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4화 (14/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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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성 공성전

“그런데 게임사는 꽤 게으르걸랑.”

업데이트가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지면 참 좋을 테지만, 그런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우리만큼 적은 편이다.

유저들에게는 심히 애석한 일이지만 엘븐 우즈는 냄새만 풍길 뿐 금방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개발이 미뤄지면서 게임사는 꼼수를 부린다. 고작 한 달 만에 ‘다시 엘프님들도 착용할 수 있게 할게요~’하는 것이다.

이때 추락한 가격은 정상가를 향해서 급등한다.

“벌 때 벌어야지.”

여기까지가 공성전 업데이트 전까지 일어난 사건과 사고들이었다.

9. 칸트 성 공성전

드디어 때가 왔다.

업데이트를 위해 플레지의 서버가 다운됐다. 게임이 곧 직장인 나에게 서버 점검은 곧 강제휴가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도 잘 잡고 노력하는 자가 성공할 확률도 높다는 말처럼 나는 세심하게 앞일을 준비했다.

“업데이트 파일 정도는 미리 다운 받아두자. 자동 다운로드로 했다가는 숨 막혀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지금은 미래의 시점으로 볼 때 느리디 느린 광통신을 자랑한다. 게임사는 물론 다운 받는 유저들 모두 인터넷이 느린 만큼 작은 용량이라 할지라도 받는 데 한 세월이 걸렸다. 이를 잘 알면서도 주머니에 손 넣고 있을 만큼 나는 미련하지 않다.

비교적 신속한 방법인 직접다운로드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아니나 다를까, 버젓이 어제 날짜로 공지가 올라온 상태였다.

『플레지 운영팀입니다.

드디어 칸트 성이 업데이트 됩니다. 오전 10시에 업데이트를 위하여 모든 서버가 중단되며, 12시에 재개될 예정입니다.

이번 업데이트는 9M 분량의 큰 용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자동업데이트를 이용하여 파일을 받고 접속 하시는 경우, 접속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사의 예상으로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업데이트를 받기 위해서는 만 15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중요!!!원활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아래의 사항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사전에 서버를 확충하고 업데이트 서버 측에는 이미 100M bps 급의 네트워크를 설치하여 준비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용량의 파일을 수만 명의 사용자가 한꺼번에 다운로드를 할 경우에는 아무리 시스템 구성을 좋은 성능으로 하여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내일 업데이트 이전에 미리 패치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플레지 홈페이지 다운로드 란에 [업데이트 패치 ple141p.zip] 및 [풀버젼 ple141.exe]를 준비하여 놓았습니다.

기존의 사용자 분들. 특히 PC방 운영 관련자께서는 이 공지를 보시는 즉시 [ple141p.zip] 파일을 다운로드하셔서 보관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일 14일 오전 10시, 서비스가 중단 된 이후 각 PC의 플레지 디렉토리에 풀어 놓으시면 업데이트 파일을 자동다운로드 받을 필요 없이 바로 서버에 접속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실 때의 이점은 업데이트 폭주로 인한 접속 불가능 상태를 피할 수 있고 바로 서버에 접속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PC방 업주님께서는 이점을 꼭 숙지하시고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버 폭주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듬뿍 담긴 공지다. 하지만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미치겠다. 9메가 받는데 15시간 이상이 소요 될 거라고 하네.”

가히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파발을 보내던 먼 옛날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물론 마냥 웃고만 있다가는 느려서 복창 터지기 십상인 그 군중가운데 내가 포함될 것이다. 지금은 15시간 이상이 걸릴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 태반인 시대니 말이다.

초고속인터넷으로 홈페이지에서 직접 9메가를 다운 받는 데에는 약 50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간 가게에 얼굴을 비쳐 부모님 일을 돕고 식사도 한 뒤 돌아왔다. 그리고 대망의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접속 캐릭터는 프린스 클래스의 골리앗이다. 플레지에 들어오자 길드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20여명의 인원들이 복작복작하는 채팅창이었다.

- 이야~ 아직 공성전이 시작 되려면,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 다들 벌써 접속하셨군요.

- 첫 공성이라는 기대감에 오늘 반차 쓰고 왔습니다.

- 조금만 더 하면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거 같아서 공성전 전에 어떻게든 업을 해놓으려고요.

- 휴학생이 할 게 뭐 있냐? 그냥 접속하는 거지.

공성전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길드원만이 아니었다. 공성전에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유저들도 첫 영주를 누가 할 것이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힘 좀 깨나 쓴다는 길드들은 모두가 최초의 영주 자리를 거머쥐겠다며 칼을 벼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인사치레를 나눈 뒤 키보드를 두드렸다.

- 공성전을 준비하기에 앞서서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 어떤 의견이요?

- 맞아! 작전 같은 것도 짜고 그래야죠.

- 뭔가 중요한 할 말이 있나 보네?

예민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단도직입적으로 꺼내들었다.

