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9화 (39/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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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현재 사람들은 서먼 몬스터 마법서를 사기 위해 골드를 구매하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저들이 소원하는 대량의 골드는 어디에서 유통이 되는 것일까?

바로 내가 운영하는 카페. 내 자판기. 내 주머니에서 나가게 된다. 그리고 내가 현금과 맞바꾼 이 골드들은 다시금 창고의 서먼 몬스터 마법서를 통해서 내 주머니에 고스란히 돌아온다.

“알았어. 그 다음은?”

“너희 둘은 이제부터 하루에 딱 한 권씩만 서먼을 팔아. 단! 본캐로는 절대로 하지 말고 부캐로 거래해.”

“한 권만?”

“얘랑 나랑 하나씩이면, 하루에 두 권씩이네?”

“어. 사람들이 조금은 더 안달 내도록 만들려는 거야.”

두 권씩 유통하는 이유는 경쟁 심리를 부추기기 위해서다.

자고로 상품은 구매자의 입소문을 통해서 전파될 때 가장 높은 파급력을 보인다. 대단한 마케팅 이론을 모르더라도 훗날 온라인 상품을 구매하는데 제일 먼저 보는 곳이 상품 후기 란이다. 같은 입장의 사람들을 통해 신빙성을 갖는 것이다.

판매자의 홍보보다 더 큰 신뢰감을 주는 것은 같은 구매자의 소감!

한껏 자랑하도록 뜸을 들이는 거다. 힘겹게 구했다고.

‘그리고 구하니까 진짜 좋다고!’

이러면 가격이 더 오른다.

무조건 꽁꽁 숨겨둬야 더 오르는 게 아니다. 실제 거래가 있어야 그 가치가 오래 유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더 지났다.

- [월드] 매직스테이션 : 서먼 삽니다! 800만에 삽니다! 있으신 분 제발 파세요!

“좋아. 좋아. 지금이다!”

맥시멈이다. 무려 800만까지 올랐다. 골백번 생각해도 이보다 더 오를 수는 없었다.

“팔자!”

“아으! 손 떨린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으헤헷!”

이제는 마법서를 하루에 6권씩 풀면서 돈을 긁어모았다. 골드를 너무 판매해서 판매할 골드가 없어도 상관없다. 현금을 받고 서먼 몬스터를 판매하면 되니까.

“하나에 160만원. 6개면 960만원!”

물론 평생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에 1,000만원에 가까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당분간은 서먼을 모으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

이제는 아예 셋이서 각자 비비기용 캐릭터를 세워두고 따로 3개의 서버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 셋이서 같이 할 때에 비해 3배의 효율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2.5배 정도의 효율은 나온다. 이 정도로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부를 거머쥐게 되었다.

“나 이런 돈 봉투는 처음 받아봐. 으헝!”

“사랑한다 친구야!”

“그 마음 아는데 나를 껴안지는 마!”

수백만원짜리 현금다발을 든 친구들이 서로 얼싸안았다. 이를 보는 내 기분도 뿌듯하고 흡족하기만 했다.

25. 배추

똑같이 텅 빈 공간에 데려다 놓아도 재주꾼은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열의와 능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에는 끈기가 없는 이들이 매우 많다. 감각적이며 통통 튀는 매력과 지긋하게 한 자리에 앉아서 보여주는 뚝심은 성향이 매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감각과 끈기. 둘 중에 나 같은 장사꾼이 우선으로 치부하는 것은 후자가 된다. 둘 다 갖추면 두말 할 나위 없이 베스트지만 제 기분에 따라서 약속을 파토내고 잠적해버리는 능력자보다는 다소 부족할 지언정 자주 얼굴을 비치고 만날 수 있는 쪽을 선호한다.

“이렇듯이 세일즈에서 중요한 것. 그건 바로 돈을 벌기 위해 감정을 판다는 거야. 그래서 감정 노동이라는 얘기도 있는 거고.”

“···성찬아. 아까부터 저 새끼가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

“···몰라. 우리 싸장님께서 미쳤나봐.”

“돈 벌더니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으려나?”

“그럴지도?”

진수와 성찬이는 큰 목소리로 귓속말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쌍놈들아. 그런 뒷 담화는 내 뒤에서 하는 게 매너 아니냐?”

“우리는 패기의 사나이! 의리의 죽마고우!”

“당당하게 앞에서 깐다! 다른 사람들은 듣기 싫어도 들어줄 거 아니냐.”

“물론이지. 그러니까 친구가 최고라고.”

“이빨에 고춧가루 꼈을 때 바로 지적해주니까. 이런 게 피드백이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차례였다.

“···졸나게 고마운 새끼들이다?”

“고렇제!”

“꺼져!”

그렇게 의례 있어왔던 일상의 잡담을 나누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로 카페를 운영해온지 두 달을 바라보는 시점이 되었다. 이쯤 되자 얼추 견적이 나왔다.

“이 사람들은 믿어 볼만 해.”

우리는 각자 뽑아 놓은 리스트를 합쳤다.

