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52화 (53/67)

[52화]

저를 바라보는 녀석의 뜨거운 시선에 태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그게 그러니까…… 나 기자단 서류 심사 통과했어! 그래서 너한테 제일 먼저 알려 주고 싶어서 전화하려고 했는데…….”

“나한테 전화하려고 했다고?”

어딘지 모르게 웃음기가 묻어난 말투. 태영은 너무 쑥스러워서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니!”

“?”

“사실 그게 좀 헷갈려.”

“흠.”

김이 팍 샌 얼굴로 녀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태영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뭐라고 하기도 뭐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분명 유일반인데…… 내 머릿속은 온통 너야. 너 유이반이라고. 하루 종일 니 생각만 나. 그래서 계속 유일반한테 미안해. 아파서 누워 있는 유일반보다 지금 니 주삿바늘 자국이 더 걱정된다고.”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고?”

“알아.”

“아니까 다행…….”

“나 아무래도 둘 다 좋아하는 것 같아.”

“뭐?”

“심장이 두 갠가 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너 나가.”

어이없는 얼굴로 이반이 손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태영은 말을 계속했다.

“왜 말이 안 돼? 봐 봐. 난 애초에 그렇게 다정하고 스윗한 남잔 드라마에서나 봤지, 실제론 처음 봤어. 유일반은 막 나더러 귀엽다고 해 주고, 내 부탁도 다 들어주고 웃어 주고 스윗 그 자체…….”

“그놈의 스윗. 스윗한 사람 다 얼어 뒤졌냐? 그리고 형이 귀엽다고 한 건 빈말이야. 매너 몰라? 그리고 나도 니 부탁 다 들어줬거든? 너튜븐지 뭔지 그거 촬영하고 싶대서 미팅도 같이 가 줘, 프리무스 계정 맞팔도 해 주고 또…….”

“그건 고마워.”

“고맙다는 소리 듣자고 말한 건 아니야. 그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당연히? 왜?”

“그럼 좋아하는 여자애가 해 달라는데 안 해 줘?”

“그거 다 유일반 대신 해 준 거잖아.”

“…….”

갑자기 훅 들어온 공격에 이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너튜브 촬영도 원래는 태영이 형이랑 하기로 했던 거고, 프리무스 계정도 형이 만든 계정이니까.

“너니까 해 준 거야.”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이반이 대꾸했다.

“아무리 내가 형 대신이라고 해도 아무나한테 그렇게 안 해 줘. 너니까…… 여기 이 공간도 허락한 거고.”

“…….”

이반이 태영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너니까 좋아한 거야.”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난 시간 낭비 하는 거 딱 질색이야. 나한텐 남은 시간이 별로 없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바쁘다고. 대회도 얼마 안 남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게다가 찾아야지. 이거 이렇게 만든 새끼.”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로봇을 턱끝으로 가리키며 이반이 말했다.

“두 번 안 물어본다.”

“?”

“유일반이랑 나 유이반. 둘 중 누구야? 넌 대답만 해. 그 뒤의 일은 내가 다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있잖아…….”

“대답만 하라고.”

일반과 이반 중 누굴 택할 것이냐. 태영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첫눈에 반해 사귀자고 고백하게 만들어 버린 미소가 예쁜 유일반이냐, 싸가지 없고 무례하고 근데 또 나한테만 잘해 주는 상남자 유이반이냐.

“보류!”

“야!”

“왜? 원래 나 지금 보류 중이잖아. 유일반이랑 사귄 지 1일째에서 멈춰 있는 상태라고. 그러니까 유일반이 깨어나면 정식으로 사귀어 보고 둘 중에 누가 더 좋은지 그때 선택…….”

“뭐라고? 누가 누구랑 사귀어?”

“유일반이 깨어난 뒤 만나 봐야 둘 중 누가 더 좋은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아, 그러셔? 좋은 생각이네. 근데 여기서 문제는 뭔지 알아?”

“나한테 문제 내지 마. 나 발로 공은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데, 정답 맞히는 건 잘 못해.”

“자랑이다. 니가 그러니까 이 모양인 거야.”

“야! 넌 나 좋아한다면서 맨날 말을 왜 그따구로 하냐?”

“좋아하니까 말도 이렇게 섞어 주는 거야.”

“그럼 또 내가 할 말이 없지만……. 암튼 뭐, 문제가 뭔데?”

“난 너 좋아하지만, 형은 아니라는 거지. 그럼 여기서 정답은 뭘까?”

“글쎄, 뭘까?”

“너도 날 좋아하면 되지. 왜 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해?”

“약속했으니까. 비록 하루지만 사귀기로 약속했잖아.”

“그 약속 왜 했을까? 형이 왜 너랑 사귄다고 했을까? 궁금하지 않아?”

“그건 이미 바위한테 다 들었어.”

“바위?”

성을 뺐어? 이반의 아래턱에 힘이 빡 들어갔다. 지난번 교문 앞에서 태영이 그 돌멩이 새끼 옆에 딱 붙어서 편을 들던 게 생각난 거다.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너 요새 그 돌멩이 새끼랑 맨날 붙어 다니더라?”

“말했잖아.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진 제일 친한 친구였다고.”

“친구? 확실해?”

“당연하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믿는 친구야. 암튼 바위가 그러더라. 유일반이 그러니까 너희 형이 날 이용해서 수아 질투심 자극하려고 한 거라고. 그래서 나랑 사귀겠다고 한 거라고.”

“그 돌멩이 새끼가 눈치는 있네.”

“정말이야? 정말 유일반이 그런 애야?”

“형은 자기가 갖고 싶은 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져. 그런 애야.”

