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59화 (60/67)
  • [59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영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으, 미쳤어!”

    “딱히 미쳐 보이진 않던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태영이 휙 뒤로 돌아 저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이반을 째려봤다. 이반은 흠칫 놀라며 억울해했다.

    “난 가만히 있었거든?”

    “그니까 왜 가만히 있냐고. 막 수아가 너 여기 안고 막 그러는데, 왜 가만히 있는데? 너도 수아 좋아하냐?”

    이반이 실소를 터뜨렸다.

    “너 지금 되게 유치한 거 알고 있지? 그리고 내가 안았어? 걔가 안았지. 넌 그렇다고 친구를 막 패대기를 치냐?”

    “내가 언제 패대기를 쳤냐! 수아가 혼자 자빠진 거지. 으, 나 어떡해. 안 그래도 아픈 애를 더 아프게 만들었어.”

    처음으로 수아에게 큰소리를 냈다. 것도 이 녀석 때문에. 태영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수아에게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수아가 이 녀석을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왜 그토록 참을 수가 없었는지.

    그 결과 수아는 저를 원망스레 째려보다가 잡을 새도 없이 도망가 버렸다.

    배신감에 깃든 수아의 눈빛이 다시금 떠오른 태영은 제 머리통을 마구 때리며 자책했다.

    “미쳤어. 미쳤어. 내가 다 망쳤어. 잘 달래서 누구한테 맞았는지 듣는 게 먼저였는데!”

    이반이 자책하는 태영의 손목을 낚아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다 머리 깨지겠다. 그만해. 그리고 어차피 권수아 누구한테 맞았는지 너한테 말 안 했을걸? 애초에 너한테 말할 거였음 나한테 단둘이 보자고도 안 했겠지.”

    “대체 왜? 수아는 왜 친구인 나랑 해니를 놔두고 너한테…… 그니까 왜 유일반한테 연락한 걸까? 우릴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걸까?”

    “세계가 다르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딱 봐도 너랑 최해니 그리고 권수아는 달라. 사는 세계가.”

    “그런 게 어딨어?”

    “너도 느꼈을 텐데? 아니야?”

    녀석이 말하는 세계가 뭔지 사실 태영은 알고 있었다.

    의대 입시에 목숨을 건 고2와 1교시 시작 10분 전에 입고되는 매점 빵에 목숨을 건 고2의 차이를 말하는 거겠지.

    “권수아는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니가 부러워서 견디기 힘들었을걸?”

    “뭐야, 넌 왜 그렇게 수아를 잘 알아? 너 진짜 수아 좋아하는 거 아니야?”

    “내가 걜 좋아했으면 걜 따라갔겠지, 이렇게 널 데려다주고 있겠냐?”

    “……그, 근데 수아는 대체 누구한테 맞은 걸까?”

    태영이 부끄러워서 괜히 말을 돌렸다. 그걸 알아챈 이반은 그냥 넘어가 준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대답했다.

    “가정 폭력?”

    “에이, 수아네 부모님 그러실 분들 아니야. 그리고 두 분 다 바빠서 집에도 잘 안 들어오는 걸로 아는데.”

    “그럼 권수아 누구랑 같이 사는데?”

    “외동딸이라 혼자……. 아! 아니다. 강미림 언니.”

    “과외?”

    “응. 입주 과외라고 들었어. 근데 그 언니도 그럴 사람이 아닌…….”

    태영은 순간 뭔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동안 이상하다고 여겼던 수아의 행동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수아가 성적에 집착하기 시작한 게 과외 쌤 바뀐 뒤부터였어. 1학년 땐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거든. 혹시 그 언니한테 맞으면서 배우는 걸까?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애가 되게 겁먹은 표정으로 집에 가길 두려워했거든. 최근엔 보건실 가는 일도 잦았고.”

    “그런가 보네.”

    “근데 수아는 왜 가만히 맞고만 있었던 걸까? 부모님한테 말해서 쌤을 바꾸거나 하면 될 텐데……. 아…… 그래, 맞아…….”