본토행티켓, 템플아카이브, 비욘더, 김태한, 인사이드, 오프로더, 바이바이··· 수첩에 적어 둔 닉네임들은 카페에서 글을 연재하고 그림을 그리며 놀라우리만큼 친절하게 나서주는 이들까지 포함이었다.

“혹시 누구 친척 부른 거 아니지? 아닌데도 왜 이렇게 열성적으로 카페 입장을 변호해준데?”

“모르지.”

“그냥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 같아.”

카페 내에서 반짝 인기를 누리고 잊히는 수많은 이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꾸준하게 활동하며 성의껏 응대한다. 자신의 인기를 위함인지 본래 성정이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댓글을 다는 이들에게 겸손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카페 내의 네임드였고 각자가 팬층을 거느릴 정도로 인지도를 쌓았다. 덕분에 ‘플레지 트레이더스’에 게임 정보를 알아보러 들어왔다가 이들에게 반해서 꾸준히 들어오는 이용자 층이 형성됐다.

‘이제 얼추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겠어.’

우리가 주목한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온 결과 적당한 동력원만 제공해준다면 저들의 활동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본래 열정으로 시작했다가 ‘내가 뭐하는 짓이지?’라며 회의를 드는 이유에는 현실적인 요인이 있다.

재미는 있지만 이익이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여러분이 취미 생활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고자 한다.

“값을 매겨주자. 돈을 주는 거야.”

“어떻게?”

“얼마나?”

“게시판을 따로 설정해줘서 번거롭게 찾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거야. 접근성이 높아지면 당연히 이용자도 늘어날 테지. 그리고 보수는 각자 다른 방식인데, 우선 여기 이 분 있지? 너희도 좋아하는 본토행티켓 작가님.”

매주 1편의 글을 카페에서 연재하는 이용자.

내용은 대단치 않다. 단순하게 자신이 플레지를 하며 레벨업하는 과정을 연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별 것 아닌 소재와 내용이 보는 이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런 것을 필력이라고 하는 것이라 본다.

‘뻔한 이야기인데 재미있어!’

오죽하면 내 덕분에 시원스럽게 레벨업 하고 장비를 짱짱하게 갖춘 진수와 성찬이조차 ‘다시 키워서 우리도 개고생 해볼까?’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본토행티켓의 장비는 똑같은 아이템이 아니라 추억과 노력이 담긴 핸드메이드라는 느낌마저 들었으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자신의 재주를 통해서 게임을 한 편의 모험으로 만들어주는 사람. 그 연재물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도록 만들기로 했다.

“생각 같아서는 가둬두고 컴퓨터 앞에만 두고 싶은 분!”

“얼마를 드릴 거냐?”

“게시물 하나 당 1만원이지.”

“어? 비싼 건가, 싼 건가?”

한숨 쉬며 대답했다.

“우선은 그냥 동기부여만 해드리려는 거야. 아닌 말로 카페 운영해서 우리가 무슨 수익이 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골드 거래는?”

“멍청아. 그게 카페 수익금이냐?”

먼 장래를 내다 본 하나하나의 포석이지만 말이다. 미래 정보와 장래의 가치를 안다고 해서 그 최대치의 수익을 보장해 줄 이유는 없었다. 단지 지금 시점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충분하다.

‘이조차도 안 주려는 도둑놈들이 넘쳐나니까.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양심적이지.’

‘플레지 트레이더스’는 단순하게 아이템 거래만을 위해서 만든 카페가 아니다. 때문에 잡담 용 자유게시판에서도 인상적인 글들과 단편적이나마 재주를 보면 꼭 닉네임을 적어두고 규칙적으로 주시하는 중이었다.

사람을 확보해야 한다. 이들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곧 손님들을 붙들어 둔다.

이를 위해 오늘 반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메시지를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플레지 트레이더스 운영진입니다.

매번 유익하고 또 재미있는 글을 남겨주심에 감사합니다. 저 역시 본토행티켓님의 글의 팬으로서 글을 읽으며 ‘이렇게 즐겁고 유용한 글을 정기적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형식이라는 게 필요는 하다만, 영 귀찮아.’

나중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길어!’ ‘3줄 요약 매너!’라고 하는 것처럼 사실 요구하는 바만 정리하면 내용은 한없이 단순해진다.

규칙적인 연재, 돈, 콜? yes/no 선택!

하지만 메시지를 보내는 내 입장에서도 그건 성의가 없었다. 반대로 내가 제안을 받아드는 입장이라면 ‘이 새끼가 나 무시하나’라는 생각부터 할 것이다. 때문에 다른 우편물들이나 공지들을 확인하며 미사여구를 덧붙였다.

그렇게 중간 내용을 한껏 채운 뒤 드디어 본론을 적었다.

<···해서 주 1회. 혹은 2주에 1회 등의 정기적인 글을 남겨주실 수 있다면 본토행티켓님의 게시판을 추가로 만들어드리고 소정의 보상을 드리는 방향으로 함께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답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라리 레벨업이 쉽지. 문서 작성은 힘들다니까.’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업무다. 내 목표는 플레지 하나가 아닌, 종합적인 게임 커뮤니티와 거래사이트의 운영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플레지 하나 밖에 없지만 게임 시장은 더욱 확장되고 거대해질 테니까.’

