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60화 (61/67)

[60화]

콰당.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창고 안에서 세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해니와 주유권이 강당 바닥으로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너희 둘은 왜 거깄어?”

태영이 놀란 얼굴로 묻자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두 사람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먼저 있었거든? 그치 유권아?”

“응.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송바위가 왔고, 그다음에 모탱이랑 권수아가 들어왔지.”

주유권이 넘어진 해니를 일으키며 강당에 들어온 순서를 정리해 줬다.

그렇게 네 사람, 아니 송바위까지 다섯 사람이 강당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얼떨결에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 * *

“너네 뭐냐?”

갑자기 동아리방에 들이닥친 다섯 사람을 이반이 황당하게 쳐다봤다.

녀석에게 허락도 없이 비밀을 다 퍼뜨린 죄인 모태영은 이반의 눈치만 흘끔 보며 서 있다가 대뜸 외쳤다.

“우린 유쌍모야!”

“뭐? 쌍? 너 지금 나한테 욕했냐?”

“욕이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유쌍모는 ‘유일반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이랄까…….”

“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이반이 의자를 박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해니와 유권 그리고 수아까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무서워! 정말 유일반이랑 딴판이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세상에, 쟤가 유일반이 아니라니…….”

“이제 보니까 생긴 게 다르긴 하네.”

웅성웅성.

시끄러운 아이들을 이반이 기막힌 듯 쳐다보다가 태영을 노려봤다.

녀석과 눈이 마주친 태영이 흠칫 놀라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미안. 내가 말하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라…….”

“내가 말했어. 그니까 애 그만 잡아.”

동아리방 문에 기댄 채 상황을 가만히 관망하던 바위가 나섰다.

바위가 태영을 감싸고돌자 이반은 신경이 묘하게 거슬렸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컨디션도 엉망인 데다, 작업도 제 맘대로 진행되지 않아 예민한 상황에서 애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시끄럽게 구는 게 정말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났다.

늘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던 동아리방이 왁자지껄 시끄러워지자 이반은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다 나가!”

이반이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아이들이 문 쪽으로 우르르 도망쳤다. 잔뜩 겁먹은 아이들을 태영이 달랬다.

“얘들아 쫄지 마. 목소리만 큰 거야. 저래 봬도 화난 거 아니야.”

“저게 화난 게 아니라고? 겁나 무서운데. 한 대 칠 것 같은데?”

“맞아. 쟨 유일반처럼 평화주의자는 아니잖아. 저번에 원진남고 애들이랑 패싸움하던 영상 못 봄? 난 그때부터 뭔가 좀 수상했다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다 꺼져라.”

화를 내는데도 꿈쩍도 안 하고, 아예 제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서로 수다를 떠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을 이반이 어이없게 쳐다봤다. 그러곤 허리춤에 손을 올린 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오, 열받아.

그렇게 혼자 열을 삭이던 이반은 저를 비웃고 있는 바위와 눈이 마주쳤다.

“야, 돌멩이! 너 지금 나 비웃었냐? 야! 어디 가!”

성질내는 이반을 본 척도 안 하고 바위가 대꾸도 없이 동아리방을 나가 버렸다.

아니, 이것들이 진짜!

이반은 북적북적 정신없이 시끄러운 동아리방 때문에 벌써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수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 질문!”

“질문은 무슨. 수업 시간이냐?”

녀석이 시비조로 대꾸하며 수아를 노려봤다. 흠칫 놀란 수아가 다시 용기 내어 한마디 했다.

“그럼 진짜 유일반은 지금 어딨는 거야? 우리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우린 유일반의 친구들이니까.”

“친구? 니가 진짜 형 친구 맞아?”

여전히 수아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는 이반의 적대적인 모습에 태영이 나섰다.

“그날 밤 동아리방에 들어와서 로봇을 망가뜨리고 부품을 가져간 건 수아가 아니야.”

“누가 아니래? 얘가 아니래? 당연히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

“그날 수아는 강미림 언니를 신고하려고 경찰서 앞까지 갔었대. 하루 종일 그 앞에서 서성이다가 근처 사는 담임 마주쳐서 같이 저녁 먹었대. 내가 담임한테 확인까지 했어.”

