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70화 (7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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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드 리그

“맞습니다.”

여기서도 준비된 인재는 현실적이고 적확한 대안을 내게 알려주었다.

“기본적으로 구내식당은 관할구청 신고제입니다. 본래 50인 이하의 사업자에는 구내식당의 신고가 필수는 아니지만 회사의 성장속도로 보면 미리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또 필요한 거는요?”

“신고 후에 운영하시는 것으로 한다면 최소 2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 한 명은 필수로 영양사의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고요.”

‘뭐야 법도 알아? 이 아가씨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잘 알아서 고맙기는 한데 고진환 씨 못잖게 필요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때면 나로서는 마냥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전혀 전공과 관련 없는 일에도 척척 해내니 이게 뭔가 싶을 때가 아주 많았다.

“혹시 따로 공부하셨습니까?”

“퇴근 후의 시간을 잘 활용했을 뿐이에요. 직원들의 복지를 신경 쓰시는 사장님이신만큼 당연히 이쯤에서 식당과 관련되어 지시하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고진환 씨가 귀띔해주기로 했지만 그보다 제가 먼저였고요.”

‘응? 뭐라는 거야?’

이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슨 오해를 하는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더 들어볼 겸 물어보기로 했다.

“김지애씨의 의견을 더 듣고 싶네요. 위치는 어디가 좋다고 보십니까?”

“건물 구조로 볼 때 식당은 지하 1층에 만드는 편이 어떨까 싶어요. 지하 1층 전부를 사용하고 20%는 창고, 20%는 주방, 60%는 직원들이 식사를 할 공간으로 두는 식이죠.”

펜과 종이만 쥐어주면 설계도까지 그릴 기세였다. 뿐만 아니라 식당 내부 공사와 집기에 관한 것은 물론 영양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알아본 자료들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느냐 하니 5분도 안 되어서 가져왔다.

‘헐!’

대관절 이런 사람들이 어째서 우리 회사에 들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취직이 없다는 이유에서는 짐작이 되지만 나와 함께 하게 되었다는 우연에 대해서는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좋네요. 그런데 이 월급 부분에서 12시간 근무에 68만원은 무엇이죠?”

“이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실 때의 시간과 급여입니다. 학교에서 급식 업체에 위탁하는 바람에 실직하시게 된 상황이니 채용도 손 쉬울 것이라 생각해요.”

‘하여간에 노동력 쥐어 짜대는 데는 도가 텄다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근무환경과 급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쨌거나 가져온 것을 확인도 하지 않고 바로 도장 찍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고서를 토대로 형식상이 됐건 스스로 알아보는 요식 행위를 거친 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공사가 들어갔고 급여는 영양사 월 100만원, 조리사는 월 90만원으로 결정했다. 근무시간은 영양사는 10시부터 7시까지. 조리사는 동일하게 10시부터이지만 저녁 조리가 끝난 뒤에는 둘 중 한 사람만 남고 한 사람은 먼저 퇴근하는 방식이었다.

‘일은 줄고, 급여는 늘어난 경우지.’

그렇게 채용과 회사 식당 운영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났을 무렵,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사장님. 식당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매일 나가는 식사량이 우리 총 직원들 숫자에 비해서 너무 많아졌어요.”

염두에 두었던 반응이다. 먹는 사람도, 차리는 사람도 편의성을 가지기 위해서 음식은 무조건 자율 배식. 한쪽 편에는 혹시나 반찬이 입에 맞지 않는 직원을 위해 계란프라이 셀프 코너를 준비했으니 대식가는 양껏 먹을 것이다.

“많이 먹는 친구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TFA 선수들도 꽤 많이 먹는 것 같던데?”

“그게 아니라 다른 회사 사람들이 같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네?”

듣고 나니 우스울 따름이다. 주변 배달 음식점에서는 우리가 나름대로 주요 고객이다. 그런데 어느 한 날에 주문이 뚝 끊기자 음식점 사람들이 확인을 하러 왔었고 견제를 위해 몰래 음식을 먹고 갔다고 한다.

여기서 김지애 씨가 엄선한 요리사들이 반전의 계기를 주었다. 예전의 고등학교보다 훨씬 나은 환경이자 열정적으로 일해 준 것이다.

“그 탓에 너무 저렴한데 맛도 좋다고 소문이 나버렸습니다.”

1인당 1끼 식사로 잡은 비용은 고작 1800원. 그럼에도 김치, 육개장, 제육볶음 등 총 6가지의 반찬으로 이루어진 매우 훌륭한 식단이다. 여기에 부모님이 아들 식당에 좋은 과일들로 엄선해서 가져다 주셨다.

부모님은 안정적인 거래처가 생긴 셈이고 나 역시 100% 믿을만한 과일을 공급받게 되었으니 그저 좋을 따름이다.

