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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장님
“멋진데? 그런데 우리 쪽 골드가 10억은 안 되는 거로 아는데, 한 3억 아니었냐?”
“어, 그 정도 있어.”
갖고 있는 골드만으로든 한참이나 부족한 액수다. 하지만 거래는 가능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사이트를 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부족분이야 다른 골드 판매자들이 있으니가 해결이잖아. 게다가 며칠 정도 더 지나면 또 골드는 모일 테니 그거로 충당하면 돼. 얼추 일주일 정도면 10억 골드는 맞출 수 있을 거다.”
“아니 그게 아니라···”
“쟤네는 우리 적대 길드잖아.”
“그런데?”
영문을 모르겠다며 되물으니 진수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10억 골드면 쟤네들 장비가 엄청나게 좋아질 텐데 너는 걱정도 안 되냐?”
“전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이는 10억이라는 숫자와 단위에 압도당하지 않고 단순하게 계산하면 금방 나오는 결과다. All for One 길드의 숫자를 최대 150명가량이라고 잡을 때, 10억 골드면 대략 1인당 660만 골드씩이 된다.
이 돈으로 장비를 맞춘다면 어디까지 스펙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까. 대략 무기는 +8검이고 방어구는 +5세트가 된다. 그 이상은 강화라는 게임의 특성상 확률과 운에 맡겨야 하기에 섣불리 손을 댈 수 없다.
‘그리고 그 돈 가지고는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해지는 건 불가능해.’
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상관없으니까 몽땅 팔아. 찔끔찔끔 간 보지 말고 시원하게 현금화하자고.”
“그러다가 우리가 밀리면 어떻게 하냐? 아니 밀리지 않는다고 해도, 상당히 위협적인 길드가 될 텐데?”
“그게 더 좋은 거야.”
“뭐?”
진수와 성찬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플레지에만 있는 축복과 저주 시스템이다. 서버 자체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인데 축복과 저주 아이템이라는 게임 내적인 콘텐츠 탓에 유저들은 ‘좋은 것은 축복’이고 ‘나쁜 것은 저주’라는 명칭을 달았다.
예를 들자면 던전에서 텔레포트를 사용했을 시 마음에 드는 곳에 금방 떨어지면 ‘축텔’ 아무리 해도 엉뚱한 곳으로만 이동되면 ‘저주 텔’, 캐릭터의 체력이 높게 오르면 ‘축캐’ 낮게 오르면 ‘저주 캐’라고 하는 식이다.
이토록 익숙한 축복과 저주라는 단어는 서버에도 해당된다. 아이템이나 골드 등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유저들이 넘쳐나는 곳이 ‘축섭’ 이다. 그 반대로 고인 물처럼 침잠되어서 활력이 없는 곳이 ‘저주 섭’이었다.
‘켄헬 서버는 전투 축섭이 되어야 해.’
전투 축섭은 곧 전투가 활발한 서버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길드처럼 강력한 단일 세력이 무기한 통치를 해버린다면 자칫 서버 자체가 유저들에게 외면당하는 곳인 ‘저주 서버’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었다.
이번의 2억 투자가 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였다. 이만큼이나 노력했는데 이빨도 안 들어간다면 나 같아도 ‘더러워서 안 해!’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러한 설명을 간단하게 축약하여 말했다.
“강화에 돈도 쓰고 우리를 위협할 정도가 되어야 골드가치가 상승 해.”
“하지만 네 말대로 돈이 된다고 쳐. 그러다가 성을 빼앗기면? 성에서 나오는 골드만해도 그게 얼만데. 그걸 빼앗기면 우리도 손해가 큰 거 아니냐?”
“손해지. 그런데 우리가 독주를 해버리면 그거야말로 큰 손해가 돼.”
나는 기득권으로서 태평성대를 원하지 않았다. PK가 자주 일어나고 발끈한 유저가 무리해서 돈을 투자하는 환경을 사랑한다. 이럼에도 내가 전력 강화를 아끼지 않고 준비를 탄탄하게 한 이유는 저들이 All for One으로 거대화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연합하지 않았더라면 세금 수송도 몇 번 털려주고 화전민 패밀리에게 틈을 내주는 연출을 자진했을 것이다.
