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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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든다는 은호의 말에 경은의 눈꼬리가 야하게 휘었다.

    커다란 가슴을 짓누르듯 밀착시켜서는 그의 손을 슬며시 가져갔다.

    그의 손으로 제 몸을 두르게 한 경은이 게슴츠레한 시선을 그에게 두었다.

    “오늘은 날 안아요, 부회장님.”

    마치 명령을 내리듯 단호한 말에 은호가 픽, 웃음을 흘렸다.

    “난 해주 외에는 안 안아.”

    그러자 토라진 표정을 지은 경은이 은호에게서 몸을 물렸다.

    “어차피 해주…… 없잖아요. 가련한 해주는 병원에 누워서 울고 있을까.”

    측은하다는 듯 경은이 혀를 끌끌 찼다.

    “유산했잖아요. 당신 때문에.”

    “이런, 잘못 알고 있는데?”

    은호가 한쪽 입술 끝을 비스듬히 말아 올리며 웃었다.

    “나 때문이 아니잖아. 너 때문이지, 박경은 씨.”

    그러고는 검지를 세워 그녀의 쇄골 끝을 툭툭 밀쳤다.

    “계단에서 밀어 버리려 한 게 누군데.”

    “그런가?”

    어깨를 으쓱한 경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고는 비릿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었다.

    “배 속에 아이가 있는 줄 알았으면 정말로 밀어 버리는 건데.”

    “정말로 밀었잖아. 죽어 버리라는 말을 내가 들었는걸? 다행히 그 순간 내가 해주를 붙들었고 말이야.”

    은호의 말에 경은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맞아요. 내가 밀었어요. 그렇다고 실패한 건 아니야. 한 번 봐준 거지.”

    “봐줬다?”

    “부회장님은 해주를 구하느라 그 순간, 무방비 상태였죠. 그때, 둘 다 밀어 버렸으면 간단한 일이에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순간 은호는 해주를 지켜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부회장님이 끼어들어서 내가 못 밀었잖아.”

    광기 어린 눈빛으로 은호를 바라본 경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은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경은이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쓸었다.

    “적어도 차은호, 당신은 멀쩡해야 하니까.”

    은호의 얼굴을 매만지던 손이 목덜미를 파고들며 감쌌다.

    “뭐 어쨌든 아이가 사라졌다니, 다행이지 않아요?”

    제 목덜미에서 경은의 손을 떼어 낸 은호가 서늘하게 말했다.

    “이봐, 박경은 씨. 내가 아이 아빠야. 아이가 사라진 게 다행이라는 말, 내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 아이는 내가 낳아 줄 테니까요.”

    기가 막힌 말에 은호의 한쪽 눈썹이 비스듬히 휘었다.

    “그러니 해주는 그만 놓아줘요.”

    “무슨 뜻이야?”

    “해주는 그렇게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해주의 이름만 거론되면 경은의 눈빛이 묘하게 뒤틀린다.

    “그 아이는 모두의 연인이어야 하죠.”

    광기를 넘어서, 마치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 모두에 당신도 포함인가? 박경은 씨?”

    “음, 아마도요?”

    해주에 대한 끔찍한 집착과 비정상적인 애정. 그리고 뒤틀린 증오심.

    “말해 봐.”

    무슨 일이 있어도 끊어 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해주가 산다.

    “날 원하는 거야? 아니면 해주를 원하는 거야?”

    “둘 다?”

    쉽게 대답하더니,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음, 지금은 해주보다 당신?”

    그러고는 입술 끝을 활짝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차은호, 당신을 갖고 싶어요.”

    차가운 손이 그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그러지 말고, 부회장님.”

    그러고는 침대로 그를 이끌었다.

    “우리, 섹스나 해요.”

    뱀 같다.

    박경은은 마치 뱀 같은 여자다.

    “해주에게 하듯 나한테도 해 줘요.”

    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침대에 앉은 경은이 다리를 활짝 열었다. 이미 잔뜩 흥분한 채 그를 기다리는 모습에 구역질이 날 것 같다.

    “해주보다는 내가 더 큰 즐거움이 될 거예요.”

    “말했잖아. 해주 외에는 안지 않는다고.”

    그를 붙들고 있는 차가운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더욱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다시금 그의 손을 붙들었다.

    “나는 달라요. 내가 해주니까.”

    “뭐라고?”

    은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당신 마음에 들려고 해주와 똑같이 수술했어요.”

    경은이 턱을 들어 올려 제 얼굴을 보란 듯이 내밀었다.

    “오랫동안 해주를 지켜봤고, 연구했어요. 내가 해주가 되어 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고 말이에요.”

    “무슨 뜻이지?”

    “지해주가 되어야 차은호 같은 남자를 가질 수 있길래 모든 걸 지해주 식으로 바꿨다고요.”

    그러고는 은호의 손을 제 가슴 위로 끌어다 올렸다. 은호의 손가락 사이로 빳빳해진 정점을 물려 준 경은이 손을 움직였다.

    “이 가슴도 해주 사이즈로 완벽하게 구현한 거라고요.”

    은호의 손에 가슴을 비비며 연신 야릇한 숨결을 내뱉은 경은이 말을 이었다.

    “해주를 사랑했던 남자들은 모두 날 안으면서 만족했어요. 나를 통해 해주를 느낄 수 있댔어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 경은은 열락에 빠진 눈동자로 헐떡거렸다.

