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7화 (2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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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성 수성전

이윽고 시간이 흘러 8시 30분이 왔다.

‘9시부터 방어전!’

이제 30분이 지나면 한 시간 동안 칸트 성의 방어전이 시작된다. 길드원들은 내성 내부의 창고지기 앞에 일렬로 섰다. 병참용품이랄 수 있는 각종 물약들을 지원받기 위함이고 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다 책임지는 부분이었다.

나이트와 근접 엘프는 초록물약 15개와 맑은 물약 250개. 원거리 엘프는 초록물약 12개와 주홍 물약 200개, 맑은 물약 150개를 제공한다. 또한 몇 번의 수성전을 통해서 가장 효율적인 분배 및 제공방법을 찾아냈다.

‘내가 이래봬도 군인이었잖아. 경력은 써먹어야지 않겠어?’

군대에서 괜히 제식훈련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나눈 체계와 행동지침은 혼란 상태에서도 일사분란하며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장한다.

근접 격수들은 총 4개의 조로 나누었다. 1조는 튼튼한 방어구를 자랑하는 체질 18의 나이트들이며 이들은 바리케이드를 유지한다.

2조는 1조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바로 그 다음 바리케이드를 치기 위한 예비조다.

“너희가 우리 길드의 방패일세!”

3조는 근접 엘프들로 구성했다. 바리게이트들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보조 궁수의 역할 및 물약 보급을 맡는다. 이를 병행하다가 만일 2조마져 무너지면 그때부터는 근접 격수로 싸움에 참여하게 된다.

마지막 4조는 체질이 아닌 힘 18/02(나중에는 20으로 표기하지만 지금은 19를 18/01. 20을 18/02로 표기가 된다)인 나이트들이다. 근접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물약을 보급하다가 난전이 시작되었을 때 근접 딜러로서 참여한다. 하지만 주된 목적은 엘프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해주면 조직이 살아 움직이게 되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고민한 뒤 판단하는 것. 주어진 목표에 따르는 것.

후자 쪽이 빠르고 간결하다. 만약 각 조의 특색을 정해주고 임무의 순서를 정해주지 않으면 3조와 4조는 보조하기보다는 따로 놀거나 상충되는 움직임을 보일 확률이 높다. 때문에 조직은 크게 움직이되 세분하고 목적은 단순하게 정해줘야 한다.

- 골리앗 : 보급품을 받지 못한 인원이 있습니까?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옥검 : 확인 결과, 전원 보급품 지원 완료했습니다. 좋은사람들 측도 완료입니다.

2진의 길드원들은 처음에만 잠시 마크를 달았을 뿐, 지금은 없앤 상태였다. 저들은 별동대이자 우리의 히든카드다. 공성을 준비하는 적 길드에게 들키지 않아야 했고 특히 보안에 힘쓰고 있었다.

- 골리앗 : 좋은사람들은 귀환해서 칸트 성 북부에 매복하세요. 은신을 마치는 즉시 혈마크를 다시 올리겠습니다. 조만간 적들은 우리의 새로운 가족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부군주는 오늘 전략을 다시 제대로 브리핑 해 주십시오.

- 지옥검 : 알겠습니다.

잠시 브리핑 타임을 가졌다.

다음은 특별한 버그를 사용할 차례다. 이는 공격력 강화 마법인 인챈트 웨폰과 방어력 증가 마법인 브레스트 아머를 사용하고 해당 장비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러면 본래 10분만 유지되어야 하는 효과가 재접속을 하기 전까지 유지된다.

‘게임의 밸런스 붕괴라 할 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쓰기에는 유용했던 버그. 알려지고 나서는 금방 패치 된 거였지.’

2클래스 마법인 인챈트 웨폰은 무기의 공격력을 +2해주고, 3클래스 마법인 브레스트 아머는 갑옷의 방어력을 +3시켜준다. 현재 우리 길드의 엘프들은 최종단계라 할 수 있는 6클래스 마법까지 모두 익혔다.

