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9화 (59/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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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PK단

36. 의문의 PK단

프로게이머 팀을 내가 최초로 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 99년도부터 숙소와 연습실을 겸비한 팀은 존재했다. 다만 연봉이라는 개념이 없으리만큼 미흡했고 대중들의 관심 역시도 그만큼 적기에 대다수 사람들이 알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 미미한 상태였다.

그러던 것이 스드 챌린지 리그를 통해 이슈화 되었다. 비록 홍보 및 접수기간도 짧았고 대회 역시도 3분 즉석 카레를 연상시킬 만큼 순식간에 해치운 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게이머스 포럼과 트레이더스 포럼의 이용자라는 토대가 있었기에 인터넷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게이머들의 세상 게이머스 포럼이 프로게이머 양산에 앞장선다. TF 어드밴처러스 창단!】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게이머스 포럼에서 ‘트레이더스 포럼’의 이름으로 프로게이머 팀 창단 대회를 개최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게이머스 포럼의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앞으로 게임이라는 분야가 전 세계의 트랜드가 될 것으로 본다. 단순히 게임이라는 명칭이 아니라 여타의 선진국들처럼 E-Sports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옳을 것이다.”라 발언했다.

이어서 “한국의 게이머들은 그 어느 나라의 게이머들보다 큰 열정을 가지고 있다. 지금 빠르게 나서야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며 강한 확신과 향후 미래를 전망하였다.

한편,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 매체의 관계자는 “게임은 마약과도 같아서 한 번 중독이 되면 헤어 나올 수 없다.”  “게임 대회라는 것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대회가 사라지면 프로게이머라는 허울 좋은 감투도 벗게 되는 것.” 등의 발언으로 프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다.

불안과 기대로 점철된 게임 산업과 프로 게이머 팀. 이들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 오래 기다렸다! 그래.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가장 어울리는 업계가 또 있을까?

- 한국은 게임을 제작하는 것도 플레이 하는 것도 언제나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스드에서만큼은 처음으로 한국이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얻어냈다. 한국의 게임을 견인할 수 있는 스드에투자 하는 건 굉장히 옳은 선택이다!

- 게임 폐인들 신났네? ㅋㅋㅋㅋ 당장이야 그거로 밥벌이 할 수는 있겠지만 몇 년이나 갈까?

- 결국 스드 인기가 사라지고 나면 그동안 공부나 할 걸~ 후회나 하는 인생을 살겠지. ㅉㅉㅉ

- 프로게임 혹은 e스포츠가 국내에 비해서 비교적 활성화가 된 해외에서도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작은 나라에 프로 게임팀? 1년도 못 간다에 장을 지진다.

- 게임 팀 = 돈 낭비하며 유지하는 백수 양성소임. 인정?

?Re: 니가 돈 주는 거 아닌데, 낭비하면 좀 어떠냐?

대중과 언론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인 만큼 무작정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말할 수도, 저들을 아무것도 모른다며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았다.

‘일단 이렇게 기사화가 된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는 거니까.’

정신승리가 아니라 실제로도 전혀 상관없는 소란들이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요한 것은 게이머스 포럼과 트레이더스 포럼이라는 이름이 계속해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기에 그렇다.

나는 기사지문과 댓글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진환씨.”

“네, 사장님.”

“TFA쪽 사람들도 기사들을 확인 했겠죠?”

TFA. 트레이더스 포럼 어드밴처러를 줄인 이 말은 보통 게이머들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탭들을 모두 포함한 의미로 사용했다.

내 물음에 언제 어느때라도 준비된 엘리트 직원. 고진환이 바로 대답했다.

“예. 아마 지금쯤은 다들 봤을 겁니다. 관심이 많으니까요.”

“선수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잘 독려해주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세간의 관심은 결과를 통해서 충분히 바뀌게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믿고 맡기겠습니다.”

“예!”

직원일 때는 몰랐는데 사장이 되고나니 대기업에서 왜 그토록 유능한 직원을 뽑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지 제대로 실감이 되었다. 성실성과 책임감은 기본으로 탑재한 상태에서 확실한 성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단지 너무 부담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 꺼림칙할 뿐이지.’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방향만 짚어줬을 뿐인데 내 실력에 대해서 과도하게 오해하는 고진환 씨였다. 덕분에 ‘이런 것을 지시하신 것 맞죠?!’하면서 결제보고서를 가져올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곤 했다.

하지만 이는 작은 불편함에 지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중요한 오더와 확인만 하면 되는 여유 있는 사장이 되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스타 드래프트의 일이 일단락되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이럴 때는 당연히 여가를 즐기는 것이 좋고 나의 취미는 단연코 플레지다. 그동안 출석하듯이 얼굴만 비췄던 길드에도 얼굴을 들이밀고 기분 전환 겸 게임을 즐길 생각이었다.

“솔직한 말로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고진환 씨 같은 부류는 가능할는지 모르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은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일이면 일! 이렇게 딱 그것 하나만 해서 살 수 없다.

당연히 3층에서 업무를 보다가 4층에 올라가서 게임 좀 살짝 즐겨주고 길드의 지도자로서 향후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지시를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차이점은 노가다 성 사냥과 파밍을 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다.

