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58화 (59/67)
  • [58화]

    “근데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넌 꿈이 뭐야?”

    정말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는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꽤 길어졌다. 이반은 태영의 옆에 앉으며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너무 곤란한 질문을 했나?”

    녀석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태영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곤 멋쩍게 웃으며 이마를 긁적였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 오빠가 넌 꿈이 뭐냐? 물으면 막 짜증 나고 열받았거든.”

    “왜?”

    “난 세팍타크로 국대에 선발돼서 아시안 게임에 나가는 게 꿈이었는데 그만뒀잖아. 그 뒤론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거든. 근데 집에선 앞으로 이제 뭐 할 거냐고 그러고, 학교에선 장래 희망 적어 오라고 하고. 암튼 좀 그랬어. 니 심정 이해해. 꿈이 없을 수도 있지.”

    “나도 있었어. 꿈.”

    “뭔데?”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작으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긴 했지.”

    “잉? 로봇은 원래 안 죽는 거 아니야? 배터리랑 부품만 교체해 주면 영원히 사는 게 로봇 아닌가?”

    “로숨 제대로 읽은 거 맞아? 결국 로봇은 한계가 있어. 배터리랑 부품 교체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로봇은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로봇을 진화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야.”

    “아…… 그렇긴 하지. 근데 되게 의외다. 너도 로봇 만드는 걸 좋아했었다니. 난 니가 대회 때문에 억지로 떠맡은 줄 알았는데.”

    망가진 로봇을 바라보던 녀석의 애증 섞인 눈빛을 떠올리며 태영이 말했다. 그러자 이반이 그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 웃었다.

    “떠맡은 거 맞긴 하지. 내가 만들려는 로봇은 니가 생각하는 그런 로봇이 아니니까.”

    “그럼 무슨 로봇인데?”

    “정확히 내 전공은 나노 의학 쪽이야.”

    “나노? 그거 많이 들어 봤는데…….”

    들어는 봤으나 설명하기는 조금 어려운 장르다. 어차피 모르는 거니 태영은 말을 아꼈다. 그러자 녀석이 이제껏 봤던 표정 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대답했다.

    “쉽게 설명하면 수술 없이도 몸속에 나노 로봇을 심어 치료하고 실시간으로 몸 상태를 체크하고 뭐 그런 걸 개발하는 거야.”

    가만히 듣고만 있던 태영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오, 대박. 엄청 멋있다. 근데 그런 멋있는 꿈을 왜 포기한 거야?”

    “나노 로봇이고 뭐고 의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죽음은 막을 수 없다는 걸 몸소 깨달았거든.”

    이반은 태영이 이해하기엔 너무 벅차고 무거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근슬쩍 다른 화제로 돌리려고 했는데.

    “막을 수 없는 거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맞이할 수 있었음 좋겠어. 죽음이란 거 말이야. 그런 걸 하는 거지? 나노 로봇은.”

    “…….”

    이반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속으로 태영을 과소평가한 것에 대해 반성했다.

    그사이 태영은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빤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마지막에 엄청 고통스러워하셨거든. 그래서 내가 아픈 걸 좀 잘 참아. 선배들이 막 발로 차고 때리는데도 갈비뼈가 부러진 줄도 몰랐어. 이 정돈 아빠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다…… 그러면서, 하하.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이 분위기 뭐야.”

    “아니야. 계속해. 해 줘…… 니 얘기.”

    “난 니 얘기가 듣고 싶어서 꺼낸 말이었는데?”

    “?”

    “너희 어머니도 돌아가셨잖아. 나 사실 기사도 찾아봤어. 유명하신 분이잖아.”

    “그럼 알겠네? 우리 엄마 마지막이 어땠는지도.”

    당시 소연화 박사의 죽음은 한국에서 속보가 뜰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3년 전 벌어진 그 참사는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H타워 화재 사건이었고, 그때 소연화 박사는 숨진 유일한 한국인이었으며, 그녀가 그곳에서 꽤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대신 죽은 일화는 유명했다.

    태영이 녀석의 눈치를 흘끔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알았어. 너희 어머니가 그렇게 유명한 분이신 줄. 너 그래서 저번에 로봇 박물관에서…….”

