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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검
“또 졌어! 와 진짜 할 말이 없다.”
“너 솔직히 말해. 전역 언제 했어?”
“군바리 무시하지 마라.”
“아놔··· 진짜 둘이서 한 명한테 지고 이게 말이 돼?”
“아니! 잠깐!”
열불을 내고 나는 키득키득 웃는 그때, 성찬이가 쾌재를 불렀다.
“진수야. 나한테 좋은 생각이 났다!”
“뭔데?”
“태식이가 잘하니까 같이하면 우리는 배틀넷에서도 이길 수도 있어!”
“어? 오오?! 굿 아이디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씩씩대던 진수의 얼굴이 급 밝아졌다.
“너네 배틀넷 해봤었냐?”
“어. 완전 개 발렸지.”
“쉬벌.”
‘어이쿠. 당연하지.’
아무리 시대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없는 때라고는 하지만 내 친구들은 게임에 대한 이해도부터가 글러먹었다. 하지만 어쩌랴? 불쌍한 친구들을 위해 오늘 하루만 희생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가 공장보다 훨씬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줄게. 그쪽보다는 이게 더 앞날이 창창하다고.’
사람이 필요한 지금 내 상황과 놀고 있는 친구들이니 서로에게 상부상조할 수 있다. 친구들이 공장에서 일하며 짱짱하게 잘 나간다면 혹 모르지만 꿈속의 나나 이 녀석들 모두 한국의 흔한 직장인에 지나지 않았다.
즐기며 돈 벌수 있는 직업이 생기는 셈이니 이야말로 윈 윈이다. 그렇게 우리는 배틀넷에서 3대 3플레이를 했고 결과는 3승 2패였다. 트롤 두 명을 데리고 하는 어려움을 몸서리처지게 느꼈지만 수확은 있었다.
“처음으로 이겼어!”
“좋아! 고고고!”
친구들이 매우 기뻐했다.
17. 골리앗의 검
『*서버이름 공모전 당첨자 발표*
안녕하십니까? 플레지 운영팀입니다. 여러분의 호응에 힘입어 서버명을 찾아라 이벤트가 성황리에 무사히 종료되었습니다. 플레지에 어울리는 서버 명을 보내주신 한 분을 발표해 드리려 합니다.
우선 앞서 한 가지 말씀드릴 사항은 동일한 서버 명으로 응모하신 분들의 경우 가장 먼저 보내주신 분을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첫 번째로 응모하셨다 해도 계정 정보가 누락되었을 경우 당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당첨자>
계정 : tsroyal75 서버 : 켄헬(2서버)
보상 아이템은 [골리앗의 검]입니다. 해당 계정 내에서 레벨과 접속률이 가장 높은 로열의 이름을 적용하였으며 [골리앗의 검]은 +9 강화까지 안전하게 인챈트가 가능합니다. 보상 장비는 접속과 동시에 인벤토리로 지급될 예정입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플레지에 어울리는 서버의 이름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상대로 당첨자 발표 공지가 나왔다. 그리고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는 난리가 났다.
“꽤나 그럴 듯한 음모론이 판을 치는군.”
이벤트 발표 공지에 직접적으로 내 아이디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버젓이 써있는 골리앗의 검을 보고서 당첨자가 누구인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성을 소유한 로열 유저인 골리앗은 현재 켄헬 서버 내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디다.
가뜩이나 잘 나가는 놈한테 상품이 더해졌다. 당연하게도 의심의 여론이 속출했다.
「플레지 운영팀 보시오.
솔직한 말로 우리는 당신들과 강한사람들 길드의 로열 사이에 모종의 협약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소.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유저의 숫자가 족히 만 명은 될 거요! 그런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이면 2섭의 성을 가진 로열이 당첨된 것이오!? 말만 공모전이지 사실상 뒤에서 커미션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매우! 의심스럽소!」
서버별 게시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모두가 함께 글을 올리고 대화할 수 있는 자유게시판만이 있을 뿐이다.
