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66화 (66/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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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행티켓과 오프로더

사냥하고 또 사냥한다.

강화하고 또 강화한다.

너무나도 간단한 패턴이 전부였다. 그런데 왜 꿈속에서의 나는 이런 사실을 느끼지 못한 것일까. 들인 시간과 노력이 커서일는지 모르겠다. 무력하게 PK를 당하고 몬스터 한 마리 잡는데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하나씩 이뤄나갔기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 같았다.

반대로 지금은 자판기의 주인이자 골드 흐름을 꽉 쥔 거상이라서 이런 사색을 할 테고 말이다.

‘어찌 보면 한국 게이머의 국민성은 혈통이 아니라 습관이랑 훈육의 결과인지도 몰라.’

이쯤에서 사색적인 생각하나가 끼어들었다. 끝없는 사냥과 경쟁! 이런 방식의 플레이에 물 들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전투적으로 게임하게 되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상념이었다.

그렇게 오늘 획득한 은십자의 방패를 심심풀이로 +7강화 한 뒤 킹 버그 베어들 중에서 마법의 투구를 가진 놈들만 쏙쏙 골라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용의 협곡 업데이트는 언제 되냐.’

적어도 드래곤 쯤은 되어야 긴장감 있게 잡을 성 싶었다.

39. 본토행티켓과 오프로더

용 사냥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역시나 돈 벌이였다. 모든 업데이트에 발 맞춰서 빈틈없이 준비해온 우리였던 만큼 이번에도 두둑하게 벌어들일 찬스가 왔다.

‘위더우드 영지의 등장은 곧 광도의 몸값 상승이나 마찬가지니까.’

나로서는 꽤 심심했고 친구들은 부리나케 돌아다니며 이모저모로 즐기는 휴식 겸 플레이 시간이 지났다. 이후 진수와 성찬이가 즐길 만큼 즐겼다 싶자 나는 녀석들에게 상황을 점검시켰다.

“그만하고 일 해보자. 자판기의 현재 시세랑 수익에 대해서 알아봐봐.”

“벌써?

“지금?”

“남들보다 몇 걸음 빨라야 하는 게 장사꾼이라고. 아차해서 방심했다가 후발주자들한테 붙잡히는 수가 있어.”

“오케이!”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이만큼 여유를 가져도 되는 것은 전적으로 내 판단들이 모든 정보를 앞서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내가 주도하면서 여유롭게 하는 방식에 젖어들었다가는 나중에 친구들을 믿고 맡겼을 때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다.

‘말이 쉽지만 정말로 하기 어려운 것. 그게 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쉬는 거지.’

다행인 점은 진수나 성찬이가 변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점이었다. 업무 시간에는 일에 충실한 타입이더라도 사장이 친구이고 타성에 젖다보면 슬슬 요령을 피울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잠시 후 신속하게 자판기들의 현황을 살핀 진수가 엄지를 척 올렸다.

“할 때는 긴가민가한데 결과 보면 역시 초대박이라니까. 사장님아. 지금 장난 아니야. 네 말대로 광도는 25만 골드 선을 유지 중이고 현재까지 데포 서버에서 18자루, 켄헬 서버는 13자루가 팔렸어!”

“진리언은 14자루, 이실 서버는 2자루이고. 끝으로 신규 서버는 막 생긴 만큼 자판기를 안착시키는 데 주력하는 중이야.”

쓸데없이 무겁기만 하던 광전사의 도끼에 헤이스트 효과가 더해지는 순간 이 장비는 날개를 달고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그야말로 유저들은 게임 회사의 패치 하나에 울고 웃는다.

그 결과 일찌감치 예상했던 대로의 상황이 벌어졌다. 굉장한 고가임에도 찾아오는 유저들의 수가 늘고 있어서 모두 판매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광도는 빨리 팔수록 부담이 적어. 무게랑 인벤토리를 어지간히 차지하는 게 아니니까.’

빨리 많이 파는 것과 고가의 가격선을 유지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는 논리였다. 많이 팔려면 값을 낮춰야 하고 가격대를 유지하려면 소량씩 고가에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케팅이었다. 저토록 비싼 가격에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면 모두 해결된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을 잘 알았다.

“성찬아. 게이머스 포럼 쪽 작가들 중에 나이트쪽 리뷰어들이 있지? 그분들한테 광도 하나씩들 싹 돌려.”

“응? 갑자기 왜?”

“당연히 광도 리뷰를 쓰라고 선물하는 거야.”

