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37화 (38/67)
  • [37화]

    “근데 난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이반의 돌직구 고백에도 태영은 여전히 알쏭달쏭한 얼굴이었다.

    예상치 못한 태영의 태도에 이반은 당황스러웠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힐 줄 알았는데, 태영의 얼굴은 뭔가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를 본 이반은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너도 나 좋아한다며, 나도 너 좋아하고. 그러니까 사귀자.”

    “안 돼.”

    뒤늦게 튀어나온 태영의 대답에 이반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왜? 왜 안 되는데?”

    “기억 잃기 전 너는 나 안 좋아한다며. 수아 좋아한다며.”

    “그게 뭐.”

    “너 기억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건데? 다시 수아한테 마음이 움직…….”

    “그럴 일 절대 없어. 지금 니 앞에 있는 내 마음은 절대 움직이지 않아. 그리고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사실은 나…….”

    “그럼 나랑 맞팔 하자!”

    본인은 유일반이 아니라 유일반의 쌍둥이 유이반이라는 사실을 태영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어렵게 말문을 열었던 이반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뭘 하자고?”

    “맞팔. 니 마음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했지? 그럼 까먹지 않게 맞팔 해서 우리 같이 찍은 사진 SNS에 올리자. 너 딴소리 못 하게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으로다가.”

    “뭔 소린진 모르겠지만 해 줄게. 다 해 줄게.”

    “진짜?”

    “어.”

    녀석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태영은 후다닥 핸드폰을 꺼내 녀석의 프리무스 SNS 계정에 맞팔 신청을 했다. 그러곤 녀석을 쳐다봤다.

    “왜?”

    “맞팔 해 준다며. 방금 신청했어. 받아 주라.”

    “어떻게 하는 건데?”

    “SNS 하는 법도 까먹었어?”

    “어? 어…….”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대충 그렇다고 대답해 버린 이반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알려 줄게. 핸드폰 줘 봐.”

    이반이 또 순순히 핸드폰을 넘기자 태영은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왜 웃냐?”

    “신기해서.”

    “뭐가?”

    “갑자기 니가 말을 너무 잘 듣잖아.”

    “근데 왜 대답을 안 해? 말을 이렇게나 잘 들어주고 있는데.”

    “무슨 대답?”

    “사귀자고. 맞팔인가 뭔가도 해 주고 니가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 테니까 나랑 사귀자고. 아, 그리고 최해니가 아니라 너한테 직접 듣고 싶어. 너도 날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일단 맞팔 좀 하고.”

    태영이 얼른 이반의 말을 자르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 모습을 흘끔 보던 이반이 피식 웃었다. 태영의 두 뺨에 홍조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귀까지 빨개진 태영이 허둥지둥하며 이반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태영을 지켜보던 이반이 얼른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는 척했다.

    “나 좀 봐 봐.”

    태영이 이반을 불렀다. 이반이 고개를 돌리자 태영이 핸드폰 액정을 이반의 얼굴 앞에 가져다 대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해?”

    “잠금 해제 하려고. 근데 얼굴 인식이 안 되는데? 좀 더 가까이 와 봐. 렌즈 보고.”

    하지만 아무리 렌즈를 들이대도 잠금 해제가 되지 않았다. 태영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 이반이 뒤늦게 무슨 소린지 알아차리곤 핸드폰 렌즈에 얼굴을 들이밀며 미소를 활짝 지었다.

    녀석이 기억을 잃은 후 처음 보여 주는 환한 미소였다.

    눈도 반달, 입술도 호선이 되자 아깐 절대 풀리지 않던 잠금이 해제되었다. 그러자 녀석이 원래대로 정색하며 핸드폰을 태영에게 건넸다. 태영이 핸드폰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너 방금 뭐 한 거야?”

    태영의 물음에 녀석이 대충 둘러댔다.

    “몰라. 노트북은 다 열리는데 그 폰은 이렇게 웃어야지 잠금이 해제되더라고.”

    “풉.”

    녀석의 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 생각에 잠겨 있던 태영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이반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왜 웃냐?”

    “웃기잖아.”

    “뭐가 웃긴데?”

    “너 그거 알아? 너 기억 잃기 전엔 웃는 상이었어.”

    “지금은 아니야?”

    “아니지. 지금은 완전 카톡 씹게 생긴 상이랄까.”

    이반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정확히 무슨 소린지는 몰라도 어쨌든 자신보다 형의 미소가 더 좋았다는 뜻인 건 알았기 때문이다.

    “핸드폰 내놔. 맞팔 안 해.”

    “아니야. 미안, 쏘리 쏘리.”

    녀석이 핸드폰을 뺏으려고 손을 뻗자 태영이 몸을 옆으로 틀며 서둘러 SNS에 접속해 맞팔 버튼을 눌러 버렸다.

    “됐다!”

    드디어 그토록 꿈에 그리던 프리무스 계정과 맞팔 한 유일한 사람이 된 태영은 감격에 겨워하며 활짝 웃었다. 그 미소를 본 녀석의 성난 마음은 금세 풀어졌고, 어색한 얼굴로 핸드폰을 뺏으려던 손을 얌전히 내려 팔짱을 꼈다.