이곳에는 공모전의 결과를 의심하는 글을 시작으로 ‘가뜩이나 성주인데 보상 아이템까지 먹었으니 더 강해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와 ‘일반 유저가 당첨됐으면 현금으로 얼마를 주고서라도 구매했을 텐데 아쉽다.’는 게시물들이 쇄도했다.
“미래나 지금이나 의심병 환자들은 많았나봐.”
맹세코 게임사와 모종의 협약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앞날의 정보를 이용해서 가장 먼저 제출했을 뿐이다. 편법이기는 하지만 저들이 의심하는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것이다. 아울러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화제였다.
‘사람들이야 어차피 그냥 이슈를 좋아하는 것뿐이니까. 금방 조용해 질 테니 내가 해명할 필요는 없지. 오히려 그러는 게 더 불화를 키우는 거거든.’
기쁨을 누리기로 했다. 나는 생일날 선물 상자를 풀어보는 아이의 심정으로 골리앗 계정에 접속했다. 곧 아이템이 보였다.
「골리앗의 검」
타격치 11/12. 비록 공격성공은 붙어있지 않지만 한 손 검중에서는 앞으로 꽤 오랜 시간 최고의 자리에 버티고 있을 명품 무기였다. 특히 작은 몬스터들에 대한 타격치로는 넘버 원 급이다.
“동일한 수치의 레이피어가 나오긴 하지만 그건 큰 몬스터의 타격치가 6밖에 안되니까. 앞뒤 따져보면 내 칼이 제일 좋다는 말씀!”
이제 아낌없이 강화를 할 차례다. 이 특별한 아이템을 강화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둔 것들이 있었다. 무기 강화 주문서. 그 중에서도 멋진 광채로 둘러싼 축복받은 녀석들을 챙겨뒀었다.
조만간에 사라질 시스템이지만 보통의 무기에 축복 받은 주문서로 아이템을 강화하면 일정 확률로 해당 아이템에 축복이 서리는 기능이 있었다. 물론 아이템의 성능이 껑충 뛰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다. 그냥 일반 아이템보다 예쁠 뿐이다.
‘8년 뒤에는 악마형이나 언데드 몹에게 추가 타격을 입히게 되지만 그때까지 이 장비를 쓸 일은 없겠지.’
그 시기에는 훨씬 더 좋은 아이템이 넘치고도 넘치게 된다. 이런 비효율적인 상황임에도 축복을 받게 하려는 이유는 딱 하나다.
“멋지잖아.”
폼. 오직 그 하나를 위한 것이다.
축복받은 강화 주문서는 +1만 강화해주는 일반 데이와 달리 운에 따라서 +2 혹은 +3이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0~2강의 아이템에는 최대 +3이 적용되지만 3~5강의 장비에는 +2가 마지노선이고 6강 이상의 아이템에는 +1씩만 강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게임사에서 발표한 확률이나 통계는 아니었다. 유저들이 경험으로 쌓은 데이터이며 십중팔구는 이 확률에 맞아떨어진다.
“이제 축데이를 발라 봅시다. 첫 번째 도전!”
스르륵-!
“에이. 3이 뜨기를 바랐었는데.”
+0이던 골리앗의 검은 축데이를 바르면서 +2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축복을 받지도 못했다. 평타만 친 셈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많은 주문서가 남아있다. 넘치는 골드에 힘입어 연거푸 축데이를 발랐다.
“다시 도전.”
「+3 골리앗의 검」
달랑 1만 강화가 되었다. 축복 부여도 여전히 실패!
“와. 이거 너무하네.”
다시 한 번 시도했다.
「+5 골리앗의 검」
2가 올랐지만 여전히 검에는 축복이 서리지 않았다.
“이거 끝까지 축복 주문서로 발라야 하는 거 아냐?”
어차피 확률성 도박이지만 내 계정은 득템을 밥 먹듯이 할 만큼 축복 받지 않았던가. 기대가 있었는데 살짝 의심이 되었다. 구운몽이 복 받은 놈이고 골리앗은 보통 녀석이라고 말이다.
‘간지 하나 챙기려고 골드가 꽤 깨지는군.’
일반 ‘데이’주문서만 사용해도 골리앗의 검은 무난하게 9강까지 강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축복 주문서를 바르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플레지 내에서 큰손에 속하는 나에게 이쯤은 어렵지 않다.
