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22화 (23/67)

[22화]

“지금 뭐 하는 거야?”

송바위가 식판을 뺏어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태영을 끌고 복도로 나갔다.

“이거 놔! 나 밥 먹어야 돼.”

태영이 송바위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급식실로 들어가려는데 또다시 송바위가 막아섰다.

“일단 내 얘기 먼저 들어.”

“무슨 얘긴데?”

“내가 설원 누나한테 말했어. 너 그 촬영 못 나간다고.”

“뭐? 니가 왜? 무슨 권리로?”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바로 들어.”

송바위가 태영의 양쪽 어깨를 꽉 잡고 말했다.

“그 새낀 너 안 좋아해.”

“혹시 그 새끼가 난가?”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급식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곤 태영의 어깨를 잡은 송바위의 손을 보더니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당장 그 손 치워.”

“싫다면?”

“너 뭐 하는 새끼냐?”

“그러는 넌 뭔데?”

송바위의 도발에 녀석이 느긋하게 걸어오더니.

퍽.

단번에 송바위의 손목을 꺾어 버렸다. 그러곤 그대로 벽 쪽으로 밀어 버렸다.

쾅, 바닥으로 넘어진 송바위를 향해 녀석이 태연하게 말했다.

“난 모태영 남친.”

“…….”

송바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옆에 서 있던 태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두 사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니가 대답할 차례네. 넌 뭐냐? 뭔데 내가 모태영을 좋아하네 마네 지껄이는 건데?”

“하.”

“왜 웃지?”

녀석의 물음에 송바위가 비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며 비아냥거렸다.

“기억 안 나는 거야? 아님, 안 나는 척하는 건가?”

“뭘.”

“우리 초면 아닌데.”

“…….”

“근데 넌 왜 날 지금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굴지?”

망했다. 송바위 쟤 지금 뭔가 알아차린 것 같아. 그리고 녀석은 지금…….

“그게 뭔 상관인데? 내가 널 처음 봤든, 두 번 봤든 뭔 상관이냐고. 뭔데 모태영 몸에 손을 대냐고. 니가 뭔데.”

도랐……. 녀석은 돌았다.

미친 거다. 지금 본인의 머리가 고장 났다는 사실이 급식실 앞에서, 것도 전교생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 들통나게 생겼는데 저 녀석 지금 뭐라는 거야.

태영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특히 송바위에게 눈빛으로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녀석의 팔을 잡아당겼다.

“둘 다 그만해. 그리고 송바위, 나중에 얘기해! 부탁한다.”

제발 따라오지 마. 여기서 멈춰. 태영이 눈빛으로 애원했다. 하지만 방해꾼은 따로 있었다.

“뭘 부탁해? 이거 놔. 바위는 무슨, 야, 돌멩이! 너 이리 와 봐.”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돌멩이가 웬 말. 태영은 점점 더 유치하게 구는 녀석을 잡아끌고 서둘러 옥상으로 향했다.

* * *

“너 머리 고장 난 거 전교생한테 광고하고 싶어서 환장했어?”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태영이 녀석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은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오, 짜증 나. 그 돌멩이 새끼 뭐냐? 뭔데 널……. 하아, 됐다.”

녀석은 억지로 화를 삼키며 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태영은 기가 막혔다.

“너 아까 되게 유일반스럽지 않았어.”

“또 그 소리냐? 그럼 유일반은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차분히 대화로…….”

“까고 있네. 대화로 해결될 새끼가 아니잖아, 저 새끼는.”

“왜 이렇게 화를 내? 송바위가 너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그런 것도 아닌데 왜 화를…….”

“너 만졌잖아.”

급식실에서 태영의 손목을 끌고 가던 송바위, 급식실 밖에서 태영의 어깨를 꽉 잡고 놓을 생각이 없던 송바위.

또 떠오른다. 또 생각난다. 녀석은 또 화가 치밀었다.

“끔찍하게 싫어. 니 몸에 다른 새끼 손 닿는 거.”

