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유일반 옆집 살던 애 말로는 어젯밤에 그 집으로 구급차가 한 대 왔었대. 거기서 실려 나온 유일반이랑 비슷한 애가 의식이 없었대. 걔네 아버지가 의사라 심폐 소생술 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거 보더니 테이블 데스 할 거라고…….
“수아야…….”
나 못 알아듣겠어. 지금 무슨 소린지 아무것도 안 들려.
태영은 간단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 가망 없을 거래. 갑자기 심장 쇼크가 왔을 경우 병원에 가도 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했대.
“나 모르겠어. 니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고. 어쨌든 난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태영이 울먹이며 억지로 다리를 일으켰다. 그리고 골목을 올라갔다. 가게가 원래 이렇게 높은 곳에 있었나? 지난날 녀석과 올라갈 때는 힘든 줄도 몰랐는데. 오늘따라 유독 다리가 무거웠다. 숨이 너무 찼고 가슴이 숨도 못 쉬게 아팠다.
― 알았어. 알았으니까 태영아, 너무 오래 기다리지 말고 유이반 안 오면 일단 집으로 가. 알았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걱정스러운 수아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태영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마침내 꼭대기 바비큐집 앞에 도착했다.
태영은 목에 건 소화기 펜던트를 손에 꽉 쥔 채로 간절히 빌었다.
늦어도 좋으니 제발 와 달라고. 제발 와 주기만 해 달라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날 녀석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 * *
“모태영! 너 복도에서 뛰지 말랬……. 저게, 담임 말하는데 듣지도 않고 어딜 저렇게 뛰어가? 모태영!”
뒤에서 담임이 애타게 태영을 불렀다. 하지만 지금 태영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태영은 아까보다 더 빨리 전속력을 다해 달려갔다.
‘지금 교장실에 와 있대.’
소식통 해니의 말을 듣자마자 태영은 교실을 뛰쳐나온 것이다.
건물 밖으로 나가 교장실이 있는 본관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주차장 쪽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지난번 유일반의 집에서 봤던 추 여사였다. 녀석과 키스하다 걸리자 제 등짝을 내리치던 그 아줌마. 태영은 걸음을 다시 옮겨 추 여사에게로 향했다.
“아줌마! 어딨어요?”
누굴 찾는지 알겠다는 듯 추 여사가 차 안을 쳐다봤다. 태영의 시선도 차로 옮겨 갔다. 뒷좌석에 탑승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태영이 달려가 창문을 두드렸다.
“유이반! 너 괜찮은 거야?”
그때 창문이 내려가며 실루엣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태영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
“누구?”
“너…… 넌…….”
그 녀석이 아니었다. 유이반이 아니다.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은 진짜 유일반이었다.
근데 얜 또 왜 날 기억 못 하는 거야?
“유일반! 나야. 나 모태영. 니 동생 어딨어? 유이반 어딨냐고!”
“?”
“모르는 척하지 말고 말해. 어딨냐니까?”
“…….”
입을 다문 채 그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유일반 때문에 태영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태영이 휘청거리자 추 여사가 태영을 끌어다 차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했다.
“학생, 학생은 그냥 잊으면 돼. 그동안 있었던 일은 내가 다 정리했으니까.”
“정리요? 무슨 정리요?”
“유일반은 사고로 기억을 잃었어.”
“거짓말하지 마요! 나 이제 안 속아!”
“유일반은 그날 사고로 머리를 다쳤고, 기억을 잃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기억 못 해. 예를 들면 쌍둥이 동생이 대리 시험을 봤는지 어쨌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 거야. 그냥 건강이 안 좋아서 자퇴하고 유학을 가기로 한 거야.”
“자퇴요?”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으니까 너도 어서 빨리 정리하렴.”
“지금 어딨어요? 제가 이상한 소릴 들어서 그래요. 유이반 걔 지금 어딨는지만 말해 줘요. 네? 아줌마, 제발 부탁이에요.”
태영이 추 여사를 붙잡고 울먹이며 물었다. 그러자 냉정하던 추 여사가 애써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 애는 멀리 떠났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
“그럼 잘 지내렴.”
황급히 말을 자르고 추 여사가 차에 올라탔다.
“잠깐만요!”
태영이 뒤늦게 따라가 봤지만 이미 차는 출발한 뒤였다.
태영은 정문 앞 도로까지 차 뒤를 미친 듯이 따라갔다. 하지만 결국 넘어지면서 차를 놓치고 말았다. 까진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태영은 아픈 줄도 몰랐다.
쏴아―
태영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새까만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비를 맞으며 엉엉 우는 태영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우산을 든 바위였다.
“그만 울어.”
태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위를 올려다봤다.
“나 안 울어. 나 안 울어엉……. 아니야. 그런 거 아니지? 바위야 그 녀석 다시 올 거야. 그치?”
“…….”