- 작전도 짜긴 해야겠지만, 우선 의견을 구하는 것은 공성전 세금에 관한 문제입니다.

성주가 되면 세금을 걷을 수 있다. 가장 기본인 10%부터 최대 50%까지 지정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세금은 상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품에 붙게 된다. 또한 그 수익을 성을 통치하는 길드가 가질 수 있게 되는 구조다.

그때 귓속말이 재빨리 들어왔다.

- →[귓속말] 지옥검 : 야~ 이런 예민한 문제라면 나한테라도 미리 귀띔을 해주지 그랬어? 그럼 내가 분위기를 도와줄 수도 있었잖아.

세금이라는 단어에 발 빠르게 신경 써주는 친구다. 물론 그가 도와준다면 아주 손쉽게 되겠지만, 돈 문제라는 게 좋던 사이도 갈라놓고 가족 간에도 풍파를 일으키는 부분이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내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탈이 적었다.

‘의리 좋다고 계속 떠맡기다가 사람 잃을라.’

흔히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슬픔을 반갑게 나눠 들려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본다. 기쁨처럼 부담 없는 것은 함께 하고 싶어도 어려움은 사양하고 싶은 것이 보편적인 사람의 심리니 말이다.

나는 온라인으로 만난 의리파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귓속말] 구운몽 : 말은 고마운데, 아무래도 돈 문제잖아. 내가 스스로 설득해서 해보려고.

- →[귓속말] 지옥검 :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게 맞겠지. 알았어. 아무튼 난 무조건 네 의견에 찬성이다.

“고맙다.”

적극적인 호응과 믿음에 미소가 저절로 그려졌다. 그런 상태로 차분하게 다른 길드원들의 글을 확인했다.

- 아··· 세금······.

- 그냥 인원수대로 나누면 되지 않을까요?

- 그걸 여러분에게 질문하려 하는 겁니다. 공성전에 대한 준비를 여러분이 직접 하시면서 세금을 각 인원수대로 나눌 것이냐, 그게 아니면 제가 우리 혈의 공성 자금을 대면서 세금에 대한 비용을 가져가느냐에 관한 거죠. 이 문제를 나눠볼까 합니다.

서버 내의 큰 손을 자랑하는 나이기에 보이는 패기였다.

- 공성 자금이요?

- 공성전은 1대 1이 아니라 1대 다수. 즉, 일점사를 당할 확률이 높은 싸움이라는 건 다들 예상하시고 계시겠죠?

- 네.

- 일점사를 당하면 빨갱이로는 어림도도 없습니다. 아마도 최소 주홍이, 그리고 말갱이 정도는 들고 싸워야 할 겁니다.

주홍이로 부르는 주홍물약은 빨간 물약보다 한 단계 상위의 회복 아이템이다. 현재 본토에서 개당 135골드, 초심자의 섬에서는 개당 125골드에 판매하고 있다. 그 윗 단계인 맑은 물약은 본토에서 550골드에, 초심자의 섬에서는 500골드, 아림에서는 400골드에 판매 중이다.

빨간 물약이 고작 40골드인 것에 비하면 매우 고가다. 그 빨갱이조차도 물마시듯 흡입하다보면 적자가 펑펑 터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판국에 나는 고가의 물약을 팍팍 써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통 큰 나의 주장에 조심스러운 반론이 재기되었다.

- 주홍이까지는 생각했는데··· 말갱이까지 필요할까요?

- 단언컨대 필요합니다.

나중에는 워낙에 스펙이 올라가서 당연히 맑은 물약을 사용하게 된다. 한편 초창기 공성전은 다른 의미로 필요했는데 바로 성 주변의 화면을 유저들로 가득 채우며 발생한 무지막지한 렉 때문이다.

대규모 난전 그 자체! 적은 물론 아군마저도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봐야 보일 정도이고 다들 첫 경험인 만큼 동맹이니 뭐니 하는 개념도 없다. 그냥 우리 길드 빼고는 싹 다 적인 셈이다. 이는 화면 전체에 있는 모든 유저들에게 두드려 맞는다고 봐도 좋다는 뜻이었다.

- 이번에 성을 노리는 혈이 몇 개 정도나 될 거라고 예상하세요?

- 아마도 10개 혈 정도 되지 않을까요?

- 혈이 10개면 최소 250명입니다. 그리고 세 명에게만 맞아도 주홍이로는 회복력이 턱없이 부족해지겠지요.

한 명의 프린스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인원은 프린스가 가진 매력 스탯의 곱하기 2다. 예를 들자면 힘 프린스인 골리앗은 매력 스탯이 13인데 레벨 15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붉은 기사의 망토를 착용하면 14가 된다.

현재 우리 길드원은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인 28명!

다른 프린스들도 마찬가지이니 이를 최소한으로 잡는다면 280명이 얽히고설킨다 보면 된다. 무조건 ‘돈을 쳐들여서 성 좀 먹어봅시다!’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사람들을 이해시켰다.