거기에 더해 정문 CCTV에서 본 노란색 운동화가 수아가 아니라는 증거까지 태영이 설명했다. 설득력 있는 말에 이반은 더 이상 수아를 몰아붙이거나 의심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상태는 크게 걱정할 필욘 없어.”

“진짜?”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 모습을 쭉 보던 이반은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역시 이곳은 내 자리가 아닌 걸까? 그런 이질감이 들었다.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형은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이반이 쓸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것들이 유일반 걱정을 언제 했냐는 듯 또 정신없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 수다의 중심엔 태영이 있었다.

“자자! 얘들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우리가 찾아야 할 게 있어.”

“뭔데?”

“내가 찾아 줄게!”

한 마디를 하면 세 마디 네 마디씩 돌아왔다. 이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네 사람을 지켜봤다. 하지만 네 사람은 지금 아주 진지했다.

“로봇 망가뜨린 범인이 열쇠고리를 흘리고 갔다고? 물리가 준 거?”

“부품은 또 왜 훔쳐 갔는데?”

“유일반 대회 망치게 하려고 일부러 가져간 거 아니야?”

네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음모론들을 펼치고 있었다.

“수아야, 너 열쇠고리 잃어버렸댔지?”

“응. 나도 사실 가방 속에 몰래 그거 지니고 다녔거든. 시험 잘 보고 싶어서.”

쑥스러워하며 사실을 고백하는 수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태영이 그럴 수 있다며 위로했다.

“아! 그럼 그 범인 새끼가 지 거 잃어버리고 의심받을까 봐 수아 거 훔쳐 간 거 아니야? 수아를 범인으로 의심받게 하려고!”

역시 우주 최강 음모론자 최해니가 한 건 했다. 지금까지 펼친 음모론 중 가장 그럴싸한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들은 이반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굳어졌다.

* * *

오래간만에 떡볶이 가게에서 뭉친 태영과 해니 그리고 수아는 그동안 나누지 못한 얘기들을 하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그걸 왜 지금 말해?”

태영이 서운한 얼굴로 수아를 바라봤다. 그러자 수아가 멋쩍게 웃었다.

“일부러 말 안 했어. 말하면 더 하고 싶어질까 봐.”

“우린 몰랐어. 너도 기자가 꿈인 줄은.”

“그냥 혼자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꿈이야. 어차피 부모님은 의대 가길 원하고, 그래서 이과도 온 거고. 근데 태영이 니가 갑자기 기자가 되고 싶다면서 열심히 하는 거 보고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났어. 내심 속으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런 나쁜 마음도 들었고. 미안해. 아오, 나 너희한테 지금 너무 쪽팔려.”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나니 수아는 현타가 밀려왔다.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야, 권쑤. 쪽팔리면 떡볶이 니가 쏴.”

해니가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 덕분에 수아가 웃으며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당연하지. 오늘은 내가 쏜다.”

“오. 진짜지? 싸장님!”

태영이 신이 나서 사리 추가에 김밥에 라면까지 추가 주문을 했다. 수아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태영을 째려봤다.

“너 다 못 먹기만 해 봐.”

“그럴 리가 없잖아.”

먹을 생각에 신이 난 태영을 못 말린다는 듯 보며 수아가 웃어 버렸다.

“근데 수아야 너 이제 어떡할 거야? 과외 쌤 말이야.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응. 부모님한테도 이제 말하려고.”

“무섭지 않아?”

“사실 무서워……. 근데 이제 너희가 있잖아. 특히 태영이 발로 한 대 맞으면 그 언니 그냥 끝나지 않을까?”

“그렇긴 해. 권쑤, 모탱 발을 한번 믿고 질러!”

“응. 태영아 너만 믿는다. 밥값 해야지.”

“당연하지!”

그렇게 세 사람은 오래간만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야식을 먹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자리까지 옮겨 2차가 시작될 무렵, 수아가 질문했다.