게임을 여행 작가가 수기를 작성하듯이 즐기는 유저들이다. 굳이 ‘홍보해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글과 만화에 묻어날 것이고 이는 게이머스 포럼을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매력적인 광고가 될 것이다.

여기에 아직은 사람들이 모르는 고급 정보를 하나 끼워주었다.

“광도를 들고 있으면 촐기의 지속시간이 줄어들지 않게 된다는 점도 일러줘.”

무기 자체로서는 쓰기 애매하지만 이동시에는 이보다 좋은 게 없다. 더 좋은 점은 몬스터를 찾으며 아깝게 소진되는 초록 물약의 가속 시간을 잘 아껴둘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거짓말은 안하는 타입 아니었냐?”

“태식아. 메일 브레이커 때를 생각해보라고.”

우려하는 두 친구에게 고개를 흔들었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로 안 줄어드니까 궁금하면 실험 해 봐.”

“진짜?”

“리얼리?”

“어. 진짜.”

나의 대답에 ‘오오!’하던 진수가 곧 부정적으로 말했다.

“나이트만 노났네. 진짜라고 해도 매지션은 광도를 들 수가 없잖아.”

오직 나이트 클래스만이 들 수 있는 광전사의 도끼. 아무리 좋은 기능이 있어도 다른 직업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해결법이 존재했다.

“끼고 싶냐? 그렇다면 가능하게 해주는 버그 하나를 알려주마.”

“헐! 또 무슨 변태 같은 것을 알아낸 거냐!?”

“졸라 기대된다.”

나이트 클래스가 아닌 직종도 광전사의 도끼를 들 수 있는 버그. 이는 아주 잠깐 유행했던 것이었다. 나는 남는 나이트 캐릭터와 진수의 것을 이용해서 방법을 보였다.

“준비물은 나이트랑 다른 클래스 하나씩. 그리고 양초 180개와 광전사의 도끼다.”

“뭔 양초를 180개나 챙겨?”

“숫자가 조금 비는데? 200개 안 채워?”

“몰랐냐? 한 캐릭터가 들 수 있는 아이템의 최대치가 180개다. 이건 이 한계 수량을 이용한 버그야.”

광전사의 도끼를 장비한 나이트에게 매지션이 다가간다. 그리고 180개의 양초를 한 번에 넣어주면 재밌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먼저 들고 있던 광전사의 도끼가 사라지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양초 한두 개를 버린 다음에 본래 무기를 착용. 그 뒤에 남은 양초들을 모두 버리면?”

“헐! 보이지 않던 광도가 다시 나타났네?”

“인벤토리에 생겼어!”

이제 마무리 단계다.

“요렇게 등장한 광도를 나이트 캐릭터가 바닥에 떨군다. 이제 이 도끼를 맨 손 상태인 다른 클래스가 주우면 끝!”

“우와. 웃음밖에 안 나온다. 나 지금 광도 들고 있는 거 보임?”

“매번 생각하는 건데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알아내는 거냐?”

“하다보면 된다.”

큰 도끼를 든 진수의 캐릭터가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틀림없이 가속 효과가 적용된 모습이었다.

이를 본 성찬이가 아우성이다.

“야, 나도 하나 줘봐!”

“직원아. 말이 짧구나.”

“사장님! 회장님! 저도 광도 착용시켜 주세요!”

“오냐. 너에게 광도를 줄 테니 버그라는 점을 잊지 말거라. 절대로 악용하면 안 된다.”

“예이~”

그렇게 광전사의 도끼를 들고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두 명의 허좁 매지션들이 나타났다. 여기서 또 한바탕 놀아준 뒤 오늘의 마무리 업무확인에 들어갔다. 업데이트 이후에 일어난 남은 품목들의 재고 및 판매 현황을 듣는 것이었다.

성찬이가 짧게 요약했다.

“크로스 보우 판매량! 데포 10, 켄헬 12, 진리언 8, 이실 4개.”

“광도도 그렇고 이실은 뭐 팔리는 게 없네?”

“여기는 아무래도 유저 숫자가 딸리잖아. 장비 자체 매물이 적은 만큼 사치품이라 할 수 있는 고급 장비는 아예 구매를 하지 않는 경향이 커 보여. 그런데 웃긴 건 달랑 4개 팔린 크로스 보우들이 전부 +8강화짜리라는 거야.”

“빈익빈 부익부네.”

