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3화 (13/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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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전, 사건들

“골드가 골드를 버는 구나.”

이래서 엄마 아빠가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하는 건가 보다. 끼리끼리 논다는 속된 말이 진실인 양 돈이 많으니 이 녀석들이 자기 동료들을 자꾸만 데리고 온다.

하지만 시운을 잘 타고 편승한 나와는 달리 실시간으로 고통 받는 유저들의 수는 매우 많았다. 특히 본토 던전 7층이 업데이트 된 이후로 채팅 창에서는 거센 항의와 논쟁이 빗발치고 있었다.

- &운영자들은 4셋 이상의 방어구를 가진 유저들에게 보상하라! 보상하라!

- &금값에서 똥값이라니! 이게 웬 말이냐!

플레지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윙크 길드를 중심으로 강화 주문서 매입과 장비 강화에 큰 비용을 들인 길드와 유저들이 아림의 등장을 강력하게 항의한 것이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자산 90%가 증발한 셈이니 당연한 항소였다.

“그런데 운영진은 콧방귀도 안 뀌어. 20년 후까지도 쭉 배짱장사라고.”

플레지 게임사는 ‘내 마음대로 한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다. 그래서 훗날에는 중국 유저들과 오토 천국이 되고 신규 유저의 유입이 사라져서 플레지를 즐기는 ‘너네들만의 리그’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그 지경에 이르러도 운영방침을 꿋꿋하게 유지한다.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비판적이던 다른 개발사들조차 이들을 벤치마킹하고 롤 모델로 삼아서 ‘나도 끼워줘!’할 만큼이다. 이른바 한국형 과금 온라인 게임의 선두주자였다.

‘참 묘~해. 역시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욕하면서도 하는 게임. 단점이 있음에도 돈은 확실하게 되는 게임. 충성도 있는 유저들이 말하기를 포기하고 운영체제에 순순히 따르게 되는 게임! 이쯤 되니까 내가 미래의 기억을 가지면서도 안심하고 전력투구를 하는 것이다.

자고로 즐기면서 돈 버는 투자 종목으로 이만한 게 또 없다.

“대답이 없으면 외치는 쪽이 지치게 되지.”

며칠이 또 지나갔고 이제는 슬슬 항의하는 것도 많이 포기한 상태가 됐다. 더 이런 데 시간낭비를 해봤자 레벨 업에 방해만 된다는 생각 같다.

‘그리고 공성전이 남아 있으니까 차라리 열심히 스펙을 올려서 성을 먹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어쩌면 그것만이 지금의 손해를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주도하던 길드들이 잠잠해지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집단이 아닌 개인은 의기를 품고 일어나서 담담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 &운영자들은 4셋 이상의 방어구를 가진 유저들에게 제대로 보상하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런 운영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오픈 초기부터 애착을 가지고 했던 게임이지만 이런 운영이라면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기하지 않는 유저. 시대의 양심! 충성도 있으며 영리하기까지 한 좋은 소비자다. 그리고 이런 유저일수록 크게 실망하고 확 떠나가 버릴 가능성이 높다.

- &정말 이건 아니다!

- &우리가 과도한 배상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상식적이고 정당한 선을 원합니다.

- &게임이 좋으면 뭐합니까? 운영이 벽창호인데!

그리고 이튿날, 예상대로 사람들이 하나 둘 플레지를 접겠다는 소리를 꺼냈다. 물론 그래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저들이 떠나가도 플레지에 찾아올 사람이 그 100배도 넘을 테니까.

회사는 바보가 아니다. 전혀 지장이 없다는 판단과 이익이 확실하다는 계산이 있기에 소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판기를 운영하는 상인이기는 하지만 저들이 없어도 돈 버는 데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내 편이 될 사람들도 아니거든. 오히려 고레벨 유저들이 떠나면 나한테는 고맙지. 확실하게 기득권에 오를 수 있으니까.”