소유욕과 집착에 사로잡힌 녀석의 눈빛은 태영의 말간 얼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끔찍하기까지야.”

반면 태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깟 어깨 좀 잡았다고 사람을 막 바닥에 내팽개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지금 돌멩이 편드냐?”

이제 송바위는 ‘돌멩이’가 됐나 보다. 나는 ‘보류’고. 이 빌어먹을 애칭제조기를 어쩐담.

태영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암튼 이제 어쩔래? 오늘 안에 소문 다 날걸? 평화주의자 유일반이 사람 팼다고, 것도 송바위를.”

“이게 다 그 돌멩이 때문이야.”

“아니 대체 송바위랑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송바위 걔는 나만 보면 너 만나지 말라고…….”

“그 새끼가 나 만나지 말래?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누가 알아?”

“니가 알지. 기억 잃기 전의 너.”

“…….”

“내 생각엔 아무래도 둘이 사적으로 만났던 게 분명해. 근데 둘이 왜 만났을까? 무슨 얘길 했을까? 너 뭐 기억나는 거 없어?”

“기억나는 건 없는데, 대충 알 것 같아.”

“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태영의 얼굴을 녀석이 어이없게 쳐다봤다.

“너 진짜 몰라서 물어?”

“어. 모르니까 묻지.”

“그 새끼가 너……. 에이씨, 됐어.”

녀석은 하려던 말을 그냥 삼켜 버렸다. 그러곤 괜히 짜증을 냈다.

“야, 보류. 넌 애가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참 나, 왜 또 시비야? 암튼 뭔진 모르겠지만 너희 둘이 해결해. 난 몰라.”

“그래, 내가 해결할게. 그러니까 넌 신경 끄고……. 야! 너 지금 어디 가냐?”

태영이 갑자기 비상구 쪽으로 향하자 녀석이 당황해 하며 뒤를 따라갔다.

“얘기하다 말고 어디 가냐고.”

“급식실. 나 밥 먹으러 가야 돼.”

“이 와중에 밥이 넘어가?”

“배고파 죽겠거든? 아, 그리고 너 이따 교실 가면 좀 웃어. 유일반스럽게.”

“싫어.”

걸음을 멈춘 태영이 고개를 돌려 녀석을 째려봤다.

“싫다고? 왜? 들켜도 상관없어?”

“들키면 안 되지. 조용히 있다 조용히 갈 거니까.”

“가다니 어딜?”

“…….”

태영의 물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녀석은 말이 없었다. 그렇게 정적이 흘렀고, 그런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던 태영은 갑자기 아주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

‘저 출연하고 싶어요!’

‘그럼 나야 좋지만…… 남친도 동의한 거지?’

‘동의받아 올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송바위 때문에 홧김에 설원(=너튜버 쑤쑤)에게 촬영하겠다고 했던 일 말이다.

“유일반, 무슨 생각 해?”

결국 녀석에게 잘 보여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태영은 배시시 웃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녀석을 불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녀석이 태영의 얼굴을 마주하곤 흠칫 놀랐다.

“그 표정은 뭐냐? 무섭게.”

“무서웠니? 미안.”

“어쭈? 야, 하던 대로 해. 뭐야.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하여튼 눈치 빠른 녀석. 태영은 남몰래 녀석을 흘끔 쳐다보며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왜냐면 자칫 잘못했다간 말도 꺼내기 전에 단칼에 거절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신중해야 한다.

“있잖아…… 내가 생각해 보니까 너 머리 그렇게 된 후부터 내가 도움을 되게 많이 주고 있는 것 같더라고.”

“무슨 도움?”

녀석이 뻔뻔한 얼굴로 되물었다. 태영은 녀석이 너무 괘씸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꾹 참아야 했다.

“무슨 도움이라니. 섭섭하게. 내가 저번에 너 교장 쌤한테서도 구해 주고, 출석부도 구해다 주고, 물리책도 빌려주고, 급식실이 어딘지도 알려 주고…….”