“우리 회사 특성상 점심시간이 명확하지 않고 그래서 식사가 항상 구비가 되는 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로 얼굴을 몰라도 ‘아 다른 층 직원이구나.’ 이래버리면 끝이니까 하나씩 둘 씩 자연스럽게 늘었고 아예 자리를 잡아버렸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모습에 간단히 대답했다.

“식권 만들어서 배포하죠. 장당 3,000원짜리로.”

“식권이요?”

원래 다른 회사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우리 직원들에게는 한 달에 60장씩 주고 외부 사람들이야 3,000원에 사먹으면 될 일입니다. 돈 내기 싫으면 안 먹겠죠. 아니면 500원 더 내고 3,500원짜리 다른 식당 음식을 먹던지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해결되는 가 싶던 구내식당은 계속해서 엉뚱한 일을 만들어갔다.

난감한 표정의 김지애 씨를 또 마주하게 되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다 뭡니까?”

“그게··· 3,000원으로 먹는 지역 내 맛집이다 해서 외부인들이 더 늘어났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하루에 점심과 저녁을 다 합쳐서 50인분이면 끝이다. 그런데 지금 올라온 보고서에 의하면 200인분을 넘게 만들어서 말 그대로 판매를 하는 상태였다. 덕분에 구내식당에서 실질적인 이익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러면 그냥 일반 음식점이 하나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몰라.’

손댈수록 이상해지니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회사 식구들이 먼저입니다. 직원들 식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만 수용하세요. 조리하시는 분들이 무리하지 않도록 인원 추가하시고 일정도 조절하시고요.”

“네, 사장님.”

이 지시를 끝으로 일단락 지었다.

어쨌거나 장사가 잘 되면 좋은 거다.

42. 스드 리그

“다들 분위기가 어때요?”

프로게이머 코리아 토너먼트(PKT).

장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될 대형 게임 대회의 개최 소식이 전해졌다. 자연스레 2층의 선수들 모두 좋은 성적을 받아오겠다며 의욕이 끓어올랐다.

“사장님의 플레이를 본 이후로 다들 그 이상의 전술을 보여주겠다면서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 탓에 랭크 토너먼트의 순위는 떨어지고 있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박민희 매니저의 말대로다. 랭크 토너먼트 순위는 월드 챔피언쉽 토너먼트의 참가 자격이지만 그 대회는 아직 가을에 열린다. 여유를 가지고 여름까지만 순위에 들면 해결 될 일이니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PKT가 나중에는 올게임넷이지만 지금은 투니레일에서 했었지?’

왜 투니레일에서 하던 대회가 올게임넷으로 넘어갔는지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른다. 그저 즐겨보던 시청자로서 채널이 달라졌다는 정도만 기억할 따름이다.

“순조롭군요. 우리 선수들이라면 충분히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패기 넘치는 표정을 짓는데 박민희 매니저가 조심스레 말했다.

“사장님. 그런데 요즘 이래저래 분위기가 좀 이상하거든요. 혹시 우리 사이트에 올라온 PKT에 관한 글을 못 보셨나요?”

운영자이지만 관리는 직원들에게 넘긴 만큼 나는 이용자로서 관심 있는 글들만 골라보는 편이었다. 그래서 의아해하자 그녀가 말했다.

“소문인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번에 투니레일에서 대회를 위한 예산을 내려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올라왔어요. 대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까지 하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장 대회까지 보름도 남지 않았는데요?”

“소문에는 IMF 구제금융의 문제로 회사에서 대회를 운영할 자금이 없다고 해요. 그런데 그냥 사이트에 올라온 글만 있어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죠.”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래서 투니레일에서 하던 대회가 올게임넷으로 넘어간 건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대회를 진행하게 되는 걸까?’

생각을 해봤지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플레지와는 다르게 이쪽과 관련되어서는 내가 아는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팀을 대표할 담당자가 있어야해. 박민희 매니저가 오전 회의에 함께했다면 이미 진작 회의를 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그녀를 참석시키기에는 분야의 협의점이 너무 적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하지만 오늘 후일 박민희 매니저의 의향을 물어보고 결정을 지어야 겠다.

‘어찌됐건 지금은 당면한 일부터 처리해야지.’

이쪽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인 고진환 씨와 김정규 씨를 2층에 내려오라고 전했다.

헐레벌떡 내려온 두 사람과 함께 연습실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에 앉았다. 그리고 졸지에 오전에 이은 2차 회의를 하게 되었다.

“PKT에 관한 내용 알고 계셨나요?”

뚝 잘라 물어보는 물음에 두 사람의 대답 역시 엇갈렸다.

“네.”

김정규 씨는 안다고 했다.

“아니요.”

고진환 씨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모습이다.

나는 김정규 씨를 보며 물었다.

“정확히 어떤 걸 질문을 했는지 이해하신 게 맞습니까?”