    “그렇게 좋냐?”

    태영이 기뻐하니 괜스레 마음이 흐뭇해진 이반이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태영이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넌 기억나지 않겠지만 사실 우리가 처음 대화를 하게 된 게 이 계정 때문이거든. 내가 너한테 맞팔 좀 해 달라고 얘기하려고 옥상에 갔다가 우리가 처음 만났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야?”

    태영이 신나서 그날 일반과 처음 만났던 날에 있었던 얘기를 꺼내려는데 이반이 말을 가로챘다. 그러곤 대뜸 물었다.

    “최해니한테 말고 너한테 직접 확인해야겠어.”

    “뭘?”

    “정말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맞는지.”

    “너 맞아.”

    태영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러곤 갑자기 쭈뼛거리다 슬며시 말을 꺼냈다.

    “너도 진짜야?”

    “뭐가?”

    “진짜 수아가 아니라 나 좋아해? 왜?”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난 귀여운 거 좋아한다고.”

    “내, 내가 귀여워?”

    태영이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해 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괜히 어색해서 너스레를 떨었다.

    “하긴, 내가 예쁘단 말은 못 들어 봤어도 귀엽단 말은 꽤 듣긴 했어. 하하.”

    “꽤 들었다고? 누구한테?”

    “야, 그걸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치면 내가 민망해지잖아.”

    “누구한테 들었냐니까. 혹시 그 돌멩이?”

    “있잖아. 송바위를 돌멩이라고 부르는 거 그거 이제 그만해 줄래?”

    “또 그 새끼 편드냐?”

    “그게 아니라 돌멩이 그거 애칭 같아. 너 그렇게 큰 돌멩이 봤어? 완전 안 어울린다고.”

    “암튼 그 새끼 얘긴 꺼내지 마.”

    “니가 먼저 꺼냈거든?”

    “암튼 뭐. 맞팔도 했고 다 된 거지? 이제 집에 가자.”

    일어나려는 이반의 손목을 태영이 덥석 붙잡았다. 이반이 태영에게 잡힌 손목을 지그시 쳐다보자 태영이 얼른 손을 떼고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흠흠. 아직 하나 더 남았는데.”

    “뭔데?”

    “사진! 같이 찍은 사진 정도는 있어야 니가 다시 예전 기억 되찾고 지금의 기억이 날아간다고 해도 증명이 될 거 아니야.”

    자꾸만 기억에 집착하는 태영을 흘끔 보던 이반은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지금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나, 그러니까 너와 이제껏 시간을 보낸 유일반은 유일반이 아니라 나라고.

    나, 유이반이라고.

    “모태영.”

    “응? 왜? 아, 맞다. 너 사진 찍는 거 싫어한다고 했지. 근데 딱 한 장만 찍으면 안 될까?”

    눈치를 흘끔 보며 태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미 카메라 어플까지 실행시켜 사진 찍을 준비를 마친 태영을 어쩌면 좋을지 바라보던 이반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진은 주말에 찍자. 그 전에 너한테 해야 할 말도 있고.”

    “무슨 말인데? 지금 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게 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 직접 보여 주려고. 그럼 훨씬 받아들이기 쉬울 거야. 내 고백에 대한 대답은 그날 들을게. 그날 니가 직접 보고 판단해 줘.”

    이반은 말을 하며 다짐했다. 이번 주말엔 태영에게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놓고 솔직해지겠다고.

    “일요일 오후 1시, 명원대병원 앞에서 만나자.”

    * * *

    “왜 병원 앞에서 보자고 한 걸까?”

    일요일 아침부터 한껏 멋을 부린 태영은 거울 앞에 섰다. 그러곤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며칠 전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뭔가 심각해 보였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녀석은 그렇게 진지한 얼굴이었던 건지. 너무 궁금해서 그날 밤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다음 날 학교에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녀석은 망가진 로봇을 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잊고 있었다. 세계 대회를 앞두고 녀석이 출품하려는 로봇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어제 급식도 마다하고 동아리방에 처박혀 있던 녀석을 떠올리던 태영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애써 미소 지었다.

    “뭐 별거 아니겠지. 오늘은 재밌게 놀다 오자! 안 챙긴 거 없겠지?”

    태영은 해니에게 빌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방에 챙기며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후다닥 현관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꺅!”

    태영이 문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곤 비명을 질렀다.

    “송바위! 너 미쳤어? 놀랐잖아. 왜 여기 서 있어?”

    현관 바로 앞에 서 있던 송바위가 태영을 노려봤다. 또 원피스다. 평소엔 입지도 않는 치마를 요샌 아주 밥 먹듯이 입는다.

    “또 그 새끼 만나러 가냐?”

    “뭔데? 넌 왜 또 시비야?”

    “너 그거 알아?”

    “모른다, 어쩔래. 비켜. 나 늦었어.”

    태영이 제 앞을 막아선 송바위를 피해 골목을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송바위가 뒤에서 달려와 태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유일반 그 새끼 가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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