“그럼 태영이 넌 유일반이 아니라 그 쌍둥이 동생을 좋아하는 거야? 이름이 뭐랬더라?”

“유이반이래. 쌍둥이 둘이 아주 이름도 남달라.”

해니가 대신 대답하며 아이스크림을 야무지게 떠먹었다. 그사이 태영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그를 흘끔 보던 수아가 피식 웃었다.

“너 유이반 걔 많이 좋아하는구나?”

“아니거든? 막 엄청 많이는 아닌데…….”

“아니긴. 너 그저께 내가 유일반인 줄 알고 걔 좀 안았다고 막 소리 지르고 나 밀었잖아.”

“헐. 와 우리 모탱 사랑 앞에서 우정이고 나발이고 없는 스타일이네.”

해니가 놀리듯 말했다. 그러자 찔리는 게 많았던 태영이 두 손을 싹싹 모아 빌었다.

“수아야 그날은 진짜 미안. 나도 그땐 정신이 어떻게 됐나 봐. 너 과외 쌤 땜에 힘들어서 유일반 찾아온 건데 내가 막 소리 지르고 그래서 미안.”

“사실 좀 섭섭하긴 했어.”

수아가 일부러 더 새침데기처럼 굴며 태영을 놀렸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다시 물었다.

“유이반 걔 어디가 어떻게 왜 좋은데?”

“그게…….”

태영이 녀석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너희 그거 알아? 사막에도 꽃이 핀대.”

두 사람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태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말라비틀어진 건조한 땅속에서 식물들이 기다렸다가 비가 오면 막 폭발적으로 꽃을 피우는 거지.”

태영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난 그 녀석이랑 있으면 그런 힘이 나. 사막에서 물을 머금은 생물처럼 막 폭발적인 힘이 생겨. 가능성도 뭣도 없는 내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만 같게 만들어.”

“와. 찐사랑이네.”

해니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태영을 응원했다.

“걍 사귀어라. 아니다. 너희 이미 사귀는 거지?”

“사귀는 건 아닐걸?”

“그럼 썸?”

태영은 저도 잘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나 고백할 거야!”

“언제?”

“내일!”

“갑자기?”

또 급발진 모드다. 해니가 태영을 보며 혀를 쯧쯧 내찼다.

“저번에도 유일반한테 갑자기 고백하더니, 이번에는 유일반 동생한테 갑자기 고백하게?”

“태영이가 먼저 유일반한테 고백한 거였어?”

수아의 물음에 태영이 난처한 기색으로 손을 마구 저으며 해명했다.

“그게, 그러니까 수아야 내 말 좀 들어 봐. 그땐 그, 내가 팔로워 수가 워낙 급해서, 하하. 근데 바위도 그렇고 유이반도 그러는데 유일반은 나 안 좋아한대. 수아 너 좋아하는데 니가 관심 없어 하니까 나 이용해서 질투심 자극하려고 나랑 사귄다고 한 거래.”

“그래? 유일반 걔가 그렇게 단순한 애는 아닌데……. 사실…….”

수아가 뭔가 말을 하려던 그때 태영이 갑자기 외쳤다.

“암튼 나 고백하고 싶어졌어. 내일 고백할 거야!”

“저기 근데 태영아…….”

“응?”

“아, 아……니야. 고백 잘하라고.”

수아는 어쩌면 유일반도 태영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태영의 마음은 유일반이 아닌 유이반에게 있는 게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수아는 입을 다물고 그저 마음속으로 태영의 첫사랑을 조용히 응원하는 쪽을 택했다.

* * *

한편,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동아리방으로 다시 돌아온 이반은 책상 위에 놓인 사진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체육 대회 때 형이 그 애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사진이었다.

형이 좋아하는 게 권수아가 아니라 태영이었다니.

이반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의심의 눈초리로 동아리방 안을 둘러봤다.

대체 누가 이걸 갖다 놓은 걸까? 라는 의문과 함께 이반의 표정이 살벌하게 굳어졌다.

“나와.”

캐비닛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이반이 말했다. 그러자 숨어 있던 여학생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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