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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기와 서먼 몬스터
“우와. 흑막의 주인이냐?”
“사악한 새끼 같으니.”
“어이. 너네도 나랑 한통속이거든?”
“아니다 이 악마야. 우리는 따고 잃기도 하는 참가자들이다!”
“내가 알아낸 패턴으로 네 돈을 갉아먹고 말 거라고!”
“···그, 그래라.”
‘이런 병신들을 봤나.’
이렇듯 슬라임 레이스의 호구들이 늘어만 가면서 오크 요새의 수익은 하루 300만 골드 이상으로 늘어났다. 두 배 이상의 신장이지만 아직 더 치솟을 것이라는 게 나의 예측이다.
유쾌한 점은 현실의 이익 역시 증대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나한테 중요한 것은 현금 거래거든.’
도박은 정말 무섭다. 슬라임 레이스에 빠진 유저들은 소비는 크지만 정작 수입은 적은 상태가 된다. 왕년에 한가락 했던 골드 부자들이 텅텅 빈 깡통 상태가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도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우 간단하?.
현금으로 골드를 사면된다. 캐릭터의 스펙 강화나 아이템 구매가 아닌 오직 슬라임 레이스를 위한 현금 거래였다. 내가 이러한 흐름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커뮤니티가 바로 내 카페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켄헬 서버]1000만 골드 100:2 현으로 구매 원합니다.>
<[데포 서버]700만 골드 100:2 현으로 구매 원합니다.>
<[데포 서버]550만 골드 100:3 현으로 판매 합니다.>
사실 홈페이지를 통해서 본격적인 중개 거래 사이트를 제작한다면 훨씬 좋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보고 더 준비가 될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거래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할 겸 사람들에게 작은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훨씬 좋단 말이야.’
최초의 현금 거래는 나부터 시작했다. 이런 나를 따라서 상인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었고 이때 적용한 카페 내 시스템이 ‘안전 판매자’ 칭호였다.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도입했는데 여태 노력한 결과, 이제는 믿고 거래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우리 카페에서 아이디에 이 표시가 달려있으면 직거래 대신 계좌이체를 할 정도였다.
‘찾아가지 않아도 거래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저렇게 글 한 번만 올려두면 알아서 골드 구매자들이 연락을 해온다. 게다가 내 연락처를 이미 알고 있는 단골 고객들은 글보다 문자 메시지를 먼저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골드만 주면 될 일이다.
인건비가 어마어마하게 절약된 것이다.
“좋아. 아주 좋아! 잘 되어가고 있다고.”
사무실 내의 자판기 캐릭터들. 번창하고 있는 카페의 모습. 정말이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조만간에 서버가 또 늘어나 이제는 4개가 되겠지. 그 전에 나름대로 온라인 거래 비슷하게가 가능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우리 세 명이 일일이 직거래를 다녀도 감당 할 수 없다. 시간부족으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었다. 참으로 천만다행했다.
“이 카페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태식이가 진짜 게임 한정으로는 쩌는 거 같아.”
“내 말이. 번개 맞고 천재라도 된 줄 알았는데 공부는 여전히 나보다 못하더라고.”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짜샤!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교과과정을 아직도 기억하냐?”
“내가 미분적분을 물었냐? 방정식도 몰랐잖아.”
“뉴욕이랑 LA가 같은 데인 줄 알더라고.”
‘아니, 평생 여행이라고는 제주도도 안 갈 놈들이.’
나나 이 녀석들이나 평생 비행기를 탈 일이 없었다. 다른 나라 소식은 ‘걸어서 세계 탐방’이나 연예인들이 ‘정글탐험’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정도로 충분하다. 갈 일도 없는 데 그런 걸 알아둘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소리치고 싶지만 내가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아서.’
그저 생각만 할 뿐이었다. 젊어서 뇌가 싱싱할 때나 학창시절에 공부한 것을 기억하지 나이 먹으면 다 까먹게 될 거라고 말이다.