    불이 난 곳으로 뛰어들려는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녀석이 떠오른 태영은 그때 녀석이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불을 두려워했던 건 아마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였을까.

    “거기 나도 같이 있었어. 3년 전에 H타워.”

    “!”

    거기까진 미처 알지 못했던 태영은 놀란 얼굴로 녀석을 바라봤다.

    “나도 봤어. 엄마가 마지막에 엄청 고통스러워하던 모습……. 엄마뿐이 아니었어. 수백 명이 눈앞에서 죽어 갔어. 근데 난 너처럼 아픈 거 잘 못 참아. 아플 때마다 원망이 들거든. 이럴 거면 그때 죽지, 왜 살아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나……. 왜 그런 눈으로 봐?”

    태영이 엄한 표정으로 녀석을 째려봤다. 한창 진지하던 녀석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그러자 태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꼬인 것 같아.”

    “뭐? 꼬여?”

    “응. 유일반은 구김 하나 없이 되게 빳빳한데…….”

    “요샌 잠잠하더니, 또 형이랑 비교 시작이냐?”

    “비교가 아니야. 넌 억울하지도 않아? 같은 쌍둥인데 왜 너만 그렇게 아픈 생각을 하면서 살아? 너도 좀 신나게 살아. 인상 막 찡그리고 세상 짐 다 짊어진 것처럼 살지 말고.”

    “어쭈, 훈계하냐? 니가 뭘 안다고.”

    “난 암것도 모르지. 개뿔 모르는 내가 봐도 넌 아주 크게 잘못된 것 같아. 니가 살아남은 건 행운이지 형벌이 아니야.”

    “…….”

    “넌 행복해질 거야. 반드시.”

    마치 주문을 외우듯 태영이 말했다. 그리고 그 주문에 매료된 이반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태영을 바라봤다.

    * * *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코딩에 몰두하던 이반의 입가에 갑자기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내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내려왔다.

    ‘니가 살아남은 건 행운이지 형벌이 아니야.’

    낮에 태영이 제게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그런 말도 할 줄 아네.”

    이반은 태영의 밝고 기운 넘치는 에너지는 어쩌면 그 애의 단단한 내면으로부터 나온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맨날 헤헤거리며 웃던 애가 가끔 그렇게 눈 동그랗게 뜨고 제게 충고할 때면 어디 가서 말로 져 본 적 없는 자신도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건 아마도 그 애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말하는지 표정으로부터 말투와 눈빛으로부터 다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그 애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 이반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이잉. 지이잉.

    마침 핸드폰이 진동했다. 손에 쥔 자신의 핸드폰이 아닌 책상 위에 놓인 형의 핸드폰이 불빛을 내고 있었다.

    발신인을 확인한 이반의 표정이 굳어졌다.

    * * *

    인적이 드문 공원에 티셔츠에 달린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나타난 태영은 하품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서 이반을 발견한 태영은 녀석이 앉아 있는 벤치 쪽으로 향했다.

    “밤늦게 무슨 일이야?”

    “니 얼굴 보려고.”

    녀석이 일어나며 태영이 뒤집어쓴 모자를 벗겼다. 그러자 태영이 흠칫 놀라며 두 손으로 얼굴을 확 가렸다.

    “앗. 나 쌩얼인데!”

    “똑같은데 뭐. 손 좀 치워 봐.”

    “아, 왜? 너 진짜 내 얼굴 보려고 부른 거야?”

    “당연히 아니지.”

    “뭐?”

    태영이 손을 치우고 녀석을 째려봤다. 이제야 얼굴을 보여 준 태영을 보며 녀석이 피식 웃었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속삭였다.

    “이제 곧 오겠다. 넌 어디 숨어 있어.”

    “숨어? 왜? 누가 오는데?”

    “권수아.”

    “뭐? 수아가 왜? 이 밤에 왜?”

    “몰라. 단둘이 만나서 할 얘기가 있대.”

    “단둘이?”

    “질투하냐?”

    “아니거든? 전혀 아닌데? 그나저나 수아가 단둘이 보자고 했다며, 근데 난 왜 부른 건데?”

