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8화 (18/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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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 이름 공모전

방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니 옛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이 공존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가족들이 제일 먼저 살펴보는 것은 다름 아닌 가격표였다.

“이거··· 값이···”

“태식아 너무 비싼 것 같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은 가격에 대한 부담이다. 그 모습을 보니 입맛이 씁쓰레했다.

‘하긴. 나도 저랬구나.’

사람마다 본의 아니게 적응해버리는 상식의 선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익숙해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할 테지만 우리 가족에게 고급 한식집에서의 외식은 그만큼의 비중이 있었다.

절약이 생활화 되었기에 그렇다는 건 듣기 좋은 핑계일 뿐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머뭇머뭇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아낀다고 부자 되거나 잘 사는 건 아니라는 걸요.’

착하게 노력하면 보상을 언젠가 받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이지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꿈에서 본 미래에서 우리 가족은 물론 아끼기만 한 사람이 부유해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앞으로는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곳에서 한 끼 식사 대접할 능력 충분히 되고요. 또, 두 분은 어버이날에 이런 대접 받을 자격이 충분하세요.”

별것 아닌 말이지만 두 분은 언제 아들이 이렇게 컸을까 하는 얼굴로 나를 보셨다. 말 없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하신다.

“그래. 우리 태식이 덕분에 내가 오늘 이런 식당에서 식사도 해보겠구나. 기왕 온 거 궁상 떨지 말고 맛있게 먹어주자고.”

“이이는! 메뉴판 아직 안 봤죠? 가격을 봐요. 가격을!”

“어차피 예약도 다 하고 태식이도 다 생각이 있어서 온 거 아냐. 기왕 먹을 거라면 기분 좋게 고마워 해주면서 먹는 게 더 좋은 거야. 그러니까 궁상 그만 떨어.”

비로소 식당의 분위기와 맛을 즐기기 시작하신다. 그 사이 태희가 슬쩍 내게 물었다.

“오빠. 나는?”

“뭐가?”

“자격 말이야. 나는?”

“으이구.”

조금 전에 언급할 때 자기만 쏙 빼둔 게 서운했나보다. 대답 대신 가볍게 머리에 꿀밤을 먹여주었다. 그렇게 온가족이 모여서 즐겁게 식사하고 선물해드리는 시간을 보냈다. 자평하건데 90점짜리 어버이날이라 생각한다.

10점이 부족한 이유는 게임으로 번 돈이라는 말과 앞으로도 이를 직장삼아서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였다.

‘살짝 운을 띄워봤는데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신다니까.’

애들 오락기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한 시기인 만큼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차후로 미루는 게 좋을 성 싶었다.

“통장을 보여드려도 반짝 벌이로 생각하실 수 있으니까.”

밝히는 시점을 늦추기는 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아직 전역한 지 채 몇 달 되지도 않았을 만큼 나는 매우 빠르고 확실하게 나아지고 있는 상태니 말이다.

12. 서버 이름 공모전

플레지에서 4일이 지나며 다시 한 번의 공성전이 있었다. 대비했던 만큼 무리 없이 잘 막아냈고 4일간의 세금을 더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2개의 공지가 올라왔다.

『*공지*

안녕하십니까? 수호자님. 플레지 운영팀입니다.

드디어 풀리지 않는 마법의 신비. 매지션이 이번 주 수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마법은 초심자의 섬 동남부에서 마법의 스승인 게론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대가가 필요하며 익힐 수 있는 마법은 3클래스까지입니다.

4클래스 이상의 마법은 추수 업데이트를 통해 사냥시 획득하는 마법서를 통해 익히실 수 있게 됩니다.

직업별 클래스 상승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지션은 4레벨, 엘프는 8레벨, 로열은 10레벨당 각각 상승합니다. 또한 나이트는 마법을 배울 수 없으니 참고 바랍니다.

일부 마법은 MP뿐만 아니라 HP도 소모하게 됩니다.』

『이벤트를 알립니다.

