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51화 (52/67)
  • [51화]

    마침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여학생이었다. 이반이 여학생을 빤히 쳐다보며 명찰을 확인했다.

    “유일반 안녕? 오래간만이야. 너도 자습실 온 거야?”

    여학생의 이름은 오필희, 이 여자애는 유일반과 잘 아는 모양인지 친한 척을 하며 말을 걸었다.

    “나도 교실이 하도 시끄러워서 자습실 왔는데. 아, 나 매점 가서 에너지 드링크 사 올 건데 니 것도 사 올까? 너도 에너지 드링크 좋아하잖아.”

    “됐고. 안에 또 누구 있냐?”

    “안에? 많지.”

    오필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반이 자습실 문을 벌컥 열었다. 정말 안에는 공부하는 애들로 꽉 차 있었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간 이반은 프린터기 옆 공용으로 쓰는 노트북을 발견했다.

    아이피를 확인하니 이 노트북으로 글을 올린 게 분명했다. 이반이 고개를 들어 천장 구석을 살폈다. 불행히도 자습실 어디에도 CCTV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며칠 사이 태영에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단 용감한 시민상을 받게 되면서 이건욱 기자님과 다시 한번 인터뷰를 하게 됐고, 반 아이들이 과거 세원중 운동부 폭행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됐고, 태영을 가해자라고 오해하던 반 아이들은 사과를 했고, 그렇게 태영의 학교생활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아, 그리고 태영은 그토록 원하던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것도 화제의 동영상을 두 개씩이나 보유한 핫한 인플루언서.

    “우리 인플님 오셨슴까!”

    태영이 등교하자마자 해니가 의자까지 빼 주며 장난을 쳤다. 근데 무슨 일에선지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 태영의 표정이 어두웠다.

    해니가 걱정스레 물었다.

    “모탱, 무슨 일 있음?”

    “또 안 왔어.”

    오늘도 어김없이 등교하자마자 옥상부터 갔다 온 태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며칠째 그 녀석이 안 보인다. 아예 등교를 하지 않았는지, 교실에도 동아리방에도 그 어디에서도 녀석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너 설마 아직도 유일반한테 고맙다고 안 했음?”

    “만나야 말을 하지. 그날부터 지금까지 학교도 안 오고…….”

    “대회 얼마 안 남아서 그러나? 아, 근데 우리 유권이가 그러는데 그날 유일반 좀 이상했대.”

    “언제?”

    “저번에 커뮤니티에 너 박물관 CCTV 올라온 날, 그날 말이야. 그거 유일반 작품이잖아. 근데 그 가짜 폭로 글 누가 자습실에서 올린 거래.”

    “뭐?”

    “너 신경 쓸까 봐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암튼 악플러가 우리 학교에 있다는 거지. 그래서 그놈 잡으려고 자습실 갔는데 허탕 치고 오더래. 근데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누가? 누가 창백해져?”

    “누구긴 누구야. 유일반이지. 암튼 그래서 갑자기 막 숨을 못 쉬더래. 결국 조퇴했잖아.”

    “야, 최니! 그걸 왜 이제 얘기해?”

    “너한테 말하지 말랬대. 내가 입이 좀 무겁잖아.”

    “언제부터 그렇게 무거웠다고.”

    “이제 좀 무거워지려고. 근데 며칠 동안 너도 바빴잖아. 인터뷰하랴 상 받으러 다니랴.”

    “그래도 그렇지…….”

    난 아무것도 모르고 무단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그 녀석을 속으로 욕했는데. 유일반 출결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면서.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 유권이 말로는 유일반 걔 중딩 때부터 감기 한번 안 걸렸다던데. 강철 체력. 근데 요샌 뻑하면 아픈 것 같더라?”

    걘 유일반이 아니니까 그렇지.

    태영은 속으로 생각하며 녀석에게 연락을 해 볼까 말까 고민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이잉.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녀석인가? 잽싸게 액정을 확인한 태영의 얼굴에 잠시 실망하는 기색이 스쳤다가 별안간 굳어졌다.

    “최니…….”

    문자 내용을 확인한 태영이 믿기지 않는 듯 해니를 바라봤다. 해니는 또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왜 그래? 무슨 일?”

    “나…….”

    “어. 너 왜?”

    “기자단…….”

    “떨어졌어?”

    “붙었어! 면접 오래!”

    “꺅!”

    동시에 태영과 해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릴 지르며 방방 뛰었다.

    갑자기 두 사람이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반 아이들이 쳐다보다가 얼떨결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마침 등교한 바위가 의아한 얼굴로 시끄러운 교실에 들어섰다. 그러다 태영이 너무 행복해하며 환하게 웃는 것을 발견하곤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 혹시 모르니까 다시 옥상 좀 갔다 올게!”

    “그래. 얼른 유일반한테 알려 줘. 너 합격하게 해 준 일등 공신이잖아.”

    “응!”

    이 기쁜 순간 태영은 그 녀석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바쁜 와중에도 내 억울함을 풀어 주려고 CCTV 영상까지 구해다가 편집해서 올려 주고, 게다가 그 영상을 프리무스 계정에 업로드까지 해 줬다. 사실 진짜 유일반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었다. 왜냐면 유일반은 공과 사가 철저한 애였으니까.