‘나 역시도 지금이 한창 젊은 상태라는 진실쯤은 가뿐하게 외면해주지.’
원래 관심사는 잘 알지만 아닌 분야는 전혀 모르는 게 보통 사람이다.
“그런 상식은 몰라도 사는 데 상관없다!”
“어휴. 무식한 새끼.”
“책 좀 봐라. 배워서 남 주는 거 아니다.”
“그러는 너희는 운동 안 하냐? 남자가 말이야. 자고로 힘이 있어야지!”
뽀빠이처럼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진수와 성찬이의 몸뚱이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우월함에 콧대를 높이자 패배자들의 변명이 들렸다.
“짐승 같은 새끼.”
“우리가 이해하자. 태식이가 문명인이 덜 돼서 그래.”
“···싸우자.”
“즐!”
낄낄대며 티격태격했다. 그렇게 입금을 비롯한 현실의 업무들을 일단락 시킨 후 플레지에 접속했다.
*
플레지에서 내 영향력은 상당한 편이다. 시세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상이며 골드 소유자다. 성을 독식했고 우리 길드는 서버 최강이라는 명예와 전투력을 보유했다. 적대 세력의 공세는 물론 PK유저들의 한방마저 꺾었다.
‘패권을 부려도 얼추 통할 정도지. 거의 미국 급이잖아.’
과장을 살짝 보태면 경찰처럼 세력을 과시해도 되었다. 신규 유저들을 수호하며 평화로운 서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러나 실현할 수 있음에도 나는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매우 간결하다.
“쟤들이 있어야 내가 돈을 더 벌거든.”
요즘 자주 듣는 탄원이 오늘도 여지없이 도착했다.
접속하자 친구인 지옥검으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이다.
- →[귓속말] 지옥검 : 화패 애들 저렇게 가만히 두어도 괜찮을까?
- →[귓속말] 구운몽 : 글쎄.
화패.
PK집단인 화전민 패밀리는 오크 숲에서 사냥하는 모든 평범한 유저들에게 호환마마처럼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데다가 엘프와 매지션으로 구축한 순간 화력이 대단해서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대로 죽기 십상이다.
열심히 키운 캐릭터의 경험치는 물론 아이템까지 상납하는 처치가 되는 거다. 이렇게 몇 번 당하면 정말이지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 된다. 우리 소속의 길드원 조차도 아차했다가 죽는 사례가 몇 번 있었으니 할 말 다한 셈이다.
단순한 PK유저 한 명 때문에 게임을 접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게 현실이다. 화전민 패밀리와 같은 대단위 규모라면 당연히 게임 전체에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지금도 그들 때문에 화전민 마을은 언제나 사람들이 없이 한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피해를 본 이들이 내게 거듭 요청해오는 것이 있다.
바로 화전민 패밀리의 완전 해체 요구다.
‘하려면 할 수는 있지.’
하지만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늦추는 중이었다. 지난번에 패배시킨 이후로 압박을 은근히 푼 결과, 저들은 기세를 되찾고 게릴라전처럼 산발적인 싸움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전면적으로 나서면 능히 묵사발내고 서버 내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정도다. 이런 데도 더욱 저들이 날뛰기를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쟤들 덕분에 내가 서먼 몬스터를 독식하고 있거든.’
나중에 초대박으로 비싼 몸값을 자랑하게 되는 마법서, 서먼 몬스터.
이 아이템은 단 두 종류의 몬스터가 드롭한다. 바로 바포메트와 가스트다.
바포메트는 초심자의 섬 던전에서 등장하는 극소수의 보스 몬스터다. 희소성이 높으니 계산에 둘 필요가 없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서먼 몬스터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가스트이고 이놈들이 등장하는 오크 숲, 서남부 해안지역이 곧 금광이 된다.
“저놈들 덕분에 이 넓은 지역을 독점하고 있단 말이야.”
