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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PK단
“두고 봐라. 그 쓰레기가 우리의 다음 주요 수입원이 될 테니. 아마 3,000골드로 산다고 하면 바닥에 버려진 것도 주워올 놈들이 넘쳐날 거야. 그러니 시작가는 3,000골드로 매입하고 점점 따라하는 놈들이 나오거나 관성이 붙으면 1,000골드 정도까지 낮춰.”
“촉이냐?”
“그래.”
“오케이!”
상세하게 말해주면 예언가 취급을 받을 터라서 넘겼지만, 광전사의 도끼가 폭등하는 이유는 사막 지역의 업데이트와 관련이 있다. 이때부터 무기를 장착만 하면 자동으로 초록 물약을 먹은 것처럼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증가하게 된다.
‘무한 헤이스트란 말씀!’
때문에 길바닥에 그냥 버리던 아이템은 한 순간에 30만 골드까지 치솟았다가 10만 골드 선에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게 된다. 이 정도까지가 업무와 관련된 그간의 일이다.
*
취미 및 여가 활동 중에는 경찰 노릇을 하는 게 있었다. 배추 녀석이 나이키키라는 PK유저에게 능멸 당하는 것을 보고 떠올린 발상인데 이른바 PK단 털어먹기가 되겠다.
제아무리 돈이 된다고 해도 똑같은 몬스터를 한결 같은 방식으로 잡는다는 것은 정신력을 고갈시킬 만큼 지겹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렇게 싸인 스트레스를 PK를 통해서 해소하곤 했다. 선량한 유저가 아닌 나쁜 놈들을 사냥하면서 말이다.
‘이놈들이 아주 부자거든.’
플레지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사람을 꼽자면 1위는 당연히 플레지 게임사의 대표이고 2위는 성을 소유한 길드, 3위는 장사꾼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당당하게 4위와 5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이 작업장과 전문 PK단이었다.
이중에서 5위 그룹이 아주 나쁜 놈들이다. 즐겁고 명랑하게 게임을 즐겨야 하는 일반 유저들이 떠나가게 만드는 녀석들. 남들 등만 처먹으면 양아치 같은 못된 부류다. 그러니 이런 놈들을 응징하고 홀라당 벗겨먹으면서 정의 구현을 하는 거다.
그러다보면 뉘우치게 될 것이다. ‘당한다는 건 서러운 거구나.’하고 말이다.
“내가 보기엔 우리 싸장님이 게임사 대표 빼고 혼자 다 해먹으려는 것 같던데.”
“맞아. 태식이는 돼지거든. 힘센 돼지.”
“그래서. 하기 싫다고?”
“게임의 묘미는 PK라고 배웠습니다.”
“꼭 하고 싶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출동하자.”
나이키키 같은 피라미는 우리 셋이서 요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문 PK범들은 10명 이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전력을 보강할 필요성이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쉽게 해결된다. 내고 ‘콜?’하면 ‘콜!’하면서 달려올 힘세고 시간 많은 길드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전민 마을로 이동하는 사이에 함께 PK단을 척살하러 갈 멤버들도 곧 도착했다. 지옥검, 분노의 활질, 담덕, 좌호법, 그리고 지난번에 12렙으로 받아주었던 구도자의길이 41레벨의 모습으로 합류한다.
- 황성찬허좁 : 이야~ 멤버 화려한데?
- 윤진수허좁 : 이건 뭐. 그냥 멀리서 마주치자마자 그냥 다 도망가는 거 아냐?
서버 최상위라 자부할 수 있는 정예부대라 하겠다. 여기에 초극강을 자랑하는 구운몽이 있으니 PK단보다 수적으로는 열세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
다음은 출동할 지역을 정하는 건데, 이 부분은 힘들게 발품 팔 필요가 전혀 없다. 채팅창을 보고 정하면 된다.
- [월드] pizkal : 아오! 열 받아! 오성에서 11시 방향에 활피단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 [월드] 프레어 : 쉬벌. 오크 숲 카신 주변에 피케이들 모여 있어요! 이럽션 주의!
- 구운몽 : 갑시다.
- 좌호법 : 존명!
- 구도자의길 : ?????