어차피 이 문제는 플레지의 인기와 더불어서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었다. 즉, 아주 무난한 편이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총 수익금은?”

“총 매출은 4개 서버 합쳐서 9,250만 골드. 여기서 지금 이 물량을 준비하는데에 들어갔던 비용을 제외한다면 대략 3,350만 골드야.”

“현재 시세로 보자면 670만원이지.”

확실히 업데이트 덕분에 한 방에 큰돈이 들어왔다. 이런 흐름은 며칠간 계속 이어질 것이고 우리의 게이머스 포럼 작가들이 활약하는 정도에 따라서 더욱 커질 전망이었다.

*

“빠르다, 빨라. 역시 게임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다워.”

진수와 성찬이가 일을 제대로 했고 우리의 소속 작가들이 열심히 플레지를 즐긴 모양이다. 단 이틀 만에 광전사의 도끼를 사용한 연재 글이 올라왔다. 바로 맛깔난 여행수기로 인기 몰이를 하는 ‘본토행티켓’과 담백한 정보 분석이 강점인 ‘오프로더’의 글이었다.

‘연재일이 아닌데 올라왔어. 이러면 독자 입장에서는 선물 받은 기분이지. 그런데 본토행 이 사람은 로열 유저인데? 설마 버그 사용법을 전수해준 건가!?’

기대되는 한편 우려가 커졌다. 나는 게시물의 제목을 확인했다.

「‘특별편’ 광전사의 맹세 - 작성자 : 본토행티켓」

‘···도통 내용 짐작이 안 되네.’

제목만을 보면 로열 캐릭터가 쓸만한 광전사의 도끼 리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찌됐건 ‘부디 버그는 나오지 않기를’ 그리고 ‘광전사의 도끼 인지도가 올라갈만한 글이기를’을 염원하며 마우스 왼쪽버튼을 클릭했다.

딸깍!

본문 내용이 펼쳐졌다.

『칸트 성 다리 밑.

포도밭의 남쪽을 지날 때의 일이다.

쏴아아아-

거친 바람이 푸른 초원을 가로지르자 풀숲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은 사막의 달궈진 공기처럼 뜨거움마저 내포한 듯했다. 당황하여 바라본 그곳에서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아아···!’

그곳에는 내가 기억하는 푸른 초원의 모습이 없었다. 바람결에 느껴지는 피비린내와 뜻모를 끈적끈적함. 늪처럼 눌쩍하게 달라붙는 느낌의 정체는 눈앞의 참상들로부터 비롯한 것이 분명했다.

반 토막이 난 시체.

얼굴이 함몰된 시체.

뱃가죽이 찢어져 내부의 장기가 다 쏟아지고 있는 시체.

팔다리는 어디로 갔는지 몸통만 남겨진 시체!

비록 흉포한 몬스터들의 것이었으나 도륙당한 참혹한 현장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인간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원초의 감정이리라.

생명의 존엄을 상실한 채 이제는 썩어가는 고깃덩이가 된 유기물들. 초원을 더럽히는 폐기물로 남은 그것들은 무려 백이라는 숫자를 넘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아!”

금색의 갑주를 입고 검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여성.

자신의 몸보다도 더욱 커다란 도끼를 들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여기사였다. 시체 사이에 서 있기에 더욱 대비되는 매력이 돋보이는 듯했다. 내 넋을 잃게 만든 그녀는 마지막 몬스터 시체에서 도끼를 뽑아들며 작게 말했다.

“더는 이곳에 있어봐야 의미가 없겠어.”

떠나야 할 때를 암시하는 여기사의 말에 나는 작금의 위치를 다시금 떠올렸다.

이 사냥터는 본토 지역을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약체의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곳이었다. 이른바 초보존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본토 지역에 속한다.

강력한 몬스터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기에 상대적으로 약해보일 뿐, 혼자서 이토록 많은 몬스터를 잡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탄사는 오직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턱!

자신의 무기인 도끼를 턱 걸친 여기사는 자신의 업적에 시선조차 더 두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사냥터를 이동할 뿐이었다. 나의 두 발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녀를 따랐다.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길드도 없고 호칭 역시도 보이지 않는 나이트인데 저렇게까지 강할 수도 있었구나. 역시 아직 세상은 넓어.’

호기심. 그리고 부러움.

이런 다양한 감정이 나를 뒤덮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회상하자면 부끄러운 고백이겠지만 매력 역시도 크게 느낀 것도 같았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방향으로 걷는 중이었는데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뒤를 따랐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집만한 큰 도끼를 든 상태임에도 전력으로 뛰는 나를 압도하는 속도로 이동했다.