“하긴 그러니까 1등을 한 번도 안 놓치지. 대단하다. 인정.”

“나도 살면서 1등 놓친 적 없는데.”

“넌 좀 미친놈 같아.”

“형은 대단하고 난 왜 미친놈이냐?”

“내가 너 공부하는 꼴을 못 봤는데 왜 1등이야? 유일반은 항상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니까. 그니까 1등을 해도 역시! 라는 말이 나오지. 근데 넌 맨날 여기 옥상에서 하늘 보면서 초콜릿이나 까먹고 있었잖아. 수업도 제대로 안 들어갔잖아.”

“불만이냐?”

“부러워서 그러지.”

“근데 너 여기 왜 왔어? 내 속 뒤집어 놓으려고 왔어? 뭐? 유일반이랑도 사귀어 보고 결정한다고? 어이가 없네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태영의 발언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지 이반은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러곤 어느새 제 말은 듣지도 않고 쪼그리고 앉아 쓰러진 로봇을 쓰다듬고 있는 태영을 바라봤다.

“뭐 하냐?”

“얘도 주인이 아픈 걸 아나? 슬퍼 보이네……. 근데 유일반 건강은 좀 어때?”

마치 이 로봇처럼 병실 침대 위에 누워 죽은 듯이 잠만 자는 형의 모습을 떠올려 보던 이반은 괜히 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했다.

“넌 알 거 없어.”

“내가 알아야지. 나 유일반 여친이잖아.”

“고작 하루 잠깐 만난 걸로 여친은 무슨. 둘이 같이 밥도 안 먹어 봤다며.”

“아니거든? 나 급식도 같이 먹었……. 헐, 그건 너구나. 아! 우리 같이 꼭대기 바비큐도……. 아, 그것도 너잖아? 떡볶이도…….”

망할. 다 이 녀석이랑 먹었잖아!

태영은 혼란스러웠다. 뭔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킨 느낌이었다. 자꾸만 매치가 안 된다. 어떤 게 유일반이랑 한 거고, 어떤 게 이 녀석이랑 한 건지.

“너 지금 무지 헷갈리는 것 같은데.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그냥 이것만 기억해.”

“뭘?”

“첫 키스도 마지막 키스도 다 나랑 한 거야.”

태영은 지난날 자신이 녀석에게 기습 키스를 한 일이 생각나 얼굴이 빨개졌다.

“그냥 인정해. 넌 나 좋아한다니까. 형이 아니라.”

“아니야. 그건 모르는 일이야. 유일반도 만나 봐야…….”

“그래, 만나라 만나. 형은 너 쳐다도 안 볼걸? 내가 말했잖아. 걔 이상형은 귀여운 쪽 아니라고. 딱 권수아라니까. 형 오면 너 바로 차인다. 그때 울고불고 나한테 매달리기만 해 봐.”

어쩐지 신이 나 보이는 이반을 태영이 째려봤다.

“근데 너흰 쌍둥이면서 그건 왜 달라?”

“그게 뭔데?”

“유일반은 수아같이 똑똑하고 예쁘고 청순한 여자애 좋아한다며. 근데 넌…… 그러니까 넌 왜…… 왜…….”

쑥스러워서 차마 제 입으로 말도 못 하고 태영이 머뭇거리고 있자 녀석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난 왜 너같이 눈치도 없고, 많이 먹고, 힘도 세고, 공부도 못하는 앨 좋아하냐고?”

“야!”

“처음엔 닮아서 신기했어.”

“저기 있잖아. 너네 왜 자꾸 나한테 누구랑 닮았다는 거야? 대체 그게 누군데? 혹시 내가 너희들 어머니랑 닮았니?”

“우리 엄마 미인이거든?”

“쏘리. 나도 그건 아닌 줄 알았어. 그럼 뭔데? 내가 누굴 닮았는데?”

궁금해하는 태영을 빤히 쳐다보던 이반이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나와. 보여 줄게. 니가 누굴 닮았는지.”

* * *

그 시각 명원대병원.

흉부외과 컨퍼런스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온 사지훈 원장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현재 약물 치료로 심장 기능을 겨우 보존하고 있는 유이반 그 녀석 때문이었다. 난치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녀석은 언제든 심정지가 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녀석에게 이제 남은 선택지는 심장 이식 하나였다.

“원장님!”

비서가 사 원장의 뒤를 쫓아오며 오늘 스케줄과 함께 메모한 내용들을 전달했다.

“한 시간 전쯤엔 조엘 박사님한테서 연락 왔었습니다.”

흉부외과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 조엘 박사는 사 원장의 스승이었다. 사 원장은 녀석의 심장 이식 수술을 조엘 박사에게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혹시 적합한 심장이 나타나기라도 한 걸까? 사 원장이 비서에게 받은 핸드폰으로 곧장 조엘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박사가 수술에 들어간 모양인지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황 비서, 앞으로 조엘 박사님 전화는 바로 연결해.”

“하지만 회의 중이셔서…….”

“회의 중이고 뭐고 다 상관없으니까 나한테 바로 알리라고. 이거 중요한 일이야!”

“네. 알겠습니다.”

사 원장의 호통에 주눅 든 비서가 뒤로 물러나고 사 원장은 착잡한 심정을 안고 VIP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간 사 원장은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일반에게로 다가갔다. 몇 초 동안 가만히 일반을 응시하던 사 원장이 말했다.

“할 얘기 있으니까 일어나.”

“…….”

“유일반, 일어나라고.”

잠시 후 일반이 스르륵 두 눈을 떴다. 그러곤 사 원장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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