- 분노의 활질 : ㅋㅋㅋㅋㅋ
- 윤진수허좁 : ㅋㅋㅋㅋㅋ
···저 아저씨는 대답 좀 평범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확인된 놈들은 두 그룹이다. 이 가운데서 우선은 활피단을 노리기로 했다. 이유는 이놈들이 쉬우면서도 더 돈벌이가 되는 사냥감이기 때문이었다.
‘매지션들은 마법만 익히면 그만이라 좋은 장비를 안 끼기 일쑤거든.’
마법만 써재끼면 그만이라서 막상 죽여도 거지인 녀석들이 상당수다. 반면에 활피단은 효율을 위해서 좋은 활을 드는 것부터 시작이니 기본부터 고강 무기를 깔고 시작한다.
뜯어 먹을 게 많은 좋은 먹잇감들이었다.
전원 헤이스트 상태로 오크 성 지역을 무시무시하게 질주했다. 오래지 않아서 15명 이상의 유저들이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귓속말] 담덕 : 좌측에 활피단 있네요.
- →[귓속말] 구운몽 : 일단 대기하세요. 지옥검이랑 제가 뒤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신호를 드리면 먼저 공격해서 시선을 잡아주세요.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나이트는 일단 붙어야 공격을 할 수 있다. 15명이나 되는 PK 유저들에게 집중사격을 당한다면 들어가는 동안 엄청나게 체력이 줄어들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교란할 필요가 있었다.
- →[귓속말] 구운몽 : 지옥아. 뒤로 돌아서 들어갈 거야. 따라와.
- →[귓속말] 지옥검 : ㅇㅋ
자연은 공평하다는 말이 있듯이 오크 숲이라는 무대는 PK유저들과 우리 모두에게 같은 환경을 제공했다. 빽빽한 나무를 이용하여 저들이 일반 플레이어들을 습격했듯이 우리도 똑같은 수법으로 접근했다.
이름 하여 기도비닉이다.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이었다.
“오케이. 자리 잡았어. 공격해.”
“알았어!”
진수와 성찬에게 말하자 녀석들은 대기하던 동료들에게 귓속말을 전달했다. 곧 팀원들이 먼저 공격하였고 순식간에 활피 유저들 중 최 선두에 있던 엘프가 눕고 말았다.
- 역시나야 : ㅅㅂ 뭐야? 어떤 개새냐고!!!!
다른 유저들을 죽이고 다녔을 때는 낄낄 댈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이 피해를 보니 웃을 수 없는 모양이다. 격렬하게 반응하는 상대였다. 그 사이 우리는 작전대로 움직였다.
- →[귓속말] 구운몽 : 고고!
아군이 3시 방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활피단의 시선이 이들에게 몰렸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 사이, 우리는 11시 방향에서 치고 내려갔다. 담덕 등의 팀원들에게 온 신경이 쏠렸기에 이번 기습은 제대로 들어갔다.
- 오숲의왕 : 뭐야? 나이트도 있잖아!
- 헬렌굴러 : 죽여! 죽여!
싸움에서 괜히 ‘선빵 필승’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느닷없이 맞게되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패배하게 될 확률이 높아서다.
마찬가지로 공격자의 입장이었던 PK유저들은 피해자의 자리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강력한 활 공격과 작렬하는 마법. 여기에 나무사이로 은폐 하며 접근한 우리의 급습이 더해지니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 피묻은활 : 아··· 이놈들 성주 길드였어. 씨바··· 어쩐지 겁나 아프더라.
- 인스턴트만세 : 진짜 너무하네. 세다고 행패 부리기냐? 꼬장 질 작작 좀 하자!
‘뻔뻔하기는.’
활피 유저들은 넷이 눕고 셋이 귀환 주문서로 도망을 쳤다. 그러자 남은 인원은 감히 더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체 상태로 떠들기만 하는 동료 유저들의 행동 역시도 사기를 꺾는데 한몫했다. 순식간에 싸움 종료다.
- 구운몽 : 우선 떨어진 아이템들 감정부터 해봅시다.
남은 일은 전리품을 확인하는 것이다.
‘많이 떨궈라.’
8명이 왔으니 욕심대로라면 그만큼은 나와 줬으면 싶었다.
‘+7 엘프족 활, +6 엘프족 흉갑, +4 활 골무. 이걸로 끝이네? 크로스 보우라도 들고 있지. 에잉.’