그 사이에 처리한 플레지 관련 업무는 대략 이 정도가 있었다.

*

- →[귓속말] 지옥검 : 요즘 너무 두문불출 하는 거 아니야? 얼굴 보기 너무 힘들다!?

- →[귓속말] 구운몽 : 미안.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플레지에 집중을 잘 못했어.

- →[귓속말] 지옥검 : 올포원 이놈들이 요즘은 초심자의 섬에서 문제들 일으키는 거 알고 있지? 우리 길드랑은 부딪히지 않으니까 편하기도 하는데 이건 또 이거대로 문제야.

- →[귓속말] 구운몽 : 초심자의 섬?

하루가 멀다 하고 세금 수송대를 노리거나 싸움을 걸던 놈들이 단 한 번도 도발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템 업그레이드 하느라 시간을 버는 중인 줄 예상했는데 엉뚱하게도 초심자의 섬에 있다고 한다.

- →[귓속말] 구운몽 : 뭐 해먹을 게 있다고 거기 가서 그러고 있는데?

- →[귓속말] 지옥검 : 잊었어? 섬 던전에는 바포메트가 있잖아. 지금 거기서 다른 유저들은 모조리 오는 족족 죽이면서 독식하고 있다는데?

강력한 만큼 드롭 아이템 역시 플레지 최고의 아이템들을 주는 보스 몬스터.

매 시간에 정확하게 리젠이 된다는 것이 최고 장점인 녀석이다. 하지만 출몰이 잦다는 것은 그만큼 거지일 경우가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 길드에서는 별달리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몬스터였다. 소일거리로 마실 가듯이 잡는 것을 빼면 말이다.

- →[귓속말] 구운몽 : 자리를 잡았다고? 고작 이반 먹겠답시고?

- →[귓속말] 지옥검 : 엄청 뜸하기는 하지만 나오면 돈벌이가 되잖아.

순간이동조종반지는 전략적으로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본래의 활동무대를 버리고서 길드 전체가 이동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게다가 엄청난 골드를 사들여놓고는 막상 활동하는 것이 저리도 소극적이니 이또한 기이한 부분이다.

- →[귓속말] 구운몽 : 한 달 내내 작업을 해야 하나 먹을까 말까한 건데··· 이상한데.

- →[귓속말] 지옥검 : 글쎄다. 뭐 짐작 가는 게 있어야지. 그냥 이놈들이 갑자기 도발을 안 하니까 조금 심심한 거 같기도 하고 불안한 거 같기도 하고··· 싱숭생숭한 기분이야.

모든 RPG의 시작은 PVE이며 그 끝은 PVP다.

몬스터를 잡고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레벨을 올리는 성장과정은 재미있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PVE는 그 한계가 명확하며 방법 역시 반복에 또 반복이라는 고정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PVP는 매번 그 상황이 달라진다. 그리고 단순한 몬스터와 달리 복잡한 플레이를 하는 유저를 쓰러뜨렸을 때의 쾌감은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길드원들이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늘 싸움을 걸던 경쟁자가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게임에서 저들이 가봐야 어디를 가겠는가. 활동하자면 우리와 부딪칠 수밖에 없고 말이다.

- →[귓속말] 구운몽 : 조금만 기다려. 그놈들 엄청 현질 한 거로 봐서는 반드시 튀어나올 거야. 저렇게 계속 짱 박혀 있을 리가 없어.

- →[귓속말] 지옥검 : 그래? 가만? 너는 어떻게 쟤네들이 현질 한 것도 알고 있냐?

- →[귓속말] 구운몽 : 다~ 방법이 있지.

내가 자판기 주인이며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모르니 이런 정보의 출처는 공개할 수 없었다. 일단은 대충 둘러대는데 다행하게도 지옥검은 이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 →[귓속말] 지옥검 : ㅇㅋ 그러면 애들한테 그렇게 이야기 한다?

- →[귓속말] 구운몽 : 어.

- →[귓속말] 지옥검 : 그리고 요즘 엘프하는 애들이 나이트로 옮길지 활을 들지 엄청 고민하고 있거든. 네 판단은 어때? 길드원들이 네 이야기를 듣고 결정할 거라고 다들 기다리는 중이거든.

- →[귓속말] 구운몽 : 뭐? 왜 내 판단을 기다려?

- →[귓속말] 지옥검 :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뭐랄까. 너는 게임을 보는 시야가 넓은 것 같거든. 흡사 변화를 미리 알고 준비하는 거 같을 정도야. 그래서 네가 활을 들라고 하면 그게 옳을 것 같고 그냥 검을 들어도 된다고 하면 그게 옳다! 라는 게 지금 분위기임. ㅋ

‘올게 왔구나. 하긴, 매번 정답만 잘 찾는 셈이었는데 어떤 식으로든 눈치를 못 채면 그게 이상했겠지.’

일전에 진수와 성찬이가 물었을 때 비밀로 해야 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조용히 크로스 보우를 모아야 이익을 더 크게 볼 수 있기에 그러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본다면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다.