바위는 그저께 체육 대회 날 녀석이 저를 따로 불러 부탁했던 게 생각났다.
‘그냥 가지고 논 거야. 난 걔 좋아한 적 없어. 그렇게 말해. 차라리 날 미워하게 만들어.’
누구 맘대로. 니가 시킨다고 내가 그렇게 할 것 같아?
바위는 녀석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우산으로 후두둑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적막을 채웠고, 그 적막을 깨고 바위가 말했다.
“기다리면 올 거야. 그 녀석 너 많이 좋아했으니까.”
우는 태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바위가 위로했다. 그러자 태영은 고개를 숙인 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 * *
“많이 울더라…….”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유일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근데 모른 척했어. 그게 니가 원하는 거잖아. 맞지?”
유일반이 뒤를 돌았다.
바로 뒤엔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 잠든 동생 유이반이 있었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는 유일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침 사 원장이 들어왔다.
“마음의 준비 해. 너희 외할머니도 방금 귀국하셨어.”
“네…….”
“인마, 니가 기운 차려야지. 저 녀석도 저렇게 살려고 버티고 있는데.”
“아저씨, 제가 잘못한 거죠?”
“아니야. 넌 잘못한 거 없어. 저 녀석 마지막으로 학교생활 실컷 해 보라고 그런 거잖아.”
사 원장의 위로에도 일반은 자책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에요. 이게 다 나 때문이에요. 내가 한국에서 같이 학교 다니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 녀석 한국에 올 일 없었고. 그랬다면 작년 같은 사고도 없었어요.”
명원고는 원래 두 사람이 같이 입학하기로 한 학교였다. 입학식 전날 이반의 건강이 악화되는 사고만 없었어도 말이다.
“그때부터 병이 악화돼서…….”
“일반아, 이 녀석이 얼마 전에 그러더라.”
사 원장은 며칠 전 이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닥터, 그동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아플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죽을 만큼 아파도 좋으니 살고 싶어. 누가 그러더라,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건 형벌이 아니라 행복이래.’
라고 말하며 누군가를 떠올리며 처음 보는 미소를 지었던 녀석. 그 녀석의 그 미소가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사 원장은 가슴이 아팠다.
“살고 싶다고 했어. 나 이 녀석한테 그런 말 처음 들었잖아. 맨날 그냥 이럴 거면 빨리 죽고 싶다, 죽고 싶다 노래만 부르던 녀석이……. 그러니까 이번엔 꼭 살 거야.”
그런데 그때였다.
모니터 속 아슬아슬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래프가 갑자기 삐― 소리와 함께 일자로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유일반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인턴! 당장 수술방 잡아! 흉부외과 전부 콜하고!”
일순간 병실 안은 생과 사를 오가는 전쟁터로 변하고 말았다.
* * *
“유일반 자퇴했다면서?”
학생들은 모였다 하면 유일반 얘기만 했다. 교실, 복도, 급식실, 강당, 운동장, 화장실. 어딜 가나 유일반 얘기뿐. 아, 그리고 오필희 얘기도.
“오필희 지방으로 전학 갔대.”
“나 같아도 쪽팔려서 전학 가지. 그동안 유일반 스토커 짓 했다며. 유일반 쪽에서 자필 사과문 제출하면 용서해 준다고 했대. 너도 봤지? 학교 게시판에 자필 사과문 떴었잖아. 그동안 2반 권수아 물건도 훔쳤대. 유일반이 권수아 좋아했나 봐.”
“뭐야. 유일반은 모태영이랑 사귄 거 아니었음?”
“걘 유일반이 아니라 쌍둥이 동생이었다잖아.”
“야야 저기 온다. 조용.”
태영이 오자 학생들은 말을 멈추고 후다닥 사라졌다.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태영은 무덤덤한 얼굴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으로 향했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옥상은 엉망이었다.
먼지 쌓인 책상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온갖 잡동사니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그동안 이곳을 직접 관리하고 청소해 온 사람이 없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태영은 텅 빈 동아리방에 이어 바로 옆 창고를 들여다봤다. 얼마 전 갑자기 비워진 창고. 그 많던 로봇들은 다 누가 가져간 걸까?
수아에게 건너 듣기론 유일반이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던데.
저 대신 수아가 유일반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물으니 미안하다고만 하고 동생 소식을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태영은 답답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띠링.
그 순간 문자가 도착했다.
[이번 명원시 청소년 기자단에 합격하였음을 알립니다.]
그토록 바라던 기자단 합격 소식이었지만 태영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이 밀려왔다. 왜 지금 내 옆엔 그 녀석이 없는 걸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나 합격했대.”
태영은 지난날 녀석이 알려 준 대로 소화기를 누르고 녹음을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지?”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넌 지금 어딨니?”
여전히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만 귓가에 맴돌 뿐.
그렇게 내 첫사랑은 여름과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