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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장님
그리고 서로의 일상사에 관해 이야기가 오갔다.
시작문은 내가 열었지만 사실 ‘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인터넷 계통의 일을 하느라 사무실을 얻어서 본격적으로 하는 중이라는 정도를 했다.
“네. 조만간 정말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자식 일이라서 꽤 관심을 가고는 있으셨지만 막상 컴퓨터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가 보다.’하는 티가 역력하게 났다. 또한 내가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점, 수익의 일부를 월급이라며 가져오는 모습이 덮어두고 이해해주시는 데 좋은 영향을 주었다.
‘물론 자식 이야기니까 의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 들어주시는 것도 있고.’
꿈에서 잃었던 젊음. 활력 없던 몸의 느낌은 충분히 겪어봤다. 잃기는 쉽지만 되찾기는 욕 나오리만큼 어려운 것이 건강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게임 이벤트 때를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운동하고 몸을 단련해왔다.
한창 때라서 그런지 먹을 것을 자유롭게 먹으며 운동하는 정도로도 활력이 샘솟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기 마련이다.
‘역시 나이 빨이 최고야.’
한편,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물으니 태희가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나는 나이 먹는 게 싫어.”
“원래 너 나이 때에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빨리 나이를 먹고 싶고 그런 거 아니냐?”
“일 년이 더 있으면 고3이란 말이야! 스무 살은 빨리 되고 싶지만 고3은 최대한 늦게 되고 싶은 법이라고!”
그랬다. 실업계 출신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난관인 고3의 이야기였다.
“우리학교가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를 시키는 줄 알아? 벌써부터 막 학교에 붙잡아두려고 이런저런 수를 다 쓴 다니까?”
“원래 학생의 본분이 공부 아니냐.”
“우와. 오빠 완전 아빠 같아.”
“딸아. 듣는 아비는 서운하구나.”
“서운하기는요. 내가 보기에는 딱 맞고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에 나 역시 설피 웃었다. 친구들도 자주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이래저래 아저씨 스러운 모습이 연신 묻어나는 모양이다. 나는 꿈속의 여동생을 떠올리며 물어보았다.
“문과 이과는 정했어?”
“그건 이미 작년에 정했거든요?”
태희가 ‘이거 봐. 이거.’하며 말했다.
“엄마, 아빠. 오빠는 나한테 관심이 한 개도 없다니까?”
괜히 서러운 표정을 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우리 집안의 장남이자 기둥이다. 부모님은 내 편이셨다.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오빠가 차려주는 귀한 반찬 먹으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악! 엄마!”
“아빠는 엄마 편이란다.”
“배신자!”
“그럴 거면 갈비찜 먹지 마렴.”
어머니의 말씀에 0.1초간 고민을 한 동생이 고개를 홱 돌렸다.
“흥. 갈비찜 때문에 내가 참는 거 아니야. 그냥 오빠가 바쁘니까 내가 참아주는 거야.”
햄스터처럼 갈비찜을 입안에 가득 넣고는 말하는 모습이라서 설득력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과야 문과야?”
사실 나는 동생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본래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태희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 순간부터 이과로 정했고 이때쯤에는 신소재공학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교대에 입학했지.’
똑똑한 여동생은 학창시절 내내 우등생이었다. 그리고 교대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 합격으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는데, 이후로 내내 힘들어 했다. 뒷바라지를 기대할 수 없으니 최대한 맞춰서 선택한 것이 초등 교사였기 때문이다.
오늘 태희에게 장래 희망에 대해서 들으려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꿈에서는 나 자신의 삶이 팍팍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부분. 대단치는 않으나 동생이 원했던 것을 듣고 이를 지원해주기 위함이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면 ‘넌 안 돼.’라며 하지 않도록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태희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선생님이라는 길이 아니라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하기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려오는 대답은 내 기억과 살짝 차이가 났다.
“이과!”
“뭐가 하고 싶은데?”
“수의사가 되고 싶어. 우리 집은 애완동물 키우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밖에서라도 마음껏 만져야지~”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정말로 크게 관심 있어보였다. 꿈속의 나는 듣지 못했던 장래 희망이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꿈에서보다 더욱 살가운 남매가 되었다는 점. 재정적으로 내가 부양하게 된 덕분에 돈에 허덕이는 모습이 사라졌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이렇게까지 화목하지는 않았는데.’
말을 들어준다.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함께 하는 시간동안 배려해준다.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호감을 주기 위해서 자주하는 기법들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하고 언제나 곁에 있기에 솔직하다는 핑계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일쑤인 것이 가족이다.
우리 부모님은 이를 잘 받아주시는 편이지만 이럼으로써 주고받는 교류가 아닌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되곤 했다. 그리고 서로 이해할 기회는 적어진다.
가족이니까 괜찮기는 하다. 하지만 더 화목하고 더욱 행복한 가족은 되기 어렵다. 내가 약간만 노력하면 이렇게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럴 수 있으니 참 다행이야.’