변함없이 플레지를 사랑해주시는 수호자님들 덕분에 플레지가 동시접속자 1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더는 두 개의 서버만으로는 모든 수호자님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3서버를 오픈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3서버는 이번 매직 미스터리 업데이트와 함께 신설 될 예정입니다.

서버가 늘어감에 따라 더 이상 1, 2와 같은 숫자로 서버 명을 늘리는 것보다는 플레지에 어울리는 서버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서버명을 찾아라!’ 공모전을 준비했습니다.

플레지의 분위기와 가장 어울리는 서버 명을 찾아 담당자의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당첨되신 분에게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 지급 될 예정입니다.』

업데이트까지 일주일을 남긴 시점에 올라온 내용이다. 여기서 내가 학수고대한 것은 매직 미스터리 업데이트가 아니었다. 바로 서버이름 공모전이다.

‘1서버와 2서버라는 이름을 봤을 때부터 진작 기억해둔 뒀었지.’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포르쉐 유저가 원작의 주인공 이름으로 응모한다는 것. 이벤트 상품은 당첨자의 이름을 딴 아이템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포르쉐의 검.”

이 무기는 타격치 11/12로 카타르보다 작은 몹 타격치가 1높다. 또한 +9까지 안전하게 강화할 수 있다는 훌륭한 메리트를 가졌다.

‘이건 너무 먼 일이긴 하지만 16년 뒤에는 리뉴얼이 되면서 또 가격이 오르는 돈 되는 아이템이고.’

사실 가장 가격이 오르는 물건으로는 몇 년 뒤에 있을 생명의 검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욕심낸다 해도 갖지 못하는 아이템이다. RH-의 혈액형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나중에 꼭 매입해두기로 점찍어 두었다.

당시에 얼마를 줘도 나중에 비하면 무조건 이익이다.

‘이런 걸 가치투자라고 한다지?’

한참 후의 일이니 우선은 이벤트에 집중하는 게 나았다.

“분명히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많을 거야.”

동시 접속자가 1만 명이다. 가입회원은 약 20만 명이니 플레지 스토리 인물 이름으로 한다는 아이디어는 여럿이 떠올렸을 것이다. 개중에 가장 빨랐던 유저가 포르쉐일 테니 나는 그보다 한발 앞서야 했다.

최대한 서둘러서 이메일을 작성했다.

‘포르쉐 컨닝해서 미안!’

빤히 보고도 양보할 만큼 대인배가 아니니 어쩌랴. 양심만큼 사과하고 ‘언제 만나면 잘해줘야지.’로 넘길 따름이다. 이는 진심이었다. 다만 한국에 살면서 5천만 국민 중 캐릭터 아이디만 아는 누군가를 우연하게 만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벤트는 감사히 접수하겠음!”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다. 최고의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서버 이름 공모전 응모. 2서버 로열 골리앗.

플레지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으로 원작 플레지의 등장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1서버의 이름은 주인공인 데포. 2서버는 그의 최후의 적인 켄헬, 마지막으로 3서버는 엘프족 최고의 기사라 할 수 있는 진리언이 어떨까요?

물론 이후로 4서버, 5서버가 나와도 데포의 약혼녀인 이실. 혹은 만월에 변하는 진리언의 여성형인 오엔 등 사용 가능한 서버 명이 무궁무진합니다.>

받게 되면 나이트인 구운몽이 사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구운몽의 검’보다는 왠지 ‘골리앗의 검’이 어감상 더 멋있는 것 같다. 때문에 프린스 캐릭터로 신청했다.

‘무궁무진하다는 건 살짝 공갈이고.’

플레지는 게임의 개발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두며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을 소진하고 몬스터의 이름까지 사용할 정도로 많은 서버를 가지게 된다. 20년간 장수하며 돈 되는 게임!

내가 괜히 여기에 일로매진하는 게 아니다. 이만한 정규직은 보기 드물다.

