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타 드래프트
뜬금없는 배를 보고 초보 유저들이 두런두런 대화했다.
- 비루비루 : 저 배는 뭐에요?
- 스타지존 : 저기서 플레지 초섬 최강의 몹이 내린대요.
- 비루비루 : 최강의 몹이요? 그럼 저 배에서 셀롭이 내리는 거예요?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이 섬에서는 그만큼 셸롭의 입지가 막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하도 뉴비들이 셸롭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선착장 상인이 셸롭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대화창이 따로 생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몇 배는 강력한 커프의 등장을 맞이할 차례다.
- [외치기]흑기사 대장 [커프] : 이곳이 '초심자의 섬'인가···
금빛의 빛무리와 함께 커프와 그의 부하인 흑기사 1, 2, 3, 4가 등장했다. 진짜로 이름 뒤에 흑기사 1, 2, 3, 4라고 숫자가 붙어있었다. 무슨 영화판의 엑스트라처럼 여겨지겠지만 저런 방식도 이 시기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 [외치기]흑기사 대장 [커프] : 자, 일단 섬을 한번 돌아보기로 하자.
- [외치기]흑기사 1 : 예! 현재로써는 특별히 수상한 녀석은 보이지 않습니다.
- [외치기]흑기사 대장 [커프] : 내 말해두지만 함부로 아무에게나 칼을 대지 말도록 하라.
- [외치기]흑기사 2 : '특별히' 수상한 자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바꾸어 말하면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어딘가 '조금씩'은 수상합니다.
흑기사대장 커프는 지난 이벤트때 마주했던 데빌스피릿과 동일한 외형이다. 그 주변에 새까만 흑기사들을 대동한 덕분에 순백의 갑옷을 입은 이 보스 몬스터는 꽤 도드라져 보였다. 잘 빠지게 디자인된 멋지고 듬직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 비루비루 : 쟤네들 지금 대화하는 거 맞죠?
- 스타지존 : 무슨 이벤트가 따로 있으려는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모습은 구경하는 이들에게 꽤 신선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유저들이 새로운 보스의 패턴을 구경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 쑥맛칸초 : 선공아닌갑네. 저거 잡으면 좋은 거 나오겠죠?
- 쯔꾸루 : 같이 잡지요? 다구리 치면 될 거 같은데.
- 피콜록 : 섭 최초니까 대박템 떨굴 듯! 빠샤!
대사만 하는 모습이 만만해 보인 걸까. 한 매지션이 에너지볼트를 날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난리가 펼쳐졌다.
- [외치기]흑기사 대장 [커프] : 한 번 마주했음에도 상대방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하다니. 어리석은 자들이구나.
- [외치기]흑기사 3 : 버릇없는 것! 이분이 누구신줄 알고 공격하는 거냐!?
흑기사들과 커프는 동족의식이 있는 몬스터다. 다섯 중 누구라도 건드리면 대상을 일점사한다. 공격력과 속도도 그렇지만 흑기사들의 최대 장점은 랜스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거리가 한 컨 더 길기에 초보들을 쓸어버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 공격했던 매지션은 물론이고 동조해서 한 몫 챙기려던 엘프와 나이트까지 케찹을 뿌려댔다. 무려 다섯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고 동선마다 유저들이 죽어나가니 이 역시도 꽤 장관이다.
한편 어중이떠중이들이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고레벨 유저들도 있었다.
- →[귓속말] 구운몽 : 대충 물갈이 됐으니까 얼른 커프한테 붙자.
흑기사들의 주변에는 50명이 넘던 유저들이 다 빠지고 예닐곱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이번에도 명당자리를 잘 선점해야 잡아놓고 엄한 놈한테 뺏기는 사태를 예비할 수 있다.
- →[귓속말] 지옥검 : 오케바리. 근데 엄청 센 거 아닐까?
- →[귓속말] 구운몽 : 저것들 보기보다 약함. 우리 둘이도 가능할 정도임.