골드 벌이는 되었지만 막상 ‘잘 먹었다’ 싶은 정도의 급은 없었다. 하지만 사냥은 이제 시작이다. 오크 숲은 넓고 그만큼 PK들은 많았기에 우리의 굶주림은 곧 채울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 구운몽 : 이대로 쭉 내려가면 이럽피 전문 피케이단을 만날 거 같습니다. 마방 세트로 끼고 찾아가봅시다.
- 좌호법 : 존명!
- 윤진수허좁 : 존명!
- 황성찬허좁 : 소인 역시 명을 받드오이다!
친구 새끼들을 째려보았다.
“너네까지 장난치지 마라. 확 주리를 틀어 버린다!”
“우헤헤헷!”
“푸헤헤헷!”
자연스러운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헷헷’거리며 연기하듯이 웃는 모양새였다.
‘제일 나쁜 새끼들.’
내심 투덜투덜 거리며 이럽피를 하고 있는 매지션들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번 녀석들은 사주 경계를 제법 하는 부류였다. 상대가 먼저 우리를 발견했고 이와 동시에 플레지의 유저라면 모두가 아는 그 사운드가 울렸다.
우르르르!
땅거죽을 밀어재끼는 마법의 소리! 특히나 PK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 유저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인 이럽션이었다. 표적은 다름 아닌 나의 캐릭터다.
‘운도 없는 놈들 같으니. 하필이면 나를 노려서 성과도 못 보게 되냐.’
서버 최고 강화의 마법 방어 사슬 갑옷과 마법 망토의 방어력은 너끈하게 데미지를 경감시켰다. 버틸 체력의 여유를 안겨준 것이다다. 뿐만 아니라 떨어진다 해도 친구들이 그레이트 힐로 보조해주었다.
한 방에 150씩 회복해주는 마당이니 무난하게 진입 성공이다.
이것으로 승패는 갈렸다.
‘붙으면 매지션은 식은 죽 먹기지.’
+10강화 골리앗의 검이 시원스럽게 내리찍었다. 어떤 무기를 들어도 오직 내려치기만 해대는 나이트의 움직임이 장작을 쪼개는 도끼처럼 마법사들을 쓰러뜨렸다.
- 화말의지배자 : 어? ㅅㅂ?
- 펠아하브 : 아놔. 순식간에 훅 갔네. 뭐야 이 새끼들?
- 국밥한그릇 : 아까 들어갈 걸.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
이놈들에게서 얻는 전리품은 굉장히 다양하다. 놈들은 빈 몸뚱이 상태라서 싹 벗겨봐야 챙길 것조차 없다. 대신 이들이 PK를 하며 강도질한 일반 유저들의 아이템이 우리의 수확물이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노동대비 수입이 변변찮은데 이번에는 재미난 아이템이 왕창 떨어졌다.
“헐? 광전사의 도끼?”
한창 우리가 매입하는 타깃 아이템이다. 이 무기는 가스트를 사냥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데 이럽피들이 머무른 장소가 오크 숲인 만큼 대기하는 중간마다 몬스터를 사냥한 것 같았다. 그러며 챙긴 듯 보였는데 숫자가 무려 17개나 되었다.
“와아.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자리를 잡고 있었던 거야?”
“꽤 오래 있었나봐. 하긴, 화패 놈들이 섬쪽 던전으로 옮겼잖아. 그래서 빈자리에 이놈들이 들어온 것 같아.”
두런두런 얘기하는 진수와 성찬이에게 말했다.
“빠뜨리지 말고 챙겨. 저건 길드 원들이 욕심도 안내서 다 우리 거야.”
“당연한 소리지.”
“줍고 다니는 쪽에서는 우리가 프로라고.”
그렇게 웃음을 터트리며 나 역시 아이템들을 쭉 확인했다. 잔뜩 들어온 광전사의 도끼 사이로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무기가 보였다. 그것은 이름도 아름다운 「+8 크로스 보우」였다.
“대박이다!”
“뭔데? 오오! 돈 벌었구나!”
“역시 이 맛에 PK하지···가 아니라 정의구현을 하지!”
