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40화 (41/67)
  • [40화]

    “내가 학폭 가해자라고?”

    태영은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수아에게 되물었다.

    “누가 그래? 내가 가해자라고 누가 그랬냐고.”

    “태영이 너 무슨 영상 같은 거 하나 돌아다닌다며. 그 영상에 댓글 달렸대. 그리고 학교 게시판에도 올라왔고.”

    “아니야.”

    날이 잔뜩 선 태영과 달리 수아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아니겠지. 태영아, 난 너 믿어. 근데 애들은 아닌 것 같아. 너한테 직접 맞았다는 피해자 증언도 나오고 있고…….”

    “상관없어. 어차피 걔들이 다 지어낸 말이니까. 근데 넌 여기 왜 왔어? 나 때문에 온 거야? 아니면…….”

    사실 태영이 날이 섰던 진짜 이유는 저를 둘러싼 이상한 소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영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수아가 대답했다.

    “유일반 만나러 왔어.”

    “무슨 일 때문에?”

    “이거 주려고.”

    수아가 손에 든 문학책을 태영에게 건넸다.

    “시험 전에 항상 빌려 갔었거든. 유일반 걔 다른 과목은 다 만점인데, 유일하게 한두 문제 틀리는 게 문학이잖아. 너도 알지?”

    “다, 당연히 알지!”

    당연히 알긴 개뿔. 사실 몰랐다. 유일반이 문학에서 한 문제를 틀리는지 두 문제를 틀리는지 그동안은 관심 밖이었으니까.

    하지만 태영은 괜히 아는 척을 하며 수아를 의식했다.

    “근데 넌 유일반이랑 라이벌이면서 이런 거 막 빌려주고 그래도 돼?”

    “그래야 나중에 졌을 때 덜 쪽팔리지. 이런 거 막 안 빌려주고도 져 봐. 그럼 정말 학교 오기 싫을 것 같은데?”

    “그런가? 암튼 고마워. 이건 내가 유일반한테 전해 줄게. 그리고 수아야, 나도 니 책 좀 봐도 될까? 그렇지 않아도 문학 필기 놓친 게 많아서 너한테 빌리려고 했거든.”

    “당연하지. 천천히 보고 돌려줘. 그럼 나 먼저 내려갈게.”

    수아가 비상구 문을 열고 옥상에서 나가자마자 태영은 핸드폰을 꺼내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통화 연결음만 들릴 뿐 녀석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후우…….”

    태영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곤 하늘을 올려다봤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과 습한 날씨.

    “유일반…… 대체 어떻게 된 거냐구.”

    태영은 자꾸만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쓰러지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난데없이 학폭 가해자로 몰린 상황에서도 태영은 녀석을 걱정했다.

    * * *

    “네? 안 된다구요? 왜요?”

    분명 지난주만 해도 추천서 써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담임이 말을 바꿨다.

    “태영아, 미안해. 쌤이 알아보니까 학교장 추천서는 성적순으로 써 주게 되어 있대. 근데 니 성적이 수아보다 훨씬 안 좋아서. 이번엔 수아가 추천서를 받게 됐어.”

    “네? 수아요? 수아는 아닌데……. 기자단 저만 신청했는데요.”

    “무슨 소리야? 너희 친하면서 몰랐어? 수아도 기자단 신청한다고 지난주에 추천서 부탁했는데.”

    금시초문이었다. 태영은 너무 당황스러웠다.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수아가 갑자기 기자단은 왜? 도대체 왜?

    결국 그렇게 추천서를 손에 넣지 못한 채 교무실을 나온 태영은 눈앞이 깜깜했다.

    추천서를 받아 제출해도 합격할까 말까인데, 경쟁자가 수아라니. 게다가 왜 다들 날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태영은 수군거리며 저를 지나쳐 가는 친구들의 시선을 피해 비상구로 향했다.

    아무래도 아까 수아가 말했던 내가 학폭 가해자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진 모양이다. 의식하지 않기로 했지만, 비난의 눈초리에 몸이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수아야!”

    그런데 그때였다. 비상구 밖에서 누군가 수아를 불렀다. 태영은 수아한테 할 얘기도 있고 해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너 모태영이랑 친해?”

    제 이름을 들은 태영이 나가려다 말고 멈칫했다.

    문밖에선 수아와 같은 스터디를 하는 이른바 전교 상위권을 차지하는 아이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중엔 학습 부장 오필희도 있었다. 오필희는 이때다 싶었는지 수아에게 태영의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아야, 옛날부터 궁금했는데 넌 왜 그런 애랑 놀아?”

    “맞아. 모태영 걔 중학교 때 완전 양아치였대.”

    “송바위랑 절친이었다잖아. 그럼 말 다 했지 뭐.”

    “내 친구도 세원중 나왔는데 모태영 알더라. 걔 뻑하면 사람 발로 차고 그랬대. 후배들도 엄청 괴롭혔대.”

    “그만해.”

    “수아야…….”

    “태영이 그런 애 아니야. 착하고 좋은 애야. 너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들어? 계속 그딴 소리 하면 나 너희랑 스터디 안 해.”

