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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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워 부스 안에서 키스를 나누던 중, 안정적으로 아기집이 생겼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은호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꿰맨 상처가 터질까 걱정스럽기만 한데, 그는 눈썹 하나 구기지 않고 그녀를 침대까지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하체를 가렸던 수건을 벗어 던진 그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 모습이 마치 배고픈 포식자가 사냥감에게 달려드는 듯 보여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기대감에 아랫배가 조여든다.

    그녀가 침대 등받이 쪽으로 몸을 물리자 어느새 거리를 좁힌 은호가 성급하게 입술을 겹쳤다.

    “흣.”

    갑작스레 삼켜진 입술이 그의 입술 사이에서 가느다란 신음을 뱉었다. 그러자 한층 거칠어진 움직임으로 은호가 입술을 탐했다.

    쉴 새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와중에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옷 안을 파고들었다.

    속옷째로 거칠게 움켜쥐는 행위가 얼마나 난잡한지 연신 신음이 흘렀다. 하지만 뱉는 족족 입술이 먹어 치워 소리가 되지는 못했다.

    조용한 방 안에는 입술이 부닥치는 습한 소음만이 가득했다.

    어느덧 블라우스가 벗겨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속옷 틈을 비집고 들어와 손을 놀리던 은호가 그 얇은 방어막마저 벗겨 버렸다.

    달고도 짙게 입술을 머금던 은호가 살며시 입술을 내렸다. 뜨거운 키스가 턱으로 이어지고, 이내 목 한쪽에 짙은 흔적을 새겨 넣었다. 아릿한 통증에 해주가 나직이 신음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손이 스커트 아래를 파고들었다.

    “으응.”

    손의 움직임이 깊어지자 연신 젖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비음이 섞여 든 신음은 그녀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야하기만 했다.

    그렇게 그녀를 희롱하던 손이 물러가고 나머지 옷마저 몽땅 벗겨졌다.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다.

    해주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거친 쾌락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든 것이 안정된 후라 만족감은 더 깊어졌다.

    그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긴 해주는 흔들리는 시야에 은호를 담아내며 열락에 빠져들었다.

    문득 은호의 말이 떠올랐다.

    100일간 진짜 부부처럼 살 것을 제안한 은호는 해주가 그와의 육체적 관계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좋아하게 될 거야. 아니, 좋아하게 만들 거야. 미치도록 나를 원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와 나누는 이 모든 것들이 미치도록 좋았다. 비단 육체적 관계로 얻을 수 있는 쾌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와 사랑을 나눌 때 느껴지는 모든 것이 그녀를 강렬하게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안을 때의 은호에게서는 평소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차갑고 단단한 방어벽을 허문 듯, 은호는 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게 미치게 좋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근육의 질감이 좋았고,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순간은 절정에 이른 그가 나른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그럴 때면 그녀 역시 최고의 기분을 맛보며 흐드러지고 만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함께 절정에 이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몸을 얽은 채 침대로 무너졌다.

    절정의 여운에 들썩이는 가슴을 은호가 입술로 간지럽혔다. 한 번으로 끝낼 마음이 없다는 무언의 선전포고였다.

    침대 시트가 다 젖도록 열정적인 섹스를 나눴는데, 그에게는 겨우 시작일 뿐이다.

    길게 이어지는 키스와 뜨거운 애무로 다시 몸이 달아올랐다.

    엎드린 채 그를 받아 낸 해주는 조금은 저가 짐승처럼 느껴져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밀려드는 쾌감에 머릿속은 이내 하얗게 비워져 버렸다.

    이렇게 서로를 안는 순간에는 아이도, 평창동의 부모님도, 경찰서에 있을 경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서로에게만 집중하며 뜨겁게 사랑을 나눌 뿐이다.

    결국 녹초가 되어서야 그에게서 놓일 수 있었다.

    침대에 반듯하게 누운 해주가 제 아랫배를 두 손으로 감쌌다. 아무리 안정되었다지만 아이에게는 너무 격렬한 운동이 아니었을까.

    그 순간 해주의 손 위로 은호의 커다란 손이 겹쳐졌다. 미간을 슬며시 좁힌 그가 걱정스레 물었다.

    “왜? 아픈 거야?”

    걱정을 끼쳤구나.

    그의 물음에 얼른 고개를 저은 해주가 살며시 웃으며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안 아파요.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야.”

    “그게 왜 걱정이야?”

    “아이가 이런 환경에 익숙해질까 봐.”

    그녀의 대답에 은호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짓궂게 따져 들었다.

    “이런 환경이라니? 이런 환경이 대체 어떤 환경이길래.”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자 은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엄마가 너무 야해서?”

    배꼽 근처를 배회하던 손이 그녀의 몸을 은밀히 매만졌다.

    “아니면 아빠가 지나치게 밝히나?”

    귓바퀴에 바짝 들이댄 입술이 습한 바람을 훅, 불어 넣었다. 가느다란 바람 한 자락에도 온몸이 간지러워 어깨를 움츠린 해주가 그를 밀어냈다.

    그러면서도 싫지는 않았다.