그리 생각하며 나는 다짐했다. 대학이건 대학원이건 책임져 주겠다고. 쉬는 날 없이 일해오신 부모님께서도 휴가를 즐기실 수 있도록 여유를 안겨드리겠노라고 말이다. 정말 감사한 부분은 이 바람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여기서 질문!”
나 나름대로 혼자 생각을 정리 하는 동안 신이 나서 수의사와 의사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태희가 손을 번쩍 들더니, 질문을 던졌다.
“밥 먹고 우리 뭐해?”
“응?”
“기왕 이렇게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거라면 보람차게 보내야지! 오늘 뭐할 거야?”
‘맛있는 음식 먹었으면 끝난 거 아닌가?’
이후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부모님 역시 같은 심정인 듯 보였다. 본래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놀아본 녀석이 잘 논다는 말처럼, 휴식도 자주 해 본 사람이 잘 쉬는 법이다. 근면성실 하게 살아온 우리 가족은 이런 쪽에서 완전히 까막눈들이다.
그러다보니 주도하는 것은 태희가 되었다.
“드라이브 가자! 겨울에 보는 바다가 그렇게 좋데!”
“드라이브?”
“겨울 바다?”
부모님의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드라이브를 하려면 차가 있어야지. 그런데 우리 집에 차가 어디 있어서 드라이브를 해?”
“차가 왜 없어? 아빠 차 있잖아.”
우리 집에는 차가 없다는 어머니의 말과 ‘아빠 차가 있잖아’라는 태희의 말. 이는 양쪽 다 맞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모순적인 결론이 나는 것은 승용차가 없고 과일배달용 트럭이 있기 때문이다.
업무용 차량은 있으나 가정에서 씀직한 차는 없었다. 당연히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
“얘는 그런 트럭으로 드라이브를 하자고 그래? 그게 기분이나 나겠니?”
“왜에? 뭐 어때? 차가 중요한가? 가족끼리 붕붕~ 타고 바다를 달리는 게 중요하지!”
“이거 참······.”
대다수의 감성 예민한 10대 소녀에게 트럭 드라이브는 창피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태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외려 아버지나 어머니가 더욱 머뭇머뭇하시는 모습이다. 이를 보고 나중에 해드릴 부모님 선물을 정했다.
‘쓸 만한 차를 사드리자.’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드라이브 하자는 말이 나오도록 해드려야겠다. 지금과도 같은 추세로 수익이 발생한다면 그 시일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 태희는 부모님 설득을 마친 마당이었다.
“가자~ 가자~ 드라이브 붕붕~”
애교 섞인 막내의 설득에 결국 가족들은 영종도로 드라이브를 하고 오기로 결정했다. 뒤이어 아침 상차림을 빠르게 정리하고는 집을 나섰다.
웃음이 전염되고 밝은 활력이 주위에 퍼지듯 제일 신이 난 태희가 차 문을 열고서 재촉하자 뒤따라가는 듯했던 부모님께도 점차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들뜬 모습으로 차에 올랐다.
“트럭이라고 손사래 칠 때는 언제고~ 엄마도 좋지?”
“얘는? 너희들을 트럭에 태워서 드라이브 하는 게 미안해서 그렇지.”
“뭐 어때~ 좋기만 한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2인승 트럭이 아니라 5인승이라는 것이었다. 짐칸이 아니라 앉을 자리가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탈 수 있다손 뿐이지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다.
어릴 때의 초등학교 철봉이 커서 보면 참 낮은 높이였던 것처럼 트럭 내부 역시도 우리 네 가족을 담기에는 협소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큰 문제점은 따로 존재했다.
‘으! 이런 떨림이라니.’
올해는 2000년도다. 그리고 트럭은 1980년생이다. 국내에서 생산한 거의 최초의 모델답게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을 버텨왔다. 그런만큼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무지막지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이 구식 차량을 수리하며 사용하는 까닭은 내가 결혼할 때 집 한 채라도 마련해주려는 절약정신에 있었다. 자식 걱정하는 부모님들 답게 본인들 편하게 사는 생각은 아예 떠올리지 않는 모습이다.
다시금 다짐했다.
‘차를 사드리자.’
승용차는 어차피 사드려도 필요 없다고 하실 분들이다. 무리한다고 오히려 걱정하실 것이다. 그러니 꼭 트럭이라도 새 거로 바꿔드려야겠다.
도착한 곳은 시화방조제였다. 끝 지점에 차를 잠시 대고는 네 가족이 바다 냄새를 마음껏 들이켰다.
2월 초의 바닷바람은 소금기를 머금어서 꽤 날카로웠다. 도심에서야 따뜻하게 입으면 딱히 견디기 어려운 점을 느끼지 못하지만 바다에서는 사뭇 달랐다. 그래도 탁 트인 바다에 온 가족이 함께 나오니 다들 속이 다 후련한 듯 상쾌한 표정이었다.
‘영종대교가 완성이 되었다면 영종도를 갔을 텐데, 그건 아쉽네.’
내륙과 영종도를 이어주는 최초의 도로인 영종대교는 올해 말부터 이용이 가능하다. 인천국제공항도 내년에나 운영을 시작하기에 아직은 배 없이는 영종도로 갈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아쉬운 대로 시화방조제를 선택해서 왔다.
