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6화 (56/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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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는 일을 키운다

“우선 어제의 사이트 방문자와 회원에 대한 보고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곧 사각 턱이 인상적인 후덕한 낯의 김정규 씨가 말문을 열었다. 머리카락만 장발이었으면 레슬링 선수와 똑같다고 생각되었을 만큼 한 덩치 하는 남자였다. 근육대신 물렁한 살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예. 어제 하루간의 사이트 방문자의 숫자는 총 12만 3500명으로 전일 12만 830명과 비교해 소폭 상승한 상태입니다. 현재 플레지에서의 업데이트 예고와 테스트서버의 오픈으로 매일 더 많은 이용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 됩니다.”

그는 게임을 좋아하는 남성이자 플레이 자체보다는 정보 공유 및 새로운 공략법 기를 즐기는 타입이었다. 여러 사이트의 고전 게임부터 플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공유한 전적이 있는 만큼 게이머스 포럼에 가장 어울리는 인재였다.

물론 사이트를 관리하는 것과 직접 공략을 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 이는 숙달되면 다 해결될 일이다. 김정규 씨의 최대장점은 일반 유저들이 올리는 공략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집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예리한 안목이 우리 플랫폼에 공신력과 전문성을 높여줄 것이다.

“회원의 변화는 어떻습니까?”

“현재 숫자는 1만 2,300명. 어제 하루간의 가입자는 총 362명입니다.”

“이용자와 회원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군요.”

순항하고 있다는 좋은 지표였다.

“그렇다면 이에 맞는 눈여겨 볼 공략이나 이용자들의 관심사들은 파악이 되고 있습니까?”

“최근의 조회수를 확인한 결과, 사이트 이용자의 대다수는 아이템 제작 관련 페이지와 레벨에 맞는 사냥터 쪽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제작 쪽은 이미 공개된 내용이 충분하기에 보완할 것이 없지만, 공략과 팁에 대한 게시판은 증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역시 게임을 잘 아는 사람 답게 게이머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았다. 나 역시 듣다보니 떠올랐다.

‘맞아. 꿈에서도 이런 게시판이 있었어.’

사람의 기억력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존재한다. 잘 안다고 자부할 지라도 막상은 얼개나 방향만 겉핥기로 이해하고 있을 때가 허다하다. 때문에 나름대로 꼼꼼하게 움직였음에도 꿈속의 내가 ‘그러려니’하며 흘린 것들은 나 역시도 대충 넘기기 일쑤였다.

김정규 씨는 그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준 셈이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규환씨, 게시판 증설은 크게 어렵지 않겠죠?”

이쪽의 업무는 배추가 담당이다. 내 시선을 받은 녀석은 무덤덤한 얼굴로 간결하게 대답했다.

“네.”

‘짜식. 이제 관리자 다 됐네.’

익숙해져가며 사람은 다듬어진다. 그렇게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주던 배추는 막상 후임이 들어오니 최대한 무게를 잡고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는 중이었다.

재미난 점은 진수와 성찬이를 비롯한 우리들의 눈에는 ‘애 쓴다, 애 써’하는 식으로 보이는데 신입직원들은 그런 점을 못 느낀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말주변이 없어서 입을 다문 배추에게 은근히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곤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그렇다면 게시판은 두 개의 등급으로 나눠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두 개요?”

김정규 씨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우리 사이트의 회원이라면 누구나 글을 남길 수 있도록 만드는 공략 게시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추천이나 조회수가 많은 게시물. 혹은 김정규 씨 마음에 드는 엄선된 공략들의 게시판입니다. 이름은 베스트 공략 게시판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단초만 제공되면 관련된 기억은 줄줄이 떠오른다. 새삼스레 의식하지 못했을 뿐, 나는 미래에서 이러한 플랫폼을 자연스럽게 이용해왔으니 말이다.

이를 들은 김정규 씨가 탄성을 내뱉었다.

“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더 의욕적으로 공략을 올리려고 하겠네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직은 동기부여가 부족합니다. 베스트 공략에 당선된 유저에게는 약간의 보상을 주는 것이 병행되어야 하죠.

“보상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트레이더스 포럼 포인트를 지급하세요. 3,000 포인트 정도면 적당할 겁니다.”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이다. 공략에 열정을 가지는 사람들을 만들 수도 있고 또 현금 거래에 관심 없던 사람도 ‘돈이 생기니 나도 한 번 해봐?’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다만 안전장치 하나가 필요하다. 나는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다.

“대신 지급한 포인트에 한해서는 현금으로 출금하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해야 합니다. 또한 직원들이 볼 수 있는 별도의 화면을 추가로 출력해줘야 하고요. 규환씨, 이것 역시도 가능한가요?”