호소와 주장이 다시금 여론의 불을 지피는 듯 보였으나 어림도 없다. 결국 감정이 극에 달한 유저들이 극단에 조치를 취했다. 하드레일 이라는 닉네임의 고레벨 유저가 선언한 것이다.

- &더는 이 게임의 횡포를 참을 수가 없어서. 이만 떠날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게임사가 저를 붙잡고 싶다면 제 장비를 질렀을 때 3개 이상은 성공해야 할 겁니다!

몇몇이 채팅창에 강화를 예고했고 이어서 쇼가 펼쳐진다. 미래의 시점으로 본다면 ‘저게 뭔 뻘 짓?’스러운 것이지만 현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이만큼 신선한 것이 없는 모양이다. 반발에 열광했고 잠시 후 채팅창은 다 같이 카운트를 세는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물론 저 약속이 그대로 지켜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인터넷 방송이나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시대이기에 채팅으로만 볼 수 있고 눈으로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레벨 유저들은 이상하게 30레벨 이상이 저런 말을 하면 다 믿게 된다.

‘나도 왕년에는 그 허접들 중 하나였거든. 아무튼 간에 갈 거면 그냥 가지 저게 다 뭔 짓이여.’

주문서를 바르는 순간 증발할 수 있는 도박수의 강화.

게임사의 운영에 반발하는 유저의 선택! 환호하는 구경꾼들의 카운트가 이어졌다.

- 5!

- 4!

- 3!

- 2!

- 1!

- 0!

- 떠라! 떠라 제발!

- 팡! 강렬하게 증발!

- 아악! 부정 탄다고! 꺼져!

- ㅋㅋㅋㅋㅋㅋㅋ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상황을 모두가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초를 치는 사람이 있었고 저들끼리 말리네 마네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모두가 하드레일의 채팅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자신의 모든 장비를 한방에 지른다는 유저. 하지만 그의 글은 더 이상올라오지 않았다.

- 뭐야? 왜 더 말 안 해? 어떻게 된 건데?

- 장비 날아간 거 같음. ㅋ /누구 하드레일 이라고 쳐보셈. 접속 중 아님.

- 헐! 진짜?

나 역시 따라서 타이핑했다.

누구 하드레일>

「현재 접속자 : 4384명」

“진짜 없네?”

창에 닉네임 없이 ‘/누구’만 입력하면 현재 접속자 수가 나온다. 반면 ‘/누구’에 아이디를 추가하면 현재 접속자 숫자와 해당 캐릭터의 아이디, 클래스, 성향이 함께 나온다. 즉 접속자만 나오는 경우에 해당 캐릭터는 종료 상태라는 뜻이 된다.

아마도 강화했다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아이템들이 증발한 모양이었다.

- 이렇게 또 한사람이 가시는 구나~ 님은 갔습니다. 아아~

- 그렇게 날리고 갈 거면 차라리 나한테 주고 가지.

- 븅신. 주고 가느니 날리고 말지. 왜 주겠냐?

‘공감되네. 나도 꿈에선 매번 저랬는데.’

접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 자주 했던 말이었다. 쪼렙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같은 심정일 것이다.

하드레일 유저의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따라서 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덕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접는다면서 아이템을 질렀고 또 골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이탈이 집단의 이탈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나 같은 부유계급한테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 8카타르에 6셋 판매합니다. 골드나 현금거래 다 됩니다. 단, 낱개로는 판매 안합니다. 접는 거라 빨리 처분해 주시는 분에게는 싸게 판매하겠습니다.

“8카타에 6셋?”

돈이 있어도 매물이 없어서 구하지 못하던 물건이다. 빠르게 낚아채기로 한다.

- →[귓속말] 구운몽 : 명의허준님. 얼마에 파실 생각이신 가요? 그리고 방어구가 어떤 것들인지 알 수 있을까요?

- →[귓속말] 명의허준 : 현금이요? 골드요? 그리고 방어구는 6축난투, 6축띠갑, 6축난방, 6축보망, 6축티, 6축장갑입니다.

“어중이떠중이 철새들 사이에 봉황이 떠버렸네.”

