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 다 원래대로 돌려놔! 너 유일반 아니잖아. 유일반 쌍둥이잖아. 유일반 데려오라고!
영상 속 오필희가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녀석은 태연했다.
― 이렇게 만든 건 너야. 니가 멋대로 동아리방에 침입해서 대회 나갈 로봇 망가뜨리고 부품 훔쳐 갔잖아. 유일반 지금 어딨냐고? 그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오필희.
― 벼, 병원? 아니야! 내가 안 그랬어! 난 그냥 유일반을 응원하러 갔다가……. 유일반 데려와! 당장 내 앞에 안 데려오면 너 죽여 버릴 거야!
유일반이 병원에 있다는 말에 오필희가 폭주했다. 미친년처럼 동아리방에 있는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쓸어 넘어뜨리고 집어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난리 통에 물건에 얼굴을 맞은 녀석이 손으로 왼쪽 뺨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저런 씨.”
영상을 본 태영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래서 얼굴에 상처가 생긴 거였어? 오필희 너 내가 가만 안 둬!
“저게 다 무슨 말이야?”
“지금 유일반이 유일반이 아니고 쌍둥이라는 거야?”
“유일반이 병원에 있는 게 오필희 때문이라고?”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유일반의 공식적인 여자 친구인 태영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태영은 그들을 뒤로한 채 강당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은 아직 이 엄청난 소식이 퍼지지 않은 모양인지 평화로웠다. 태영이 밖으로 나오자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달려와 재촉했다.
“태영아, 박 터뜨리기 게임 10분 뒤로 미뤄졌대. 우리 미리 작전이나 짤까?”
“얘들아, 박 지금 어딨어?”
태영이 태연하게 박을 찾았다. 그러자 친구들이 운동장 한가운데 걸린 박을 가리켰다.
“박 저깄는데.”
“잘됐다.”
“뭔데? 무슨 작전인데?”
“일단 저 박 좀 내려서 나 좀 줘.”
“응?”
갑자기 무섭게 돌변한 태영의 눈빛을 마주한 박 터뜨리기 멤버들은 흠칫 놀랐다.
박 좀 내려 달라는 요구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자 태영은 마침 이제 등교한 모양인지 운동장에 나타난 바위를 향해 외쳤다.
“송바위! 나 좀 도와줘!”
“뭔데.”
“박 좀 패스해 줘!”
태영이 외쳤다. 그러자 왜 그러냐고 묻지도 않고 바위가 달려가 줄을 잡아당겨 박을 내렸다. 그러곤 박을 굴려 태영에게 패스했다.
우다다다.
태영은 제 몸보다 큰 박을 번쩍 들고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갑자기 박을 들고 달리는 태영을 보며 관중들은 이것도 종목 중 하나인가? 하는 눈빛으로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뭐? 죽여 버려? 니가 뭔데 죽인다 만다야! 오필희 이 사막에일년삼백육십오일비를처뿌려대도꽃도못피울이식물같은새끼야!”
태영이 박을 내려놓고 발로 뻥 차 버렸다. 정확히 오필희가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 지점을 향해.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이나 읽던 오필희가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제 눈앞으로 커다란 박이 날아왔다.
퍽.
“악!”
박으로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스탠드 밑으로 나자빠진 오필희가 박에서 터져 나온 현수막에 몸이 칭칭 감겨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런 오필희의 멱살을 태영이 잡아끌었다.
“니가 때렸냐? 니가 뭔데 때려?”
“내, 내가 뭘 때려?”
“너 땜에 얼굴에 상처 났잖아! 씨.”
“지금 고작 그거 때문에 이 난리야? 너 이러면 내가 학교 SNS에 유일반 쌍둥이가 대리 시험 봤다고 다 불어 버릴…….”
“불든지 말든지. 어차피 이미 다 끝났어.”
“뭐가 끝나?”
“너. 넌 이제 다 끝났다고.”
오필희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멸시하는 눈빛이 제게로 쏠리자 오필희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꼴까닥 기절해 버렸다. 아니, 기절한 척했다. 그를 어이없게 쳐다보던 태영이 멱살을 확 놔 버리며 주먹으로 오필희의 이마에 꿀밤을 세게 먹였다.
“악!”
기절한 척했던 오필희는 절로 악 소리를 내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가 다시 기절한 척했다.
이마가 빨갛게 부풀어 오른 오필희를 기막힌 듯 쳐다보던 태영이 서둘러 옥상으로 향했다.
* * *
“유이반!”
태영이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옥상 문을 벌컥 열었다.
지금 학교는 저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녀석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난간에 기댄 채 서 있었다. 태영을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마치 기다렸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면 안 되지. 앞으로 기자 될 분이.”
“안 때렸거든? 내가 진짜 진지하게 때리면 걔 죽어.”
“하.”
이반이 피식 웃어 버렸다. 위에서 다 봤기 때문이다. 박을 발로 차서 오필희를 맞히던 태영의 모습을.
“너 지금 웃음이 나와?”
“그럼 울까?”
“대체 왜 그랬어? 강당에 영상 튼 거 너지?”
이반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아니지. 지금 니가 더 곤란해졌잖아. 전교생이 다 알게 됐어. 선생님들도 이제 다 알걸? 그럼 이제 너희 아버지 귀에도 들어갈 거고…….”