“최고의 컬렉션을 위해 다시 간다. 도전!”
「+7 골리앗의 검」
“한장 더!”
「+8 골리앗의 검」. 여전히 축복은 받지 못한 상태다.
“징하네.”
+9 이상은 무기의 증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제하는 편이 낫다. 이제 기회는 단 한번만 남은 셈.
“뜨면 좋고 아니면 그냥저냥 9검써야지.”
돈의 압박 없이 무심한 듯 심플하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리고 마지막 데이의 황금빛은 「+8 골리앗의 검」을 「+10 ‘축복 받은’ 골리앗의 검」으로 탈바꿈 시켰다.
“성공이다! 그런데 10이라고?”
분명히 +8에서 강화를 했다. 이런 것을 하면서 실수를 할 리가 만무하다. 당연히 +9가 되어야 하는데 결과물은 +10이다.
“버그인가? 아니면 그냥 오류?”
유저들의 통계에서 +6부터는 아무리 축복 받은 데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1강화만 성공하게 된다. 그래서 축데이의 가장 일반적인 용도는 +5에서 사용하여 +7을 노리는 것이었다.
만약 실패하면 ?1로 강화 수치를 떨어뜨리는 저주 데이를 사용하여 +5로 만든들었다가 다시 축데이를 발라서 +7을 노렸다. 그런데 윗 단계에서 고강화가 되어버린 거다.
‘모두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사실은 +6이상에서도 +2나 혹은 +3의 강화가 나올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확률이 극악해 지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던 것이고 말이다. 혹은 이벤트 아이템인 골리앗의 검이 가진 특별한 기능일수도 있다.
‘나중에 동네지존 이벤트가 나오면 그때는 우승자랑 길드원에게 모두 이 칼을 한 자루씩 지급하니까. 그때 얻으면 다시 시도해봐야지. 어쨌거나 나는 좋다는 말씀~!’
플레지 최초로 10검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축하기로 한다. 그즈음 길드원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 [길드] 범 : 어? 군주님 접속하셨네?
- [길드] 범 : 군주님! 지금 홈페이지 난리 났던데요? 알고 계시죠?
- [길드] 지옥검 : 아니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뭡니까? 그거 군주님 맞습니까?
다들 아는 사이지만 귓속말할 때와는 달리 길드 채팅에서는 내게 존대를 한다. 권위나 위계질서를 위한 부분이었고 때문에 지옥검도 어투가 달라져 있었다.
- [길드] 골리앗 : 저 맞습니다.
- [길드] 범 : 대박! 와. 어떻게 구경 되요?
‘어떻게 구경 되냐니? 한국어가 맞나?’
의미 전달이야 됐지만 역시 채팅어는 제2의 한국어로 발전될 소지가 다분하다.
“구경이야 어렵지 않지.”
바로 답변해주었다.
- [길드] 골리앗 : 그게 어려울 거 있나요? 당연히 됩니다. 마침 강화도 마쳤어요.
- →[귓속말] 지옥검 : 야. 그럼 +9강화까지 다 한 거야? 진짜로 9강까지 검 증발 안 해?
- →[귓속말] 골리앗 : 궁금하냐? 와서 봐라.
나도 모르게 지나간 개그인 ‘궁금하면 오백원!’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꿈에서야 지나간 유행어이지 여기서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유머다.
- [길드] 범 : 어디세요?
- [길드] 골리앗 : 혼자 한적한 곳에 있었는데, 지금 성으로 갈 겁니다.
- [길드] 범 : 네! 저도 성에 가겠습니다!
- [길드] 검 : 저도 보고 싶은데 지금 섬이라서··· 혹시 나중에 시간 되면 볼 수 있겠습니까?
검이까지 보고 싶다고 할 정도이니 확실히 이름을 딴 이벤트 아이템이라는 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 [길드] 골리앗 : 이 검은 군주 캐릭터 말고 구운몽이 사용할 예정입니다. 검처럼 지금은 구경 못하시는 분들은 차후에 구운몽 쪽으로 메시지 보내주세요.
