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62화 (63/67)
  • [62화]

    “에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거 나도 아는데 친구야 기분이 좀 그르네?”

    태영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장난스레 말했다. 해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수아에게 물었다.

    “권쑤, 근데 무슨 근거로 유일반이 니가 아니라 모탱을 좋아한다는 거야?”

    수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 사진은 바로 작년 체육 대회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거 봐 봐. 유일반이 지금 누굴 어떤 눈빛으로 보고 있는지.”

    해니와 태영이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이 마주치더니 박장대소를 했다.

    “왜들 그래? 왜 웃어?”

    수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태영과 해니를 쳐다봤다. 그러자 태영이 깔깔 웃으며 배꼽을 잡았다.

    “최니, 니가 설명해 줘. 나 웃겨서 말 못 하겠어. 풉.”

    “권쑤, 이 사진 잘린 거야. 이것만 보면 유일반이 모탱 쳐다보는 것 같긴 한데, 아니야.”

    “응?”

    “있어 봐.”

    잠깐 기다려 달라며 해니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한 장의 사진을 해니에게 보여 줬다.

    “너 기억 안 나? 이때 모탱 바로 옆에 너 있었어. 이거 봐 봐. 맞지?”

    해니가 보여 준 건 유권과 찍은 커플 사진이었다. 그 뒤로 유일반, 태영, 수아 순으로 서 있었다.

    “이거 우리 커플 인생 샷이거든. 그래서 아직도 내 SNS 배경 화면이야. 모탱, 너도 그래서 딱 알아본 거지?”

    “응. 너 작년에 그거 찍고 되게 좋아했잖아. 뒤에 유일반이랑 나랑 수아까지 다 찍혔다고.”

    태영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떡볶이를 마저 먹었다. 하지만 아직도 수아는 의심이 풀리지 않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이상하게 여기며 태영이 넌지시 물었다.

    “왜 그래?”

    “아니 근데 오필희 걔는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오필희? 이 사진 오필희가 준 거야?”

    “응. 걔가 그랬어. 유일반이 작년부터 태영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고. 사진이 다 말해 준다고.”

    “걔 웃기는 년이네? 옆에 버젓이 권쑤 니가 있는데 딱 고것만 잘라서 이렇게 뽑아 놓고 뭐래. 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안 그래도 오필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해니가 열받아서 길길이 날뛰었다.

    “워워. 최니, 떡볶이 맛 떨어진다. 오필희 얘긴 그만.”

    “다 먹어 놓곤 맛이 떨어지긴 무슨.”

    해니가 빈 접시를 보며 태영을 나무라자 태영은 말을 돌렸다.

    “그럼 우리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

    태영이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분식집을 나온 세 사람은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오, 우리 잠깐 저기 들어가서 구경하고 가자!”

    해니가 걸음을 멈춰 세우며 태영과 수아를 끌고 쇼핑센터로 향했다.

    “나 체육 대회 때 유권이랑 커플 모자 쓰기로 했거든.”

    “잘됐다. 나도 유일반 병문안 갈 때 들고 갈 선물 사려고 했는데.”

    “모탱, 넌 뭐 안 함? 너희도 하나 해. 커플템.”

    “우린 아직 커플이 아닌데…… 미리 사도 되겠지?”

    난생처음 사 보는 커플템! 태영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쇼핑센터로 향하는 태영의 발걸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 * *

    “이거 말고 다른 거 살걸.”

    해니처럼 모자라든지, 수아처럼 팔찌라든지 뭐 그런 걸 살 걸 그랬나?

    태영은 어제 제가 고심해서 산 3단 우산을 뚱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우산. 복도를 걷던 태영이 잠시 멈춰 창밖으로 우산을 조심스레 펼쳐 봤다.

    투명한 우산엔 예쁜 꽃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펼친 우산으로 본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하늘에 꽃이 핀 것처럼.

    “너무 여성스럽나? 아니야. 의미가 중요하지. 의미!”

    태영이 소중히 우산을 접어 손에 꽉 쥐고 다시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코너를 돌아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어?”

    태영이 다시 계단을 내려와 복도 끝 교실을 쳐다봤다.

    그곳은 ‘찰칵’이라는 사진 동아리방이었다. 태영은 순간 지난날 녀석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프리무스 그 동아리 엄마가 창설한 거야. 꽤 오래전에.’

    ‘너희 엄마도 명원고 출신이셔?’

    ‘어.’

    잠깐, 그렇다면 사진 동아리에 녀석의 엄마가 찍힌 사진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졸업 앨범 같은 거라든지.

    엄마의 어릴 적 사진. 그걸 가져다주면 녀석의 우울한 마음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어떡해. 나 천잰가 봐.

    태영은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실례합니다.”

    예의상 노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간 태영은 입이 떡 벌어졌다.

    “와. 이걸 어떻게 찾지?”

    역사가 깊은 명원고인 만큼 벽면에 꽂힌 졸업 앨범 수가 장난 아니게 많았다.

    일단 녀석의 엄마가 몇 회 졸업생인지 알아야 찾는 데 좀 더 수월할 것 같았다. 태영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 소연화 박사의 출생일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이 됐고, 몇 회 졸업생인지도 유추할 수 있었다.

