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이 새끼들 어디 갔지?”
악플 단 놈들을 학교 앞 PC방에 잡아 뒀다며 태영을 데리고 온 바위는 당황스러웠다. 놈들이 도망가고 없었기 때문이다.
바위는 알바 중인 아는 형을 붙잡고 물었다.
“형, 걔들 어딨어요?”
“잠깐 화장실 간다고 해서 보내 줬는데 고새 튀었네. 쏘리. 내가 너무 바빠서.”
아는 형이 서둘러 카운터로 달려가 손님을 맞는 사이 바위는 포기하지 않고 PC방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놈들을 찾기 바빴다. 그런 바위를 태영이 말렸다.
“그냥 포기해. 이만 가자. 이러다 점심시간 다 끝나겠어.”
“너 먼저 가. 내가 그 새끼들…….”
“어휴. 됐다니까. 괜찮아. 어차피 그런 댓글 안 보면 그만이지.”
“너 기자단인가 뭔가 그거 지원했다며. 거기 주최 측에서 니 댓글 보고 오해하면 어떡해. 그래서 떨어지면 어떡하냐고.”
“오올. 지금 내 걱정 해 주는 거야? 감동!”
“지금 농담이 나오냐?”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 뭐. 공부해야지.”
“그냥 그 새끼들 족쳐서 댓글 지우는 게 더 빠르겠다.”
“뭐야. 너 지금 나 공부 못한다고 무시하는 거야?”
“현실을 얘기해 주는 거야.”
“치이. 그거 지운다고 뭐 해결되나?”
이미 댓글 몇 줄로 교내에선 학폭 가해자로 낙인이 찍혀 버린 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사람들은 끝까지 안 믿을 텐데.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PC방을 나와 학교로 향하고 있었는데.
“배 안 고프냐?”
“당연히 고프지. 너 때문에 급식도 못 먹었잖아.”
“떡볶이나 먹자.”
“니가 사 줄 거야?”
“니가 사야 할 것 같은데?”
라고 말하며 바위가 떡볶이 가게를 턱끝으로 가리켰다. 가게 안에는 세원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자애들이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태영이 의아한 눈초리로 그곳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바위가 달려가 중딩들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이 쥐새끼들 여깄었네?”
“으악! 형님!”
“누가 니 형이야?”
“자, 잘못했습니다! 근데 저희 진짜 억울해요!”
뭐야. 악플 단 놈들이 중딩이었어? 태영이 황당한 얼굴로 다가가 바위에게 물었다.
“얘들이라고?”
“어. 아이디 확인했어. 근데 죽어도 아니라고 우기네 이 새끼들이.”
“진짜 아닌 거 아니야? 너무 어리잖아. 게다가 그 댓글들 문장력이 중딩 수준은 아니었는데.”
태영은 바위를 밀치고 중딩들 앞에 나섰다.
“얘들아 안녕?”
“오. 골딩녀다!”
“너희들 내 영상 본 적 있어?”
“그럼요. 완전 핫한 영상이잖아요.”
“그렇구나. 그럼 이 발에 맞으면 얼마나 아플지도 대충 짐작은 가겠네?”
태영이 눈은 웃으면서 말은 아주 살벌하게 했다. 중딩들은 갑자기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며 외쳤다.
“잘못했어요! 근데 진짜 저희 아니에요. 저흰 아이디 판 죄밖에 없어요.”
“뭘 팔아?”
“오픈 채팅에서 아이디 산다는 사람이 있어서 얘랑 내 거 팔았거든요.”
대체 누가 아이디까지 사 가며 내게 악플을 달았단 말인가.
생각지도 못한 중딩들의 진술에 태영은 악플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누군지 잡히기만 해 봐! 가만 안 둘 거야!
* * *
5교시가 시작하기 전 가까스로 교실로 돌아온 태영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헐. 그래서 악플러들 못 잡았다고?”
다행히 5교시 수학이 자습 시간으로 대체되었고, 태영은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해니에게 다 털어놓았다. 얘기를 다 들은 해니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걸까? 무슨 아이디까지 사서 너한테 악플을 다냐고.”
“절대 들키면 안 되는 그런 앤가 보지.”
“들키면 안 되는 짓을 왜 해?”
그러게나 말이다. 태영의 시름이 깊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교실 맨 앞쪽에 앉은 여자애들이 태영을 흘깃거리며 수군거렸다. 그리고 그 수군거림은 반 전체로 번져 갔다.
“뭐야? 저것들이 또 왜 저래?”
해니가 앞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톡으로 링크 하나를 보내 줬다. 해니가 태영과 함께 링크를 눌러 커뮤니티 사이트로 이동했다.
[명원시 골딩녀의 실체를 밝힙니다!!]
제목부터 강렬한 어그로의 느낌이 들었다. 태영과 해니가 머리를 맞대고 동시에 글을 읽어 내려갔다.
“글쓴이 미친 거 아니야?”
먼저 폭발한 건 해니였다. 해니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수군거리는 반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이거 사실 아닌 거 알지? 모태영이 후배들한테 오줌을 먹였다고? 나체로 옷을 벗기더니 사진을 찍었다고? 또 그걸 유포한다고 협박을 했고? 사람을 이틀이나 감금을 시켜? 반실신 상태로 만들어? 이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조용히 해. 지금 자습 시간이야.”
“오필희! 자습인 거 나도 알아! 넌 이 와중에 꼭 조용하란 소릴 해야겠냐?”
“해니야, 앉아. 조용히 하자.”