    “니가 할 일이 있으니까 불렀지.”

    태영이 그게 뭐냐고 눈빛으로 묻자 녀석이 은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녹음해. 내가 권수아가 본인이 범인이라고 자백하게끔 유도할 테니까.”

    “녹음? 아! 나 핸드폰 안 가져왔는데?”

    “야, 넌 기자 된다는 애가 녹음기도 안 들고 다니냐?”

    “기자 되려면 녹음기 들고 다녀야 돼? 그럼 하나 사야겠다. 어떤 거 살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야야. 저기 온다. 너 빨리 쓰레기통 뒤에 숨어.”

    “알았어.”

    태영이 대답과 동시에 이반이 시키는 대로 얼른 쓰레기통 뒤에 숨었다. 그사이 공원 입구에 수아가 들어서고 있었다. 이반은 혹여 수아가 태영을 볼까 싶어 시야를 가리며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수아가 비련의 여자 주인공처럼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달려와 이반에게 와락 안겨 버렸다.

    “흑흑.”

    “뭐, 뭐야. 떨어져!”

    이반이 질색하며 제게 안긴 수아를 떼어 내려 했지만 꿈쩍도 안 한다. 이반은 난처한 기색으로 이번엔 아주 강경하게 수아를 밀어 내려고 했는데.

    “!”

    이반은 수아의 목뒤와 귀에 난 상처를 발견하곤 짐짓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너 누구한테 맞았냐?”

    “유일반…… 나 좀, 흑흑, 도와줘……. 니가 그랬잖아. 언제든 도움 필요하면 말하라고. 지금이 그래. 나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어. 흑흑.”

    이반의 품에 안겨 수아가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가 도와줄게!”

    숨어 있었단 사실도 잊은 채 태영이 별안간 쓰레기통 뒤에서 튀어나왔다. 그 소리에 수아가 놀란 얼굴로 태영을 쳐다봤다.

    태영은 눈물범벅인 수아의 얼굴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누구야? 내가 맞아 봐서 알아. 지금 보니까 안 보이는 데만 때렸어. 들키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인 거지. 누구냐니까? 너 누구한테 맞았어?”

    태영이 다그쳤다. 하지만 수아는 말 못 할 비밀이라도 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반의 품에 얼굴을 묻고 계속 울기만 했다.

    제 셔츠가 눈물에 젖어 가고 있는 게 느껴진 이반은 너무 찝찝해서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러곤 태영에게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태영은 무슨 일에선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야, 모태영.”

    이반이 태영을 불렀다. 빨리 권수아 좀 떼어 내라고. 하지만 태영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지 계속 엉겨 붙어 있는 녀석과 수아를 응시했다.

    사실 태영은 지금 매우 혼란스러웠다. 지금 힘들고 아파 보이는 수아를 달래 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별로인 걸까?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태영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수아야…… 이런 상황에서 미안한데, 안기려면 나한테 안겼으면 좋겠는데…….”

    하며 태영이 다가가 수아의 팔을 떼어 내려고 했는데.

    “태영아, 미안해.”

    수아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수아는 이반의 허리를 꽉 안고 태영을 향해 말했다.

    “내가 거짓말했어. 나 사실 유일반 안 싫어해. 좋아해! 좋아졌어!”

    “뭐?”

    “뒤늦게 깨달았어. 유일반이 너만 보고 난 쳐다도 안 보고, 나랑 말도 안 하고 쌩하니 가 버리고 그러니까 막 마음이 막…… 공부도 안 되고……. 이거 좋아하는 거잖아. 그래, 나 유일반 좋아해! 미안해. 니가 포기해 줘.”

    “그렇겐 안 돼!”

    “?”

    갑자기 태영이 엄청난 힘을 발휘해 유일반의 손목을 확 잡아당겨 제 뒤에 숨기더니 버럭 소리쳤다.

    “얜 내 거야!”

    태영의 힘에 밀려 콰당 바닥으로 넘어진 수아가 당황한 눈빛으로 태영을 올려다봤다. 태영의 눈빛이 소유욕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조그마한 태영의 등 뒤에서 이반은 제 손을 꽉 잡고 놓지 않는 태영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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