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5화 (55/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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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는 일을 키운다

‘이놈들은 가녀린 공주님 스타일의 여자들이 애니메이션에나 나온다는 진실을 몇 살에나 깨우치려나.’

어른의 입장에서 돌아보는 청춘의 열정이란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끌끌 혀를 찰 뿐이었다. 곧 그런 감정들을 뒤로하고 진수와 성찬이를 4층으로 올려 보냈다.

“이 모지리들아, 시끄러우니까 가서 일이나 해.”

“우리고 껴줘! 조용하게 구경만 할게. 응?”

“같이 있게만 해줘. 그거면 우리는 행복할 거야. 흐흐.”

“그게 더 문제잖아!”

등 떠 밀어서 쫓아낸 후 배추와 나는 면접실로 들어갔다. 혼자하지 않고 규환이를 대동하는 이유는 3층에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실제 업무는 나보다도 친구가 더욱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책임감 있게 자판기를 운영하고 게임하는 것이 전부인 진수와 성찬이는 없는 편이 나았다.

*

그냥 학교와 전공만 들어도 남자들을 설레게 하는 이름들이 있다. 각 지역별로 자리하는 유명한 그 명칭들! 그중에서 인천에는 인화공전 항공운항과가 바로 여기에 속했다.

김지애씨는 바로 그 학교의 졸업 예정자였다.

‘저 정도면 인화공전 내부에서도 탑클래스의 외모일 텐데.’

면접관의 요령이나 기타 방법 따위를 내가 어찌 알겠는가. 자리에 앉은 나는 이력서를 토대로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인화공전 항공운항과라면 졸업 후에 스튜어디스가 되는 것 아닌가요? 합격률도 매우 높은 거로 알고 있는데, 왜 우리 회사에 지원을 하신 겁니까?”

약 2초간의 정적 이후에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고등학교 때에는 스튜어디스가 꿈이라서 열심히 준비했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로를 바꾸려 했습니다.”

“스튜어디스보다 이런 경리직이 자신과 맞는다, 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지원서에도 작성한 내용이지만 한참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지난여름에 지인의 회사에서 부탁받고 경리일을 함께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에게 맞는 일은 이 일이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대충 생각하고 지원했다고 판단을 할 수는 없었다. 확고한 자신의 생각이 보였고 목소리에서는 열정이 느껴진다. 사실 나 역시도 지나치게 예뻐서 ‘뭐지? 왜지?’고민하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보아도 채용에 하등 문제 될 소지가 없었다.

‘친구들 못잖게 나도 외모로 편견을 가진 건가?’

녀석들이 ‘합격!’이라고 하는 것과는 정 반대지만 말이다. 혹시 몰라서 옆에 있는 배추에게 ‘너는 어때?’라는 시선을 보냈다. 돌아오는 답변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상태이면서도 마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초지일관 합격! 통과! 였다.

‘외모적인 면을 아예 배제하고 봐도 직원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니까.’

내심 결론을 내렸다. 다만 바로 합격이라고 알려주기보다는 나중에 말해주기로 했다. 아직 지원자가 더 남았고 더 좋은 면접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여기서 결정을 내려버리면 면접조차 보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는 예의가 아닐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결과는 18시 이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화와 이메일 어떤 것이 편하시겠습니까?”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돌아 나가는 김지애씨에게 하얀 봉투를 건네주었다.

“면접비입니다. 교통비라고 생각하세요.”

“감사합니다.”

공개채용은 생각보다 큰 홍보효과를 가진다.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남녀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기 마련. 그 경로를 통해서 합격자는 물론 탈락자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것이 곧 회사 이미지와 직결된다.

봉투에는 만원이 들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광고료라고 생각하면 지극히 저렴한 금액이다. 그렇게 김지애씨를 시작으로 한 명. 또 한 명씩을 마주했다. 차츰 요령이 붙어서인지, 낯설음이 덜해진 탓인지 배추도 간간히 질문을 던지며 참여하였다.

그러기를 20명 째가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면접자가 나가며 문이 완전히 닫히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괜스레 어깨마저 뻐근한 기분이다.

‘면접이라는게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네.’

다양한 사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지며 앞서와 유사한 대답을 듣는다는 것. 이는 생각 외로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노동이었다. 한편으로는 예전에 경험했던 재수 없던 면접관들의 사정이 1%는 이해됐다.

내가 하는 질문이 뻔 하듯이 너희들의 대답도 뻔하다. 그러다보니 잘난 것처럼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애타는 마음으로 왔고 간절하게 합격을 바란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그런 꼰대 짓을 할 수도 있겠다, 아주 약간은 머리로나마 공감하였다.

딱 그만큼만 말이다.

나는 추려낸 5명의 합격자와 15명의 불합격자들. 그리고 보낼 내용들을 정리해서 배추에게 넘겼다.

“규환아.”

“예. 사장님.”

“이메일은 너한테 부탁해도 되지?”

“예!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고작 이메일 통보에 최선을 다할 것까지는 없는데.’

배추 녀석이 이상하리만큼 박력이 넘친다 했더니만 알고보니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었다. 규환이는 받아들기 무섭게 김지애씨의 당락 여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흐뭇하게 웃었다.