권력을 쥔 세력이 사냥터를 고의로 통제한다면 인심을 잃고 자체 내에서도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 대의명분이라는 건 일견 쓸모없지만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데에는 매우 훌륭한 가치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화전민 패밀리는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오크 숲으로의 유저들 출입을 극단적으로 줄여주었고 덕분에 가스트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내게 안겼다.
양팔 저울에 우리 길드와 유저들의 피해를 얹고 반대쪽에 서먼 몬스터로 볼 이익을 달면 후자가 더 무겁게 기울어진다. 때문에 화전민 패밀리를 나는 압박하는 척, 방관 중이었다.
강대국이 북한을 존속시켜주는 기분이 이럴까, 잠시 생각해 본다.
‘하지만 하소연들을 너무 외면하는 것도 무능해 보일 수 있으니까.’
적당히는 움직여 줄 생각이다.
- →[귓속말] 구운몽 : 오크 숲은 엄청 넓은 곳이야. 우리가 쟤들은 잡겠다고 쫓아다녀봤자 시간 낭비야.
- →[귓속말] 지옥검 : 그럼. 저 놈들을 이대로 지켜보자고?
- →[귓속말] 구운몽 : 그건 아니지. 일단 오크 숲은 우리 영지나 마찬가지잖아.
- →[귓속말] 지옥검 : 그럼?
- →[귓속말] 구운몽 : 숲 전체가 아니라, 우리 요새 주변만 정리하자. 화전민 마을로 넘어오는 다리부터 오크 요새의 입구가 있는 수수 밭. 딱 여기까지만 우리가 지키는 거야.
불만을 적당히 해소해주면서 마법서는 꾸준히 챙기는 적정선이었다.
- →[귓속말] 지옥검 : 일종의 순찰구역을 정하자는 거네?
- →[귓속말] 구운몽 : 그렇지. 그 이상은 우리의 역량이 아닌 거야. 괜히 무리했다가는 길드원들만 지쳐.
그간의 공성전에서처럼 나의 전폭적인 의지와 투자만 더해지면 너끈히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 →[귓속말] 지옥검 : 오케이. 그럼 길드원들에게 말한다?
- →[귓속말] 구운몽 : 그래. 나는 서버에 월드 채팅으로 공표할게.
- →[귓속말] 지옥검 : 어? 왜?
‘생색을 내야 사람들이 알아주잖아.’
내심 웃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 →[귓속말] 구운몽 : 이건 우리가 유저들에게 행하는 봉사와도 같아. 사실 우리는 화전민 패밀리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잖아. 조금 귀찮을 뿐이지.
- →[귓속말] 지옥검 : 그야 그렇지······.
자존심은 세우면서도 막상 내 성미를 돋울 정도의 도발은 않았다. 다 정면승부 때마다 제대로 깨부숴준 여파였다.
- →[귓속말] 구운몽 : 그러니 봉사한다는 걸 모두에게 알려야지.
- →[귓속말] 지옥검 : ···그런 건가?
- →[귓속말] 구운몽 : 그런 거야.
- →[귓속말] 지옥검 : 오케이.
의아해하는 친구를 확 잡아 끌었다. 그러자 그러려니 하며 바로 따라왔다.
“정의로운 듯이 이익을 챙기자.”
섹터를 수수 밭으로 한정을 한 것 역시 그곳에는 가스트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주 가끔’은 구경할 수 있다. 수수밭에서도 구울, 가스트, 오우거가 출현하기는 하니까. 하지만 가뭄의 콩 나듯 희귀했고 그런 극소수의 몬스터에게서 드롭율 떨어지는 값비싼 아이템을 얻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그 확률을 뚫고 득템을 한 유저는 하늘이 선물을 준 것이다. 그거 샘내면 벌 받는다.
잠시 후, 골리앗으로 지옥검과 이야기 한 내용을 월드 채팅에 올렸다.
