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73화 (73/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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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픈

이어지는 공격에 또 다시 8마리가 터지니 송진호 선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가 다급히 휴드라를 움직이고 막으려 들어도 소용없었다.

그때는 수송선이 디버들을 싣고 쏙 빠지며 다시금 콜시어가 하이로드들을 잡는다. 이렇게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휘몰아치면 그 동안에 버그 종족은 자연스럽게 자원이 고갈되고 만다. 특히나 가난한 플레이를 지향하는 진호는 이를 뒤집을 여력이 없다.

사실 상 게임이 끝난 셈이다.

이때부터 나의 선택지는 매우 넓어진다.

‘멀티를 하나 더 먹을까?’

안전하게 1시 멀티를 추가하고 방어를 위해서 질럿과 드라간을 모았다.

“에이! 그냥 죽을 수는 없어!”

그때 참다못한 진호의 병력이 몰려왔다. 이른바 그에게 ‘폭풍 버그’라는 별명을 안겨준 공격방법이었다. 현 시대에서는 그 어떤 버그보다도 높은 화력을 자랑하는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구시대의 방식이야.’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 운영은 앞뒤 가리지 않는 올인 전략과 다를 바 없다. 그는 스드계에 한 획을 그은 정말 대단한 선수였으나 이러한 임팩트 있는 장면들은 현 시점의 게이머들이 성장 중이었기에 가능했다.

‘끝이다.’

6개의 포토 캐논과 디버.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질럿, 드라간으로 응전한다. 이러한 나의 방어를 제아무리 많은 휴드라와 로커를 뽑아도 어찌 뚫을 수 있으랴. 디파일러도 없이 말이다.

“아! 막혔어!”

“와! 어떻게 앞마당도 못 뚫지!?”

게임 종료다.

팀의 다른 선수들은 그래도 내가 사장이라서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진호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 확실히 사장을 대하는 태도의 느낌은 아니었다.

“아니. 대체 사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해요? 이게 말이 돼요? 요환이형도 그렇고, 동수형도 그렇고 여기 있는 우리 팀원들 모두 다 열심히 연습하는데, 그렇지도 않은 사장님을 이길 방법이 없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꿈을 꿨거든.”

“꿈이요? 에이! 가르쳐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시지.”

진실을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한판 더를 외치며 엉겨 붙는 송진호를 상대할 즈음 관전했던 임동수 선수는 심각하게 박민희 매니저와 대화했다.

“이거 토스가 버그를 상대하는 거 최적의 전략인 거 같은데요? 임동수 선수의 생각은 어때요?”

“이건 게임이 아니에요.”

“네?”

“사장님의 플레이. 이건 게임이 아니라고요.”

그녀가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김요환 선수 역시 수긍의 뜻을 보였다.

“제가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하고, 전문적으로 이 게임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장님의 플레이를 보면서 저는 그냥 겉핥기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나도 지금까지는 게임의 룰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아. 정해진 시간 안에 자원을 모으고 최대한 병력을 모아서 적을 제압한다, 시간, 자원, 병력. 단순하게 이 세 가지만 생각해왔데 그게 아니었어.”

“병력이라고 단순하게 뭉뚱그려선 안 되었던 겁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화.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발생하는 하모니! 그게 이 게임의 진짜 룰이었어요!”

임동수 선수가 격정적으로 말했다.

“저는 포스토스를 시작한 이유가 그 강함에 매료되어서였거든요. 남자는 힘! 토스는 그 힘의 상징인 셈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만 싸우는 종족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임동수와 김요환의 말을 듣고 박민희 매니저 역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는 포스토스가 SF에 나오는 외계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판타지 속의 종족으로 보여요. 솔져와 궁수. 마법사와 기사. 다양한 클래스가 모여 하모니를 만드는 거죠.”

짙은 여운에 잠긴 모습이다.

반면, 이와는 동떨어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송진호 선수였다.

“뭐야? 형들 왜 그러고 있어요? 분위기가 이상하네?”

다들 제정신인가 보는 그에게 동수가 묵직하게 말했다.

“진호야.”

“네?”

“사장님 말고 나랑 한 판 하자.”

“형이랑요?”

“그래.”

“오케이! 형을 이기고 패배의 기운을 날려야겠네요~”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동수의 요구를 받아드린 진호는 그날 동수에게 단 한 게임도 이길 수 없었다.

“아! 뭐야! 나도 다음부턴 사장님이 게임하면 구경할 거야!”

43. 리그 오픈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바로 펜과 종이를 찾았다.

“박민희 매니저. 바로 해줘야 할 게 있습니다.”

“네, 사장님.”

‘RaL_rA’를 적어서 그녀에게 건넸다.

“이 아이디로 활동하는 게이머가 있습니다. 그를 찾아서 만날 수 있도록 해보세요.”

“스드 게이머인가요?”

“네. 웨스트 서버에서 활동하니 그쪽에서 찾으면 될 겁니다.”

