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49화 (50/67)
  • [49화]

    결국 녀석과 송바위가 만나고야 말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녀석의 눈빛에서 스파크가 마구 튀겼다. 금방이라도 주먹질이 오고 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보다 못한 태영이 끼어들어 두 녀석을 떨어뜨려 놨다.

    “그만! 둘이 싸우기만 해 봐. 진짜 가만 안 둬!”

    “모태영, 넌 들어가 있어. 난 돌멩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무슨 얘긴데?”

    “사고 다음 날 내가 이런 걸 발견했거든.”

    녀석이 주머니에서 빨간색 손목 보호대를 꺼내더니 안쪽을 보여 줬다.

    보호대 안쪽엔 ‘송’이라는 글자가 얇은 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태영은 당황스러웠다. 녀석의 말대로 저건 바위 것이 맞았다. 제가 바위에게 선물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태영이 바위를 쳐다봤다. 그러자 바위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저 새끼 지금 뭐라는 거냐? 사고? 무슨 사고?”

    송바위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거짓말하면 특정 욕부터 튀어나오는 바위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태영이 녀석을 바라봤다.

    “바위는 진짜 아닌 것 같아.”

    “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알아. 바위는 아니야.”

    “넌 끼어들지 마. 야, 돌멩이! 너 그날 밤 동아리방에 왔었잖아. 니가 망가뜨린 거지? 부품도 니가 훔쳐 갔냐?”

    “저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냐?”

    “스톱!”

    덩치 큰 두 사람 사이에 있다가 점점 옆으로 밀려났던 태영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러곤 큰 소리로 외쳤다.

    “둘 다 그만하라고! 특히 너, 제발 좀 진정해.”

    태영이 녀석을 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갑자기 태영에게 혼이 나자 이반은 억울했다.

    “너 지금 내 말 못 믿는 거야? 저 새끼가 범인이라니까!”

    “아니라고. 그거 손목 보호대 바위 거 맞긴 한데, 바위는 아니야.”

    “어째서?”

    “바위는 그런 애가 아니야. 비겁하게 말도 없이 남의 공간에 들어가서 소중한 거 망가뜨리고 뭘 훔치고 그럴 애가 아니라고.”

    “증거가 있는데도?”

    “그게 왜 동아리방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고가 있던 날 떨어뜨린 건 아닐 거야.”

    졸지에 자신을 대변하는 태영의 뒤에 숨은 꼴이 된 바위는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반면 이반은 다른 남자애 변호를 이리도 열심히 하는 태영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래서 애써 화를 억누르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그건 오해라 치고. 둘이 지금 어디 가는 건데?”

    “어?”

    “사이좋게 어디 가냐고. 이것도 내가 오해하는 거야?”

    태영은 말을 아꼈다.

    안 그래도 이 녀석 저 때문에 원진남고 애들이랑 패싸움까지 하고 몸도 성치 않은 데다, 대회 앞두고 할 일도 많은데 거기에 자신의 악플 사건까지 보태 녀석을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 바위랑 화해했어. 그래서 얘기하려고 잠깐 나가는 거야. 그니까 넌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들어가.”

    “신경 쓰지 말고?”

    이반은 뭔가 소외감이 느껴졌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자니 짜증이 확 솟구쳤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몰라 짝다리를 짚은 채 가만히 서 있던 이반은 그냥 말없이 교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인사도 없이 화난 얼굴로 쌩하니 가 버리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태영은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뭐랄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지은 기분?

    “유일반이랑 딴판이네. 난 저 새끼 이상하다는 거 진작 알았는데 넌 몰랐어?”

    옆에서 이반의 말투와 표정을 쭉 지켜본 바위가 물었다. 그러자 태영이 대꾸했다.

    “당연히 몰랐지. 똑같이 생겼잖아.”

    “성격이 저렇게 다른데?”

    기억 상실증 걸려서 그런 줄 알았지. 라고 하면 송바위가 저를 향해 ‘멍청한 계집애!’라고 할 게 뻔했다. 태영은 잽싸게 말을 돌렸다.

    “암튼 너 진짜 동아리방 간 적 없지?”

    “있어.”

    “뭐? 있다고? 그럼 저 녀석 말대로 진짜 니가 그런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동아리방엔 왜 갔는데?”

    “경고하러.”

    “무슨 경고?”

    “딱 봐도 유일반이 너 가지고 노는 것 같길래 한 대 패 주러 갔지.”

    “그래서? 팼어? 그러다 로봇 망가뜨린 거야?”

    “그 로봇 망가졌냐? 잘됐네. 그 새끼 사람 얘기하는데 쳐다도 안 보고 미친놈처럼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더만.”

    그날 동아리방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 바위는 또다시 열이 뻗쳤다.

    ‘모태영 가지고 노는 거 그만해라. 너랑 사귄다고 소문나서 걔 지금 존나 난처하니까.’

    ‘그건 태영이랑 얘기 다 끝났는데?’

    ‘무슨 얘기?’

    ‘같이 상부상조하기로. 대신 나도 태영이가 원하는 거 들어주기로 했거든.’

    ‘뭔 개소리야.’

    ‘미안한데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나중에 얘기하자. 이만 나가 줄래?’

    그 뒤로 아무리 제가 소리치고 성질을 부려도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그저 노트북만 들여다보던 유일반의 모습이 생각난 바위는 어이가 없었다.

    “형이란 새끼는 비겁하게 너 이용이나 하고.”

    “또 그 소리야? 도대체 유일반이 날 어떻게 이용했다는 건데?”

    “아직도 몰라? 내가 계속 말했잖아. 그 새끼 권수아 좋아하면서 너랑 사귄 거라니까? 너랑 상부상조하기로 했다잖아. 그게 무슨 뜻이겠어? 널 안 좋아하면서 이용해 먹을 게 있으니까 사귀기로 한 거라고.”