“성을 내줄 생각도 했었다고. 그런데 저렇게 나와주니 얼마나 다행이냐?”
“성을 내줘? 전부 다?”
성찬이의 말에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뭔 말을 하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가냐? 주기는 하는 데 전부는 아니야. 오크 요새 정도쯤을 보는 거라고.”
사기가 꺾이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당근을 내어줄 요량이다.
반면에 두 친구는 여전히 아까운 모양이다. 진수가 내게 말했다.
“오크 요새도 수입이 꽤 짭짤하잖아.”
“그 짭짤한 세금은 어떤 비루먹은 오크가 수송하고. 툭 치면 바로 죽어버릴 것 같은 녀석이 말이야.”
“어? 너 설마······?”
“맞아. 염통이 쫄깃쫄깃해지도록 습격했다가 말았다가 할 수 있다고. 성공과 실패를 오갈수록 더 골드를 더 쓰게 될 거야. 막 우리를 혼내고 싶어서.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도 있어서. 이게 이름 하여 희망고문이라는 것이다. 이해됐냐?”
“무서운 놈 같으니.”
“알았어. 그러면 최대한 끌어 모아 볼게.”
정보 및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중점인 게이머스 포럼의 성장세만큼 이를 기반으로 직접적인 거래가 오가는 트레이더스 포럼 역시 공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더불어서 우리에게는 수익을 내기 좋은 방법이 추가되었다. 이른바 골드를 싸게 매입해서 정가에 판매하는 거였다.
이는 말은 쉽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려운 수법이다. 그 이유는 자본의 압박에 있는데, 계속해서 매입할만한 금전적인 여력. 그리고 언제인지 모를 ‘팔 시기’가 올 때까지 꿋꿋하게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계속 순환해야 하고 급전이 필요해지면 나자빠지기 일쑤인 소상인으로서는 알아도 엄두를 낼 수 없다. 또한 나처럼 나름 큰 손이 움직여도 ‘언제 팔리려나.’하는 불안감은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트레이더스 포럼은 이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해준다. ‘손해를 봐도 되니 구매자가 빨리 좀 나와 줬으면’하는 급전이 필요한 장사꾼들의 골드. 사이트에서 발견되는 이 게임머니들을 우리가 구매해버린다.
저들은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좋고 우리는 약감 저렴하게 상시 매입해서 정가에 재판매를 하니 쏠쏠하게 이익이 된다. 그리고 이 방법에는 실질적인 수입 이외에도 골드 거래 자체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도 딸려 있다.
‘언제고 살 수 있고 팔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시장 규모는 더 확장되기 마련이거든.’
접근성과 편이성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시스템을 이용하게 해준다. 발품 팔아야 하는 직거래가 당연한 지금 유저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준 셈이다.
정확한 시기에 딱 알맞은 콘텐츠가 나온 셈이니 우리 사이트가 성공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그러면 마지막 제국이나 다른 게임에서도 매입해달라는 건은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골드를 매입하는 것은 오직 플레지에만 한정이다. 기실 지금까지의 급진적인 성장세는 시장 분석보다는 전적으로 내 개인의 힘에 의존한 경향이 컸다. 그리고 친구들이 착각하는 나의 선견지명은 꿈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플레지와 이런저런 상식들에 국한됐다.
이쯤 잘 나가면 콧대가 높아질 법도 하지만, 나는 좋게 말하면 주제를 알고 나쁘게 말하면 살짝 소심하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아는 분야에서는 목소리가 커지고 반대에는 작아진다.
‘잘 모르는 쪽에서 호연지기를 부리지는 못하겠더라고. 게다가 굳이 공부를 할 이유도 못 느끼겠고.’