저 장비면 최상위를 자부할 수 있다.

- →[귓속말] 구운몽 : 골드로 구매할 겁니다. 얼마에 파실 생각이신가요?

- →[귓속말] 명의허준 : 골드가 얼마나 있으신가요?

“그냥 제시하면 편할텐데. 꼭 이렇게 물어본다니까?”

잘 생각해야 한다. 너무 적으면 판매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대부분 시세가 떨어지게 될 아이템이니까 너무 비싸게 사는 것도 좋지 못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꼼꼼히 확인했다.

대략적으로 현재 저 장비들의 시세는 모두 합칠 시 1천만 골드 가량이 된다.

‘화가 날 만하네. 나는 데빌스피릿 이벤트 때 저것보다 한참 모자란 것들을 팔면서 훨씬 더 벌었었잖아.’

상대방의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물론 크게 공감한다손 쳐도 엄연히 거래는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 나는 현재 가격과 앞으로 더 떨어질 시세를 고려하여 제시했다.

- →[귓속말] 구운몽 : 저기··· 700만 골드로 가능할까요?

- →[귓속말] 명의허준 : 어디에 계세요?

- →[귓속말] 구운몽 : 진짜 파시는 거예요?

- →[귓속말] 명의허준 : 네. 제일 먼저 연락 주셨으니까.

흥정 없는 착한 사람들이 옛날엔 이리도 많았나 싶다. 그렇게 나는 8검의 6셋이라는 초고수의 반열에 한 발을 걸치게 되었다.

*

칸트 성과 공성전이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복작복작한 사건은 메이지 출현 공지와 아이템의 클래스별 분화 업데이트였다. 우선 새로운 클래스의 등장은 유저들로부터 적극적인 환호와 지지를 받았다.

- 야. 너 홈페이지 봤냐?

- 아니. 나 홈페이지 잘 안가잖아. 왜? 뭐 나왔데?

- 지금 홈에 메이지 개발이 거의 끝나간다고 공지 뜸. 그리고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는 먼저 나왔음. 무려 10클래스까지임.

- 진짜? 잠만, 좀 보고 올게.

공개된 공지에는 1클래스부터 10클래스까지 마법이 있었는데 각 단계별로 5개씩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거의 모든 유저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고 개중에서 특히나 열광한 부류도 있었다.

바로 엘프와 프린스였다. 이들 직업군 역시 마법을 일부나마 배울 수 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 대박. 실드에 브레스트 아머 사용하면 방어력이 4나 되는 거야?

- 인챈트 웨폰도 사용하면 타격치 +2야. 이제 엘프가 나이트랑 싸워서 이기는 거 아냐?

- 엘프도 마법을 전부 배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자가 들어줄 리가 없겠지만.

- 쪼잔 하게 ‘일부’랍시고 1클래스로 떼우는 건 아니겠지?

- 그래도 마법이 10클래스까지 있으니까 5클래스 정도는 배울 수 있을 거야. 안 그러면 양아치지. 완전 쌩 양아치.

이전까지의 엘프는 나이트에 비해서 공격속도가 조금 빠른 캐릭터일 뿐이었으나 이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면 마검사와 같은 이미지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약함의 대명사이던 프린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만 있으면 배짱 운영을 자랑하는 플레지가 아니었다. 미래의 대마법사를 꿈꾸게 하는 희망찬 소식에 앞서, 수요일에 정기점검과 함께 작은 업데이트가 적용됐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혼란을 일으켰다.

“크게 보면 당연한 건데, 막상 피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울화가 치미겠지.”

현재까지는 엘프, 프린스, 나이트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지가 판금갑옷을 입고 기사 못잖게 검을 휘두를 수야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클래스별로 아이템을 분화시켰고 그 탓에 엘프들은 기본 방어력이 6인 청동판금갑옷, 미늘갑옷, 띠 갑옷 등을 착용할 수 없게 되었다. 줬다가 뺏는 격이니 불만이 안 나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여기에 불을 지핀 업데이트가 하나 더 있었으니 새로운 아이템으로 판금갑옷, 면갑, 사각방패와 같은 나이트 전용 장비들만 추가했다는 점이었다. 이쪽은 줬던 것도 뺏는데 저쪽은 빼기는커녕 외려 더 쥐어준다. 뿔이 날 수밖에 없었다.