이들이 장비를 강화시켜준다면 우리는 60분이라는 수성전 시간 내내 마법의 효과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적들은 버프 없이 싸워야 할 것이다.

- 골리앗 : 차례로 장비에 마법을 부여한 뒤 진형을 맞추도록 하세요. 일단 1조 바리케이드를 담당할 나이트부터 받도록 합니다.

서로에게 장비가 오갔다. 고가의 무기와 갑옷들이었지만 이를 탐내는 유저는 없었다. 성주 길드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서로간의 신뢰도가 강하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엘프들을 강화할 차례다.

“사람들은 모르지. 활만이 아니라 화살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은 버그가 아니었다. 그저 인챈트 웨폰의 다른 효용이다. 물론 몇 개월만 더 지나고 나면 대중적으로 전파될 기능이지만 지금은 아는 이가 극히 적다.

잠시 엘프 길드원들도 동료에게 장비를 넘기며 서로 마법을 부여해주었다.

- 골리앗 : 남은 엠은 칠터치와 디텍션에 사용합니다.

칠터치는 4클래스의 마법인 뱀파이어릭 터치의 하위호환 마법이다. 데미지를 주고 일정량 생명력을 빼앗아오는데 2클래스의 마법이라서 위력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마법방어의 개념이 적기에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디텍션!

이는 수성전의 핵심이다.

‘분명히 투명망토를 가진 유저가 있을 거야.’

수성전에서 로열은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싸움은 길드원들이 하는 것이고 나는 권좌만 지키면 된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제아무리 전투를 잘 해도 내가 죽고 이 자리를 빼앗기면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뜻이다.

“이걸 노리고 투망 쓰는 애들이 꼭 나오게 마련이지.”

투명망토는 플레지 최강의 보스 몬스터인 데스나이트가 드롭하는데 착용자가 시야에 잡히지 않게 만들어준다. 이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실명 물약을 먹고 시야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괴물 눈의 고기를 먹는 것이다. 이리하면 ‘감각이 예민해진다’는 메시지와 함께 어둠속에서 유저들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두 번째는 디텍션이다. 이 마법을 사용하면 투명망토 사용자의 투명이 단박에 해제된다. 범위와 편의성 모두 마법 쪽이 낫지만 단점이 있다. 적을 발견했다손 쳐도 상대방이 망토를 해제했다가 다시 착용하면 또 사라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MP를 적잖게 사용해야 하고 마나 관리에 주의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준비한 것들이었다. 이를 완료하니 시간은 오후 8시 50분이 되었다. 이제 10분후면 공성전이 시작된다.

- 골리앗 : 지금부터 일체 외창금지령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단, 바리케이드를 유지하고 있는 나이트들이 물약 보급을 위해 ‘ㅁㅇ’을 치는 건 예외로 합니다.

일반채팅은 물론이고 외치기와 월드채팅 모두를 금지시킨다. 앞으로의 대화는 모두 길드 채팅으로만 이루어진다.

- [길드] 골리앗 : 지휘관분들 들으세요.

체질 나이트는 검.

힘 나이트는 구두룡검.

근접 엘프는 비전.

활 엘프는 분노의활질.

이들이 각 그룹의 지휘관이다. 남은 창단멤버인 범과 세이하는 나를 경호하며 측근에서 함께 싸운다.

- [길드] 골리앗 : 이번 수성전은 사상 최대의 적을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우리는 당연히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죽는다면 이는 매우 커다란 손실입니다.

지금의 레벨에서 경험치 10% 손실은 정말 엄청난 수치다. 만의 하나로 장비라도 떨어뜨린다면 손해는 물론이고 비명을 질러댈 만큼 화가 날 것이다.

- [길드] 골리앗 : 아무도 죽지 않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지휘관분들이 노력하겠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 [길드] 검 : 알겠습니다.

- [길드] 구두룡검 : 예!

- [길드] 비전 : !!!!

- [길드] 분노의활질 : 옙!

- [길드] 골리앗 : 갑시다! 서버 최강의 길드가 우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또 보여줍시다.