- →[귓속말] 구운몽 : 지금 와서 나이트를 다시 키운단. ㅋㅋ 언제 세월에 키우냐? 당연히 활을 들어야지.

- →[귓속말] 지옥검 : 캐릭터야 뭐 이미 키울 만큼 키워본 애들이고 장비도 좋잖아. 40레벨까지는 금방 키울걸? 나이트나 엘프는 장비만 좋으면 레벨업은 쉽잖아. ㅎㅎ

- →[귓속말] 구운몽 : 잘 알지. 내 말은 다시 키우는 것보다는 그냥 장비만 바꾸는 게 좋다는 이야기였음~

- →[귓속말] 지옥검 : ㅇㅋ. 그러면 네가 활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한 것으로 전하겠음.

- →[귓속말] 구운몽 : ㅇㅇ.

메시지를 치고는 바로 소리쳤다.

“진수야! 성찬아!”

“응?”

“와이?

“우리 길드원들한테 레이피어 매입하고 크로스 보우를 판매해. 시세에 따라서 추가 골드도 얹어 주고.”

거래는 깨끗해야 옳고 장난이 없어야 된다.  현재 +7 레이피어의 시세는 160만. +7 크로스 보우의 시세는 145만 골드이니 동급의 장비를 거래한다면 15만 골드를 길드원들에게 더 쳐주는 것이 맞았다.

손해를 보고 파는 장사꾼은 바보 멍청이다. 하지만 속임수를 쓰고 제값 이상으로 후려치는 녀석은 양아치나 다를바 없었다. 나는 수익을 최대한 뽑기를 원하지 농간을 부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길드 모르게 한다더니 괜찮은 거 맞냐?”

길드의 엘프들이 착용하고 있는 검은 대부분이 +7 레이피어다. 레이피어 보다는 카타르가 사냥에 더 적합하기는 하지만, 당장 이틀에 한 번씩 공성전을 하는 형편에서 사냥보다 싸움에 무기를 맞추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한 우리 길드의 무기가 단체로 바뀐다면 이는 유행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거대 길드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파급 효과가 크다고 했잖아.”

과거에 내가 언급했고 성찬이가 재차 지적하는 대로다. 길드나 랭커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은 그 자체로 트렌드가 된다. 그들에게 선택 받은 아이템은 결국 모든 유저들이 선망하는 장비가 되고 유행이자 거품을 형성한다.

지금 크로스 보우에 거품이 낀다면 이익은 줄어든다. 그러나 상관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공갈을 칠 수는 없잖냐.”

시세 차익을 통한 수입과 나에 대한 믿음. 둘 중에서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후자가 된다. 이 한 번의 대답을 통해서 우리 길드는 내 말에 더욱 일사분란하게 따르게 될 것이다.

이상의 말을 하자 진수와 성찬이가 즉각 움직였다.

“오케바리.”

“크로스 보우를 주면서 레이피어를 받도록 하라는 말, 접수했음.”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다음 지침을 말했다.

“이제 레이피어를 구매한 다음부터는 한동안 크로스 보우는 구입하지 말고 원석만 대량으로 매입할 거다.”

“원석만?”

“왜?”

“간단하잖아. 크로스 보우와 레이피어를 교환하고 레이피어를 대량으로 시장에 내놓으면 어떻게 되겠냐? 값이 떨어질 거잖아. 우리는 최대한 시세가 하락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그게 원석이랑 뭔 상관인데?”

진수와는 다르게 성찬이는 이해한 듯 손뼉을 쳤다.

“원재료의 값을 올려서 레이피어의 시세를 떠받친다?”

한 녀석이라도 말귀를 알아들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러면 크로스 보우 값도 덩달아서 오를 테지만, 이건 레이피어를 시장에 풀 때 쯤 자연스럽게 떨어질 테니 상관 없어.”

“오오! 신이시여. 저 놈이 나보다 공부를 못 했던 게 맞단 말입니까.”

“우리 싸장님~ 머리 잘 돌아간다~”

4층에서는 친근하게. 3층에서는 존대를 꼭 붙이는 놈팡이 직원들의 대사였다. 같이 낄낄댔다.

“그러면 지옥검 때문에 우리 돈벌이 하나 날아갔네? 반타작이려나?”

“괜찮아. 다른 투자 상품이 있으니까. 이제부터 우리는 크로스 보우 대신에 광전사의 도끼를 공략한다. 몽땅 사들여.”

“그 쓰레기를?”

플레지에서 주력 장비로 쓰이는 몇몇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버려지거나 상점에 판매해버리는 잡템 취급을 받는다. 그 가운데서도 광전사의 도끼는 말 그대로 쓰레기로 분류된다. 이름은 ‘광전사’라는 접두사가 붙었는데 타격치는 고작 9/9에 불과하다.

이렇게 형편없는 주제에 무게는 꽤 나가서 드랍될 경우 먹지 않고 버리기 일쑤였다. 가져와서 파는 값보다도 그냥 사냥을 이어나가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었다.

‘플레지의 대세가 검이라서 더욱 외면 받는 장비지.’

하지만 현실과는 다르게 게임에서는 패치와 업데이트 한 방으로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벌어진다. 광전사의 도끼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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