- →[귓속말] 지옥검 : ㅇㅇ
흑기사는 레벨 15의 몬스터다. 셸롭 만큼이나 빠른 이동속도와 강력한 공격력을 가졌지만 의외로 체력이 낮았다. 때문에 몇 대 맞고 겁먹었다가 물약좀 먹다보면 ‘어라 잡았네?’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실제로 초보들 사이에서 무쌍의 위용을 자랑하던 커프 패거리는 남은 유저들의 공격에 삐걱삐걱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끝나버렸다.
- [외치기]흑기사 대장 [커프] : 커헉!
남은 것은 누가 줍느냐의 승부. 여기서 내 캐릭터인 구운몽이 쓰러진 커프에게 인사하듯이 허리를 숙였다.
철컥.
아이템 획득 사운드까지 들렸다.
“나이스! 역시 게임의 재미는 득템이지~”
바로 확인에 들어가자 요즘 가장 핫한 이슈 아이템이 보였다.
「반사 방패」
“지화자! 좋구나!”
현재 나이트에게 절대로 없어선 안 될 방패로 잘 알려진 물건이다. 물론 내 계획에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유저들에게 팔아서 골드를 챙기기에는 안성맞춤인 아이템이었다.
‘반사방패는 지금 부르는 게 값이거든.’
가격거품은 금방 빠지겠지만 지금 팔면 아주 큰 이익이 된다.
- →[귓속말] 지옥검 : 에이씨! 또 꽝! 넌 어때? 또 뭐 먹은 거냐?
- →[귓속말] 구운몽 : ㅇㅇ
- →[귓속말] 지옥검 : 설마 반방은 아니지?
- →[귓속말] 구운몽 : ㅇㅋ 반방 먹음.
- →[귓속말] 지옥검 : ······
갑자기 마침표만 찍고 아무런 말이 없어진다.
- →[귓속말] 구운몽 : 왜 그럼?
- →[귓속말] 지옥검 : 나 너랑 못 다니겠다.
- →[귓속말] 구운몽 : why???
- →[귓속말] 지옥검 : 배 아파. 똑같이 잡았는데 왜 먹는 놈만 계속 먹는 거야? 이거 열 받아서 같이 다니겠냐. 게다가 먹은 게 죄다 희귀하고 대박인 것들이고. 그걸 무려 2개나 득해버리다니··· 와··· 이거 진짜 당황스럽네. 대단하다.
- →[귓속말] 구운몽 : 부럽냐? ㅋㅋ
- →[귓속말] 지옥검 : 당연히 부럽지! 제길! 왜 나는 못 먹는 거지!?
- →[귓속말] 구운몽 : 그야 내가 완전히 운이 좋은 축캐니까.
지금이야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한국게임을 다들 이리 말한다. 운빨좆망겜이라고. 도박판에서 장난처럼 떠도는 운칠기삼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게임은 운이 30%고 자본이 70%인 게임이 된다.
‘인심 써서 노력점수를 3% 넣어줄까. 별 차이도 없겠지만.’
꿈속의 나는 이를 욕하는 부류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그렇게 흘러갈 게임산업의 미래를 보고 지금 노력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원래 비정상적인 시스템은 위쪽을 선점할수록 그 열매를 독식하는 게 가능했다.
- →[귓속말] 지옥검 : 그거 설마 팔 거 아니지?
- →[귓속말] 구운몽 : 팔건데?
- →[귓속말] 지옥검 : 그걸 판다고? 야. 나중에 구하려고 하면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아이템인데, 그걸 왜 팔아?
“아니. 구하기 쉬워.”
지금 반사 방패가 초고가가 된 이유는 네크로맨서를 지키는 두 마리의 괴물 눈에게 저항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이트가 엘프족 방패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당장 필요하게 된 이유가 더해져서다. 하지만 이는 조만간 업데이트 되며 반사 방패의 거품은 단번에 빠져버린다.
‘즉, 지금 착용하면 호구란 거야.’
마음 같아서는 지옥검과 검이 들고 있는 것도 설득해서 팔아버리게 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저들에게 앞날의 업데이트 동향을 알려준다는 것은 미련하고 멍청한 생각이다. 자칫 내부거래자로 보일 테고 이는 득보다 손해가 훨씬 컸다.
“어쨌거나 잠깐 섬에 왔다가 용돈 벌이 제대로 하고 가네.”