‘뭐 여기도 나쁘지 않네.’
그 사이에 태희의 얼굴이 불쑥 가까이 다가왔다.
“오빠도 좋지?”
“그래. 좋네.”
“좋잖아. 사람 표정이 그래야지. 그냥 무슨 기계로봇 같은 얼굴만 하고 살지 말라고.”
녀석이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리포터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나를 보며 물었다.
“우리 가족들은 올 해 특별한 목표들이 있으신가요?”
“엄마는 우리 태희가 올 해는 조금 더 여성스러워졌으면 좋겠네~”
“여기서 얼마나 더요?”
“아직 한참 덜 컸는데?”
어머니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렀는지 태희가 발끈했다.
“아악! 엄마!”
“왜? 뭐? 뭐?”
“흥. 칫.”
어머니의 담담한 미소에 딸은 콧소리로 대답을 대신한다.
“아빠는?”
“아빠야 뭐 이 나이에 그런 게 필요하겠니? 그냥 우리가족 다 같이, 건강하게 행복하면 그게 삶의 완성인거지.”
“아! 지당하시고 너무나도 좋은 말씀이지만 참 재미가 없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오빠는?”
과거의 나였다면 막연하게 취직부터 애인 사귀기 등등 평범한 것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급하게 여겨야 할 것과 기다림으로서 얻어야 하는 것이 각기 존재함을 잘 알았다.
경험을 통한 작은 지혜. 새롭게 누리는 젊음을 토대로 확고한 목표 역시 있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가 분명한데, 지금 내가 대답할 것은 매우 소박한 것 하나였다. 나는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 중 하나를 이야기했다.
“최소한 10억 벌기. 그 정도면 적당하겠네.”
“적당하게 10억? 오빠가?”
그 말에 가족들이 다들 자지러지며 웃음을 터트렸다.
“당차네! 당차! 그래 남자다!”
“우리 아들 아주 포부가 남다르네! 그래야 우리 아들이지!”
그냥 막 내지르는 농담과 같은 말로 알아 들은 모양이다. 나 역시 빙긋이 웃음으로 화답했다.
가족들은 모른다.
‘지금까지의 수입만으로도 2억 3천이거든요.’
올해가 시작한 지금 시점에서 10억이라는 목표는 이미 20% 이상 달성한 상태였다.
31. 오늘부터 사장님
“다들 오랜만! 명절들 잘 보냈냐?”
“하모!”
“몸뚱이 탱탱 불은 거 보면 모르냐. 디지게 먹어서 체중 불렸음.”
소위 말하는 때깔이 달라진 모습의 진수와 성찬이다.
반면에 배추는 다크 서클만 사라졌다 뿐이지 약간은 피곤에 절은 듯한 모습이 여전했다. 성실한 성격 탓일까, 명절에 쉬라고 보냈지만 일의 양은 크게 줄이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보다 접속자 수가 폭증했거든. 명절이라고 용돈 받아서 PC방에 온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야. 게다가 해당 이벤트 정보를 다들 찾는 바람에 이것도 업데이트해놨어.”
“으이구.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같이 하면 한결 수고를 덜잖아.”
“아니야. 이건 내 업무인데 뭐. 버거웠었으면 연락 했을 텐데 이 정도는 밤 새는 걸로 다 할 수 있었어.”
진수와 성찬이가 고개를 저었다.
“얘 때문에 우리가 못 살겠다니까.”
“짜샤. 적당히 삐댈 수도 있어야 한다고. 안 되겠어. 오늘부터 형님이 설렁설렁하는 요령을 전수해주마.”
‘참 좋은 것도 알려준다. 어휴!’
친구들한테 나쁜 물이 들까봐 걱정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그리 쉽게 변하겠는가. 배추는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는 타입이다. 생김새가 다른 만큼 두 친구에게 동화될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떠들썩한 인사를 마치고 다시금 게이머스 포럼을 둘러보았다. 곧 성찬이가 나를 불렀다.
“태식아. 이거 조율을 좀 해야 할 거 같은데?”
“조율? 어떤 것을?”
“어제부터 골드 구매자들이 엄청 늘어났어. 다들 명절에 보너스 받아서 이리저리 빼돌린 다음에 남은 돈들을 골드 구매에 올인 하는 것 같아.”
“구매자가 늘어나면 우리야 좋은 일이잖아. 그런데 조율은 왜 꺼낸 거냐?”
“그게···”
끝을 흐리는 성찬이에 이어서 진수가 말했다.
“다른 서버야 그냥 판매만 하면 되거든. 문제는 우리서버야.”
“왜?”
“올포원. 지금 골드 구매자의 80%가 올포원이거든”
우리 길드를 적대하는 연합 세력의 이름이다. 저들이 쓰려는 돈의 액수 역시 함께였다.
“족히 2억은 쓸 것 같아. 골드로는 10억을 구매하려는 거지.”
“장비를 어마어마하게 지를 모양이가 봐.”
적들의 군자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