    “23회에서 26회만 보면 되겠다.”

    그런데 하필 그 앨범만 책장 맨 위에 있었다.

    낑낑대며 아무리 뛰고 손을 뻗어 봐도 닿지 않았다. 태영은 하는 수 없이 구석에 놓인 박스 하나를 끌고 와 그 위에 올라가서 앨범을 꺼내려는데.

    쾅.

    망할. 몸이 무거워선지 박스가 뚫리고 말았다. 박스 안에 발이 푹 빠진 채로 넘어진 태영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 아파.”

    태영이 무릎과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나 뜯어진 박스를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구멍 난 박스 안으로 익숙한 뭔가가 보였다.

    노란색 운동화였다.

    황당한 얼굴로 태영이 얼른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수아의 물건으로 보이는 듯한 필통, 노트, 가방, 실내화, 심지어 양치 컵까지 있었다.

    “미친!”

    그리고 직사각형의 물체. 로봇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태영이 봐도 이게 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부품?”

    이건 녀석이 그토록 찾던 라이다 센서가 분명했다.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허둥지둥하던 태영이 얼른 박스를 제자리에 옮겨 놓고 저도 모르게 책장 뒤에 숨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필희였다.

    그런데 오필희가 노트북 앞에 앉더니 명원고 SNS에 로그인하는 게 아닌가.

    “!”

    뒤에서 몰래 지켜보던 태영이 너무 놀라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오필희가 저 계정 관리자였어?

    태영은 너무 기가 막혔다. 저 계정 관리자가 멋대로 제 SNS에 있는 사진을 확대해서 올리는 바람에 전교생에게 악플을 받았던 걸 생각하니 지금 자신이 이렇게 숨어 있을 게 아니었다.

    “야! 오필희!”

    태영이 씩씩거리며 책장 밖으로 나가 큰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오필희가 화들짝 놀라며 노트북을 덮고 일어났다.

    “모태영? 너 언제부터 있었어? 왜 남의 부실에 맘대로 들어와?”

    “넌 왜 남의 물건을 맘대로 훔쳤는데?”

    태영이 박스를 질질 끌고 와서 따져 물었다.

    “이거 다 수아 거잖아. 그리고 이건 유일반 로봇에 들어가는 부품이고! 너 대체 뭐야? 그리고 니가 그 계정 관리자였어? 내가 DM으로 그렇게 그 사진 좀 내려 달라고 부탁했는데 읽씹 하고 전교생한테 욕먹게 만들더니.”

    “그러게 왜 니 멋대로 프리무스에 들어가. 거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아, 이제 알겠다. 너 일부러 나 욕먹이려고 그 사진 올린 거지?”

    “그렇다면 어쩔 건데?”

    “어쩌긴 교무실 가서 선생님들한테 다 얘기할 거야.”

    “그래, 얘기해.”

    태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거운 박스를 번쩍 들고 나가려고 했는데.

    “지금 유일반이 유일반 아닌 것도 꼭 얘기하고.”

    태영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뭐래. 그건 뭔 소리야? 도통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

    태영이 모른 척 딱 잡아뗐다. 하지만 오필희는 그런 태영을 가소롭게 쳐다보며 비웃었다.

    “그래? 모르니? 지금 옥상에 있는 애 유일반 아니잖아.”

    “유일반이 아니면 누군데?”

    “유일반 쌍둥이 동생이잖아.”

    “…….”

    “모태영,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내려놓고 꺼져. 유일반 쌍둥이 동생이 기말고사 대리 시험 쳤다고 교육청에 고발하기 전에.”

    “!”

    태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사이 오필희가 박스를 확 뺏어 들더니.

    “그리고 당장 그 쌍둥이 꺼지라고 해. 그 자린 유일반 자리야. 그때까지 이 부품은 내가 가지고 있을 거야. 내가 직접 유일반한테 돌려줄 거라고.”

    뭐 이런 미친 또라이가 다 있어?

    태영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오필희를 쳐다봤다.

    * * *

    “아오, 열받아!”

    태영은 너무 억울했다. 솔직히 그 부품을 뺏어 오려면 얼마든지 힘으로 뺏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오필희 또라이가 유이반의 정체를 SNS에 올리기라도 하는 날엔.

    선생님들 귀에 들어갈 거고, 그렇게 되면 녀석이 그토록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던 유일반의 아버지도 알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프리무스는 폐지될 거고, 지금껏 녀석이 해 온 노력들은 허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태영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녀석도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 태영은 옥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동아리방 문을 열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녀석은 노트북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안경을 쓴 녀석의 옆모습이 보인다. 분명 문소리가 들렸을 텐데 돌아보지도 않는다.

    태영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녀석은 일부러 저를 쳐다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혹시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여전히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냉랭하게 말한다. 태영은 울컥했다.

    “너 왜 계속 나한테 화를 내?”

    “바쁜데 니가 자꾸 방해하잖아.”

    녀석이 피곤한 얼굴로 안경을 벗더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태영을 쳐다봤다.

    “못 알아듣겠어? 나 이제 너 필요 없다고. 귀찮아 죽겠다고. 그러니까 꺼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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