현금으로 따지면 순간이동조종반지는 약 33만원. 반사방패는 약 25만원. +6 엘프족 활은 약 4만원이다. 총 62만원이니 짭짭하게 벌었다 자부한다.
‘맛있는 거 사가야지.’
집에 갈 때 정육점에 들를 예정이다. 가족과 소고기로 든든하게 한 끼를 먹어야겠다.
16. 스타 드래프트
사실 99년에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머드게임. 또는 머그게임에 그래픽이 씌워진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바람의 왕국이나 플레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터페이스 부분을 보면 딱 나오거든.’
게임 자체로만 볼 때는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유저 인터페이스 부분을 보면 미흡한 점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
“완전히 채팅창 중심이야.”
주목도가 플레이 화면보다 채팅에 접합하도록 설계되었다. 때문에 HP와 MP의 남은 수치는 긴장하고 보아야 한다. 방심했다가는 자신의 체력이 얼만큼 있는지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경험치 게이지에서는 더욱 답답해진다.
‘이게 올라가고 있기는 한 거야?’
구운몽이 49레벨을 달성하자 좁쌀 만 한 경험치 막대는 미동조차 않게 되었다. 얼만큼 오르는지 제아무리 눈을 부급뜨고 봐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니 의욕도 안 생기고 괜히 제자리만 맴도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어쩐지 죄다 49레벨에서 멈추더라.”
50레벨은 훨씬 경험치 획득이 많은 용의 협곡이 업데이트 된 후에야 가능할 것 같다. 나는 나중을 기약하며 잠시 바깥 산책에 나섰다. 집에서 컴퓨터만 붙들고 있으면 건강을 잃기 십상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관리하는 거야.’
너무도 뻔해서 지겹기까지 한 말이 있다. 공부를 잘하려면 노력하고 집중해라, 살을 빼고 싶으면 덜 먹어라 등등이 그렇다. 하지만 갖고 있을 때는 마냥 내 소유일줄 알고 방만하게 지내기 일쑤다.
나는 아니다. 꿈에서 각종 성인병에 찌들었던 생생한 경험이 있기에 그리 될 바에는 이까짓 것, 덜 먹고 더 움직이고 규칙적으로 사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잘 안다. 더군다나 몸짱에 힘짱이 되려고 기름기 쫙 뺀 캔 참치나 닭 가슴살을 먹는 일도 아니다.
“미래를 알면서도 겨우 공원 몇 바퀴조차 못 돌면 얼간이지.”
스트레칭 후 가볍게 걷기. 이어서 천천히 뛰기를 시작했다. 옆사람이 빠르게 걸으면 충분히 따라잡힐 만큼 부담없는 속도였다. 그러며 차후 있을 일들과 계획을 점검했다.
일단 당분간 돈이 되는 아이템들은 잘 활용해왔다.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쭉 지금처럼 하면 된다.
‘다음 투자할 종목은 마법서랑 보석이지.’
매지션이 지금 익힐 수 있는 마법은 3클래스가 전부다. 그러나 다음 달이면 4클래스 이상의 마법서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법의 시대가 시작된다. 물론 매지션이라는 클래스만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고가의 핵심 마법을 익혀야만 한다.
‘뱀파이어릭 터치와 이럽션. 그리고 서먼 몬스터.’
매지션은 로열 못잖게 키우기 까다로운 클래스다. 육체적인 능력은 프린스보다도 떨어지고 MP의 틱은 고작 3이다. 마법을 몇 번 사용하면 MP 고갈로 더는 쓸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칼질 하는 일이 더 많거나 채팅으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매우 힘들고 더딘 레벨업! 여기서 돈 벌이가 되는 일이 발생한다.
매지션들의 레벨은 낮은 상태인데 익히지도 못할 마법서 업데이트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주워봐야 팔리지도 않는 높은 클래스의 마법서들은 가격책정이 어떻게 매겨질까? 당연히 본래 가치보다 저렴하게 거래된다.
이중에서 하녀 취급 받다가 공주님이 되는 마법을 모은다면 큰 이익이 생기는 것. 이는 어린 아이라도 아는 간단한 진리였다.
“서먼 몬스터를 챙겨야 해.”