“PKT가 현재 자금난 때문에 무산이 될지 모른다는 내용을 말씀하시는 거라고 이해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왜 아까의 회의 때나 그 이전에 보고하지 않았던 겁니까?”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보고를 드려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똑똑하던 고진환 씨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얼굴이고 김정규 씨는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둘의 이미지가 바뀐 듯한 기분이라 새삼스러웠다.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해당 글을 올린 사람이 진짜 PKT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정말로 대회가 무산이 될 위기가 있는 건지, 등등이었습니다. 현재로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게 없었기에 파악하고 나서 보고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규씨. 정확한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PKT까지 며칠 남았는지 알고 계십니까?”

“2주 남았습니다.”

“그래요. 2주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산이 없다는 말이 돌아요. 이런 건 확신이고 뭐고 일단 보고를 먼저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죄송합니다. 그 쪽에 동기가 있어서 최대한 빨리 정보를 얻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질책하는 분위기를 배제하고 질문했다.

“친구가 좋은 정보를 주던가요?”

“처음에는 투자 해줄 회사들이 굉장히 많다고 잘난 척을 했습니다. 하지만 말만 그랬을 뿐 여기저기 가서 다 차인 모양입니다. 꽤나 안절부절 하더라고요.”

‘아니. 그러면 이야기를 했어야지 이 양반아!’

어쨌거나 이미 일어난 마당이니 수습을 잘 할 차례였다. 나는 머리를 굴려 보았다.

‘미래를 떠올리자면 대회가 사라지지는 않았으니까 결국 어딘가에서 투자를 결정했다는 소리야.’

어쩌면 그것 때문에 PKT라는 이름에서 스드 리그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즉, 놀라고 당황할 것 없이 내가 발 벗고 나서지 않아도 대회는 무난하게 열린다는 의미였다.

손을 놓고 있어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그러나 이는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다.

‘흥행에 성공하는 대회가 있는데 투자자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그 역할을 맡아도 되는 거잖아. 숟가락을 얹지 않으면 그게 바보 라고.’

생각을 마치고 김정규씨에세 물었다.

“PKT 측에서는 지금 스폰서를 구하고 있단 말인데, 혹 얼마를 필요로 하는지도 아십니까?”

“정확하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들에게 3,000만원은 큰돈이 아닐 텐데.’라고 했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자면 약 3천만 원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큰돈이 아니다. 반면 흥행 여부를 점치지 못한 중소기업의 처지로서는 여러모로 고민이 될 액수였다.

여기서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합시다.”

“네?”

“이번 대회의 투자 스폰서를 하자는 겁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닐 테니 우리같은 작은 회사의 스폰도 받을 테죠.”

대회가 무산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마침 김정규 씨의 친구도 그곳에 있다니까 가서 이야기 해 보십시오. 최대한 홍보가 많이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잡았으면 싶군요. 어느 정도 밀당은 괜찮지만 3일을 넘기지는 않아야 할 겁니다.”

3일을 넘겼다가 원래 스폰서를 담당하게 될 회사에서 수락하면 곤란하다. 적절하게 치고 빠져 주기를 기대했다.

“제가요?”

“예. 문제 있습니까?”

“아니··· 예. 알겠습니다.”

무언가 체념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는 책임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일을 맡으면 맡을수록 정력적으로 변모하는 다른 직원과는 다른 모습이자 평범한 이의 면모였다.

“그리고 고진환 씨는 스폰서 쉽을 채결할 경우에 어울릴 만한 이벤트를 준비해 보세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나 일을 사랑하는 남자답게 금방 화색을 보였다. 한 회사에서도 참으로 색깔이 다른 모습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회의를 일단락 한 후 김지애 씨를 호출한 뒤 남은 예산과 관련해서도 대화를 마쳤다.

‘은근히 힘들다니까. 신경 쓸 게 이만저만이 아니야.’

비로소 숨을 돌렸다.

게임 내에서의 골드 장사보다 이모저모로 더 치밀하게 진행할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잘 끝냈을 때는 성취감이 더없이 크지만 진행할 때 겪는 스트레스의 크기 역시 상당하다. 이럴때면 위에서 골드 장사에 여념이 없을 진수와 성찬이를 떠올리곤 한다.

아마도 회사에서 제일 한가한 녀석들이 있다면 그 둘일 것이다.

“저기······.”

의자에 몸을 기대고 숨을 돌리는 그때, 누군가 옆에 어정쩡하게 있는 것이 보였다. 다름 아닌 박민희 매니저였다.

“거기서 뭐하십니까?”

“그게 아니라 아까부터 있다 보니······.”

난색을 표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직원들을 호출하면서 계속 회의하는 내내 나갈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붙들려 있던 모양이다. 놀라운 것은 적잖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존재감이 하나도 없게 조용히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아뇨. 사장님이 왜 사장님이신지 저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네?”

“그냥 업무를 진행하시는 모습들에서 사장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였어요.”

‘뭐라는 거래?’

핵심 단어가 빠진 것 같았지만 캐 묻자니 시선을 이리저리 회피하는 모습에서 불편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차피 별 대수롭잖은 이야기일 테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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