“그래서?”

“인간관계가 말이야 내가 하나 줬으면 너도 나한테 하나 주고, 두 개 받았음 두 개 주고, 뭐 그래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거거든.”

“본론만 말해라.”

“우리 주말에 만나기로 했잖아. 내가 도와줄 게 있다며. 그게 혹시 토요일이야?”

“어.”

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이렇게나 서론이 긴 건지. 녀석은 팔짱을 낀 채 태영을 지켜봤다.

“잘됐다! 뭘 훔쳐야 된다고 했지? 출석부보다 무거운 거.”

“어.”

“내가 잘 훔쳐다 줄 테니까 너도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하. 이제야 본론이 나오네.”

녀석이 피식 웃었다.

“부탁이 뭔데? 들어 보고 결정할게.”

“정말?”

이렇게 바로 녀석에게서 긍정적인 시그널이 올 줄 몰랐던 태영은 갑자기 두 손까지 모아 빌며 간절하게 말했다.

“내 부탁은 진짜 진짜 간단한 거야.”

“그니까 뭐냐고.”

“일요일 딱 하루만 보류 좀 풀어 주라.”

“뭐? 뭘 풀어?”

“연애 보류, 그거 하루만 풀어 줘.”

녀석은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태영을 빤히 쳐다봤다.

“그게 무슨 뜻이야?”

에라, 모르겠다. 태영이 두 눈을 꽉 감고 녀석을 향해 외쳤다.

“내 남친 좀 해 달라고! 일요일 딱 하루만.”

“…….”

하지만 비웃음이든 욕이든 뭐라도 날아올 줄 알았던 옥상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고, 태영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슬며시 떴다.

“어?”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전개였다. 녀석이 아무 대꾸도 없이 휙 등을 돌린 채 동아리방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근데 저 녀석 귀가 왜 저렇게 빨개?

“야! 우리 얘기 중이거든? 어디 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녀석.

그렇게 녀석은 곧장 동아리방 문을 쾅 닫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영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동아리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손잡이를 돌렸는데, 문이 잠겼다.

“헐. 너 지금 나 쌩까는 거야?”

좋은 말로 녀석을 설득하려던 태영은 결국 화가 나서 욱하고 말았다.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그럼 나도 토요일에 협조 안 할 거야!”

싫다 좋다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는 건가? 녀석에게 무시당해 화가 난 태영은 씩씩거리며 문을 째려봤다.

* * *

토요일.

평소 같았으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어야 정상이건만, 무슨 일에선지 외출 준비까지 끝낸 태영이 책상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학 문제집이 어딨더라? 찾았다!”

문제집과 교과서를 챙긴 태영은 가방을 메고 거실로 나왔다.

“쯧쯧.”

거실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자고 있는 태혁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태영은 혀를 내찼다. 그러다 짓궂은 표정으로 변해 살금살금 걸어가 태혁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 버리곤 냅다 밖으로 튀었다.

“악! 아아악!”

골목을 뛰어 내려가는 태영의 뒤로 태혁의 우렁찬 비명이 들렸다.

그러게 누가 내가 몰래 숨겨 놓은 과자 훔쳐 먹으래? 태영은 일주일간 쌓였던 오빠에 대한 악감정이 한순간에 다 씻겨 내려간 것만 같아 마음이 홀가분했다.

발걸음은 또 어찌나 가벼운지 팔짝팔짝 뛰며 태영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잠깐, 몇 번 버스를 타야 되지?”

태영은 핸드폰을 꺼내 주소를 확인했다. 그리고 어젯밤 녀석에게 받은 문자를 다시 정독했다.

[내일 오전 11시까지 우리 집으로 와. 너 하는 거 봐서 니 부탁 들어줄게.]

학교에서 그렇게 쌩깔 땐 언제고 왜 이제 와서 생각이 바뀐 걸까? 대체 오늘 뭘 훔쳐야 되길래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나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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