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1화 (1/577)

꿈이 아닌 거 같아

프롤로그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터넷 창이 열렸다.

“이걸 이제 와서 놀라는 것도 신기하다.”

메인화면에 떡하니 있는 기사문을 보니 실소가 저절로 나왔다.

『게임으로 먹고 산다. 게임아이템 거래 시장 그 규모에 ‘깜짝’』

내용은 국내 게임아이템의 거래시장은 연간 1조 5천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매우 활발하게 성장 중이라는 거였다. 다만 아직은 암시장과도 같은 구조이기에 사기 등의 사건으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기사문이었다.

“또 이러네. 시작은 칭찬해주고 끝에는 부정적으로 쓰는 거.”

게임과 관련한 기사들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처음에는 엄청 대단하다고 띄워주는 듯 하지만 결국은 부작용이 있는 산업이라는 거다. 흡사 착하면 상을 받고 나쁘면 나중에 벌을 받는 어린이 동화처럼 말이다.

‘나야 아무렴 좋지.’

세간의 인식이 어떻건 기사에서 씹어대건 상관없다. 나라에서 아무리 이건 나쁘다 어쩌다 해봤자 결국 돈 버는 놈들은 이것으로 돈을 벌고 살고 있다. 물정 모르는 이들은 아직도 ‘오락기 아이템’이니 ‘애들 코 묻은 돈’이니 한다.

그러니 게임회사가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이고 야구단도 운영하는 갑부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이렇듯 잘 모르는 곳에서 크게 자본이 돌고 떡고물을 챙기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나다.

1. 꿈이 아닌 거 같아

파주에서 4년 3개월이라는 길고 긴 군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민간인이 되던 날.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일까, 미스터리한 드라마를 본 영향이려나. 길고 긴 꿈을 꾸었다. 그것은 덤덤하게 살아가는 나의 미래였다.

“윤 중사님?”

대략 20여년을 꿈에서 지냈는데 놀랍도록 현실적이라서 딱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평범’이라는 두 글자였다. 지극히 소시민적이었기에 지나는 40대의 중년 남성 아무나를 붙들고 물어봐도 다 공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피식 웃다가도 이따금 머리를 흔들게 된다.

‘개꿈치고는 너무 디테일이 살아있었단 말이지. 흡사 미래를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오직 ‘나’라는 개인. 윤태식이라는 한 사람의 시각과 경험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특이한 꿈을 꾼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서인지 꿈속에서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었고 덕분에 소주 한 병을 마신 듯 정신이 알딸딸했다.

그때 운전병 녀석의 잡음이 다시 들렸다.

“윤 중사님. 그렇게 목 놓아 외치던 전역이신데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으십니까?”

“내 몸뚱이가 26살인데 정신은 46살 같아져서 그런다.”

“예? 잘못 들었습니다?”

“시끄럽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구형 지프차였다. GOP에서의 전역이기에 버스를 탈 수 있는 터미널까지 대대 운전병이 태워주는 길이다. 잡념에 빠져있던 나는 툴툴 웃으며 대꾸했다.

“이제 전역인데 중사님은 무슨 중사님이냐? 그냥 형이라고 해라.”

생각이 복잡한 와중에도 군바리티를 내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저씨 같아져서 그런지 아재 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더욱 싫다.

그렇게 수정을 하던 중 눈앞의 산길이 오버랩 되듯이 보였다. 꿈에서 보았던 광경과 실제 내가 보는 것이 교차한 것이었다.

일순간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야. 속도 줄여봐. 멧돼지 나올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꿈에서는 전역을 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세 마리의 멧돼지가 뛰어들었었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꽤나 위험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실감나는 개꿈을 꿨는지 예지몽을 경험했는지 보자.’

어차피 속도를 줄인다고 손해 볼 것도 없다. 밑져야 본전이고 아니면 말면 된다.

“예? 아무리 산중이라지만, 여기서 멧돼지를 만난 기억은 없는데요?”

“줄이라면 줄여.”

나의 강경한 태도에 못 이겨 결국 속도를 줄이는 운전병.

놀라운 건 그 다음 발생했다. 정말로 세 마리의 멧돼지가 우리의 앞에서 차도를 넘어가는 것이다.

“윤 중사님만큼 군 생활을 하면 이런 것도 예상할 수 있게 되는 겁니까?”

놀라움과 황당함을 담아서 운전병이 말했다. 하지만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그 감정의 크기는 내가 더욱 컸다.

‘이 꿈··· 진짜인가?’

사실 반신반의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장난치듯이 말해봤는데 꿈과 놀랍도록 똑같은 일이 생겼다. 차이점은 그때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천장에 머리가 부딪쳤었다는 것이고 지금은 여유 있게 멧돼지 가족들을 구경했다는 정도였다.

“와. 진짜 윤 중사님은 행보관이 되셨어야 한 거 같은데.”