마치 날개가 달린 신발을 신은 헤르메스처럼 순식간에 저 숲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가속 상태였구나. 그래. 촐기라도 먹었으니 몬스터들을 상대로 그렇게 싸울 수 있었던 거겠지.’

종적을 완전히 놓쳤음에도 인상이 너무 강렬하게 박힌 탓일까. 나는 한참을 돌며 여기사의 흔적을 찾고자 애를 썼다. 그리고 이내 포기한 채로 글라이드 마을에 돌아왔다.

그때였다. 내 미련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것일까. 북적북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다!’

글라이드 마을.

글라딘, 본토라 불리는 중심지!

여행하는 본격적인 시발점이자 고향! 그 시작의 땅에 여기사가 보였다. 얼마 전까지는 푸르스름했을 뿐이던 이름은 어느덧 완연하리만큼의 짙은 푸른색으로 변모한 상태다. 하지만 큼직한 도끼를 들고 있는 외모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운명적인 끌림을 느끼고 그녀를 쫓았다.

‘이번에는 안 놓친다.’

부리나케 뒤를 따랐다. 하지만 바람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바쁜지 금보다도 귀하다는 물약을 바리바리 구입한 그녀는 동쪽문으로 순식간에 이동해 버렸다.

“안 돼!”

빤히 보는 채로 망연자실한 것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어떻게 이토록 강력한 건지 파헤치고 말겠어. 대화라도 하고 말겠다고.’

아껴두었던 아이템인 초록 물약을 마시고 배는 빨라지는 속도로 그녀를 추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신속 상태의 나와 그녀가 같은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설마 마을에서부터 상시 물약을 마시며 다니는 거였어?!’

여기사의 여유와 강함은 막대한 골드에서 비롯했나 싶었다. 충격과 한편으로 느껴지는 실망감에 복잡해질 즈음, 가속 상태가 끝나며 나의 걸음은 다시금 느려졌다.

그리고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직도 빨라?”

여기사는 분명히 나처럼 물약을 먹거나 하지 않은 상태였다. 장담컨대 단 한 번도 그녀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다. 그랬음에도 그녀의 몸에는 초록색의 빛이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바람처럼 이동 중이었다.

물약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가속 상태가 여전히 유지되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지? 정말 신발에 날개라도 달렸나?’

알고 싶다.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다시금 여기사는 내 시야 바깥으로 사라진 마당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찾을지, 걱정하지 않았다.

‘글말에서 물약을 채웠고 이쪽 길로 간다면 갈 곳은 뻔해.’

목적지는 본토 던전이리라. 나는 다시금 초록 물약을 마시고 부리나케 이동했다.

비록 조금은 늦었지만 그녀가 사냥 중이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지하의 미궁. 본능을 자극하는 캄캄한 어둠속 던전에 들어섰다.

딱. 딱-

끼아아아-!

음산하고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뼈와 뼈가 직접 맞부딪치면서 내는 달그락 거리는 기음도 함께였다.

살이 썩으며 만들어내는 고약한 냄새!

본토 던전의 언데드들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합창이 1층 입구부터 여행자를 압박했다. 촉각을 곤두선 채 나는 한 가지를 찾았다.

중 대형의 도끼를 든 강인한 여기사의 흔적이다.

‘···저기 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 휘몰아치는 강력함!

상대하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불쌍하리만큼 그녀의 공격과 이동은 신출귀몰하고 파죽지세였다. 여기사의 발길을 막을 만한 상대는 던전 1층에 존재하지 않았다.

보는 내내 입을 벌어지게 만들만큼 무자비하게 언데드들을 파괴한 그녀는 순식간에 1층을 넘어 2층. 그리고 3층까지 빠르게 도달했다.

나 혼자라면 한참을 고생해야 가능했을 거리를 정말이지 한 순간에 통과해 버린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실력이다.

‘괜찮을까?’

다시금 넋 놓고 쫓다보니 나 역시도 지하로 내려오는 상태였다. 그런 한편으로 걱정이 들었다.

‘3층은 위험한데.’

호기심 때문에 여기까지 쫓아왔지만, 던전 3층은 강력한 구울과 스파토이. 그리고 셸롭들이 출몰하는 무서운 지대였다. 나 같은 녀석은 두 마리만 나타나더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함에도 쫓기만 하는 이유는 그녀의 수행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잠시라도 쉬는 기색을 보이면 그때 말을 걸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

‘일단 검업이라도 하자.’