+8 크로스 보우는 사막지역 업데이트 후에도 크게 가격이 오를 물건이다. 진수와 성찬 역시 한껏 즐거워했다. 한편 팀원들 역시 기쁨의 채팅을 연신 띄우고 있었다.
- 지옥검 : 이 새끼들 완전 꾼이네. 많이도 처먹고 다녔네.
- 구운몽 : 왜? 뭐 나왔어?
- 지옥검 : 5파건이랑 6판금 갑옷.
- 구운몽 : 나는 8크로스 보우.
- 지옥검 : 헐?
마찬가지로 대박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크로스 보우 하나 정도라면 그러려니 할 텐데 다량의 고강화 장비가 나왔다. 고작 이럽피들에게서 말이다. 여행하는 일반 유저를 사냥하고 대박을 챙겼다고 단순하게 보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었다.
지옥검 역시 같은 의문을 보였다.
- 지옥검 : 법피 주제에 파건에 판금, 크로까지? 분명히 누군가 떨군 거 먹은 거 같은데··· 그러자니 이런 걸 세트로 떨굴 리가 없고, 파티가 싹 전멸하는 것도 이상해. 이 지역에서 이런 템으로 무장할 놈들이라면······
- 구운몽 : 화패겠지.
- 지옥검 : ㅇㅇ 이거 화패랑 이놈들이랑 싸움 났던 거 아닐까?
- 구운몽 : 바포메트 방에 이반작업 때문에 간 게 아니라 아예 쫓겨난 건 아니냐는 말이지? 파워 게임에서 밀렸다는 거고.
- 지옥검 : 추측해본다, 이거지.
올포원 소속의 강력한 PK집단인 화전민 패밀리는 켄헬 서버에서 가장 큰 PK단이며 나름의 악명을 구가한 세력이다. 엄청난 현금을 퍼 부어서 우리를 타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강한 의지의 소유자들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이 이곳에서 붙었다가 깨졌고 거점을 상실했다는 것은 섣불리 믿기에는 어려운 이야기였다. 우리는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진수야. 캐릭터 아무거나 하나만 화전민 마을로 보내 봐.”
현재의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뒤 나무 뒤쪽에 은신했다. 그 상태로 남는 캐릭터인 24레벨의 매지션을 화전민 마을로 보냈다.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태식아. 이게 다 뭐냐?”
“다 시뻘게. 무슨 해병대야? 여기가?”
가득한 유저들의 이름들이 전부 새빨겠다. 플레지를 즐기려던 한 유저 역시 살짝 들어왔다가 화들짝 놀라며 도로 나가버렸다.
- [월드] 활쟁이 : 화말 뭐야? 짱 무서워.
- [월드] 활쟁이 : 여러분! 화말에 가지 마세요! 거기 지금 혼돈들 구역입니다!
이 정도면 그냥 성향이 맞는 유저들끼리 모인 소그룹 정도가 아니다.
‘기업형 PK단이 벌써 나오게 되다니.’
게임을 즐기는 목적 따위는 없다. 돈이 되기에 모였고 오직 그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뭉친 조직적인 그룹이었다. 이들에 비하면 오히려 화전민 패밀리들은 순진하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길드도 여기저기 제각각. 닉네임은 모조리 새빨간 색. 소속이 다름에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의 무리들이다.
‘이놈들은 위험해.’
우리는 괜찮지만 저들은 안 된다는 ‘내로남불’식의 판단이 아니다. 게임에서 유희가 빠진 채 오직 PK와 돈만 목적으로 삼는다면 서버가 황폐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저들은 유저의 수가 줄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 애정 없이 오직 숫자로만 본다.
최대한 뽑아먹다가 돈벌이가 시원찮게 되면 손 탁탁 털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이 활개 치게 놓아두어서는 곤란했다.
“이거 숫자가 꽤 되는데?”
24레벨의 매지션 캐릭터로 보건데 지금 화전민 마을에서는 대단위로 척살조를 만드는 중이었다. 우리가 자신들의 PK팀 하나를 없애버리자 응징을 가하려는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여덟··· 스물··· 마흔··· 태식아! 60명 넘는다. 이거 어째?”
“어쩌긴. 밟아야지.”
구운몽 캐릭터가 아무리 강해도 이 만큼의 수적 차이를 감당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우리도 숫자를 불리기로 한다. 바로 메시지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