이후 시끄럽게 계속 재잘거리는 운전병의 말이 들렸지만 적성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여러 가지 계산으로 핑핑 돌고 있었다.

“윤 중사님! 나중에 휴가 나가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땐 술 한 잔 사주시는 겁니다!?”

“형이라고 하라니까 인마.”

“네! 태식이형! 부럽습니다! 민간인! 즐기십쇼!”

쓸데없이 대성 박력 하는 걸 보면 군인은 역시 군인이었다.

“그래. 고생해라.”

손을 흔들어주고는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기분 참 묘하네.’

꿈 때문일까. 적성 터미널은 군생활을 하며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나온 곳이었다. 그럼에도 아주 오래전에 왔던 것 같이 멀게만 느껴졌다. 또 그러면서도 기억은 아주 가깝다. 46살의 꿈속 윤태식에게는 추억의 장소지만 26살의 윤 중사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 감정의 차이가 참으로 미묘하고 이상했다.

과연 내가 지난밤에 꾼 꿈은 뭐였을까.

정말 예지몽이었을까. 내가 이것을 믿고 미래를 결정해도 괜찮으려나.

“하나 더 확인해보자. 내 전역일은 나름 다사다난했거든.”

테스트하기 좋은 건수가 또 있었다.

‘기억대로라면 다방 레지로 추정되는 여자가 지나가다가 이 앞에서 좌회전 하는 차에 부딪혔어.’

이는 아까의 멧돼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잔혹한 사고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빠르게 좌회전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차량 탓에 사람이 볼링 핀처럼 튕겨나가며 벽에 부딪쳤었다.

사지가 망가진 장난감처럼 꺾인 것을 보고는 돌아오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였다. 나는 예의 꿈과 비교하며 신중하게 걸었다. 피해 여성을 찾은 것이다.

‘저기 있어. 기억과 똑같은 옷이야.’

블랙&화이트로 깔끔한 디자인에 나름 가슴과 몸매에 자신이 있는지 가슴을 드러낸 쫙 달라붙은 H라인의 원피스. 이런 군부대에 있는 다방 레지에는 흔하지 않은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몸매가 완벽해서인지 얼굴이 살짝 아쉽다는 생각을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 주제에 평가는 뭔 평가질이냐.’

그녀는 꿈에서 봤던 피해자였다. 나는 뒤를 따라 걸음을 재촉하며 생각했다. 꿈이 진짜배기인지 알기 위해 사고를 외면할 생각은 없었다. 무식하게 달려오는 그 차량만 발견해도 충분하니까.

다만 어떻게 저 여자를 불러 세워야 할지에서 고민이 됐다.

‘꿈에서 당신이 사고가 났습니다. 그러니 멈추세요! 라고 했다간 내가 미친 놈 취급을 받을 테고. 그냥 차나 한잔 하자고 붙들자니 성추행이잖아. 요즘 젊은 것들 잘못 건드렸다간 내가 은팔찌··· 잠깐. 지금은 나도 젊은 녀석인데?’

여자와 대화를 하는 방법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 군바리와 꿈에서의 46살 윤태식이가 함의점을 찾는 중이었다. 그 사이 여자는 어느덧 교차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빵빠앙-!

그리고 크게 울려 퍼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

가만히 있다간 꿈에서처럼 사고가 날 게 분명했다.

‘미친! 멘트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

꿈은 진짜였어, 따위의 평가는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고로부터 구하기 위해 바로 몸이 움직였다. 여자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고 굳어서 눈만 크게 뜨고 있었고 나는 단박에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둘 모두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에 여자의 허리와 뒤통수를 감싸며 길바닥을 굴렀다.

타박상으로 인한 통증과 함께 내심 욕설이 나왔다.

‘쓰레기 같은 새끼. 전에도 저렇게 도망쳤었지.’

사고를 낼 뻔했던 자동차는 놀랐는지 잠시 브레이크를 잡는 듯보였다. 하지만 곧장 가속페달을 밟고는 쌩하니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 와중에 다른 군인 하나를 툭 쳐서 넘어뜨리기까지 한다.

‘차량번호!’

꿈에서는 경황이 없어서 미처 암기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작정하고 똑똑히 외워주었다. 뺑소니로 신고하여 정의의 응징을 꼭 받게 하고 말 요량이다.

나는 사고가 날 뻔 했던 여자를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일어나서인지 그녀는 멍한 얼굴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기색이다.

“이보세요. 어디 다친 데는 없죠?”

재차 물어본 뒤에야 여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말을 듣고 잠시 자신의 몸을 훑어보더니 밝아진 안색으로 거듭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다행이네요. 방금 정말 위험했습니다.”

앞으로 길을 걷는데 조심하라는 투의 소리는 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일은 무지막지하게 달려온 그 차량 때문이지 보행자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이거 화면이 왜 이렇게 작아? ···맞다. 스마트폰이 아니었지?’