외부에서는 아직 골리앗과 구운몽의 관계를 모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나의 메인 캐릭터가 나이트인 구운몽이라는 것을 공개한 상태였다.
비밀유지중인 자판기와는 다르게 이것은 공개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둘 다 내 캐릭터라는 것을 모를 경우 나는 매우 나태하고 드문드문 게임하는 로열이 되어서였다.
‘일하지 않는 상사를 어떤 직원이 좋아하겠어.’
이는 길드원들의 결속력을 헤칠 수 있다.
칸트 성으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 골리앗 : 다들 사냥은 안하시고 구경 오신 겁니까?
- 분노의활질 : 지금 사냥이 문제입니까? 전 서버 유일의 검이 등장했는데 구경해야죠.
- 악마혈 : 맞아. 대체 어떤 검인지 궁금해서 집중이 안 되더라니까요?
- 지옥활 : 군주님 접속하시기만 계속 기다렸습니다.
- 지옥검 : 다들 말을 못해서 그런 거지 이미 몇 사람은 군주님이 여기 오신다고 하기 전부터 그냥 성에서 죽치고 기다렸습니다.
말은 필요 없다. 얼른 보여주기나 하라는 듯 다짜고짜 달라붙어서 교환창을 시도했다.
- 골리앗 : 가장 먼저 이 검을 보게 되는 기회를 얻는 사람은 범님입니다. 검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신 분이니,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범 : 오예~!
“주는 거 아닌데 저리도 좋을까.”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고 순서가 빠를 따름인데 뭐가 그렇게 좋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내 심정도 상당히 뿌듯했다.
교환창을 열어 골리앗의 검을 확인시켜주었다. 곧 범이 소감을 알려주었다.
- 범 : 어버버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낭ㅁ니ㅏ재뱌얌
- 지옥활 : 뭐야? 왜 그래? 엄청 좋아?
- 분노의활질 : 뭐지? 진짜 대박 좋은 건가?
외계어를 남발하다가 뚝 그쳤다. 그리고 간단히 말했다.
- 범 : 이건 그냥 보셔야 합니다.
- 지옥검 : 왜 그러는 거야? 혹시 싸울아비 장검보다 더 좋은 건가?
- 범 : 그냥 보세요.
그렇게 이곳에 모인 모두에게 검이 공개되었다.
- 지옥검 : 맙소사...대아럼ㅇㅈ매ㅑ어[email protected]#ㅤㅏㅁ너갸[email protected]#
가장 마지막까지 기다려주었다가 검을 확인한 지옥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 이들이 놀란 이유는 골리앗의 검이 가진 능력치가 아니다.
- 범 : 와. 우리 군주님 진짜 엄청난 대인배 아닙니까? 이 검을 9에서 한 번 더 지를 생각을 하시다니!
- 지옥검 : 하마터면 검 구경도 못하고 사라질 뻔했던 거 아닌가?
- 악마혈 : 10검이라니··· 아무리 9강까지 그냥 다이렉트로 가능한 거라고는 하지만··· 10검이면 서버 최초 아닌가?
- 지옥검 : 최초지. 아직 서버에 9검도 열 자루가 안 되는데.
아직 랭커라는 개념이 제대로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랭커를 뽑는다면 그 안에 반드시 들어갈 유저가 지옥검이다. 그런 녀석의 장비조차 +8 카타르라는 게 현실인데 내가 +10검이니 다들 입이 떡 벌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 지옥검 : 에잇! 10검이라니! 나만 패배자가 된 거 같아!
녀석은 그 말과 함께 귀환 주문서를 사용해서 휙 사라졌다.
- 악마혈 : 지옥검 쟤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은 모양인데?
- →[귓속말] 골리앗 : 야. 갑자기 어디 가냐?
- →[귓속말] 지옥검 : ······
답변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행적이 어떤지는 다른 컴퓨터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자판기 캐릭터 앞에 나타난 지옥검이 무기 강화주문서를 구매한 것이다.
“지르려고? 저러다 날리면 어쩌려고?”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자판기에서 9만 골드를 건넨 지옥검은 바로 강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길드 채팅창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