초창기에 외면당했던 7클래스의 몬스터 소환 마법.
28레벨의 매지션이 거의 없는데다가 어찌어찌 익혀냈다 손쳐도 소환되는 몬스터는 고작 늑대인간이 전부다. 초보자의 섬에서 초보 나이트로도 손쉽게 썰어대는 이 녀석들이 많아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우르르 몰고 다녀봐야 28레벨의 사냥터에서는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울면서 32레벨에 도달해봐야 이때 소환되는 놈들은 해골이다. 그나마 36레벨에 올라 3단계 소환수인 스파토이를 부르면 그때는 다소 쓸 만해진다.
하지만 업데이트를 통해서 막 등장한 매지션에게 36레벨은 거의 꿈과 같다. 이러한 이유로 초창기의 서먼 몬스터 마법사의 가격은 그야말로 똥값이었다.
‘나중에는 현금 100만원까지 가격이 치솟게 되고.’
골드가 아니라 원화로 백만이다. 이걸 놓치면 멍청이일 것이다.
“뱀파이어릭 터치나 이럽션은 버려. 얘네는 처음부터 비쌌으니까.”
이름 있는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수로 배워야 하는 마법들. 너무나도 인기가 많아서 몇 클래스의 매지션이라는 표현보다 ‘뱀파 법사’ 혹은 ‘이럽 법사’라는 말을 따로 사용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린다. 투자 메리트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 가격이 폭등한다면 또 모르지만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특히 뱀파이어릭 터치는 마법사들의 스펙이 향상되면서 1년도 되기 전에 폭락해버린다. 서먼 몬스터에 집중하는 게 현명한 것이다.
‘다음은 보석류지.’
플레지의 엘븐 우즈는 온라인 게임 최초로 채집과 제작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되는 마을이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이 엘븐 우즈 업데이트 바로 전이었는데 이때 보석류가 먼저 나온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의 네 가지 보석이다.
각각 일반과 고급, 최고급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되는 재료들인데 이것들은 후일 아이템 제작에 사용된다.
“이 중에 핵심 보석은 몇 개 되지 않거든.”
보석이 들어가는 제작 아이템들. 이 가운데에서 유저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대상군은 총 다섯 가지였다. 무기로는 장궁과 레이피어. 방어구로는 엘프족 판금갑옷과 파워 건틀릿, 엘븐의 축복이다.
‘하지만 장궁은 한참 뒤에 업데이트가 되니까 젖혀두고 엘프족 판금갑옷은 최고급 다이아몬드가 들어간다만 이건 자체 매물이 워낙 없으니 패스.’
남는 것은 파워 건틀릿과 엘븐의 축복, 레이피어다.
파워 건틀릿에는 고급 다이아몬드가, 레이피어에는 고급 루비와 일반 루비가. 엘븐의 축복에는 고급 다이아몬드, 고급 에메랄드, 고급 사파이어가 들어간다. 이상의 핵심보석들이 바로 내가 지속적으로 매입할 품목들이다.
여기까지는 혼자서도 되는데 다음부터는 문제가 생긴다.
“사람이 더 필요해.”
이번 업데이트에는 새로운 맵이 추가 된다.
오크 숲! 오크 요새!
여기서 요새는 나무로 이루어진 허접한 모습이지만 명목상 성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곳에는 플레지를 다른 어떤 게임보다 더욱 돋보이게 해준 요소가 잠들어 있다. 바로 슬라임 레이스다.
‘게임 속의 도박판이라고.’
일직선 레일에 각각 번호표를 단 슬라임들이 달리기를 한다. 경마처럼 우승마를 맞추면 돈을 벌고 아니면 날리는 건데 오크 성의 성주는 이 레이스의 수익에 대해 이권을 가질 수 있다.
‘성 두 개를 다 먹으려면 길드도 두 개가 있어야지. 우선 믿을 만한 사람으로는··· 역시 지옥검 뿐이려나.’
현재 플레지에서 만난 모든 인맥 중에서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인간관계가 원만하면서 지금도 길드 내부의 사람들은 그가 관리를 하고 있다. 지옥검을 부군주로 임명하고 그에게 관리하게 한다면 규모를 더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