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47화 (48/67)
  • [47화]

    “내가 니 걱정을 왜 하냐?”

    송바위가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태영은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송바위의 손목을 확 잡아끌더니 마구 흔들었다.

    “이거 빨간색 보호대 내가 너 중3 생일 선물로 사 준 거 맞지?”

    보호대 뒤쪽에 자수가 새겨진 것을 확인한 태영이 감격했다.

    “맞네. 이거 ‘송’ 내가 자수로 새겨 준 거잖아.”

    “…….”

    “너 혹시 나랑 화해하고 싶어서 줄곧 이거 차고 다녔던 거야? 우리 화해할까? 예전처럼 다시 친구…….”

    “꺼져! 뭔 개소리야! 너랑 친구 안 한다니까!”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린 송바위의 뒷모습을 향해 태영이 발길질을 했다.

    “와, 저 미친놈! 왜 소릴 지르고 난리야. 우씨.”

    열받은 태영은 수돗가로 달려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그래도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씩씩거리며 교실로 향했다.

    * * *

    설마 벌써 수업 시작한 건 아니겠지? 복도에 도착한 태영은 교실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태영이 조용히 문을 열고 죄인처럼 교실에 들어섰는데.

    이런.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게다가 칠판에는 ‘물리→음악’이라고 적혀 있었다.

    망했다. 벌써 다들 음악실로 이동하고 없나 보다. 최해니 이 배신자! 너마저 날 버리고 가다니. 태영은 책상 서랍 안에서 음악책을 찾다가 없는지 허둥지둥 일어나 사물함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물함을 열었는데.

    와르르.

    안에서 뭔가가 쏟아졌다.

    바닥에 한가득 쌓인 뭔가를 쭈그리고 앉아 쳐다보던 태영은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건…….”

    초콜릿이었다.

    지난번 녀석이 초콜릿 먹던 모습을 담배 피우는 줄 알고 오해해 바닥에 내던졌던 그 문제의 초콜릿.

    잠깐, 그러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유일반이 아니라 그 녀석이었던 거잖아.

    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대체 난 왜 몰랐을까?

    유일반이 아무리 기억 상실증에 걸렸어도 그렇게 싸가지 없게 바뀔 리가 없는데.

    이 멍충이!

    태영이 주먹으로 제 머리통을 마구 때리며 자학하고 있었는데.

    “어디 갔다 왔냐?”

    “악! 깜짝이야.”

    태영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녀석이 교실 문에 기댄 채 태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영은 얼른 초콜릿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니가 넣어 놨어?”

    녀석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럼 누구겠냐? 그 초콜릿 아무나 못 구하는 건데. 말 돌리지 말고 어디 갔었냐고.”

    태영이 초콜릿을 도로 사물함에 넣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무슨 상관인데.”

    “몰라서 묻는 줄 알아? 돌멩이랑 둘이 어디 갔다 왔냐고.”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너 돌멩이한테 아니 바위한테 다 들켰어.”

    “뭘 들켰는데? 내가 너 좋아하는 거?”

    갑자기 들어온 고백 공격에 녹다운 해 버린 태영은 그저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는데.

    “아님 니가 나 좋아하는 거?”

    “뭐, 뭐래!”

    태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한번 살피며 작게 속삭였다.

    “그게 아니라…… 너 유일반 아닌 거, 쌍둥이인 거, 그거 들켰다고.”

    “그게 뭐.”

    “그게 뭐라니. 다행히 바위가 어디 막 떠벌리고 다닐 애는 아니라 망정이지. 너 이러다 다른 애들한테까지 들키는 건 시간문제야. 게다가 올백은 뭐야. 눈치껏 문학에서 하나 정돈 틀려 줬어야지. 진짜 유일반처럼.”

    “아는 문제를 왜 틀려?”

    “그래 너 잘났다. 근데 넌 또 왜 공부를 잘해?”

    “내가 원래 다 잘해.”

    우쭐해하는 녀석을 태영이 째려봤다. 그러곤 사물함 속에 팔을 집어넣어 음악책을 겨우 꺼내 품에 안았다.

    “비켜. 원래 다 못하는 나는 음악실 가야 돼.”

    녀석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가려는 태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태영.”

    “왜?”

    “너 왜 자꾸 내 눈 피해?”

    “내가 언제?”

    “지금도 계속 나 안 쳐다보잖아.”

    녀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영이 고개를 들고 녀석을 똑바로 쳐다봤다.

    “됐지?”

    “너 화났냐?”

    “아니.”

    “화났네. 왜? 내가 유일반이 아니라서? 그게 이렇게 화낼 일이야?”

    “그럼 웃을까? 웃어야 될 일이야?”

    “…….”

    할 말이 없었는지 녀석이 마른침을 삼키며 화난 태영의 눈을 응시했다.

    상처받은 듯 녀석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한 태영은 심장이 반으로 쪼개질 듯 아팠다.

    젠장. 흔들린다. 또 마음이 약해진다. 태영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너 왜 나한테 사과 안 해? 어쨌든 너 그동안 유일반인 척 나 속였잖아.”