여타의 게임은 유저들이 트레이더스 포럼에서 활동할 수 있게만 하고 방관했다. 시장에 개입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돈의 흐름을 보자. 사이트에서 일주일간 거래되는 액수를 보면 마지막 제국은 얼마냐?”
“1,000만 원 정도야.”
“이걸 우리가 매입해서 재판매 할 때 평균 수익률은?”
“5%.”
“그런데도 우리가 해야 하냐? 총 금액에서 20%를 우리한테 판매한다손 쳐도 고작 한 달에 40만원 수준인데? 시간이랑 노력대비로 이익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안 들어?”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골드 구매 후 재판매 하며 수익을 내는 이 방법은 불법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법에서도 참 아이러니한 것 중 하나인데 중계사이트는 합법이지만 아이템 거래를 직업으로 하면 불법이 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
어찌됐건 법이니 따르고 그 테두리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 아울러 이렇게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니 내 나름대로 작은 포부가 생겼다. 골드나 파는 자잘한 활동이 아니더라도 게임과 관련된 직종은 그 중요도에 비해 폄하당하는 쪽에 속한다.
이런 기조는 장장 20년이 되어도 크게 바뀌지 않고 예술이 아닌 오락이라는 이미지 탓에 매도되기 일쑤였다. 때문에 부모님께서도 자랑스러워하실 만한 간판이자 명함을 달고 싶었다.
‘여유가 생기고 서는 곳이 조금 높아져서 그런가. 확실히 뭔가 다른 풍경을 보고 싶어진 것 같아.’
내 손이 닿는 영역 내에서 딸 수 있는 열매는 모두 취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조는 과거와 똑같았다. 차이점은 작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욱 자랐고 손과 팔이 커졌다는 것뿐이었다.
체급이 커졌으면 옷도 갈아입고 신발도 바꿔 신어야 한다. 이를 신분상승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핵심은 불법적인 루트보다 합법의 영역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긴 한데 말들이 너무 많아서 그래.”
“게시판 가면 차별하느냐고 아주 장난이 아니야.”
“신경 꺼.”
간단히 일축했다.
“자기들은 직거래 하는데 플레지는 신용거래니까 당연히 나오는 소리지.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어. 그냥 관련 시스템을 추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그렇게 답장만 해.”
“알았어.”
진수와 성찬이에게 딱 잘라서 말한 뒤 배추를 찾았다. 시기 상 에스크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다.
“규환아. 나랑 얘기 좀 하자. 시간 되지?”
“물론이지. 바로 갈게.”
하던 일을 딱 멈추고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다.
“그렇게 급하지는 않아. 마무리 짓고 와.”
“에이. 별명 부를 때면 모를까 내 이름 불렀잖아. 이거 일 맞지?”
“그야 그런데.”
“그러면 사장님 호출인데 바로 움직여야지.”
회의실에 앉는 녀석의 모습이 새삼스럽게도 보였다. 지금의 모습에서 처음의 쭈뼛쭈뼛 거림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친구들 이야기는 물론 학창시절 추억을 간신히 떠올려도 전혀 보지 못한 모습이다.
‘PK에 당했을 때는 예전의 어리숙함이 다시 나왔었으니까.’
인정받으며 자기가 할 일을 찾았을 때와 그렇지 못한 경우.
양자 간의 차이는 생각보다도 꽤 큰 것 같았다.
규환이는 맡겨진 일의 한도 내에서는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타입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면성실함은 물꼬를 터 주었을 때만이 발휘된다.
‘갈피를 잘 잡아주고 방향을 정해줘야 해.’
회의실 의자에 마주 앉고서 나는 음료를 마시며 잠시 할 말을 정리했다.
에스크로의 개념은 결재대금 예치과도 같다.
전자상거래 중에서 물품 거래 시, 고객이 구매한 결제금을 은행 등의 공신력이 있는 제 3자에게 기탁한다. 이후 조건이 충족 될 경우 상대방에게 교부하는 방식인데 이것은 본래 부동산 거래에서 사용되던 ‘조건부 양도 증서’를 의미했다.
‘게이머스 포럼은 공신력이 생긴 상태야.’