- 이건 진짜 말도 안 됩니다. 나이트들은 7짜리 갑옷에 3짜리 추가 장비가 생기는데 왜 엘프들은 6도 못 입게 합니까?

- 엘프들이 힘을 합쳐서 항의해야 합니다! 이미 유저들은 아림에서 판매하는 강화 주문서들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 이건 진짜 끝까지 갑시다!

나이트들의 방어력은 높이면서 왜 자신들은 줄이냐는 주장. 엘프들의 열띤 파업과 항의! 저 자판기로서만 엘프를 쓰는 내게는 흥미로운 강 건너의 불구경에 지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초보들은 별 상관없겠지. 미늘이나 띠 갑옷에 강화 주문서를 바른 사람들은 미칠 맛일 테고.”

제3자로서 객관적인 분석을 할 따름이다.

웃긴 건 게임사에서 밸런스를 파괴한다는 명목 하에 싸울아비 장검 등의 아이템을 강제 회수했지만 이에 대한 항의는 별반 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 코가 석자이고 자기 발에 떨어진 불씨를 치우기 바빠서였다.

“힘내라 힘. 이기는 편 우리 편.”

결국 자신들의 막장 운영으로 유저들의 반발과 분노가 극에 다다르자 게임사는 이들을 달랠 새로운 시스템을 내어놓았다.

『*공지*

앞으로 엘프 클래스는 엘프족 장비를 착용할 시 특별한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엘프족 망토 ? 엘프가 착용 시 hp회복속도가 상승합니다. 또한 무거운 상태일지라도 약간의 hp회복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엘프족 방패 ? 엘프가 착용 시 마법저항력이 추가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엘프들의 전용 마을인 엘븐 우즈를 공개했다. 당장 업데이트한 것은 아니지만 ‘오직 여러분을 위한 곳! 채집과 제작이 두루 가능한 마을입니다! 곧! 열립니다!’라는 달콤한 속삭임을 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공지가 덧붙었다.

『추가 변경사항입니다.

‘마법 망토’에 마법 방어력 10%가 추가 됩니다.

‘반사 방패’를 강화할 시, 괴물 눈의 석화에 대한 저항력이 강화 당 20%씩 상승합니다.』

이전까지 마법 망토는 고작 방어력 1에 지나지 않는 장비였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마법 방어의 상징적인 망토가 되었다. 아울러 유저들이 크게 경악한 것은 반사방패에 대한 변화였다.

- 그럼 +5 반방 낀 사람들은 괴물 눈에 얼지 않는 거야?

- 그렇겠지? +5면 100%잖아.

- 오오!! 쩌··· 쩐다!!!!

이때의 괴물 눈은 공격시 80% 이상의 확률로 유저를 석화시키는 위용을 자랑했다. 특히나 문제되는 것은 본토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네크로맨서와 눈 장로라 불리는 녀석들이다. 이들은 괴물 눈을 거느렸고 석화시키는 공격 탓에 공략에 어려움을 주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 +5 반사 방패만 착용하면 그 걱정과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해소된다. 실로 어떤 유저는 화내고 누구는 울며 때로는 웃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나 같은 장사꾼이 하는 일은 무엇이겠는가.

“몽땅 산다.”

엘프 유저들이 쓰던 나이트 장비가 돌아다니고 나이트 유저의 엘프 장비가 역시 시장에 나오는 마당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다며 내놓는 미늘 갑옷과 띠 갑옷, 엘프 방패 등등 대량의 매물이 넘쳐난다.

하지만 나이트 유저들은 구매하지 않았다. 조만간 나올 판금갑옷이 더 낫기 때문이다. 엘프들이 입지도 못하는 이 장비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떠돌았고 자연스레 가격은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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