그러자 비로소 공성전이 마냥 즐거운 축제가 아니라는 것. 나아가 큰돈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

- 그렇다면 세금을 인원수대로 나누자는 건··· 먹기도 전이고··· 미리 얼마얼마 이야기 할 필요가 없으니까 넘어가고···

우물쭈물하는 이를 대신하여 누군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 프린스님이 직접 공성자금을 지원해 주신다면 얼마 정도까지 지원하실 계획이신가요?

기다리던 마당이다. 바로 대답해주었다.

- 1인당 주홍 물약 250개, 맑은 물약 150개, 초록 물약 10개를 지급할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나이트 유저도 ‘그거 들고 무거워서 싸울 수나 있을까?’ 싶을 만큼의 양이다. 나중에 사막 지역이 업데이트 될 때에야 물약의 무게가 1/2루 줄어들지 지금은 꽤 묵직한 시점이다. 하지만 맥시멈으로 준비한 이유는 효율을 위해서였다.

공성전이라는 것이 한 번에 싸워서 끝나면 좋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을로 귀환했다가 다시 와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때마다 내게 배급받는 것이 아니라 창고에 두고 더 챙겨올 수 있도록 꽤 많은 양을 배정한 것이다.

여기에 확실한 승리를 위해 초록물약도 무려 10개나 지급하기로 했다. 내가 길드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다.

‘돈 걱정하지 말고 신나게 싸우자! 팍팍 투자해줄 테니 성과를 보입시다!’

스스로 생각해도 게임 하는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리더라 자부한다.

- 헐··· 물약이 저 정도면 대체 얼마야?

- 게다가 1인당 촐기가 10개면··· 와···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쐐기를 박아야지.”

성과를 보이면 이에 따른 추가급여가 있어야 더 달릴 맛이 나는 법!

- 하나 더 있습니다. 성을 먹으면 그에 대한 상금으로 1인당 20만 골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수성에도 마찬가지 수준의 물약 제공과 보상금이 있을 겁니다.

- !!!!!!!

- 오오오!!!

성의 주인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우리 길드원들은 다들 부자 유저다. 하지만 이런 최상위의 유저들이라 해도 하루에 수급 가능한 순수 골드는 고작해야 3만 골드.

반면 내가 지급하는 물약은 대략 11만 5천 골드이며 추가 보상까지 걸었다. 이는 공성전에 승리한다면 모를까 패배하게 되면 그냥 허공에 골드를 퍼붓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쯤 되자 ‘놀아보자’에서 ‘제대로 해보자’로 길드원들의 마음이 바뀌었다.

물론 지옥검처럼 내 걱정을 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 엄청 큰 금액인데 프린스님 괜찮으시겠습니까?

- 1인당 저 정도의 물약을 준비하시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만만한 돈은 아니지. 하지만 난 확신하거든.”

마냥 꿈에서 차지했었으니까 나도 가능할 거야, 하는 게 아니었다. 확실한 승리 요인은 2개나 된다. 하나는 우리처럼 맑은 물약을 공성전용으로 챙기는 곳이 없다는 것.

워낙 고가의 물약이기에 가난한 이 시대의 유저들은 감히 엄두를 내기 힘든 물약이다. 오늘 하루를 위해서 사용하기에는 성을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혈은 고작해야 우릴 포함해서 3개 정도 뿐일 것이다.

‘게다가 걔네도 지금은 자본이 그리 많지 않지.’

이게 두 번째 요인이다. 초반에 보스를 독식하면서 성장한 거대 길드들은 스펙 업을 위해서 가진 자산들로 강화 주문서를 구매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폭락하게 되면서 굉장한 손해를 보았고 서버 내의 자본들은 나의 자판기로 몰려들었다.

즉, 나를 제외하고는 골드 자체를 대량으로 보유한 유저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는 상황이다. 이러니 패기 넘치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부자처럼 나서면 괜한 질투가 생길 수 있으니 슬쩍 저들에게 선택권한을 주기로 했다.

- 투표로 결정할까요?

‘어차피 결과는 뻔하겠지만.’

이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둔 상태다. 단지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한 투표 제안이었고 길드원들은 모두 내게 찬성하는 것으로 의사를 결정했다. 모두가 공성 자금을 지원받고 공성전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 그럼 창고 앞으로 모여주세요. 물약을 분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자판기를 통해 주홍 물약과 맑은 물약을 최대한 매입 해둔 상태다.

- 감사합니다.

- 화끈하게 싸워봅죠!

- 최초로 성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입니다!

저들은 모른다. 이로서 내가 얻게 된 세금이 얼마나 막대한지 말이다.

‘내가 하는 건 희생이 아니라 투자거든.’

어림짐작만 하는 저들과 달리 나는 정확하게 안다. 초반에 켄트성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하루에 천만 골드가 넘으며 다음 공성전 날짜를 미룰 수 있는 최대인 4일까지 미루면 약 5천만에서 6천만 골드 정도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투자금 900만으로 5천만 골드의 수익을 올리는 대박 투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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