    “뭐가 맞아?”

    “나도 그랬거든. 나도 대회 때문에 말 못 했어. 우린 한 팀인데 누구 하나라도 이탈해 버리면 대회에서 우승 못 하니까 그래서 맞고만 있었어. 수아도 그런 거 아닐까? 그 쌤이 잘 가르치니까 필요했던 거겠지. 확실히 과외 쌤 바뀌고 수아 걔 성적이 오르긴 했거든. 물론 그만큼 수아가 열심히 한 결과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왜 참아? 왜 맞고만 있냐고!”

    마치 자기 일처럼 분노하는 태영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이반이 넌지시 말했다.

    “너 나중에 커서 기자 되면 좀 위험할 것 같다.”

    “왜?”

    “물불 안 가리고 여기저기 막 들쑤시고 다닐 것 같아. 포기도 모르고. 그러지 마라. 다친다. 적당히 하라고. 권수아 개인적인 일이야. 니가 도와줄 건 없어.”

    “그래도…….”

    “그리고 난 권수아가 누구한테 맞았든 아니든 관심 없어. 걔가 그날 밤 동아리방에 와서 로봇 망가뜨리고 부품을 훔쳐 간 장본인인지가 더 중요하지. 솔직히 자업자득이야.”

    냉정하게 말하는 이반을 태영이 다그쳤다.

    “그래도 그렇지 아직 수아가 범인이라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닌데, 자업자득이라는 말은 너무 심했어.”

    “확실해. 권수아가 가져간 거야.”

    이반이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태영은 자꾸만 의구심이 들었다.

    수아가 왜?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인 걸까?

    * * *

    늦은 밤 거실로 슬금슬금 나온 태영은 오빠 태혁의 방에서 노트북을 몰래 훔쳐다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지난날 학교 앞 떡볶이 가게에서 받은 CCTV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노란색 운동화를 신은 여학생의 뒷모습.

    클릭. 클릭. 클릭…….

    그 장면만 수십 번 넘게 돌려 보던 태영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눈동자가 또렷해졌다.

    마우스를 움직여 영상을 확대해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그렇게 반복하기를 몇 시간째.

    “어?”

    순간 태영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뭔가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태영은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사이 창밖으로는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 * *

    “따라와.”

    태영이 등교하는 수아의 팔목을 끌고 강당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강당 안으로 수아를 데리고 간 태영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 모습을 수아가 어이없게 쳐다봤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리 와서 너도 잘 봐 봐.”

    “뭘?”

    “글쎄 보라니까!”

    강당 바닥에 철퍼덕 앉아 노트북을 열고 영상을 재생시킨 태영이 그냥 나가려는 수아의 발목을 잡았다.

    “얘가 왜 이래. 놔!”

    “제발 이것 좀 보라고!”

    태영이 제 발목을 잡고 놓지 않자 수아가 마지못해 노트북을 내려다봤다. 영상은 그냥 평범한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대체 이런 걸 왜 보라는 건지 수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사이 태영이 영상을 확대했다.

    “여기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교복 입은 여자애 보이지? 얘 너지?”

    수아가 대충 영상을 보더니 바로 대답했다.

    “어. 난데 뭐 어쩌라고. 무슨 문제 있어?”

    “아니야. 이거 너 아니야.”

    “뭐라는 거야. 그거 나 맞아. 운동화도 가방도 내 거랑 똑같잖아.”

    “너 아니라니까.”

    “장난하니? 태영이 너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아깐 나랬다가 지금은 아니랬다가. 수아는 태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수아의 눈빛을 읽은 태영은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했다.

    “수아 넌 정문을 통과할 때 세 걸음쯤 우측으로 걷다가 바로 좌측으로 가. 왜? 너 1학년 때 거기서 죽은 쥐 새끼 보고 놀라서 토한 적 있었잖아. 일종의 트라우마랄까? 암튼 그때부터 넌 쭉 좌측으로 걸었어.”

    “그래서?”

    태영이 노트북을 들고 다시 영상을 재생시키며 말했다.

