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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반과 2반 사이-26화 (27/67)

[26화]

녀석과 함께 맛있는 바비큐 치킨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태영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때였다.

“스토옵!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거실 소파 위에서 뒹굴거리던 태혁이 좀비처럼 우다다 달려와 태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악! 미쳤어? 뭐야. 저리 가!”

태혁이 갑자기 태영의 옷에 코를 박고 냄새를 킁킁 맡았다. 태영은 질색하며 태혁을 마구 밀쳤다.

“너 인마 꼭대기 갔다 왔지?”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냄새가 딱 ‘꼭대기 바비큐’ 냄샌데. 이 시끼 대접밥도 먹었네.”

태영의 옷자락에 묻은 밥풀을 발견한 태혁이 두 눈을 부릅떴다.

“치사한 놈. 너 누구랑 갔냐? 송바위? 둘이 화해했냐?”

“나 송바위 없어도 꼭대기 잘만 가거든? 나도 같이 갈 사람 많다고!”

“오올. 그놈이랑 갔냐? 너 아직도 안 차였어?”

“미안하지만 차일 예정 없거든?”

태영이 혀를 날름 내밀고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곤 잽싸게 문을 잠가 버렸다.

문밖에서 오빠의 원망 섞인 불만이 시끄럽게 들려왔지만, 태영의 콧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어깨춤까지 추며 태영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천장 이곳저곳 오늘 함께했던 녀석의 얼굴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입술을 부딪치자 당황하던 녀석.

밥이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는지 눈이 동그래지던 녀석.

세팍타크로라는 종목을 듣자마자 박장대소하던 녀석.

그리고 열쇠를 왜 찾느냐는 물음에 어머니의 유품이 있는 창고를 열어야 한다고 쓸쓸하게 말하던 녀석의 아련한 눈빛까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데…….”

곰곰 생각에 빠져 있던 태영은 갑자기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러곤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왜.

녀석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녀석의 목소리를 듣자 태영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자꾸만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오려는 것을 겨우 막고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내가 생각해 봤는데. 창고 말이야. 그 문 내가 부숴 줄까? 너도 알다시피 내가 세팍타크로 했잖아. 발힘이 엄청 세거든. 세 번? 아니, 두 번만 차면 부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 농담이지? 진심이면 너 제정신 아니니까 약 먹고 잠이나 자.

“나 완전 진심이고 제정신이거든? 진짜야. 내가 그거 창고 문 부숴 줄게!”

태영이 전투적인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스피커 너머로 녀석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렸다. 분명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분명하건만, 그것마저도 태영은 기분 좋게 들렸다.

― 용건 끝났으면 끊어.

“자, 잠깐!”

― 왜?

“내일…….”

― 알아. 오후 2시, 학교 후문 앞. 안 늦을게. 너나 늦지 마.

“그게 아니라.”

― 그럼 뭐.

“너 내일 뭐 입을 거야?”

― 그게 왜 궁금한데?

“그냥 뭐…… 나도 비슷한 스타일로 입고 가면 더 커플 같고 뭐, 그럼 좋잖아?”

태영이 몸을 배배 꼬더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러자 녀석이 대뜸 물었다.

― 넌 뭐 입을 건데?

“나 얼마 전에 옷 샀거든. 멜빵으로 된 청치마. 거기에 흰색…….”

― 알았어. 청바지, 청 재킷, 청으로 된 건 다 피해야겠네.

“뭐? 야!”

― 끊는다.

뚝. 무슨 급한 일이 있길래 매번 이렇게 전화를 먼저 뚝뚝 끊어 버리는 건지.

태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핸드폰을 노려봤다.

“하여튼 그놈의 입만 열면 싸가지……. 입? 입술? 으아악.”

잊고 있었는데, 잊으려 노력했는데 또 생각나 버린 녀석과의 마우스 투 마우스!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진 태영은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 위를 마구 굴러다녔다.

아깐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녀석에겐 그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아무 감정 없는 행동이었다고 말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아무 감정도 없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만약 똑같은 상황에 다른 사람, 예를 들면 송바위가 그런 위기에 처했다면 나는 녀석에게 한 것처럼 송바위에게 입술을?

“악!”

징그러!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송바위였다면 아니 송바위가 아닌 다른 누구래도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 난 그 녀석이어서, 그 녀석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했던 거야.

“왜?”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태영은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야 제 마음을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나 정말 그 녀석을…….”

부끄러워서 뒷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답은 예전에 나와 있었다.

‘너 내가 왜 웃는지 진짜 몰라?’

‘야. 초콜릿, 급식, 떡볶이 그거 다 나랑 먹었거든? 인형 뽑아 준 것도 나.’

‘방금 니가 말한 게 진심이면, 니가 좋아하는 건 나라고.’

그리고 그 답은 자신보다 녀석이 훨씬 더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태영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넘어서 우주 밖으로 튕겨 나갈 것 같았다.

* * *

“또 어디 가냐?”

태영이 신발을 뭐 신으면 좋을지 현관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태혁이 또 불쑥 나타나 시비를 걸었다.