현재는 시스템 상 완벽한 전산 작업이 아니었다. 출금신청이 들어오면 직원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출금해 줘야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직접 하는 만큼 실수가 생길 수 있었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수단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일거리를 반기는 김정규 씨와는 달리 배추와 후임 개발자인 박준석 씨의 얼굴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아마도 미팅을 마친 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초콜릿이나 단 음식들을 무진장 먹어댈 것 같았다.

‘나야 결과만 잘 나와 주면 땡큐고.’

사장은 과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성과! 확실한 결과! 오직 그것을 원한다. 책임감 강한 배추인 만큼 잘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으로 우리 회사의 브레인! 고진환 씨에게 말했다.

“트레이더스 포럼 쪽 보고를 들어보죠.”

“게이머스 포럼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이용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이용자 숫자보다는 거래액이 중요할 테니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하겠습니다.”

인텔리함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완벽한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모습을 한 그는 안경을 고쳐 쓰고 말했다.

“어제의 거래액은 2,200만원으로 2,135만원 수준이었던 전일대비 약 0.3% 상승했습니다. 현재 신뢰할 수 있는 사이트로 인식되고 있어서 앞으로도 꾸준히 상승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됩니다.”

트레이더스 포럼의 시스템은 최소 수수료 1,000원만 존재하고 그 이후부터는 판매자에게서 5%의 수수료를 받는 형태다. 경쟁자가 생긴 뒤에는 수수료의 최대한도를 만들어야 할 테지만 지금은 유일회사이자 시장 독점상태이기에 최대한도가 없었다.

그냥 엄청나게 대량을 판매하면 그대로 우리가 수수료를 왕창왕창 받는 식이다. 때문에 상당히 큰 수익을 내고 있었다.

“좋네요. 더 매출을 늘릴만한 방법은 생각해보셨나요?”

준비된 브레인. 고진환 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편견은 가지면 안 되는데 왠지 똑같은 일을 해도 서울대니까, 따위를 떠올린단 말이야.’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사회에 찌든 것이다.

“현재 트레이더스 포럼은 홍보를 오로지 게이머스 포럼에만 의존한 상태입니다. 물론 같은 회사로써 동반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만, 트레이더스 포럼 자체만으로도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의견.

듣고 보니 참으로 맞는 이야기다.

‘가만있자. 이거 가능할 거 같은데?’

고진환 씨의 말을 듣자 퍼뜩 떠오르는 단상 하나가 있었다.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되죠?”

다소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고진환 씨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2000년 2월 23일입니다.”

“아주 좋네요. 마케팅하기 그야말로 안성맞춤입니다.

“네?”

의아해하는 그는 모르겠지만 미래를 경험한 나는 아주 잘 아는 사건이 있다.

e-sports!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추후에는 크게 확장되는 시장. 그 초석이자 씨앗이 뿌려지는 시즌이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주목받지 못하는 만큼 훗날에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될 인재들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내가 투자 정보는 세심하게 몰라도 이쪽은 나름대로 빠삭하지!’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게임 대회를 개최할 겁니다. 종목은 스타 드래프트. 총 상금 1,000만원! 1위부터 5위까지는 우리 회사 소속으로 연봉제 게이머가 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집니다.”

“예?”

이때만큼은 포커페이스 같던 고진환 씨의 얼굴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당연한 노릇이다. 홍보를 위한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더니 내 입에서 게임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엉뚱한 소리가 나오지 말이다.

나는 반복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트레이더스 포럼 배 게임 대회를 개최합니다.”

“사장님. 그게······.”

정지화면처럼 5초간 멈추었던 고진환 씨가 말을 이었다.

“저희 회사가 게임과 관련된 업계인 만큼 게임 대회에 투자겸 홍보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좋은 판단으로 생각합니다. 굳이 대회를 하신다면 플레지나 마지막 제국 같은 게임에서 하시는 게 어떨는지요? 스타 드래프트는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게임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제안이다. 굳이 게임에 투자하면서 마케팅 효과를 얻으려 한다면 게이머스 포럼의 주력 상품이자 관련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플레지가 제아무리 잘 나가도 스타 정도의 파급력은 안 된다고.’

게임 자체가 직업군을 탄생시켰을 정도이니 할 말 다했다. 더군다나 플레지와는 다르게 스타 드래프트의 주요 선수들은 선점하기만 하면 매 대회마다 방송에 출연시킬 수 있게 된다.

자연스레 우리 회사의 이름이 올라가고 그것은 곧 홍보 효과로 이어진다. 고진환 씨와 나의 견해차이는 오직 하나. 스타 드래프트가 얼마나 흥행할지 여부에 대한 확신의 차이였다.

때문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방송사에서 스타 드래프트 말고 다른 게임에 크게 관심 가지는 거 보셨습니까? 모두들 임기석이라는 게이머가 TV광고에 나오는 것을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오직 스드만 가능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반박하려던 그는 내 표정을 보고 그만 두었다.

내가 확고하게 결정했음을 느낀 탓이다.