    “근데 영상 속 얘는 쭉 우측으로 가. 쥐 새끼가 죽어 있었던 그 자리도 그냥 밟고 지나가. 이건 너 아니야.”

    “근데 어쩌라고? 이게 내가 맞건 아니건 그게 뭐가 중요한데? 난 니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이거 중요해. 이 영상 속 여자앤 아주 나쁜 짓을 했거든.”

    동아리방에 멋대로 들어가 로봇을 망가뜨렸고, 부품을 훔쳤다. 그러고도 여전히 정체를 숨긴 채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수아야, 미안해. 나 사실 너 의심했었어. 하지만 넌 그런 애가 아니야. 내가 알아.”

    “니가 나에 대해 뭘 아는데?”

    “넌 과외 쌤한테 맞아서라도 1등이 하고 싶지만 늘 1등을 뺏어 가는 유일반한테 문학책을 시험 때마다 빌려줘.”

    “!”

    맞는다는 소리에 수아가 제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랐다.

    “넌 정정당당하게 이기는 걸 좋아해. 편법을 쓰거나 비겁하게 이기는 건 안 좋아해. 그런 애가 남의 물건을 고장 내고 훔치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없어. 게다가 넌 유일반을 좋아하니까…… 절대 그런 나쁜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그치?”

    태영의 말에 왠지 모르게 수아가 울컥했다. 뭔가 그동안의 서러움이 폭발할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태영이 넌 내가 밉지도 않아?”

    “니가 왜 미워?”

    “어제 내가 말했잖아. 나 유일반 좋아한다니까? 니 남자 친구를 내가 좋아한다고! 뺏어 버리고 싶다고! 아니, 원래 걔 내 거였어. 태영아, 유일반은 날 좋아한다고 했다고. 근데 갑자기 왜 너랑 사귀냐구우!”

    수아가 정말 억울한 얼굴로 소리쳤다. 태영은 중간에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이마를 긁적이고 있었는데. 아니 정확히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금 모태영이 사귀고 있는 건 유일반이 아니야.”

    “!”

    “권수아 니가 알고 있는 유일반은 유일반이 아니라고.”

    갑자기 위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사람이 있는 줄 몰랐던 태영과 수아가 화들짝 놀라며 위를 쳐다봤다.

    강당 2층 의자에 누워 잠을 자던 송바위가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송바위가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못 알아들어? 모태영이랑 요새 맨날 붙어 다니는 그 새끼는 너랑 키스한 그 새끼가 아니라고.”

    키스라는 말에 수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태영은 수아가 민망해할까 봐 괜히 못 들은 척 바위를 나무랐다.

    “넌 왜 거깄어?”

    “내가 먼저 있었거든?”

    한 명은 1층에서 떠들고 한 명은 2층에서 윽박지르고. 그렇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황당한 얼굴로 지켜보던 수아가 이성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잠깐, 태영아 방금 송바위가 한 말이 무슨 말이야? 유일반이 유일반이 아니라고?”

    “그게 그러니까…… 미안! 어제 니가 봤던 걔는 유일반이 아니라 유일반 쌍둥이 동생이야.”

    “!”

    결국, 태영이 실토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수아가 큰 충격을 받은 듯 휘청거렸다.

    “앗! 수아야, 괜찮아?”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들은 적 없어? 유일반한테 쌍둥이가 있다는 얘기 말이야.”

    “동생은 있다고 들었지만, 쌍둥이인지는 몰랐어.”

    “아…… 그래도 너한텐 동생 있는 거 얘기했나 보네.”

    그만큼 유일반한텐 수아가 소중한 존재였다는 거겠지?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은 동생 얘기를 한 걸 보면.

    “어쩐지 하는 행동이며, 말투, 표정, 눈빛…… 너무 달랐어. 다른 사람 같았어. 근데 진짜 다른 사람이었다니…….”

    수아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모양인지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태영은 괜히 말했나 싶다가도 뭔가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끼익.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강당 구석에 있는 창고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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