혼자 어색해 하다가 112를 눌렀다.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준법정신을 발휘할 때였다.

“네. 수고 많으십니다. 뺑소니 신고를 하려고 하는데요. ···네. 적성터미널입니다. 이름은 윤태식이고 사고 피해자는 제가 아니라··· 목격자입니다. ···네. 차량 번호는 경기 ** 마 ****입니다.”

신고를 깔끔하게 마쳤으니 꿈에서는 하지 못했던 일을 원활하게 잘 처리한 셈이다.

‘좋아. 이것으로 확실해졌어. 내 꿈은 초대박이었던 거야.’

난폭 운전자에게 정의구현도 했고 사람 역시 구했다. 더불어서 정신 사납게 떠돌고 있는 20년간의 기억이 한낱 망상이 아니라는 확신도 얻었다. 남은 건 인생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려야 쉽고 편하게 성공할 수 있는지 기분 좋게 계획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빤히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휴대폰을 놓으며 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조금 전의 다방 레지가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휴가 나가시는 거예요? 부사관 인 거 같은데 그럼 이곳에 오래 계시겠네요? 제 이름은 미현이에요. 불러주시면 제가 서비스는 진짜 확실하게 해드릴게요.”

이 와중에도 영업을 한다. 나름 대단하다.

‘생계전선은 역시 치열한 거였어.’

감탄과 놀라움을 담아서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군생활 중이라면 혹 모를까, 전역해서 이제 집이 있는 인천에 갈 참이다. 연이 닿는다손 쳐도 인천과 파주는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이후 예비군 마크를 달기 위해 용사의 집으로 향했다. 이름이 애들 변신물에서나 나올 정도로 유치하지만 그것도 처음에나 그렇지 나중에는 그냥저냥 괜찮아진다.

“상사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이게 뭐냐.”

워낙에 깐깐하고 강경한 주임원사 덕분에 전역신고를 하기 전에 예비군 마크를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아직 계급장과 연대 마크를 그대로 달고 있는 상황이다. 자고로 전역의 기분을 내려면 예비군 마크를 달아야 한다.

잠시의 기다림을 마친 후 나는 즐겁게 집으로 향했다.

*

“드디어 도착이구나!”

버스에서 한숨 푹 자고 나니 어느덧 인천 터미널에 와 있었다. 뭍을 떠나있던 뱃사람처럼 괜스레 땅을 꾹꾹 밟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최전방 GOP와 비교하자면 한참이나 좋지 못한 도심의 공기다. 그럼에도 이 공기가 한없이 상쾌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이곳에는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야 민간인이라는 게 실감이 나.’

아무리 이미 전역을 했더라도 군부대 근처에서와 인천에서 느끼는 감정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볼 것 없는 경관을 둘러보다가 꿈에서의 나. 이제는 믿고 인정하기로 한 ‘미래의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떠올렸다.

“그냥 정신없었지.”

그 여자는 괜찮았나, 뺑소니 차주는 잡혔는지도 고민했다. 그러는 한편 매우 이기적이게도 ‘전역일에 재수 옴 붙었네.’따위를 떠올리다가 복학해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 등에 몰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오늘 두 가지 사건을 잘 바꾼 것처럼 나의 인생 역시도 획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예지몽을 경험했다는 건 그런 거다.

‘그래봐야 내 삶만 바꾸는 정도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 한 거 아니겠어?’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할 시기다.

나는 터미널을 나서며 고민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우선 하나는 확실하다. 복학 후 졸업후 취직. 이래저래 친구들 만나고 직장생활도 하며 여가로 게임하는 등 젊음을 즐기다가 할부로 차를 사며 대출로 집을 구매하는 인생. 그러다 결혼 정보회사에 등급 매겨져서 결혼하고자 아등바등하는 거였다.

딱히 굉장한 비극이나 희극이 없는 갑남을녀의 삶인데 이런 건 꿈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다시 질문이다.

‘뭐하고 사는 게 좋을까?’

미래의 모든 것을 두루 꿰고 있다면 굉장한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윤태식이라는 소시민의 미래만 경험했다. 그러니 그 한도 내에서 골라야 한다.

“오늘처럼 똑같은 노선이되 살짝만 바꾸는 건······.”

예전과 똑같이 복학 후 취직의 라인을 고르는 삶을 떠올렸다. 적성 터미널에서 사고를 방지했듯이 조금씩 유리하게 바꾸며 노련하게 사는 인생이다.

승진도 빠를 것이다. 누가 좋은 사람이고 성격 더러운 지도 잘 아니 스트레스도 덜 받을 터다. 하지만 이 무난한 선택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나는 군대에서 읽은 자기경영 도서를 떠올렸다.

비전을 찾을 때는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러면서 성공도 하는 거라면.’

답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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