    태영은 순간 유일반이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태영아, 그럼 부탁인데 애들이 나랑 사귀냐고 물으면…….’

    ‘물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 줘.’

    그때의 쓸쓸했던 유일반의 눈빛. 태영은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그럼 그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게…….”

    “권수아가 자기 안 좋아하니까 너 이용해서 질투심 자극하려고 했나 보지.”

    “아…… 그렇구나.”

    “미친 새끼들. 형이나 동생이나 똑같아.”

    “동생은 왜? 걘 나 이용하고 뭐 그런 거 없었어. 오히려 걘 싫다는데 내가 팔로워 수 올리고 싶어서 걔랑 맞팔 하려고 따라다녔던 거지. 이용은 내가 했네, 내가 했어. 걘 나 떡볶이도 사 주고 인형도 뽑아 주고 원진남고 애들한테서 구해 주고 초콜릿도 사 주고 나한테 잘해 줬는데…….”

    “이 멍청아! 그딴 걸 왜 사 줬겠어? 저 새끼 지 유일반 아닌 거 들통 안 나려고 지금까지 너 데리고 다니면서 쇼한 거잖아. 그게 이용한 거지 뭐야.”

    “그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그랬겠지.”

    “좋아하냐?”

    “…….”

    “누군데? 유일반? 아님 저 쌍둥이?”

    “……몰라.”

    모르겠어. 태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바위가 말했다.

    “좋아하지 마. 둘 다 개새끼인 건 분명하니까.”

    “그래 뭐, 니가 유일반이 수아랑 키스하는 거 봤다니까 내가 달리 반박은 못 하겠는데, 그니까 유일반은 수아를 좋아하는데 뜻대로 안 되니까 날 이용해서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했다? 그럼 살짝 개새끼인 건 맞는데……. 근데 동생 쪽은, 그니까 그 유이반 걔는 어쩔 수 없이 형인 척하다가 아니지 사실 척도 잘 못하고 있어.”

    “뭔 소리야?”

    “그 녀석이 말을 좀 험하게 해서 그렇지 진짜 나쁜 애는 아니거든.”

    “닥쳐. 너 기자 된다며. 그럼 감 좀 길러라.”

    “팩폭 그만.”

    “앞으론 이상한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 나도 이제 공부할 거니까.”

    “고, 공부?”

    바위 입에서 공부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오자 태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게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바위가 먼저 앞으로 걸었다.

    “빨리 따라와. 사과받아야지.”

    태영은 어쩐지 이번 일로 바위와 오랜 앙금을 덜어 낸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같이 가!”

    성큼성큼 벌써 저만치 가 버린 바위의 뒤를 태영이 쭐레쭐레 따라갔다.

    * * *

    “너희 둘 옥상으로 따라와.”

    매점에서 서로 과자를 먹여 주며 애정 행각을 벌이던 해니와 주유권 앞에 갑자기 이반이 나타나 말했다.

    “뭐 해? 나오라고.”

    “우리 둘? 왜?”

    “말 겁나 많네.”

    해니와 주유권은 그저 한마디 했을 뿐인데 말 많다 욕을 먹으니 억울했다.

    “나오라고!”

    매점을 나갔던 이반이 두 사람이 따라오지 않자 다시 들어와 윽박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해니와 주유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옥상으로 가는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유권아, 쟤 기억 상실증 확실함? 미친 것 같아.”

    “그게 그거 아니야? 미쳤으니까 기억이 상실된 거지.”

    “아. 그렇구나.”

    재잘재잘 쉴 새 없이 떠들며 제 뒤를 따라 옥상에 올라온 해니와 유권을 이반이 골치 아픈 듯 바라봤다.

    “너희 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두 사람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반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까 운동장에서 어떤 여자애가 그러더라.”

    “너 좋아한대? 고백받았어?”

    “헐. 여친 있는데도 고백하는 패기 보소. 누군데? 몇 학년이야?”

    “닥치고 내 말 좀 끝까지 들어.”

    말이 많아도 너무 많은 커플을 이반이 넌덜머리가 난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자 해니와 주유권이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잠시 조용해지자 이반이 말을 마저 이었다.

    “그 여자애가 감히 나한테 모태영이랑 헤어지래.”

    “?”

    “학폭 가해자랑 왜 사귀냐고, 나더러 속은 거래.”

    “그거 사실 아니야! 유일반, 절대 그런 유언비어에 속아 넘어가면 안 돼. 피해자는 태영이야.”

    “알아.”

    “안다고? 그럼 우릴 왜 불렀어?”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야?”

    “너튜브 댓글일걸?”

    “그 너튜브 주소 당장 나한테 공유해.”

    “왜?”

    라고 주유권이 묻는 사이 해니가 핸드폰을 잽싸게 꺼내 너튜브 주소를 이반에게 공유했다. 곧 주소를 공유받은 이반이 핸드폰으로 영상 밑에 달린 댓글들을 서늘한 눈빛으로 읽어 내려갔다.

    “이게 다야? 또 없어?”

    “응. 거기 달린 댓글들이 다야.”

    잠시 핸드폰을 가만히 응시하던 녀석이 동아리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조심스레 따라 들어간 해니와 주유권이 노트북 앞에 앉은 녀석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봤다.

    갑자기 녀석이 미친 속도로 타이핑을 하니 노트북 화면에 새 창 수십 개가 마구 뜨기 시작했다.

    “저기…… 유일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해니가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녀석이 대답했다.

    “폭파.”

    녀석의 대답을 듣자마자 해니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놀랍게도 녀석이 손가락을 움직인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동영상은 블라인드 처리 되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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