박력 가득한 길드원들의 대답들이 이어졌다.

이어지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나는 자부했다.

“현 시대에 이렇게까지 플레지하는 새끼는 나밖에 없다.”

*

『윙크 길드가 칸트 성에 공성전을 선포하였습니다.』

『3DKnight 길드가 칸트 성에 공성전을 선포하였습니다.』

『ACE 길드가 칸트 성에 공성전을 선포하였습니다.』

...

『사신 길드가 칸트 성에 공성전을 선포하였습니다.』

칸트 성 앞에 모인 수많은 길드의 공성전 선포와 함께 전쟁이 시작 됐다. 나는 좌호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귓속말] 골리앗 : 지금부터 진짜 싸움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을 겁니다.

- →[귓속말] 좌호법 : 기대하지. 그런데 보니까 적의 숫자가 너희의 몇 배는 되는 것 같은데? 정말 이길 수 있나?

- →[귓속말] 골리앗 : 그러니까 진짜 싸움인 겁니다.

포지션을 확실하게 잡은 채로 적들의 공격을 기다렸다. 곧이어 물밀 듯이 밀려온 적들이 공성전의 시작과 동시에 외성문을 파괴했다. 한데 거기서 더 들어오지 않고 빠지는 것이 아닌가. 사거리 끝에서 엘프들이 활만 쏘고 말이다.

“오호라.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겠다?”

노림수가 바로 보였다.

공성전에 참여할 정도의 길드며 고레벨의 엘프 유저라면 당연히 3클래스까지의 모든 마법을 배운 상태이다. 그리고 같은 버프마법을 통해 우리 쪽에서도 아군의 나이트와 엘프들이 강화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저들은 전략을 짜고 왔다. 10분 대기였다.

‘강화 마법의 유지시간이 끝난 뒤에 본격적인 공격을 시도하겠다는 거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리 길드원들에게 부여된 마법은 풀리지 않는다. 버그의 존재까지는 알지 못하기에 일어난 적들의 판단 미스인 셈이다.

“10분은 공짜로 벌었다.”

총 한 시간의 공성전에서 10분이 흘러간다. 내 입장에서는 파안대소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좋다.

이윽고 칼같이 10분이 딱 지나자 본격적인 싸움이 이루어졌다.

- [길드] 검 : 상대 나이트들이 들어옵니다. 준비!

- [길드] 분노의활질 : 장비 좋은 나이트부터 점사합니다.

화살과 마법. 검의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곳곳에서 물약이 번쩍였고 캐릭터들의 비명이 이어진다.

- [길드] 분노의활질 : 절대검혼! 절대검혼부터 점사!

활 엘프들의 지휘관은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가 강력한 적을 잘 지목해서 보내버려야만 전투가 쉬워진다.

‘그리고 분노의활질은 많은 사람들의 수준을 잘 알고 있지.’

아이디와는 달리 검과 활 모두를 사용하며 +8 엘프족 검을 장비한 채 1대 1 결투를 즐기는 유저. 사냥만큼 대결을 좋아하기에 그는 고수급 유저 대부분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그 눈썰미를 바탕으로 강자를 시기적절하게 잘라내 주었다.

근접 3조, 4조에 속한 엘프와 나이트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초반부터 몰아치는 상대의 화살세례에 아군의 물약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 검과방패 : ㅁㅇ

- 지옥검 : ㅁㅇ

적들 역시 우리 쪽의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기 위해 화력을 집중했다.

‘생각보다 적이 더 많아. 1조와 2조에 물약을 더 보급해야겠어.’

예상범위 안이다. 그래서 추가할 물약까지 보유해두었다. 다만 애초부터 지급하지 않은 것은 무작정 보급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서 유동성 있게 조절하기 위함이다. 쓰는 사람들한테야 공짜지 나에게는 피 같은 돈들이다.

“쓸 때는 팍팍 쓰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게 좋다.

- [길드] 골리앗 : 4조의 나이트들은 길드창고에서 물약을 더 챙겨오도록 하세요. 추가 물약을 오픈합니다.