이후 일주일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갔다. 순풍을 만난 배처럼 쭉쭉 뻗어나가는 사업은 팔아먹은 만큼의 골드를 폭포수처럼 채우는 중이다.

“게임이 잘 되면 나도 잘 되는 거야.”

엘프로 만든 자판기가 힘 부족으로 들기가 버거우리만큼 사용자가 늘어났다. 어쩔 수 없이 힘 18/02의 나이트를 새로 만들어서 자판기를 변경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매지션이 업데이트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 격렬한 환호와 함께 극도의 어그로가 함께 생겼다. 초창기 유저들에게 박탈감을 선사하는 업데이트 요소는 다름 아닌 마나쪽이었다.

『*공지*

마법의 등장으로 초기 캐릭터들의 MP가 일괄 수정됩니다. 특히 초창기 나이트의 MP는 레벨 45기준에 약 200이었습니다. 이는 너무 높게 설정된 수치이기에 일괄 수정이 있을 예정입니다.

로열 : Wis/4 * Level

엘프 : Wis/4 * Level * 4/3

나이트 : Level

매지션 : Wis/4 * Level * 2

더 즐거운 플레지 월드가 되기 위해 일부 수호자님들의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딱 보자마자 나이트들이 미친 듯이 반발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쓸 일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줬다가 뺏는 건 세상 누구라도 다 싫어하기 마련이다.

“나야 오픈 멤버도 아니니 상관없지.”

게다가 따져도 소용없다. 마음 비운 채로 나머지 내용을 확인했다.

『마법 창에 MR(Magic resist, 마법 저항력)이 추가 됩니다.

기초마법 습득에 대한 비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클래스 : 100골드

2클래스 : 400골드

3클래스 : 900골드』

『매지션 업데이트와 함께 일부 아이템이 추가 및 변경 됩니다.

새로운 아이템인 ‘마법 방어 사슬갑옷’이 추가 됩니다.

마법망토에 MR+10이 생겨나며 인챈트마다 +2의 추가 MR을 얻습니다.』

『새로운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가 등장합니다.

흑기사 ? 강력한 공격력은 물론이고, 2의 사거리와 빠른 이동속도를 지녔습니다.

흑기사 대장 : 커프 ? 반왕 켄헬의 명령으로 군트를 잡기 위해 흑기사들을 이끌고 초심자의 섬으로 온 흑기사들의 대장입니다. 흑기사들과 달리 하얀 갑주와 하얀 방패를 가진 보스 몬스터입니다.』

“좋아. 슬슬 내가 아는 플레지에 아주 조금~씩 다가가고 있어.”

많은 업데이트가 남은 만큼 도중에 누릴 이익도 그만큼 존재한다. 이 점이 제일 기뻤다.

공지를 다 읽고 게임에 접속했다. 들어가면 채팅 창이 지옥이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가. 접속하자마자 창에는 게임사의 독단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엘프들의 장비가 수정될 때와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 [월드]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왜 자기들이 설정으로 넣은 수치를 빼가냐? 기껏 애정을 주고 키운 캐릭터들인데, 이건 아니다!

- [월드] 말도 안 되긴 뭐가 말도 안 되냐? 니들만 엠 높으니까 좋냐?

- [월드] 원래 게임사에선 오픈 멤버들에 대한 메리트 같은 거 주고 그러는 거야! 게임 초기부터 우리가 버그 잡아주고 다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라고!

- [월드] 게임 밸런스라는 게 있지. 그리고 솔직히 나이트들은 엠 쓸 일도 없는데 뭘 그렇게 따지고 들어?

- [월드] 스킬이 나중에 나올지도 모르잖아!

뺏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 외에도 엠이 있다는 건 나이트 전용의 스킬을 기대하게 한다. 예를 들자면 동양적인 검기라던가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쉽게 MP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나오긴 하지. 그런데 당신들 기대랑은 많이 다를걸?”