    “사과하면 받아 줄 거야?”

    “아니. 그냥 사과하지 마. 받아 줄 생각 없으니까. 비켜.”

    태영이 녀석을 밀치고 문으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 다 알아. 근데 어쩌냐? 니가 아무리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면서 나 밀어내고 상처 줘도 소용없어.”

    교실을 나가려던 태영이 뒤를 돌았다.

    녀석이 아주 집요한 눈빛으로 태영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다고 니가 싫어진다거나 미워진다거나 하지 않으니까.”

    “…….”

    “이미 그 이상이거든. 내 마음이.”

    * * *

    “모탱! 너 톡 왔는데?”

    책상 위에서 진동하는 태영의 핸드폰 액정을 흘끔 보며 해니가 알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태영이 톡을 확인했다.

    [6교시 지구 과학 수행 평가 준비물 없음]

    녀석에게서 온 톡이었다. 이젠 아예 대놓고 유일반 번호가 아닌 지 번호로 시시때때로 별 시답잖은 일로도 톡을 보낸다.

    ‘이미 그 이상이거든. 내 마음이.’

    며칠 전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태영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모탱, 어디 아픔? 얼굴 빨감.”

    “어? 아, 더워. 더워서 그래.”

    공책으로 부채질을 하며 태영이 열을 식혔다. 그사이 핸드폰이 또 진동했다.

    [점심시간에 급식실 가지 말고 옥상으로]

    이 녀석이 진짜! 참다못한 태영이 문자 창을 열었다.

    [오늘 급식 메뉴 치킨이거든? 옥상 사절!]

    [옥상!!]

    [싫다고!!!]

    [너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나저나 이 녀석은 나 좋아한다면서 어째 바뀐 게 없어? 맨날 지 할 말만 하고. 어젠 동아리방에 처박혀 있었는지 코빼기도 안 비치고. 좋아한다면 아무리 바빠도 잠깐이라도 얼굴 보러 와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얼굴 좀 안 보면 어떻다고. 마치 내가 그 녀석 보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 같잖아.

    “근데 요새 유일반은 좀 어때?”

    “뭐가?”

    “기억 말이야. 좀 나아짐?”

    “아…….”

    이쯤에서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해 줘야 하나 태영은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제 마음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마당에 해니에게 무슨 말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응. 아주 많지.”

    “치이. 뭐 니가 말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대신 정리되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 줘야 된다?”

    “당연하지. 근데 해니야.”

    “응?”

    머뭇거리던 태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주유권한테 유일반 집안 얘기 뭐 좀 들은 거 없어?”

    “예를 들면?”

    “음…… 예를 들면 외동이라던 유일반에게 남동생이 하나 있다랄지?”

    “아! 맞다!”

    뭔가 아는 게 있는 눈치인 해니의 제스처에 태영이 귀를 쫑긋 세웠다.

    “유일반네 부모님 이혼한 건 알고 있지?”

    “응. 그건 알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했어. 근데 병으로 돌아가신 건가?”

    “너 몰라?”

    “내가 알아야 돼?”

    “뉴스 검색하면 나오는데? 걔네 엄마 되게 유명한 분이잖아.”

    “유명하다고? 누군데?”

    “소연화 박사! 왜 있잖아, 작년에 방송한 드라마 여주인공이 박사님 모티브해서 만든 거라고 한동안 이슈였잖아.”

    “뭐? 소연화 박사가 유일반네 엄마라고?”

    태영은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소연화 박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년에 시청률 40퍼센트가 육박했던 그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태영은 바로 후자 쪽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 드라마의 애청자였던 태영은 소연화 박사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소연화 박사가 어떤 삶을 살다 어떻게 사망하게 되었는지까지 전부 알고 있던 태영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근데 넌 어디서 들었어?”

    “뭘?”

    “유일반한테 남동생 있다는 소문 말이야. 유권이도 들었대. 학부모들 사이에서 떠도는 얘기가 있었나 봐.”

    “유일반이 직접 얘기한 적은 없고?”

    “응. 유일반이 워낙 가족 얘기는 잘 안 하는 편이라 유권이도 딱히 물어보거나 하진 않았대. 근데 왜? 유일반이 너한테 자기 남동생 있대? 와 남동생이면 걔도 겁나 잘생겼겠네? 궁금하다.”

    “니가 그게 왜 궁금한데?”

    “궁금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일반이랑 닮은 남동생이면 얼마나 잘생겼겠어?”

    “잘생기긴 했지.”

    “응?”

    “어? 내가 뭐랬나? 아, 오늘 지구 과학 수행 평가 볼 때 준비물 있어?”

    “몰라. 그런 건 수아한테 물어봐.”

    태영은 마침 교실로 들어온 수아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수아야 오늘 지구 과학 수행 평가 말인데…….”

    태영이 수아가 신은 신발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교칙이라면 곧 죽어도 꼭 지키는 수아가 교실에서 실내화가 아닌 노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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