튼튼한 자금줄을 만들고 사람을 늘려가며 영향력을 키운다.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대략적인 게임의 동향이나 이슈를 알지 언제, 어떤 식으로 유행하는 지 등등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만약 ‘2020년에 비싼 주식’정도가 아니라 년도 별, 분기별 주가의 동향을 알고 있었다면 나는 게임이 아닌 주식투자로 부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내가 경험했고 할 수 있다고 믿는 최선의 방법들을 선택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고 말이다.

“역시 꿈은 대박이야.”

“너 또 유체이탈 상태냐?”

“시비 거네? 나 대신 메일 써주려고?”

“촛불처럼 꺼져드리지. 휙~”

“···아. 개새끼.”

현재 메일을 보낸 대상자들은 약 10명이다. 눈이 번쩍일 제안 역시 아니기에 저들 중 절반만 응답해줘도 성공이라 본다. 그리 된다면 카페가 더 탄탄하게 자리 잡고 나중에는 진수와 성찬이처럼 저들에게 더 큰 보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음을 준비할 차례구나.”

“쉬엄쉬엄 해라. 너 너무 열심히 사는 거 같다.”

맥주 한 캔을 내게 던져주는 성찬이였다. 받아서 뚜껑을 따며 대꾸했다.

“짜샤. 남들 할 때 하면 늦어.”

“누가 말리겠어.”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뭐긴. 홈페이지 제작해야지.”

아직 대중에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벌써 관련 전문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다. 제법 돈이 들더라도 게임 잡지사들이 치고 들어오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 충분하게 이용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해야 된다는 사실에 비해서 이쪽 분야에 대해 내가 무지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휴대폰의 디자인과 앞으로 어떤 업그레이드와 어플리케이션이 나오는 지는 써봐서 안다. 그러나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지, 무엇이 필요한 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홈페이지 역시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일단은 관련 회사들부터 알아보자.’

진수와 성찬이에게 내 일거리를 최대한 떠넘기고 이쪽을 조사하기로 했다. 이렇게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여전히 한 발자국 뒤에서 구경중이다.

“진짜로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몇 번을 말하냐? 만들어야 한다고.”

“듣기는 했는데, 왜 필요한지가 좀 껄쩍지근해서 그래.”

“맞아. 굳이 뭐하러 해? 이렇게 몇 번 누르고 이름만 딱 쓰면? 게시판이 늘어나잖아.”

카페의 게시판을 더 늘린다. 확장되고 분화되는 만큼 숫자도 많아지면 그만이다.

일견 맞는 소리다. 적당히 이용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으며 카페는 홈페이지에 비해서 관리가 용이하고, 다루기도 쉽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다.

“카페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쪽 시장은 훨씬 더 커질 거야. 세 배, 다섯 배가 아니라 몇 백배로. 그러니까 그 속도에 맞춰서 함께 커지려면 카페보다는 홈페이지가 좋아.”

“오바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까지 커지면 백만 단위를 넘는 건데?

진수에 이어서 성찬이도 말했다.

“옳은 소리! 고작해야 게임이잖아.”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그 게임으로 돈 버는 건 벌써 까먹었냐?”

“에이! 이거야 네가 잘해서 그런 거고.”

‘응?’

얼떨떨해하는 데 진수와 성찬이가 팔짱을 끼고 주억거렸다.

“막말로 태식이 저 새끼는 대가리를 어디에 굴려도 벌어 먹는데는 지장 없을 거야.”

“맞아. 뻔히 보면서도 못 따라하겠더라고. 장사에 도가 튼 거 같아. 치고 빠지는 게··· 어휴~”

“예측력! 분석력! 결단력! 두루 갖춘 진성 폐인새끼지.”

“저런 거 보면 대굴빡은 좋은데 공부는 안 한다는 얘기도 사실인 거 같기는 해.”

비로소 깨달음이 왔다.

“···어이. 너네들 칭찬인 듯 까고 있는 거지?”

“봐봐! 눈치도 빠르잖아. 못하는 게 없는 남자라고.”

“역시 인천의 3대 천재!”

“싸우자!”

“즐!”

잠시동안 사무실 책상 사이로 몇 바퀴를 뛰는 운동 시간을 가졌다. 승자는 규칙적인 생활로 다져진 나였지만 승리의 기쁨은 달콤하지 않았다.

‘얘네한테 몸 쓰는 거로 지면 당장 관 짝에 들어가야지.’

어찌됐건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들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게임에 대한 인식이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지근거리에서 체험하며 돈을 벌고 있는 녀석들조차 은근히는 ‘그래봤자 게임’이라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하겠지.’

절대 다수가 이런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무조건 내게 기회였다.

친구들에게 농담 80%. 진담 20%의 반대의견을 들었지만 나는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움직여야 한다. 모른다면 공부를 해서라도 알아야 했다. 어디에 써먹는지,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대해서는 개념도 없이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던 교과과정이 아니다. 뚜렷한 내 목적을 위한 공부였다.

그렇게 부산스레 움직이는 데 성찬이가 내게 물었다.

“태식아. 너 진짜 까먹었냐? 배추 말이야.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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