빛을 밝히는 라이트.

방어력을 1 올려주는 실드.

인챈트를 통해 공격력까지 보강한다. 이로서 로열이 쓸 수 있는 모든 버프를 사용했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녀를 보았을 때였다.

“흐윽!”

처음으로 깊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스파토이 두 마리와 셸롭 한 마리의 연계가 이어지니 아무리 그녀라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이야말로 나서서 도와줄 때다! 싶었지만, 그녀의 의지는 아직도 굳건했다.

‘저 3마리를 전부 잡아내다니. 그것도 저토록 빠르게!?’

심지어 여기사는 3층조차도 지나가는 통로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위층보다는 다소 느려졌지만 여전히 거리낌 없는 행보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나로서는 단 한번도 발을 디딘 적 없던 미지의 장소로 내려갔다.

“4층!”

3층조차도 겨우겨우 다른 사람들과 몰려와서 경험해봤을 뿐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곳이다. 그런 곳에 홀로 들어가다니!

‘진짜 대단하잖아?’

기호지세라 했다.

그래.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가자!”

심장이 강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4층을 긴장한 채로 둘러보았다.

시작부터 달랐다. 홀처럼 만들어진 넓은 곳이다. 던전과 몬스터라는 단순한 연결고리가 아닌, 흡사 관리하는 주인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장소였다.

그때 큰 노성이 들렸다.

- 아림! 이 배신자여! 어디에 숨었는가!

- 어서 나오라! 이 위대한 마력의 소유자에게 빌라!

- 너는 우리들로부터 영원히 벗어 날수 없으리라!

소문으로만 들어온 강력한 보스 몬스터, 캐스퍼 패밀리!

이 거대한 홀의 주인은 바로 그들이었다. 위기감에 위축되어 다시 올라갈까 망설이는 순간, 먼저 진입했던 여기사가 보였다.

“엇? 위험해!”

그녀는 저 보스 몬스터들의 소문을 듣지 못했던 것일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들을 향해 돌진했다. 혹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크게 걱정이 되었지만 천만다행하게도 이곳에는 다른 유명한 전사들이 다수 포진한 상태였다.

강력한 마도사들의 외침을 들은 이들이 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무기와 마법이 충돌하는 화려한 전투가 펼쳐졌다. 혼란의 격전 속에서 도끼를 든 그녀의 분전이 내 눈에는 유독 빛이 났다.

‘혼자서 캐스퍼를 상대하고 있어.’

그녀는 4명의 보스들 중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마도사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몇 번을 보면서도 거듭 놀라게 된다.

‘벌써 저렇게 강력해지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제 갓 본토에 올라왔던 것 같았던 여기사.

하지만 이제는 이름도 자자한 보스 몬스터와 정면대결을 하는 중이었다. 이토록 빠른 성장은 듣도 보도 못했다.

치이잉-

챙-!

여기사의 도끼와 마도사의 지팡이가 부딪히며 섬뜩한 파열음이 들렸다. 캐스퍼는 마도사임에도 나이트인 그녀 못잖은 근접 전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력을 다하는 여기사와 다르게 보스 몬스터에게는 주력 기술이 남은 상태다.

바로 강력한 마법이다.

번쩍-!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

“크흑!”

휘청-

내리꽂히는 벼락을 맞은 그녀가 순간적으로 기우뚱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캐스퍼의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졌다. 이에 대응해서 여기사는 주홍빛 대신 흰색의 밝은 빛을 뿜어내며 응전했다.

‘얼마나 다급하면 말갱이까지···!’

최후까지 아껴두는 비장의 회복 물약을 사용하고 있다. 더는 구경만 할 수 없었다. 도와줘야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수준에서는 저들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게 분명하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걍 힐이라도 써 드리는 거야.’

로열 클래스이기에 익힌 1클래스의 기본 마법.

마력이 낮기 때문에 힐이라고 해봐야 빨간 물약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도울 수 있는 전부이자 최선이다. 나는 모든 마나를 쏟아서 그녀를 보조했다.

그러나 위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길! 저 녀석이 합류하면 안 돼!’

푸른 로브를 입은 번개의 마도사.

자신에게 달라 붙었던 모든 전사들을 쓰러뜨린 또 다른 보스 몬스터가 여기사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뒤늦게 홀로 합류한 다른 여행자가 이를 막아서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저 마도사의 라이트닝은 범위 공격이야!’