지금까지의 성실한 일처리와 인터넷 상에서의 역할 덕분에 우리 사이트는 이제 제 3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신뢰도를 쌓았다. 그러니 에스크로 시스템을 활용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배추가 이 일을 홀로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그간 시간을 주었고 부단히 공부한 만큼 잘 맡아주기를 바라며 말문을 열었다.
“규환아. 너 이런 거 할 수 있겠냐?”
방법은 이렇다.
본격적으로 사업자를 신청하고 사업자 명칭으로 계좌를 개설한다.
고객들이 우리가 제작한 계좌로 입금하면, 해당 입금자와 회원 아이디를 대조해서 포인트를 부여한다.
‘이 과정 중에 동명이인이 발생할 수 있으니 금액 뿐 아니라 입금당시의 시각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확인시키는 것을 추가하고.’
아직은 전용계좌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플레지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비슷하게 차용할 방법이었다. 배추는 곧 긍정의 뜻을 비쳤다.
“은행에서 우리 금융에 관한 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만 해준다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
“좋았어. 그렇다면 이건 어때? 포인트를 보유한 회원이 클릭 한 번으로 입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거야. 즉, 회원이 포인트 출금을 클릭하면 우리가 등록된 계좌로 계좌이체를 해주도록 시스템이 되는 거지.”
“그건 잘 모르겠어. 이런 것은 은행에서 직접 코드를 우리에게 줘야만 제작할 수 있거든. 은행이랑 협의를 해봐야 알 것 같아.”
미래에서 가능했기에 어찌어찌 다 이뤄지나 싶었지만 이는 내 무지에서 온 생각인 듯싶었다. 과정상에서 해결해야 할 절차가 꽤 있나보다.
‘하긴. 잡혀 있는 모델이 버젓하게 있었다면 이미 다른 사이트들이 생겨났겠지.’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직접 알아봐야했다.
“오케이. 은행들은 내 쪽에서 다녀올게. 너는 나머지를 최대한 알아봐 줘.”
“그러면 오늘부터 진짜로 윤태식 사장님이네?”
“뭐, 그렇겠지?”
대답하고서는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며칠간의 준비 끝에 나의 회사가 탄생했다.
회사명은 게이머스 포럼.
지금까지는 존재만하는 이름 없는 회사였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사업자를 갖고 출발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한껏 자랑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법인은 아니고 개인사업자니 말이다.
‘처음해보는 거라서 나름대로 긴장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절차가 간소하구나.’
일사천리로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은행 계좌까지 개설했다. 천만다행한 것은 복잡하거나 오래 걸리는 과정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쯤 일단락 짓고 나니 실행하는 결단력이 문제일 뿐, 막상 부딪쳤을 때 엄청난 난관으로 작용하는 것은 많지 않다는 교훈이 실감됐다.
걱정의 크기보다 세상일은 만만하다.
왠지 껍질 하나를 부수고 조금은 더 마음이 커진 기분이었다.
“돈이 무슨 죽순처럼 쑥쑥 자라는데?”
이참에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수입 대신 잔고 현황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번 All for One의 전투적인 투자 덕분에 지금 내 통장에는 282,000,000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동그라미 숫자가 많을수록 기쁨이 배가 되는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같을 것이다. 이 돈이면 1억 8541만원이라는 건물 융자금을 해결하고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건물주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
‘정확하게 계산하면 중도 수수료를 포함해야 하니까 1억 8,900만 원 즈음인데··· 이건 꽤 속상하네.’
억울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총 대출금이 1억 9천이고 매달 260만원씩 몇 달을 상환한 마당이다. 그런데도 조기상환을 하려고 했더니 100만원이 빠진 느낌이라니!
‘하여간 사람 마음 하고는. 분명히 알고서 한 일인데 말이야.’
애초에 중도상환수수료의 목적은 은행이 입는 손해를 막는 것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다 시행하는 제도다. 그러니 돈이 나가는 것은 싫지만 딱히 욕할 수는 없는 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