    그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엄마, 아빠라는 단어가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아빠에게 이토록 뜨겁게 사랑받는다는 걸 안다면, 아이도 좋아할 거야.”

    그의 대답에 해주의 뺨이 붉어졌다.

    은호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동그란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슬쩍 내리누른 그가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뭐랄까, 무척이나 경쾌하고 행복하게 들리는 웃음이었다.

    그의 얼굴을 살며시 올려다본 해주가 물었다.

    “왜 웃어요?”

    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본 그가 그녀의 콧잔등에 키스했다.

    “좋아서.”

    은호는 지금, 이 순간이 무척이나 좋았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해주가 그의 품 안에 안겨 있고, 그녀의 심장 고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리고, 해주의 배 속에는 그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완벽한 충만감.”

    “……?”

    “행복하다고.”

    은호의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해주의 담갈색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좀 더 짙은 감동이 전해졌다.

    은호 역시 저가 행복하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랑, 행복. 그런 추상적인 것들에 지배당할 줄이야.

    눈물이 아른거리는 해주의 눈에 입술을 가져가자 짭조름한 눈물 맛이 전해졌다. 그의 미각이 고장 난 건지, 짜디짠 눈물마저 그저 달았다.

    “해주야.”

    해주에게서 입술을 떼어 낸 은호가 그녀를 뭉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는 말간 눈동자가 가슴을 시큰하게 만들 만큼 사랑스럽다.

    “이젠 결정해야 하지 않겠어?”

    “뭘요?”

    해주의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100일간의 유예기간 말이야.”

    벌써 50일이 넘게 흘렀고, 이제 곧 세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아직도 여전히 이혼이라는 걸 하고 싶은 거야?”

    은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해주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사랑을 욕정이라 치부하고 멀어지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은호가 선택한 것은 해주를 제 곁에 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은 그토록 원하는 그녀를 제 곁에 두게 되었다.

    시간을 들여, 공을 들여, 그녀의 마음을 허물고 그녀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너무나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건 그녀가 이혼을 선포한 순간 알게 되었다.

    “해주야, 선택은 네가 하겠지만, 난 널 놓아줄 수 없어. 그러니까…….”

    그 순간 해주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소리와 함께 맞붙었던 입술이 떨어지고 해주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100일만 시간을 줘. 그 시간 동안 네가 날 사랑하게 만들게.]

    [장담하건대, 넌 나 못 떠나.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들 거니까.]

    문득, 100일간의 유예기간을 선포하며 그녀의 마음을 빼앗을 거라 말하던 은호가 떠올랐다.

    겨우 50여 일 전의 일인데도 마치 아득히 먼 옛날 같다.

    그날을 기점으로 삶의 온도가 달라졌다.

    지나와서 생각해 보니 그 전의 삶은 지옥 같았다. 그를 원하고, 그를 사랑하기에 상처받고, 아파하고, 홀로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던 나날.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이혼을 결심한 거다.

    너무 사랑해서, 너무 갖고 싶어서, 함께할 수 없다는…… 뭐, 그런 다분히 신파적인 이유랄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당신이 이겼어요.”

    그의 마음을 알고, 그의 사랑을 받고, 그와 행복을 나누게 된 지금.

    “나, 이제 당신 없이는 못 살아요.”

    은호 없는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결국, 그날 그가 선포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당신이 이렇게 만든 거예요.”

    해주는 그와의 게임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그녀는 졌고, 그는 이겼다. 하지만 누가 승자이든, 패자이든,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답이 정해진 게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평생 날 책임져야 해요.”

    그러고는 해주가 은호의 입술을 살며시 머금었다. 부드럽게 매만지다 멀어지려 하자 은호의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 도망가지 못하게 단단히 붙들었다.

    “내가 이긴 게 아니야.”

    까만 눈동자가 어둑하게 짙어졌다.

    “네가 이긴 거야.”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입술을 느른히 쓸었다. 가운데를 꾹 누르자 입술이 살며시 열렸다.

    “난 너와의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 없어.”

    노곤하게 열린 입술을 담아내는 까만 눈동자에 아련한 빛이 어렸다. 그런 그의 시선에 심장이 떨린다.

    “그러니까 해주야, 네가 날 좀 책임져 줘. 평생.”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애달픈 목소리에 심장이 터질 듯하다. 애써 떨림을 숨긴 해주가 눈을 내리깔고는 도도하게 물었다.

    “내가 당신 책임지면, 당신은 뭐 해 줄 건데요?”

    그러자 은호가 엷게 웃었다.

    “사랑.”

    짧게 대답한 은호가 입술을 겹쳐 왔다. 더 깊게 맞물리기 전 다시 물었다.

    “사랑? 욕정이 아니라?”

    “욕정을 가장한 사랑이지.”

    욕정을 가장한 사랑.

    그 짧은 대답을 끝으로 그녀를 깊숙이 침범한 그가 욕정을, 아니 사랑을 새빨갛게 불태웠다.

    해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100일 부부였던 두 사람이 이로써 진짜 부부가 되었음을 말이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욕망하며, 무수한 시간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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