    “스터디를 안 하다니 무슨 소리야. 알았어. 모태영 얘기 안 하면 될 거 아니야. 니가 스터디에서 빠지면 우린 어떡하라고.”

    “맞아. 수아야 화 풀어. 미안해.”

    수아가 으름장을 놓자 그제야 험담을 멈춘 오필희가 어떡해서든 수아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문틈 사이로 지켜보던 태영은 발길을 돌렸다. 제 편을 들어 준 수아를 보니 새삼 부끄러웠다. 몇 분 전만 해도 학교장 추천서를 뺏어 간 수아에 대한 원망이 들었는데 말이다.

    “이유가 있겠지?”

    그래, 무슨 이유가 있겠지. 수아가 기자단에 괜히 지원하진 않았을 거야.

    태영은 애써 수아를 향한 의심을 접어 두고 교실로 향했다.

    * * *

    한편, 자습실 책상에 앉은 수아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 안에서 꺼낸 종이의 헤드라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수아는 이내 냉소적인 얼굴로 종이를 박박 찢어 가방 속에 아무렇게 구겨 넣었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을 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 * *

    “추천서를 못 받았다고?”

    해니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태영을 향해 되물었다.

    “진짜 못 받았어? 왜?”

    “다른 애한테 먼저 써 줬대.”

    “다른 애 누구? 누가 또 기자단 신청했대?”

    수아라고 하면 해니는 아까의 나처럼 바로 수아를 찾아가 따지려 들 것이 분명했다. 태영은 그냥 말을 아끼기로 했다.

    “몰라.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추천서는 꼭 제출해야 되는 서류는 아니어서 괜찮아.”

    태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런 태영을 해니가 걱정스레 쳐다봤다.

    “그래도 학교장 추천서 받은 애랑 아닌 애랑 둘 중에 뽑으라고 하면 당연히 전자지. 게다가 니 SNS 겨우 떡상했는데 이상한 댓글이나 달리고. 그거나 먼저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야?”

    “무슨 신고까지 하냐? 어차피 다 헛소린데.”

    “그쪽에서 그 댓글 보면 어떡해? 그러다 기자단 떨어지면?”

    “그렇다면 정시 준비를…….”

    “다음 주에 있을 기말고사부터 준비하시죠.”

    “그래서 지금 짐 싸고 있잖아.”

    책가방이 터져라, 교과서를 꾸역꾸역 챙겨 넣는 태영을 보며 해니가 혀를 내찼다.

    “쯧쯧.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교과서를 그렇게 다 들고 댕긴다더라.”

    “이상, 최해니 남친 소개 잘 들었구요.”

    태영이 씨익 웃으며 마침 교실로 들어오는 주유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 남친이 교과서를 품에 가득 안고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해니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나 먼저 간다!”

    말 많은 두 인간에게 잡혀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니 태영은 서둘러 인사를 하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코너를 돌아 계단을 내려가던 태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세웠다.

    결국 녀석은 오늘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못 온 걸지도 모른다.

    “설마 아버지한테 들킨 건 아니겠지?”

    녀석이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들킨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영영 녀석을 못 볼 수도 있는 걸까?

    * * *

    악몽이라도 꿨는지 이반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동시에 상체를 일으켰다.

    “!”

    하지만 심장 부근에서 엄청난 통증을 느낀 이반은 도로 누울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이반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일단 이곳은 익숙하고도 낯선 유 회장네 집. 형이 쓰던 책상과 노트북들이 보인다.

    제 손목에 꽂힌 링거 바늘까지.

    그리고…….

    “이봐요.”

    이반은 제가 누워 있는 침대 끄트머리에 몸을 기댄 채 선잠을 자고 있는 추 여사를 발견했다. 그러자 추 여사가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처음 보는 추 여사의 인간적인 모습이 이반은 낯설었다.

    “왜 그렇게 봐요?”

    “내 맘인데요? 나 어떻게 된 겁니까?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예요?”

    “아침에 등교하러 안 내려오길래 올라와 보니 쓰러져 있더군요. 구급차 불렀다간 회장님께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

    “닥터 왔다 갔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이반이 턱끝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간 손등을 가리켰다.

    “바늘 들어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주사를 하도 많이 맞아 봐서.”

    “자랑이에요? 우리 도련님은 얼마나 건강한데. 평생 감기 한번 안 걸렸다고요. 암튼 학생이 쓰러지면 곤란해요.”

    정말 곤란해 보이는 추 여사를 흘끔 보던 이반이 말을 이었다.

    “왜 지금까지 모른 척했습니까?”

    “아시잖아요. 대타가 필요했다는 거. 우리 도련님은 깨어날 생각을 안 하시고, 이미 두 사람은 바뀌어 있었고.”

    “이번에 말고요.”

    “?”

    “우리 바꾼 거 이번이 처음 아닌데, 왜 모른 척하실까?”

    이반이 추 여사를 의문스럽게 쳐다봤다. 그러자 추 여사가 뭔가 고민하는 듯 말을 아끼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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