- [길드] 구두룡검 : 네!

보급조의 나이트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 속도가 전부 다 돈의 힘이다.

‘우리는 촐기를 죄다 빨아먹는다.’

타 길드는 진짜 전투를 할 때에만 초록 물약을 사용한다. 지금도 외성 밖에 있는 많은 인원들이 촐기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다. 심지어 아군의 나이트들에게 활 공격을 하는 엘프들 중에도 꽤 많은 숫자가 물약을 먹지 않은 채였다.

때문에 우리는 베스트지만 적들은 편차가 있다.

“이게 자본주의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그만큼 확실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 절대검혼 : 제기랄!

- [길드] 분노의활질 : 절대검혼 귀환! 남도검객 점사! 남도검객 점사!

- 남도검객 : ···빠진다.

- 나이트웨인 : 이 자식들 뭐야? 왜 이렇게 쎄?

- 온달장수 : 안 뚫려!

다른 길드는 단체전을 훈련하지 않지만 우리는 주기적으로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성주 길드의 혜택과 역할, 책임을 완수한다. 때문에 전투 단합력에서 어떤 길드보다도 단연코 우월했다.

상대 근접 나이트들이 계속해서 우리 바리케이드를 뚫어보려 노력하지만 쉽사리 뚫릴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제 30분. 1조가 잘 버텼어.’

적들이 우리보다 10배는 많다. 그러나 어차피 공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저들은 뭉쳐있다손 쳐도 그룹마다 다른 길드이었다. 공통의 적을 두고 잠시 손을 잡았을 임시 관계이기에 단합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야.”

아무리 고가의 맑은 물약을 쉴 틈 없이 먹어댄다고 해도 한계는 존재한다. 물약의 회복속도보다 소모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결국 체력의 한계가 찾아왔다.

‘상대는 귀환주문서를 해도 바로 다시 전장에 참여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마을에 가는 순간 끝이야. 어떻게든 살려서 인원을 유지해야 해.’

무리에서 버티다가 죽게 되면 그 손해가 더욱 크다.

- [길드] 골리앗 : 1조 바리케이드 해제.

다음 지시를 내렸다.

- [길드] 골리앗 : 2조 바리케이드를 시작합니다.

1조의 바리케이드는 2명이지만 2조의 바리케이드는 4명이다. 장비가 다소 떨어지기에 수로 보강한 것이다. 그러나 방어력이 부족해도 적들의 공격이 4명으로 분산되는 만큼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1조가 2조의 뒤로 빠졌다. 길을 뚫었다는 생각에 적대 길드원 몇 명이 1조를 따라서 외성 내부로 침입했다.

‘멍청이.’

그들은 자신들이 성을 뚫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엄연히 실수다.

- [길드] 구두룡검 : 불꽃남자부터!

- [길드] 비전 : 우리는 안티푸라맨을 잡습니다!

고작 몇 명이 들어온 것. 활 엘프들이 점사할 필요도 없었다. 저들은 3조와 4조에 의해서 정리되었다. 또한 적들의 작은 실수들은 우리에게 유리함을 안겨준다.

“일단 저 셋이 남은 적들 중에는 꽤 강한 편일 테니까.”

적들의 랭커들을 내쫓은 뒤 벽을 유지하며 버틴다. 10분이 흘러 공성전 개시 후 40분 째에 돌입했다. 귀환시켰던 유저들이 재합류하며 2진에게 슬슬 한계가 찾아왔다.

- [길드] 골리앗 : 외성 오픈. 뒤로 빠집니다. 이제 내성에서 바리케이드를 칩니다.

내성의 입구 계단. 총 네 명이 설 수 있는 장소다.

옆면에는 계단의 난간이 있었는데 이곳은 게임 시스템상 공격이 되지 않는다. 방어하기에는 사실상 외성보다 더 좋은 지리적인 조건이었다. 3차로 벽을 치고 강력하게 버티자 처음과는 그 기세가 한층 줄어든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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