- [월드] 골리앗 : 안녕하십니까? 강한사람들 길드의 군주 골리앗입니다.
채팅창의 잡다한 글들이 뚝 끊겼다.
- [월드] 골리앗 : 신규 지역이 업데이트 된 뒤에도 화전민 패밀리 때문에 오크 숲은 커녕 화전민 마을조차 구경하지 못한 유저 분들이 많으시다는 제보를 들었습니다.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지만 장사꾼을 제외한 글들이 싹 동결되었다. 운영자의 공지처럼 꽤 오랜 시간 남아있는 내 글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 [월드] 골리앗 : 해서. 우리 강한사람들과 좋은사람들은 글말에서 화말로 이어지는 다리부터 오크 요새 주변의 수수밭. 딱 여기까지를 우리 길드의 보호구역으로 지정합니다. 그리고 화전민 패밀리에게 경고합니다.
- [월드] 골리앗 : 앞으로 이곳에 한발이라도 딛지 마라. 화패라는 호칭을 달고 있는 유저는 이곳에 오는 순간 죽는 거다.
- [월드] 골리앗 : 이상입니다.
월드 채팅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버의 모든 유저들이 읽을 수 있었다. 당연히 화전민 패밀리에 소속된 사람들도 보았고 즉각 반박이 터져 나왔다.
- [월드] 매지숑 : 놀고 있네. 지들이 오크 숲의 주인인양 행세하려 들어. 웃기지 마라. 오크 숲의 주인은 너희가 아니라 우리다. 너희야 말로 우리 눈에 띄는 순간 바로 죽는 거다.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실로 당연했다. 겁먹고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는 순간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하지만 첫 부분은 잘 말했어도 뒷부분에서 자충수를 뒀다.
‘주인 어쩌구를 붙이다니.’
플레지는 게임이고 오크 숲은 사냥터다. 유저는 정당한 이용료를 지불하고 즐기는 것이니 아무도 ‘내 소유 지역’이라는 언급을 할 수가 없다. 실상 통제할 정도가 된다손 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꺼내지 말아야 했다.
- [월드] 골리앗 :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크 숲의 주인이 너희라니?
성질대로 움직였다가 내게 좋은 명분을 준 것이다.
- [월드] 골리앗 : 오크 숲은 주인이 없다. 아니. 굳이 주인이 있다고 하자면 플레지를 즐기는 모두가 주인이지.
나는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나섰다, 라고 본심은 숨기고 정의의 가면을 썼다.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기득권자들을 동경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마치 적인 것처럼 분류한다.
‘좋다. 아주 좋아.’
성을 소유한 세력. 그것도 단 두 개뿐인 그것을 독차지하고 있는 길드가 우리다. 강한사람들과 좋은사람들은 대다수 유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질투의 대상이자 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가 몇 마디의 말싸움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기 위해 나섰다, 는 인식을 준 덕분이었다.
- [월드] 매지숑 : 장난하냐? 조금 전에는 오크 숲의 주인인 것처럼 굴다가 그거로 안 될 거 같으니까 이제는 서버 내의 모든 유저들의 대변인인 것처럼 굴겠다?
- [월드] 매지숑 : 아주 잘나셨네. 순간 정치인 보는 줄?
- [월드] 리골라스 : 너야말로 헛소리 하지 마! 골리앗님의 말씀이 맞다! 오크 숲은 네놈들의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강한사람들 길드와 함께 네놈들을 죽이러 가겠다.
- [월드] 벼락망치 : 기다려라! 나도 간다!
불특정 다수의 유저들이 과격하게 호응했다. 이건 내 예상치를 웃도는 정도다.
‘그만큼 저놈들을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겠지.’
기득권인 우리 길드가 작은 악이라면 화전민 패밀리처럼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놈들은 큰 악이었다. 둘 다 똑같이 나쁜 놈들인데 아주 나쁜 놈 옆에 덜 나쁜 놈이 서 버리니 상대적으로 우리가 선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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