메모를 잘 기억해두며 그녀가 되물었다.

“언제까지 알아내야 할까요? 기한이 있나요?”

“기한은 없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군요.”

강인의 행적은 99년도부터 아마추어로 활동을 하다가 2년간 잠적. 그리고 데뷔로 이어진다. 현 시점에서는 유리공장에서 일 할 가능성이 높기에 서두르는 편이 나았다.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이제 잠깐 쉬어볼까 하려던 때였다. 다급한 모습으로 김정규 관리자가 나를 찾았다.

“사장님!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이요?”

“스드 대회요!”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인가 싶다가 곧 안도했다.

“서포트 받는다는 것 말인가요?”

“어? 알고 계셨습니까?”

“뭐, 예상하고 있던 대로니까요.”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마시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 저들 입장에서는 지원을 해준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회사의 규모는 상관이 없었다. 하물며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업체도 아닌 게이머스 포럼이다. 내 자랑이지만 국내 최대의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이며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즉, 우리의 서포트는 단순하게 금전적인 이익을 넘어서 커다란 홍보 효과를 덤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담당자라면 자신의 지적인 수준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계약은 언제 하기로 했죠?”

“그게 승낙 여부만 듣고 얼른 전한다는 생각만 했던 지라 아직···”

“괜찮으니 바로 조처하세요. 가서 가능한 한 빠르게 잡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게임할 때의 의상은 주최 측에서 준비해주는 건가요?”

“의상이요?”

“작년 PKT 안보셨어요?”

세간에 회자가 되는 놀라운 게임복. 5년 후 전설의 자료로 남게 되는 프로게이머의 의상은 다름 아닌 우주복이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디자인을 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마스크를 쓴 용사들이 악당 하나를 몰매 때리는 특촬물이 있다. 딱 거기에 나오는 8살 미만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세트장에서 게임을 하는데 입어야 하는 의상 역시도 같은 수준의 것이었다. 황당한 것은 그토록 우스꽝스러운 연출이 이 시기에는 꽤 먹혔다는 점이다.

‘나중에 보면 엄청난 흑역사고.’

과거의 패션을 미래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니 회상은 이쯤 하기로 했다. 나로서는 내가 입지 않을 것이니 전혀 상관없기도 했다.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남겨 놓을까? 선수들 추억 삼아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한 이기주의였다. 비식비식 웃음이 새어나오는데 김정규씨가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당장 지난 영상을 모두 확인하겠습니다!”

‘깜짝이야!’

정신 차리고 손사래를 쳤다.

“전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확인하는 정도면 충분해요.”

“예! 담당자에게 의상은 주최 측에서 하는 건지 확인하겠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쪽에서 준비하는 것이면 우리 로고가 노출 될 수 있도록 요구하여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필요하면 김지애 씨에게 말씀하셔서 인감도장 받아 가시고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냥 처리만 하시면 된다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듯 보였다. 속히 나가라고 손짓하여 내보냈는데 어째 2층 전체의 분위기가 싸늘했다. 아까까지는 왁자지껄하게 게임하던 선수들은 물론 박민희 매니저는 메모를 모니터에 탁 붙여두고 황급히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기 계속 있는 것 자체가 고문관 노릇이겠어.’

이럴 때는 간식을 먹으며 ‘똥 멍청이’를 나불댈 수 있는 친구들이랑 있는 것이 최고였다.

“수고들 하세요~”

인사를 남기고 4층으로 올라가 시간을 보냈다.

*

하루하루 정직하고 꾸준하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게이머스 포럼배 스드리그 예선 날이 되었는데 이 예선전을 치르는 방식이 제법 특이했다. 바로 ‘추천제’였기 때문이다.

“모집해서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 아니라 추천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딱 그 인원만 가지고 예선을 진행하고요?”

“네, 사장님.”

추천자격은 한국프로게이머협회에서 인정한 프로팀만 갖는다. 각 팀에게 2명씩 추천할 권한을 주는데 웃기는 것은 현재 등록된 모든 프로팀의 숫자가 16개라는 점이었다.

‘총 인원은 48명이 필요한데 추천 받은 인원은 32명.’

남은 16명은 어찌 채우는가.

“올게임 측에서 개인 게이머들 가운데 상위 선수들을 임의 선발하여 추천서를 배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호라. 그런 식이면 우리 역시 권한행사를 할 수 있겠군요. 후원사니까 말입니다.”

TFA라는 팀의 명칭으로 2명을 내보내고 남은 인원은 후원사의 자격으로 추천서를 달라고 하면 주최 측에서 거절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를 권력남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치력과 협상능력으로 봐주었으면 싶다.

‘소속 선수들의 기량은 분명히 최상급이지.’

그러니 부족한 선수를 꽂아 넣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래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에게는 당당히 대답해줄 수 있다.