    유일반이었다면 공적인 프리무스 계정에 로봇이 아닌 사적인 영상을 올리진 않았을 거다.

    이건 다 그 녀석이니까. 그 녀석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난날 자신에게 프리무스 계정과 맞팔 해 주겠다며 녀석이 유일반인 척 서툴게 웃으며 잠겨 있던 핸드폰을 풀던 게 생각난 태영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찌 보면 다 그 녀석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걸지도 모른다.

    태영은 당장이라도 녀석을 만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녀석이 보고 싶어졌다.

    황급히 복도로 달려 나간 태영은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 올라갔다.

    * * *

    한편, 자습실 문이 열리고 복도로 나온 수아는 창가에 기댄 채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기자단 서류 합격을 알리는 문자였다.

    문자를 읽어 내려가는 수아의 얼굴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곧 결심을 내렸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기자단 지원했던 명원고 권수아라고 합니다. 방금 서류 통과 문자를 받았는데요. 죄송하지만 이번 면접에 못 갈 것 같…….”

    복도 끝 어딘가에 시선이 닿은 수아의 말끝이 흐려졌다.

    태영이 행복한 얼굴로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태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저곳으로 올라가면 옥상, 유일반이 있는 동아리방이니까.

    그 순간 수아는 직감했다. 나만 합격한 게 아니구나, 태영이도 합격했구나.

    갑자기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유일반의 도움이 없었다면 태영은 절대 합격 못 했을 거다. 하지만 난 철저히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래,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 권수아 학생? 여보세요?

    스피커 너머로 안 들린다면서 다시 한번 말해 달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퍼뜩 정신을 차린 수아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다름이 아니라 면접 장소가 문자로 안 와서요. 네. 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수아의 눈빛이 독하게 변했다.

    * * *

    곧 있을 체육 대회 준비로 하교 후에도 운동장이 시끌벅적했다.

    해 질 무렵 운동장 이곳저곳엔 학생들이 모여 응원 도구를 만들거나 축구와 피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생동감 넘치는 웃음소리와 응원 소리가 옥상에까지 전달됐다.

    하지만 정작 옥상에 있는 태영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도 안 오려나?”

    1교시부터 7교시까지 한 번도 안 빼먹고 쉬는 시간마다 옥상에 올라왔던 태영은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결국, 시멘트 바닥에 철퍼덕 앉아 동아리방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봤다.

    “설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세미 코마 상태라는 유일반 상태가 나빠졌다거나,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들켜 그 녀석이 곤란해졌다거나.

    “전화해 볼까?”

    걱정되는 마음에 태영은 핸드폰을 들었다. 하지만 너무 혼란스러웠다.

    대체 어느 쪽으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 걸까?

    줄곧 그래 왔던 것처럼 유일반?

    아니면 최근 알게 된 유이반의 번호로 전화를 해야 하나?

    그런데 그때였다.

    끼익.

    태영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고 있을 무렵, 마침 옥상 문이 열리고 녀석이 나타났다.

    “야! 너 왜 이제야 와!”

    태영이 고함을 지르며 우다다 녀석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너…….”

    녀석의 안색이 창백했다. 살짝 나른해 보이는 표정은 뭔가 약에 취한 사람 같기도 했다. 그리고 손등에 붙어 있는 흰색 거즈와 노란색 스마일 스티커.

    태영은 이제야 알았다. 지난날 박물관 앞에서 녀석이 주머니에서 꺼내 제게 붙여 준 저 노란색 스마일 스티커는 병원에서 환자의 주삿바늘 자국에 붙이는 용도라는 걸.

    “너 병원 갔다 왔어?”

    녀석은 아차 싶었는지 서둘러 거즈를 떼서 쓰레기통에 버리며 동아리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망할 닥터.’라며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

    내가 아직도 어린앤 줄 아나. 뻑하면 이딴 스티커를 붙여 대는 닥터 때문에 이반은 난처했다. 분명 태영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손등에 무슨 주사 맞은 거야?”

    역시 안 넘어간다.

    이반은 곤란한 얼굴로 태영의 눈을 피하며 대충 둘러댔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어디 아프지? 학교는 왜 안 나온 건데?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너 왜 이렇게 자주 아파?”

    걱정하는 태영의 눈빛을 마주한 이반은 흔들렸다. 그냥 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냥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태영과는 재밌게 지내다 가고 싶었다.

    이제 다른 욕심은 없다. 없어야 했다.

    “유일반! 아니 유이반! 너 어디가 어떻게 아팠던 건데? 지금도 안색이 좀…….”

    “그렇게 궁금한 사람이 연락 한 통 없었냐?”

    녀석이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드디어 열었다.

    뭔가 말투가 삐진 것처럼 느껴졌다. 녀석은 태영을 흘겨보더니 그대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때부터 제게 눈길도 안 주고 작업에만 열중하는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던 태영은 우물쭈물하며 서 있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전화하고 싶었어!”

    용기 내서 꺼낸 한마디에 녀석이 반응했다. 코딩하느라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손가락이 점차 느려졌다. 녀석은 짐짓 놀란 얼굴로 태영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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