“그러라고 한 거야. 오필희 걔 형 스토커거든. 지금쯤 아마 미칠 거야. 지가 좋아 죽는 유일반 명성에 흠집 갔잖아. 쌍둥이 동생이 대리 시험도 보고.”
“이제 어쩌려고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내 역할은 여기까지.”
“?”
태영은 의아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녀석의 표정이 모든 걸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의지도 희망도 없는 사람 같았다.
“넌 이만 가 봐. 나랑 같이 있다가 너까지 엮이면 그땐 내가 진짜 곤란해지니까.”
녀석이 턱끝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교장 선생님을 필두로 선생님들이 건물 안으로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아마 사건의 진위를 알아내기 위해 동아리방으로 올라오는 중인가 보다.
“내일 면접 잘 보고.”
녀석이 안 가려는 태영을 비상구 문 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태영을 밀어 냈다.
“어서 가.”
“알았어. 대신 이따 연락해.”
“오늘은 안 될 것 같은데. 그냥 너 내일 면접 끝나고 거기서 보자.”
“거기? 어디?”
“꼭대기.”
“진짜?”
태영의 얼굴이 별안간 환해졌다.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녀석이 애써 미소 지었다.
“어. 그러니까 면접 잘 보고 와.”
“응! 나 진짜 진짜 끝내주게 잘하고 갈게. 우리 내일은 1인 1닭 하자!”
“닭 먹을 생각에 신났지 아주? 아, 맞다. 이거.”
녀석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은색 소화기 미니어처가 달린 펜던트였다.
태영이 가만히 보고만 있자 녀석이 태영의 목에 펜던트를 걸어 줬다.
“여기 누르면 녹음되는 거야.”
녀석이 태영의 손가락을 끌어다 소화기 분사기 쪽을 꾹 눌렀다.
“모태영, 넌 꼭 좋은 기자가 될 거야. 넌 좋은 사람이니까. 그동안 고마웠어. 자, 이러면 녹음 끝.”
다시 손가락으로 분사기 쪽을 누르며 녹음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녀석을 태영이 알 수 없단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한 소리지. 얼른 가. 내일 보자.”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녀석은 태영을 억지로 문밖으로 밀어 낸 후 문을 닫았다.
철컥.
갑자기 안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태영은 당황해 하고 있었는데. 우르르 계단을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태영은 얼떨결에 옥상 옆 입간판 뒤에 숨었고.
쾅쾅.
“유일반! 일반아!”
“나와서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자!”
교장 선생님과 물리 선생이 대표로 문을 두드리며 녀석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결국 당직 기사님이 열쇠를 들고 와 문을 강제로 열어 버렸다.
선생님들과 함께 옥상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 녀석은 묵비권을 행사하려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입간판 뒤에 숨어 있다가 녀석과 잠깐 눈이 마주친 태영은 입 모양으로 ‘괜찮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태영을 안심시키기 위해 눈을 찡긋하더니 여유를 부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 모습이 계속 뇌리에 남아 태영은 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 * *
“다들 기사 작성 다 하셨으면 업로드하고 집에 가셔도 됩니다.”
업로드 버튼을 누른 태영의 표정이 유독 밝았다.
정말 태영의 예상이 맞았다. 이번엔 면접 대신 추가 미션으로 기사 작성을 하게 된 것이다. 당황한 다른 면접자들과는 달리 태영은 준비한 기사를 써먹을 수 있어 기뻤다.
기사 내용은 ‘요기소화기’라는 어플을 소개하는 거였다. 화재 위험을 겪었던 시민의 마음으로 어플의 필요성과 또 효율성 그리고 추가로 업그레이드되었으면 하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작성했다.
녀석에게 말한 대로 정말 끝장나게 면접을 잘 보고 시청을 나온 태영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태영은 제일 먼저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제 옥상에서 그렇게 헤어진 이후 녀석은 전화도 안 되고, 문자도 읽씹이다.
‘그냥 너 내일 면접 끝나고 거기서 보자.’
‘거기? 어디?’
‘꼭대기.’
그래, 일단 꼭대기로 가자. 어쩌면 그 녀석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 순간 태영의 걸음이 바빠졌다.
지이잉. 지이잉.
그런데 꼭대기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핸드폰이 울렸다. 당연히 녀석일 거라는 생각에 확인도 안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나 거의 다 도착했어!”
― 태영아, 나 수아야.
“어? 미안. 난 유이반인 줄 알고.”
― 아…… 오늘 둘이 만나기로 했어?
“응. 면접 끝나고 자주 가는 치킨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되네.”
― 그렇구나…….
어쩐지 무거운 목소리. 태영은 덜컥 겁이 났다. 뭔가 굉장히 안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스피커 너머로 수아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수아야, 혹시 무슨 일 있어? 맞다. 너도 오늘 대회였지. 잘했어?”
― 응. 잘 끝내고 나왔는데…… 대회장에서 내가 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어.
“무슨…… 소리?”
― 주변 학교에도 소문이 다 났나 봐. 어제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 말이야. 유일반한테 쌍둥이가 있다는 얘기. 대기실에서 다들 그 얘기만 하더라고.
“아…….”
뭔가 할 말은 명확한데, 그 말을 하기 어려워서 빙빙 돌리는 듯한 느낌.
태영은 용기를 내서 물었다.
“대회장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 그게…….
“괜찮아. 괜찮으니까 말해 줘.”
― 죽었대.
그 순간 태영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힘이 풀린 다리가 확 꺾여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