안 그래도 힘들어하고 있는 그녀에게 추가 마법이 작렬한다면···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녀에게 힐을 사용하던 것에서 대상을 바꾸었다.

1클래스의 나약한 공격마법, 에너지 볼트! 로열 클래스가 사용하는 만큼 피해는 별반 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마법은 적중확률 100%다!

내가 타격을 입히는 순간 저 마도사의 시선은 나를 향할 것이고 그녀는 살릴 수 있게 된다.

‘나는 죽겠지만 이게 최선이야.’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마법을 쏘아냈다.

이윽고 소박한 내 공격은 예상대로 마도사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보스 몬스터의 지팡이가 움직임과 동시에 곧장 라이트닝 마법이 날아들었다.

“컥!”

내 최대체력은 183.

순식간에 소멸해버린 체력은 150!

‘그래도 살아는 있어.’

다행히 한 방에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죽지만 않으면 나는 조금 더 버틸 수 있다!

‘물약으로 어떻게든 연명하자. 버텨야 그녀가 산다.’

싸움은 당초부터 불가능하기에 포기다. 무모한 시도는 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나는 물약을 먹으면서 도망쳤다. 홀을 돌면서 마도사의 신경을 건드렸고 저 보스 몬스터가 여기사에게 시선을 두지 않도록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얼마나 홀을 헤매었을까.

- 크억!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모여든 모험가들의 공격으로 4명의 보스 몬스터가 모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승리의 축배를 마시며 전리품을 획득하는 저들 무리에 나 역시 당당히 합류했다. 비록 에너지 볼트 한 방에 도망친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루팅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해서다.

다급히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아이템을 집을 때였다.

“고마워요.”

내 얼굴 앞으로 금빛의 무언가가 다가왔다. 일찍부터 쫓아왔던 그 대상.

도끼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여기사였다.

“당신이 힐을 써주지 않았다면, 보스의 시선을 돌려주지 않았다면, 둘 중에 하나라도 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버틸 수 없었을 거예요.”

“아··· 그야···”

조목조목 짚어주며 인사하는 모습에 괜스레 멋쩍었다. 웃음이 헤실헤실 나오는데 딱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런 나에게 여기사가 말했다.

“길드를 가지고 있는 로열이시네요? 인원은 여유가 있나요?”

“네? 아··· 아직 몇 명 없어요.”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맹세를 시작했다.

「술로써 한 맹세는 술이 깨면 사라지리라.

물로써 한 맹세는 물이 마름으로 사라지겠지.

잉크 따위로 한 맹세? 그것을 맹세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나이트의 맹세는 피로써 하는 것.

온 몸의 피가 모두 세어 나오기 전에는 깨지지 않는 맹세.

단 한 방울의 피가 남겨져 있더라도

우리는 그 맹세를 지키리.

그렇기에 이 피로한 맹세는 검을 쥔 자가 아니면 하지 못하리.」

“아···!”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그런 한편으로 딱 하나가 마음에 거슬렸다. 나는 조심히 물었다.

“저기··· 그런데 손에 쥐신 건 검이 아니라 도끼···”

“쉿!”

날카로운 눈빛에 나는 숨을 멈추었다.

내가 로열이고 말고는 상관이 없다.

왠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넵.”

그렇게 그녀가 우리 길드에 들어왔다. 참으로 깊고도 강렬한 인상을 준 동료였다.

나는 험난한 본토 던전에서 나올 즈음에야 비로소 처음부터 갖고 있던 물음을 할 수 있었다.

“저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요?”

“아까부터 초록물약을 쓰지도 않고 계신데 엄청 빠르고, 또 엄청 강하셔서요. 비결을 알 수 있을까 해서···”

비밀을 물어도 괜찮은 걸까, 조심스레 물었는데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아. 그거요? 이 도끼의 효과에요.”

“네?”

선선하게 보여준 아이템의 이름은 바로 「+6 광전사의 도끼」

착용 시 광전사와 같은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무기였다.

‘그랬구나!’

이 후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광전사의 도끼. 그리고 ‘무한 촐기 효과’라는 두 가지로 가득차서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짝짝짝···!

“우와. 본토행티켓! 이 사람 대체 뭐야?”

글을 다 읽은 내 손이 저절로 박수를 쳤다.

대관절 누가 이 여행기를 읽고 글의 본래 목적이 ‘광도 홍보’였음을 알아채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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