    “당신도 만족하게 될 거야, 차은호 부회장님.”

    그 모습을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은호가 손을 빼냈다.

    “한국대 경영학과 출신의 황경순 씨.”

    그러고는 불결하다는 듯 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 학벌이면 머리가 나쁠 리는 없고.”

    마치 더러운 벌레라도 본 것처럼 은호의 미간이 퍼석하게 구겨졌다.

    “혹, 머리가 나빠도 그동안의 학습으로 충분히 깨달아 알 텐데.”

    “……?”

    “내가 말이야, 지해주 외에는 반응이 안 와.”

    서늘한 시선이 경은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이 천박한 가슴을 아무리 들이밀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고. 알겠어? 이 멍청한 여자야.”

    잇새로 흘러나오는 차가운 말에 경은이 몸을 파들거리며 떨었다. 그 말이 트리거가 된 걸까. 경은의 눈동자가 희번덕거리며 뒤집혔다.

    “날 안아, 차은호.”

    손을 뻗은 경은이 그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아니면, 네가 사랑하는 지해주를 끝까지 따라가서 죽여 버릴 거니까.”

    이를 악문 경은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못 할 것 같아? 해주가 더럽혀지는 걸 보느니 죽여 버리는 게 나아.”

    “지금 해주를 죽이겠다고 날 협박하는 거야?”

    은호의 물음에 경은이 코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협박 아니야. 선언하는 거지. 내가 해주를 사랑한 역사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9년이야.”

    눈알을 뒤집은 경은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나보다 그 애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난 늘 해주를 지켜봐 왔으니까. 해주는 당신 욕정받이가 되어서 살아갈, 그런 존재가 아니야.”

    스토커가 어찌 정상일 수 있겠냐마는, 박경은은 그 범주를 완전히 뛰어넘은 인간이었다.

    “네 얼굴에 혹한 해주가 타락하는 꼴을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아?”

    “미친…….”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야.”

    더는 부여잡고 있을 이성이 없는 건지, 은호를 쥐어뜯을 듯 미쳐 날뛰었다.

    “죽여서, 깨끗하게 만들어 줄 거야.”

    그런 경은의 손목을 은호가 힘껏 거머쥐었다.

    “그러니까 날 안아. 네가 날 안으면, 해주는 살려 줄게.”

    “웃기지 마. 그리고…….”

    손톱이 부러질 듯 은호의 옷깃을 거머쥔 경은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

    “이걸로 충분해.”

    “……?”

    “고마워, 박경은.”

    갑작스레 던진 인사에 움직임을 멈춘 경은이 미간을 좁혔다.

    “수사에 협조해 줘서.”

    너무 빨리 벌어진 일이지만, 너무나 쉽게 계획대로 되었다.

    “아마, 저 밖에 경찰이 와 있을 거야.”

    필요한 모든 것을 녹음했고, 경은이 이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녹화되었다.

    “내가 널 해주 스토킹 혐의로 신고했거든.”

    증거는 이로써 완벽히 갖춰졌다.

    “내 어머니를 이용해서 CCTV를 설치하고, 해주의 사생활을 엿보고, 온갖 거짓말로 해주 주변 사람들을 헤집었어.”

    이미 관련자들의 진술도 확보된 상태다.

    “내 어머니도, 최미정, 강현욱도 피해자들이지.”

    은호가 만족스레 웃었다.

    “너한테 놀아났으니.”

    그러고는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그녀의 옷가지를 집어 던졌다.

    “옷이나 입어. 경찰서 가려면 옷은 입어야지 않겠어?”

    바짝 얼어붙은 경은은 여전히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함부로 말하지 마. 해주 가슴을 구현했다니. 그거 모욕이야.”

    그 가증한 얼굴을 바라보며 은호는 경멸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 여자 가슴은 너처럼 그렇게 천박하지 않아.”

    그리고 마음껏 조롱했다.

    “지해주 되기 프로젝트는 실패했다는 뜻이야, 황경순 씨.”

    * * *

    조금은 싱겁게 끝이 난 듯했다.

    옷을 입지 않는 경은에게 억지로 샤워 가운을 입혔고, 대기하고 있던 정 실장이 그녀를 끌고 집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진우가 담당 형사와 함께 집 앞에 도착했고, 가택침입 현행범으로 경은을 넘기려던 참이다.

    “형사님, 스토킹 혐의 입증한 음성 파일 넘기겠습니다. 증거 충분하면 가택수색 가능하죠? 집을 뒤져 보면 확실해질 것 같아서요.”

    “네, 영장 청구하겠습니다.”

    스토킹, 무단 침입, 협박, 살인미수, 성희롱까지. 박경은을 옭아맬 혐의는 차고도 넘쳤다. 또한 그 혐의를 입증할 증거까지 완벽하게 갖춰졌다.

    이젠 공권력에 맡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데리고 가시면 마약 검사도 한번 해 보세요. 미국에 있을 때는 마약도 곧잘 했다니까 지금도…….”

    그 순간이었다. 굉음과 함께 경찰차 뒷부분이 박살이 났다.

    형사가 몸을 피해 바닥에 엎드렸고, 진우가 뒤로 물러났다. 정 실장의 손이 아주 잠시 느슨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경은이 몸을 움직였다.

    경찰차 뒤를 들이받은 SUV 뒷문이 열렸고, 경은이 차 안으로 몸을 던졌다.

    빠른 속도로 후진하는 차를 바라보며 은호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튀었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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