“차이러 가냐?”

“확 차 버린다?”

“어이쿠. 누굴 죽이려고.”

태영이 발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태혁이 냉큼 뒤로 후퇴했다. 그러곤 오늘 동생의 패션을 위아래로 쭉 훑어봤다.

“청치마 그거 요새 초딩들도 안 입지 않나?”

“아니거든? 많이 입거든? 레트로 몰라?”

“그거 엄마 꺼 아니야?”

“내가 얼마 전에 용돈 털어서 산 건데?”

“어쩐지 색감이 구리더라. 있잖아, 씨스터. 자고로 패션은 말이야…….”

“간다!”

태영은 마음에 든 운동화를 찾아 발을 구겨 넣은 후 잽싸게 현관을 뛰쳐나갔다.

문이 닫히기 전 우산 가져가라는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태영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우산은 무슨!”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따뜻하게 불어오는 봄바람.

온도, 습도 모든 것이 완벽한 날씨였다.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리도 사뿐사뿐 가벼울 수가. 태영의 표정엔 설렘이 가득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안은 채 태영은 학교 앞에 도착했다.

일요일 오후 학교 앞 골목은 한산했다.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고 지저귀는 참새 소리만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또 안 오는 건 아니겠지?”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태영은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번처럼 녀석이 또 안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태영은 목을 쭉 빼고 골목 끝을 내려다봤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은커녕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만 벌써 대여섯 대가 지나갔다. 참다못한 태영이 녀석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는데.

“!”

저 멀리서 드디어 사람 머리통 하나가 보이더니, 점점 더 가깝게 녀석의 길고 잘빠진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제와는 사복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다. 오늘은 뭐랄까. 센스 쩌는 아이돌 공항 패션 느낌이랄까.

연한 데님 팬츠에 흰색 면 티셔츠 하나 입었을 뿐인데, 녀석의 다부진 몸매 때문인지 찰떡이었다. 무대 위 아이돌처럼 빛이 났다. 게다가 무심하게 한 손에 들고 있는 청 재킷.

헐, 저게 뭐라고 멋있지?

그나저나 청바지, 청 재킷은 절대 안 입는다더니.

설마 나 때문에 입은 거야?

태영은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입은 청치마를 내려다봤다. 근데 어딘지 모르게 살짝 찝찝했다.

같은 청인데 녀석은 아이돌 같고 난 왜 복학생 같은 거지?

“뭐 하냐? 사람 왔는데 알은척도 안 하고.”

“어? 어. 안녕?”

태영이 뒤늦게 녀석을 향해 인사했다.

어떡해. 눈을 못 마주치겠어.

녀석에게서 풍기는 은은하면서도 청량한 향수 냄새를 맡으니 태영의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뭔가 더 정신없어 보이는 태영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녀석이 피식 웃었다.

“너 설마 떨리냐?”

“아니? 내가 왜 너랑 있다고 떨려? 그런 거 아닌데? 전혀 아니거든? 나 아무렇지도 않거든?”

태영이 두 눈을 부릅뜨고 반박하자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누가 나 때문이래? 너튜브 미팅 말이야. 그거 가는 거 떨리냐고.”

“아…… 아닌데?”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며 속내를 다 드러내 버린 태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망할. 다 들켰겠지? 지 때문에 나 지금 겁나 떨고 있는 거. 아니,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멋있게 입고 온 거냐고. 나 어떡해. 목소리도 떨리는 것 같아.

태영이 열심히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얼굴에 오른 열을 식혔다. 그 모습을 본 녀석이 혀를 내찼다.

“야, 아니긴 뭐가 아니냐. 너 얼굴도 빨개. 이봐. 손도 덜덜 떠네. 너 이래서 기자 될 수 있겠냐? 지금이라도 진로를 다시……. 아니다. 넌 잘할 수 있겠다.”

“갑자기 웬 칭찬?”

태영이 의아한 눈빛으로 녀석을 쳐다봤다. 그러자 녀석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 빠르잖아.”

“그게 기자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기자는 발이 빨라야 되는 거 아니야? 근데 내가 겪어 본 넌, 빨라.”

“…….”

“어디든 도움 필요한 곳에 제일 먼저 달려가고, 가서 얘기 들어 주고, 함께 아파하고, 고민해 주고. 넌 그런 애잖아. 그니까 남의 집 창고를 발로 차서 부숴 준다고 하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하여튼 특이해.”

“헷갈려. 놀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모르겠어.”

“둘 다 한 거야.”

“치이.”

태영이 녀석을 예쁘게 흘겨보며 우쭐거렸다.

“그래도 너한테 칭찬 들으니까 기분이 좋네? 역시 난 기자가 될 운명인가 봐. 너도 날 이렇게 인정해 주고…….”

“약속 장소가 어디냐?”

녀석이 멋쩍어서 괜히 말을 돌렸다. 그러자 그냥 넘어가 준다는 듯 태영이 길 건너를 가리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시작은 정말 모든 게 순조로웠다.

쑤쑤 님과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해서 녀석은 자몽에이드, 나는 초코라떼를 주문할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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