게다가 그때쯤 되면 초창기 멤버들은 마나가 많다 해도 그 캐릭터를 키우지 않게 된다. 저들 중에는 체질이 18인 나이트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16정도인데 이런 유저는 어차피 HP가 부족해서 오래하기 힘들다.

어쨌거나 나이트들의 반발은 패배가 정해진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받지 못하는 혜택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셈이니 명분도 상실했다. 당연히 다른 클래스에서 동참해 줄 리가 없고 게임사 역시도 귀를 기울이는 척조차 할 필요가 않는다.

‘시간낭비하지 말고 플레지나 하고 놀아야지. 오늘은 뭐를 해볼까?’

매지션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키울 단계는 아니다. 대신 초심자의 섬에 가서 유저들이 복작복작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로 했다. 가서 배를 탈출할 때의 격정적인 추억도 회상하는 거다.

“겸사겸사 바포랑 흑기사도 구경할 수 있으면 하고.”

섬과 본토를 빠르게 오가게 해주는 텔레포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아직은 오직 배편을 통해서만 섬에 갈 수 있다. 느려터진 아날로그 속도지만 이것도 추억이니 즐겨보련다.

‘혼자가면 심심하니까.’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귓속말] 구운몽 : 초심자의 섬에 놀러갈까 하는데 같이 ㄱㄱ?

- →[귓속말] 지옥검 : 어? 그럴까? 안 그래도 검이가 지금 초심자의 섬에 있거든.

- →[귓속말] 구운몽 : 섬에? 왜?

- →[귓속말] 지옥검 : 걘 원래 바포메트 잡으러 거기 잘 가.

- →[귓속말] 구운몽 : 아··· 오케이. 가자. 곧 배 올 거니까 빠릿하게 오셈.

- →[귓속말] 지옥검 : ㅇㅇ

마지막 답변에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초성으로 말하는 것 가지고 엄청 이상하게 생각하더니 이제는 지도 쓰네.”

지옥검과 대화할 때 이따금 나도 모르게 초성을 쓸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묻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제대로 써달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본인이 쓰고 있는 모습이다.

13. 초심자의 섬

- 여~ 아슬아슬 했네.

- 그러게. 딱 한 마리만 더 잡고 온다는 게, 잘못 했으면 배 놓칠 뻔.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지옥검과 함께 초심자의 섬으로 이동했다.

‘이런게 금의환향 아니겠어?’

배를 타고 이동하다보면 은근히 감개무량해진다. 저 레벨일 때는 섬을 벗어날 때 불안 불안한 마음이지만 이렇게 들어갈 때는 가슴 쫙 펴고 당당하게 가는 셈이다. 오히려 적당하게 사고라도 일어나 줬으면 싶얼 정도였다.

“파완피 같은 게 오늘은 왜 없냐.”

처음에 대박을 안겨주었던 때를 회상했다. 당시의 파인 트리 완드를 이용한 피케이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해줄 만큼 위협적이었지만 지금은 가십거리이자 쇼 같은 기분이었다. 없으니까 섭섭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때였다.

- 어? 저 배 뭐지?

- 응? 배? 뭔 배···가 진짜 있네?”

- 유령선이다!

놀란 유저들의 메시지에 나도 같이 구경했다. 유령선은 본토에서 섬으로 갈 때만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작은 이벤트다. 다수의 해골들이 내려서 배안의 유저들을 공격하는데 만나게 되는 확률은 랜덤하다.

- 심심하던 차에 잘 됐네.

- 그러게.

마침 따분해하던 지옥검이나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제아무리 많아봐야 해골 따위는 불쏘시개만도 못하다. 뽀작뽀작 부수는 손맛을 기대하는 데 배 안의 다른 유저들은 입장이 매우 달랐나 보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곳곳에서 케첩 쇼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뭐야? 그래도 본토에서 섬으로 가는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약해?”

물약을 챙겨서 배에 탄 사람들은 먹으며 해골과 싸우는 중이지만 물약을 구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지없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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