‘하여간 젊은 것들이란.’

뭐라 설명하는 것 대신에 ‘수고’라고 짧게 말하고는 4층으로 올라갔다.

곧 문소리가 나기 무섭게 플레지를 내팽개친 진수와 성찬이가 저돌적으로 질문했다.

“어땠냐? 아니지. 사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합격입니까!? 설마 불합격을 주지는 않으셨겠지?”

‘차라리 반말을 해라 이 십탱구리들아.’

나는 장난삼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합격이건 불합격이건 다 사장인 내 마음이지.”

“뭐야? 불합격? 네가 제정신이냐!”

“사장님이고 뭐고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녀석들이 나라 잃은 표정을 했다. 그런 상태로 내게 달려드니 영락없이 좀비들의 모습이다.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아. 왜?!”

“왜 불합격인데?”

그나마 있던 반존칭마저 사라졌다.

“내가 언제 그랬냐? 김지애씨 합격인데.”

“오예! 사장님 진짜입니까?”

“역시 우리 싸장님! 드디어 우리에게도 봄이 온다! 아니지. 왔다!”

엉겨 붙는 두 친구를 서로 얼싸안게 해주었다. 그래도 좋은지 싱글벙글 이다. 나로서는 거듭 어이가 없을 뿐이다.

“어차피 합격해도 너네는 4층. 김지애씨는 3층이야. 얼굴 마주칠 일도 없는데 왜들 그래?”

“얼굴 마주칠 일이 왜 없냐?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있고! 점심시간이 있는데.”

“원래 사랑은 그렇게 시작하는 거래. 스치듯 안녕~ 아련하게 또 안녕~ 하하하! 드디어 이 황성찬의 인생에 꽃이 피는 거라고.”

진수와 성찬이는 똑같이 헤벌쭉 웃다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너 방금 뭐라고 했냐?”

“그러는 너야 말로. 감히 형수님을 넘봐?”

“캬! 이 정신머리 없는 친구 놈 보소? 귀 닦고 들어라. 윤진수님의 인생에 꽃이 피는 거라고.”

“웃기시네! 여자 인생 종치게 할 생각 있냐?”

“개소리 즐! 너랑은 급이 다른 여신이시다! 내가 구해줄 거라고!”

이런 상황을 일컬어 혼돈의 카오스라고 하나보다.

‘···나는 탈출하련다.’

김지애씨의 의사는 0.1%도 반영되지 않은 둘의 기 싸움이었다. 보통 저런 김칫국은 마시기 전에 ‘애인 있으세요?’하고 물어라도 보는 게 먼저라 생각하지만, 이러한 이성적인 사고는 두 녀석에게는 존재하지 않고 별 의미도 없을 것이다.

34. 인재는 일을 키운다

사고가 나면 주인과 함께 장렬하게 죽어버릴 것 같던 똥차 대신 최신형의 6인승 트럭이 도착했다. 속된 표현으로 ‘잘 빠졌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모델!

이를 보면서 가장 신이난 사람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태희였다.

“엄마! 창문이 자동으로 열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감동이 밀려오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레버를 돌리며 여태 사용해온 과거에 비하면 이는 정말이지 혁신적인 변화였다.

마치 빨래터에서 방망이질로 묵을 때를 벗기다가 세탁기를 사용했을 때의 감동과 비슷할 것이다. 자고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격하게 공감하는 동물이니 말이다.

“에어컨도 돼? 시원한 바람 나와?”

“얘는 무슨. 날씨도 추운데 에어컨 타령이니?”

“아! 에어컨이 엄청 부러웠다구!”

아버지께서 허허 웃으셨다.

“당연히 되지. 우리 딸, 이거 봐라. 히터도 된다!”

“우와!”

누가 보면 가족 공용이 아닌 자기 전용의 차를 선물 받은 줄 알았을 정도의 리액션이었다. 예전에는 ‘아! 쫌! 창피하니까 입 좀 다물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꿈에서 20년 더 살았다고 ‘역시 딸이 있어야 분위기가 살아.’라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묘하지. 남매였을 때는 원수인데 딸 같은 느낌을 받으니까 마냥 받아주게 돼.’

꿈에서처럼 같이 늙어가던 동생이 아닌, 마냥 어리기만 한 지금의 모습이라는 것도 한 몫 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끝 모르고 통통 튀던 태희는 어머니의 강력한 등짝 스메시 한 방에 차분함을 되찾게 되었다.

미소 지으며 보시던 아버지가 나에게 넌지시 말씀하셨다.

“태식아 고맙다. 아껴서 잘 타마.”

“에이. 영업용인데 아껴서야 쓰나요. 그냥 편하게 쓰세요. 차는 보물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팍팍 굴려주세요.”

그 말에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힘들게 벌어서 사 준 건데 어떻게 그러니? 어휴. 어두운 데도 광나는 게 다 느껴지네.”

그즈음 슬그머니 붙은 태희가 아버지를 졸랐다.

“아빠! 우리 새 차 왔는데 드라이브 안 해?”

“그럴까?”

‘도대체 이런 트럭으로 무슨 드라이브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건지.’