‘사장이잖아. 당연히 우리 식구들이 잘 되는 것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고. 게다가 진태목 선수는 4장뿐인 16강 프리패스 시드를 가지고 있으니까, 잘만 되면 모든 팀원들을 대회에 내보낼 수 있겠어.’

작년에 치른 PKT의 4강 진출자는 본선 16강에 자동 진출하는 시드가 부여되기에 우리 팀은 기본적으로 3장의 추천서를 가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회 우승자는 초대 로열로더가 된다. 자신의 프로필에 평생 남게 되는 이 기록을 우리 선수들에게 안겨주겠다. 물밑 지원은 책임지고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정하고 화끈하게 밀어붙이려는데 내면에서 양심이 질문 하나를 툭 던졌다.

- 너무하는 거 아니냐? 정당하게 해도 충분한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이 물음은 바로 논파 당했다.

‘어차피 내가 개입하면서 역사가 다 틀어진 건데 이제 와서 뭔 소리냐? 그러면 다 때려치우고 공장 들어가서 월급쟁이로 살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따지고 보면 내가 팀을 만든 것부터 틀어질 대로 틀어진 역사다. 굳이 그걸 다시 짜 맞추겠다고 노력하는 것도, 더 좋아지겠다고 무리수를 둘 이유도 없었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거머쥘 수 있는 것들을 거머쥐며 비겁하지 않게 성공을 이뤄나간다. 여력만큼 돕되 야비하게 갈취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거면 된다.

‘대신 물어보기는 하자. 혹시 대회에 나가기 싫은데 내가 억지로 다 보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공부하기 싫은 아이한테 너를 위한다면서 학원을 보내는 식이 되면 곤란했다. 나는 선수들 모두를 두고 물어보았다.

“2명만 선발해서 나가시겠습니까, 모두 다 대회에 출전하시겠습니까?”

“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리 없잖아요?”

“꼭 하고 싶습니다!”

프로게이머로의 큰 미래를 꿈꾸는 선수들 중 누가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겠는가.

당연히 모두가 나가겠다고 했고 나는 수락한 뒤 일을 진행했다. 그렇게 TFA의 모든 선수들이 참여하였고 12명의 본선진출권을 확보하기 위한 승부에 돌입했다.

*

예선전 당일 회사건물 앞.

경기를 치르러 가기 전에 소속 선수들을 위한 다양한 준비가 이뤄졌다.

우선은 복장이다. 본선에 들어가면 올게임 측에서 주는 우주복 게이머 의상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예선전에서는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고 패션스타일 역시 조절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20년 뒤에 봐도 촌스럽지 않은 스타일을 추구하려 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사람들한테 반대 의견을 받았다.

“아이돌 스럽게··· 하는 게 좋단 말이군요?”

“예. 확실한 통일성을 확보하고 시대의 트렌드를 가장 많이 투사한 복장입니다.”

“팀의 생명력이나 인상 역시도 크게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모델로 삼은 것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를 보이 그룹이었다. 이들이 입은 ‘사이버틱한 후드 집업’과 이에 맞춘 ‘힙합바지’. 그리고 ‘운동화’였다. 새벽부터 메이크업을 했는데 나라면 백번 거절했을 모습임에도 선수들은 대체로 만족한 기색이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오늘처럼 크게 들은 적이 없었어.”

“안 민망하냐?”

“우리가 이러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대회장에 가야한다면 민망할 텐데 회사에서 차도 태워주잖아!”

영 불편해하는 진태목 선수와 감동하는 곽도경 선수,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이내 흠뻑 빠져버린 송진호 등 반응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대체로 좋았다. 아이돌 스러움을 즐기는 곽도경의 무한한 긍정마인드가 주위에 퍼진 덕분이다.

옆에서 ‘좋다 좋아!’를 백번 외치는 사람이 있으니 그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런 차를 우리가 타게 될 줄은 몰랐어요!”

“행사장 가는 아이돌의 기분!”

감동의 꼭짓점은 9인승 차량을 보며 도달했다. 앞으로 대회장까지는 전부 이 하얀색의 신차가 데려다 줄 것이다. 대기업 프로게임 팀이 없는 현 시점에서는 명실공이하게 세계 최고의 팀이자 대우를 받는 셈이었다.

“흰소리 그만하고 얼른들 탑시다.”

“어? 사장님도 가십니까?”

“가야죠. 우리 팀원들의 첫 공식 대회잖습니까. 제가 직접 함께하며 떨어지면 안 된다는 의지를 북돋아 드리겠습니다.”

“네엑?”

“단언컨대 본선에서의 탈락은 인정하지만 예선 탈락자는 용서 없습니다. 팀원간의 승패는 봐드립니다만 다른 게이머에게는 반드시! 승리하십시오.”

“으으! 부담 백배!”

“나 괜히 한다고 했나봐···”

으름장과 같은 말이고 부들부들 떠는 리액션을 보이지만 말하는 나나 선수들 모두 웃음기가 가득했다. 실력에 충분한 자신이 있고 그런만큼 고작 예선에서 탈락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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