖아.”
“인정. 왕을 잡아야 진정한 1등이지.”
“진호 성적이 0승 전패였다지?”
“누구든지 우리 팀의 1인자라고 주장하려면 사장님을 이겨야만 할 거야.”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문손잡이를 채 놓지 못한 나에게 향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엿 듣던 모양새가 되는지라 나는 짐짓 태연하게 들어갔다.
“다들 시선들이 왜 그럽니까? 무슨 하실 말이라도?”
“사장님! 한 판 하시죠!”
“한 게임 하실까요?”
“에이, 동수 형은 빠져요. 지욤을 꺾은 저와 먼저 하죠!?”
“···사장님 대결은 필요 없다. 진호야! 무조건 나랑 1대 1로 먼저 붙자!”
‘못 말린다.’
걱정을 한 내가 바보다. 이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무슨 말이 떠돌고 다니는가가 이미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오케이 사인을 보였다가는 정말로 온종일 게임만 하게 된다.
나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됐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일정 및 상태를 점검하러 온 것뿐입니다.”
분위기는 매우 밝다. 매우 좋은 일이다.
“어때요? 컨디션 관리는 잘들 하고 있나요?”
“네! 최상입니다.”
“임동수 선수가 제일 좋아 보이네요. 아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싸가지··· 흠! 네. 이미 탈락했으니 패배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일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좋은 자세입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크게 호응하며 말했다.
“사실 임동수 선수는 예선 탈락할 실력이 아닙니다. 팀 동료와 겨뤄서 그렇지 여타 선수와 승부했다면 충분히 이겼을 것이라 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일이 본선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거지요.”
본선은 총 16명.
우리 팀원은 예선을 통해 올라간 4명과 본래부터 시드를 가지고 있던 진태목 선수를 포함해서 총 5명이다. 종국적으로는 오늘과 같은 양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거론하자 화기애애하던 선수들이 진지한 낯을 보였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게임하면 되고 떨어진 선수에게 역시 기회가 계속 주어질 테니까요. 바로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나는 임동수 선수의 손 위로 무언가를 올려주었다.
“어? 이건!?”
“뭔데?”
“우와!”
“덴마크 코펜하겐 오픈 출전 티켓!”
자주 어울리는 만큼 사장과 소속 선수라는 벽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 기웃기웃하며 보더니 떠들썩하게 입을 떡 벌리고 소란스러워졌다. 이러다가도 내가 말하면 또 일순간 조용해져서 경청하는 것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다른 선수들이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목적 없이 연습하면 기운이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국외여행을 하고 상금도 잘 챙겨 오세요. 경비 역시 회사에서 지원합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물론입니다. 대신 우승 상금은 회사와 나눠야 합니다. 외국에 다녀오는 만큼 비용이 꽤 발생할 테니까요.”
“물론입니다!”
우승할 경우 상금은 한화로 1,000만원이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PKT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이쪽에는 두 가지의 큰 이점이 존재한다.
첫째는 임동수의 실력을 누를만한 게이머가 없다는 것. 당연히 우승할 확률이 훨씬 높은 대회이고 실수만 않는다면 상금은 이미 따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둘째는 유럽 여행을 한다는 점이다. 자고로 남의 돈으로 속 편하게 돌아다니는 것만큼 행복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우와! 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이겼어.”
“내가 질 걸!”
“지는 게 남는 거라니!”
한순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특히 김요환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신이 탈락했어야 한다고 절규했다.
‘바로 이거지.’
승자는 예정된 결실을 얻고 패자 역시 기회와 나름의 보상을 안겨준다. 이것이 사장인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이자 서포트라고 믿는다. 선수들 역시 이 기대만큼 부응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44. 독립해라
여느 때처럼 오전 회의로 하루를 시작했다.
“게이머스 포럼배 2000 투니레일 스드리그의 결과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안건은 TFA가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참여했던 대회의 내용이었다. 이를 브리핑하는 이는 고진환이 아닌 김정규였는데 이유는 TFA가 트레이더스 포럼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우승은 김요환 선수. 준우승은 송진호 선수이며 3위는 곽도경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방송으로 나가는 대회이기는 하지만 진행자체는 녹화 방송으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TV방영은 8강이 한창 되는 상태임에도 경기 자체는 결승까지 모두 종료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8강에서 좌절한 연성철 선수와 진태목 선수는 각각 8강에서 김요환 선수와 곽도경 선수를 만나며 4강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팀 내의 모든 선수들은 대진운만 나쁘지 않았다면 충분히 4강에 진출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즈음에서 내가 말을 잘랐다.
“실력이 어땠다, 결과가 어땠다, 이런 내용은 제외합시다. 어차피 우리 팀에서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나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요.”
선수들의 활약이나 경기 결과에 대해 모르고서 회의에 참여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성적과 실력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족에 불과하다. 핵심은 대회로 말미암은 회사의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