사장의 고집! 작은 회사에서는 사실 이것 하나면 회의고 뭐고 다 필요 없이 모두 결정 난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집불통의 무대포 사장들과는 다르게 내 선택들은 일견 무모해 보이지만 미래를 통해서 확실하게 증명된 것들이라는 정도다.

“그렇다면 선수들과의 계약은 어떤 식으로······?”

준비하지 못한 안건인 만큼 자신감이 사라진 고진환 씨였다.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추후 이야기 하도록 하지요. 일단은 대회에 관한 준비부터 해서 자료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뒤이어 미팅을 이어나갔다.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건데, 5명의 직원을 뽑고도 인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정이 바쁘게 생겨난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고 사람을 고용한 것인데 그 인원만큼 계속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특히나 업계가 업계인 만큼 IT관련 업무가 폭증했다. 배추와 박준석 씨가 정신없이 바빴고 나중에는 디자인 담당인 배준규 씨까지 합류하게 되어 업무를 보곤 했다.

‘이거 보너스를 지급해야겠는데.’

현재, 트레이더스 포럼의 이번 달 예상 매출액은 3,000만원이다.

1년으로 치면 3억 6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추산하면 4억까지도 가능하리라 본다. 그렇다면 연봉인상을 고려해도 될 문제다. 가장 좋은 것은 필요 인력을 더욱 확충하는 것이고 말이다.

나는 회의 이후 한창 일에 치여서 지내는 배추를 불렀다.

“규환씨.”

“예.”

“개발 분야의 인력을 더 채용할 계획입니다. 두 명 정도로 잡아주시고, 진환 씨는 트레이더스 포럼의 마케팅 분야 채용 계획안을 작성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지만, 회사라는 건 잘 되기 시작하면 정말 엄청 빠르게 성장한다.

사업자등록증을 만든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이건만 벌써 새로운 직원을 더 뽑아야 하고 신규 사업까지 추진하게 되니 말이다.

사실 나한테는 ‘방송으로 봤던 그 대회! 우리가 합시다!’정도였지만 이게 막상 주최 측이 되니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보통 많은 게 아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세부적인 업무를 대신 해주는 멋진 직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흘이 지나자 말로만 던진 일들이 가시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장님. 여기, 사업계획서입니다.”

힘이 빡 들어간 두툼한 종이 뭉치가 내게 안겨졌다.

『스타 드래프트 대회 개최에 관한 사업계획서.

제 1장 행사 개요

제 2장 행사 일정표

제 3장 스타 드래프트 소개

제 4장 세부 내용

1) 공식 행사

2) 부대 행사

제 5장 운영 계획

1) 게임 대회 참가 홍보

2) 접수 및 예선전

3) 본선 및 대진표

4) 안전대비 계획

제 6장 홍보 계획

1) 온라인

2) 인쇄물

제 7장 프로게임단 창단 계획

1) 선수단 영입 계획

2) 선수단 연봉 협상 및 복지

3) 게임단 스태프 고용 및 내부 시설 필요 예산안

제 8장 스폰서쉽 기대 효과.』

단 며칠 만에 준비를 끝마쳤다고 생각할 수 없는 정말 엄청난 분량의 계획서!

‘부담된다! 너무 뛰어나!’

나야 ‘그냥 이런 대회가 있었는데 효과가 좋았더라.’는 정도로 던졌는데 세부적인 모든 요소들이 꽉꽉 들어차서 돌아왔다. 읽으면서 ‘맞아, 이런 절차였었던 것 같아.’라고 하나 둘 떠오를 정도였다.

‘이런 사람조차 취업이 힘든 시대라니.’

미국에서야 이미 오래전부터 프로게이머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한국은 이제야 막 사용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게임 쟁이 따위에 무슨 프로라는 표현을 붙여?’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한 상태다.

그런데 이 계획서에는 프로게임단이라는 단체의 성격까지 완벽하게 이해되어 있었다. 이런 분석력과 통찰력! 범상치 않다.

‘이 사람도 나처럼 꿈을 꾸고 그랬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환씨. 혹시 좋은 꿈을 꾸신 적 있나요?”

“네? 돼지 꿈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멀뚱히 나를 보며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서 묘하게 웃겨 보였다.

“그런 꿈이 아니라··· 뭐랄까. 예지몽 같은 것 말입니다.”

“아니요. 데자뷰는 느껴본 적이 있지만 예지몽은 전혀 꾼 적이 없습니다.”

‘아닌가보네. 그나저나 데자뷰?’

처음 가본 장소 혹은 처음 겪는 일을 당했는데, 이미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현상.

‘어쩌면 모두가 나와 같은 꿈을 꾸고도 그걸 기억 못한 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번 생각이 이상한 샛길로 빠지니 영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나는 작게 헛기침하며 잡생각을 날려버렸다.

“정리를 아주 잘 하셨기에 재미삼아 물어봤어요.”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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