선루프 기능도 없고 승차감도 예전보다 나은 정도인데 말이다. 하지만 다들 행복한 얼굴로 차에 탑승하는 모습에 그냥 웃음이 났다. 또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 역시도 드라이브가 기대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런 것을 보면 행복이라는 게 정말 별 거 없는 모양이다.

‘똑같이 화목한 가정인데, 예전에는 이런 여유가 없었어.’

역시 돈이 행복의 절대조건은 아니지만 충분조건이라는 말은 진리인가보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돈이 최고야.”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사회이면서도 유난히 자본이라는 것을 사회악 마냥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경험을 하면 할수록 돈은 쓰기 나름이라는 진실을 실감하게 된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써라. 이런 거려나.’

오붓하게 도로를 달리는 트럭에서 가만히 창밖을 응시했다. 아직은 찬바람이 불어서 달리며 창문을 열지는 못했다. 하지만 경쾌한 기분 탓이려나, 괜스레 상쾌한 밤공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 좋아! 이럴 때는 라디오!”

태희는 드라이브가 끝나기 전에 트럭의 모든 기능을 모조리 체험할 요량인 듯했다. 라디오를 켜고서는 열심히 주파수를 맞추며 자신이 원하는 방송을 찾아냈다.

“달이 빛나는 밤에~ 내가 친구들이 한 번씩 아빠 차타면서 이런 거 듣는다고 할 때 얼마나 부러웠는 줄 알아? 오! 노래 분위기 좋고요!”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인 막내 여동생의 DJ였다. 그러던 중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오빠는 운전 못해?”

“당연히······?”

할 줄 안다고 하려다 말끝을 흐렸다. 할 줄은 알지만 해서는 안 되는 상태였다. 꿈속에서는 베스트 드라이브였지만 지금은 면허조차 없기 때문이다.

군대 전역 이후 활동 반경이 좁았던 터라 딱히 운전이 아쉽지 않았다. 학원에 등록해서 굳이 돈을 낭비할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면허부터 따야겠지?”

“그러면 다음에는 아빠 말고 오빠 차도 타는 거네?”

“똑같이 트럭일 텐데도?”

“아빠가 운전하면 아빠 차고 오빠가 운전하면 오빠 차지 뭐.”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짬을 내서 따긴 해야겠네. 회사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니까.’

운전면허야 시험만 통과하면 실기는 더 볼 것도 없다. 적당히 공부해서 조만간 통과해야겠다.

*

이제 본격적으로 직원들도 채용했으니, 주먹구구식으로 게임 하다가 사이트를 관리하는 식의 자유분방한 운영은 지양해야 됐다. 그래서 매일 오전에는 모든 직원이 모여서 미팅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원은 나와 진수, 성찬, 배추의 원년 멤버에 게이머스 포럼 관리자 김정규, 개발자 박준석, 회계 및 경리의 김지애, 트레이더스 포럼 관리자인 고진환, 디자인 담당 및 개발에도 지식을 두루 갖춘 배준규였다.

이중에서 고진환 씨 같은 경우에는 무려 서울대를 나온 고급 인재였다. 저런 학벌의 소유자조차도 취직이 어려워 우리 회사에까지 온 것을 보면 나라 경제가 여러모로 복잡한 시기인 것은 분명했다.

‘그래도 분위기는 스무~스 하다니까.’

회의는 딱딱하지 않았다. 사장인 내가 소위 말하는 ‘을’의 입장을 질리도록 경험했다. 직장 생활에서의 갑을 관계에는 신물이 날 만큼 났고 부대 내에서도 꼴같잖은 악 폐습들도 더러 목도했다.

그래서 첫 미팅 때 내게 커피를 타다 주는 김지애 씨한테 단호하게 말했다.

- 처음이라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앞으로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간식을 비롯해서 충분히 쌓아뒀으니 먹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드시기 바랍니다.

사적인 자리에서야 나라님도 욕할 수 있다.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여자연예인을 안줏거리로 삼듯이 여자들도 남자연예인을 소재거리로 온갖 이야기를 한다. 이는 누구나 갖는 본능이고 일상적인 대화다.

철저하게 내 주관이지만 이는 좋다 나쁘다가 필요 없는 개인의 영역이라 본다.

단지 그걸 공공연한 자리에서도 대놓고 하는 똥 멍청이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평하건데 나는 그런 못난이에는 속하지 않을 만큼의 염치와 양심은 있었다.

우리 회사 분위기는 이것 하나로 정해졌다.

‘자고로 윗물이 시궁창이 아니면 아랫물도 깨끗해진다니까.’

내가 치근덕거리면 진수와 성찬이 역시도 그리 행동한다. 반면에 사장인 내가 주의하면 녀석들도 조심하게 된다. 이런 관계로 진수와 성찬이는 4층에서는 김지애 씨를 목 놓아 그리면서도 정작 3층에서는 곁눈질조차도 신중하게 하고 있었다.

퇴근 이후에는 나를 무진장 욕하고 말이다.

‘신경 쓸 필요는 당연히 없고.’

근무 시간에는 일을 하고 여가 때 저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간단히 상념을 마치고 회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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