저 때문에 잔뜩 예민해져서 하마터면 오필희와 싸움이 붙을 뻔한 해니를 태영이 말렸다.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은 해니는 태영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너 혹시 여기 적힌 일들…….”
“…….”
“니가 당한 건 아니지?”
해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태영은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린 해니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니가 왜 울어?”
“몰라. 엉엉. 그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릴거야앙.”
“다 지난 일인데 뭐. 뚝.”
“지난 일은 무슨. 이 글도 그 새끼들 짓 아니야? 이거 아이피 추적하면 찾을 수 있지 않나? 유일반한테 찾아 달라고 하자.”
“냅둬. 걔 대회 준비하느라 바빠. 별것도 아닌 일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걔한텐 별것도 아닌 일이 아닐걸?”
“?”
“너 처음에 악플 달렸던 동영상 있잖아. 그거 폭파됐어.”
“뭐?”
“유일반이 엔터 한 번 누르니까 그냥 날아가던데?”
아까 봤던 그 경이롭던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며 해니가 말했다.
“빨리 유일반한테 이 글도 지워 달라고 하자. 너 이러다 기자단 서류 심사에서 광탈하면 어떡해. 명원시에서 이 글 보고 너 오해해서 떨어뜨리면 어떡하냐고.”
“그럴 필요 없어.”
“왜?”
“나 아마 벌써 광탈했을걸?”
“어째서? 너 골딩녀 동영상 덕분에 팔로워 수도 엄청 늘었고 그동안 게시 글도 많이 올렸잖아. 학교장 추천서 제출 못 한 것 땜에 그래?”
“그게 아니라…….”
저보다 스펙이 훨씬 더 뛰어난 수아가 학교장 추천서까지 받아서 지원했다는 말을 태영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암튼 기자단은 물 건너간 듯.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모탱!”
말하면서도 계속 커뮤니티 댓글에 ‘싫어요’를 누르던 해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태영이 흘끔 액정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화면 가득 빽빽하게 적혀 있던 폭로 글은 싹 다 지워지고 웬 영상과 영상 캡처 사진이 화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에 태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해니가 얼른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대박. 여기 로봇 박물관이잖아.”
그렇다. 해니의 말대로 영상 속 장소는 로봇 박물관이었고, CCTV 영상에는 대형 화재를 막아 내는 태영의 활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박물관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대피하라고 소리치는 태영, 불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느라 넘어진 유치원생 한 명을 일으켜 대피시키는 태영, 소화기를 들고 용감하게 불을 향해 달려가는 태영의 모습들을 누군가 정성스레 편집까지 한 영상이었다.
* * *
“오, 대박. 내용 바로 바뀜.”
주유권이 핸드폰으로 ‘명원시 골딩녀의 실체를 밝힙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확인했다.
가짜 폭로 글은 지워졌고 진짜 태영이 어떤 아이인지 얼마나 정의롭고 용감한 아이인지 보여 주는 CCTV 영상과 캡처 사진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렇지. 이게 진짜 모태영 실체지.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까 모태영 진짜 대단하다! 이걸 편집해서 올릴 생각 한 너도 진심 존경! 나 잘했지? 빨리 나도 칭찬해 줘.”
“어쩌라고.”
갑자기 머리통을 들이밀며 쓰다듬어 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주유권을 이반이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그러곤 대충 손가락으로 주유권의 머리통을 쓸었다.
“됐지?”
“오키.”
체육 시간 운동장에서 빈둥거리며 핸드폰을 하다 제일 먼저 가짜 폭로 글을 보게 된 주유권은 곧장 옥상으로 달려갔고, 글을 녀석이 봤고, 처리했고, 그렇게 현 상황까지 온 거였다.
사건을 해결한 건 이 녀석이지만 어찌 보면 제가 초기 대응을 빨리한 덕분에 태영의 가짜 폭로 글이 금방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니, 나 주유권 칭찬한다!
유권은 얼른 해니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다.
그사이 태영의 활약이 담긴 동영상은 SNS에 공유되면서 아니 어찌 보면 녀석이 백만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프리무스 계정에 올리면서부터 조회 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인터넷 뉴스에 ‘로봇 박물관 대형 참사를 막은 인플루언서’라는 헤드라인으로 기사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팔로워 수 쪼렙 모탱이 갑자기 인플루언서가 된 점은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동영상의 이 미친 확산 속도에 감탄하며 주유권이 녀석을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역시 넌 천재야. 근데 지금 또 뭐 하는 거야?”
“아까 그 글 누가 어디서 올렸는지 찾는 중.”
“그런 것도 찾을 수 있어? 어떻게?”
“말하면 알아?”
“모르지. 근데 너 진짜 모태영 많이 좋아하나 보다. 지금 재능 낭비 제대로 하고 있는 거 알지? 아니다, 낭비란 말은 좀 그런가? 암튼 너 원래 사적인 영역에 니 재능 잘 안 쓰잖아. 공과 사는 딱 구분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악, 깜짝이야.”
갑자기 의자를 박차고 이반이 일어났다. 위치를 찾은 것이었다. 이반은 주유권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는지 제 할 말만 했다.
“자습실이 어디냐?”
“바로 밑에 층에 있……. 유일반! 갑자기 어디 가?”
주유권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유일반은 동아리방 문을 박차고 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자습실로 향했다.
대체 누굴까? 그런 더러운 글을 감히 겁도 없이 학교에서 올리다니.
그나저나 글의 내용이 허위 사실치고 매우 디테일하던데…….
이거 설마 그 애가 벌인 짓이 아니라 그 애가 당한 일인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자 이반은 억장이 무너졌다. 그럴수록 이반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서둘러 도착한 자습실 앞.
마침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