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21화 (22/67)

[21화]

유권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이 골목에서 가장 높은 담이 있는 대저택이었다.

그렇게 유권과 해니가 유일반의 집으로 돌격하는 사이 태영은 몰래 녀석에게 문자를 쓰기 시작했는데.

[긴급. 긴급! 지금 내 친구랑 니 친구가 너희 집 앞에……]

너무 급한 마음에 문자를 다 쓰지도 못하고 발송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모탱! 이제 가 봐!”

갑자기 해니가 태영을 대저택 쪽으로 밀더니 주유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린 여기서 이만 가 볼게.”

“어? 가, 같이 들어가는 거 아니고?”

“우리도 눈치가 있거든? 나 다 알아.”

뭘 안다는 걸까? 설마 들킨 걸까? 녀석의 머리가 망가졌다는 걸?

“너희 싸웠지?”

“어?”

“다 알아. 너네 싸웠잖아. 그래서 유일반이 연락 안 받고 잠수 탄 거잖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가서 화해해. 그럼 우린 이만 간다. 유권아 가자.”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우리도 들어가서…….”

“입 다물고 따라와.”

그렇게 해니가 안 가겠다고 버티는 유권의 뒷덜미를 끌고 골목을 내려갔다.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태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여튼 최해니 못 말린다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했냐고.

태영은 대저택을 올려다봤다. 그러곤 고민도 없이 뒤로 돌아 골목을 내려가려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이나 보고 갈까? 왜 연락이 안 되는지, 결석은 왜 했는지 궁금하잖아. 딱 그것만 확인하고 가자.

다시 저택으로 향한 태영은 호기롭게 초인종을 눌렀다. 긴 벨 소리 끝에 정적이 감돌았고. 태영이 다시 벨을 누르려는데.

철컹, 하고 문이 열렸다. 그러더니 웬 중년 여성이 밖으로 나왔다. 혹시 유일반 엄마?

‘엄마는?’

‘엄만 진짜 없어.’

아, 맞다. 그때 떡볶이 먹을 때 어머니는 안 계시다고 했었지. 그럼 새엄마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태영이 곧장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일반 친구 모태영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근데 어쩐 일이에요? 도련님은 병원에 계시는데.”

도련님이라는 낯선 단어에 1차, 녀석이 병원에 있다는 말에 2차로 놀란 태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결국 녀석을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태영의 어깨가 무거웠다.

아까 녀석의 집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그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셨고, 녀석이 입원한 병원을 알려 달라고 하니 말해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곤 퇴근을 하셨다.

“병원엔 왜 입원한 걸까?”

기억 상실인 거 아버지가 아셨나? 그거 치료받으러 간 걸까?

태영은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꺼내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번엔 웬일로 소리샘이 아닌 녀석과 연결이 되었다.

― 왜?

“너 유일반이야?”

― 왜 전화했냐고.

“유일반 맞네.”

전화상인데도 녀석의 시크한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태영은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너 어디 아프다면서? 병원에 입원했다며.”

― 역시 너였어? 아줌마가 동그랗게 생긴 여자애가 찾아왔다고 하시던데.

“그래, 찾아갔다.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혹시 많이 아픈 거야?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 아파. 내가 아니라 형이.

녀석의 말에 태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형? 너 외동이잖아.”

아까 분명 주유권이 그랬다. 아버지는 바쁘고 녀석은 외동이라 집에선 항상 혼자라고. 그러니까 불쑥 찾아가도 괜찮다고.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저기, 유일반! 왜 대답이 없어? 어떤 형이 입원했다는 건데?”

계속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태영이 재차 물었다.

“혹시 그냥 아는 형이 입원한 거야?”

― …….

“아니다. 결석까지 한 걸 보면 친한 형인가? 아님 사촌?”

― 나 외동 아니야. 형 있어.

형이 있다고? 외동이 아니라고? 놀란 태영은 애써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 이복형 뭐 그런 건가?”

― 남의 가정사 캐물으려고 전화했어?

“미안.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아…… 가정사가 있었구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는 조금 지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녀석의 가정사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머리 다친 것도 말 안 하고, 학교에선 다들 외동으로 알고 있는데 형이 있다 그러고.

태영은 갑자기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녀석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형이랑 사이는 어때?”

― 그냥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아.

“그래? 그럼 좋은 거네. 난 오빠가 한 명 있는데 겁나 싫어. 그래도 오빠가 아프다고 하면 걱정되고 그르더라? 근데 또 다 나아서 깐족거리는 보면 한 대 때리고 싶고. 얄미워.”

― 가족 험담하려고 전화했냐?

“위로한 거거든?”

― 위로가 안 됐거든?

“암튼 그래도 가족은 가족인가 봐. 울 오빠 맨날 밤에 야식 사 오라고 심부름시키면서 나 좀만 늦잖아? 그럼 걱정돼서 막 편의점으로 달려온다니까. 그럼 아예 시키질 말든가. 굳이 사람 귀찮게 깨워서 내보내는 건 뭔 심보지?”

― 하소연하려고 전화했네.

“아니라고. 위로라고.”

― 근데 너 스토커냐? 전화를 무슨 수십 통을 해? 깜짝 놀랐네.

녀석한테 무슨 일 생겼을까 봐, 통화 버튼을 수십 번 눌렀던 자신이 부끄러워진 태영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암튼 형이 아픈 거고, 넌 괜찮은 거지?”

― 어.

“그럼 내일은 학교 나와?”

― 또 누가 전화 수십 통에 집까지 찾아올까 무서워서라도 가야지.

“치이. 암튼 내일은 꼭 나와. 나 너한테 할 얘기도 있고…….”

― 갑자기 가기 싫어지네.

“야! 내일 안 나오기만 해 봐. 너 기억 상실증 걸린 거 내가 다 폭로해 버릴 거야! 오늘도 주유권이랑 해니한테 안 들키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 시끄러. 끊는다.

뚝. 그렇게 태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은 전화를 끊어 버렸고, 태영은 괜히 홧김에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모태영이 이제 오냐?”

집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던 태혁이 태영을 발견하곤 얼른 담배를 끄며 말했다.

“인마 일찍일찍 좀 다녀라.”

“너는 담배나 끊어라.”

“이게 오빠한테 너?”

“엄마한테 이를 거야. 담배 아직도 안 끊었다고.”

태혁을 한껏 노려보고 그냥 집에 들어가려던 태영이 도로 나왔다. 그러자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태혁이 화들짝 놀라며 양손을 들고 항복을 외쳤다.

“안 피울게. 치사해서 안 피운다. 안 피운다니까? 왜 째려봐?”

“나 맞팔 안 해 줄 거야?”

“가족이랑은 맞팔 절대 안 하지.”

“그럼 우리 가족 하지 말고 맞팔 하는 건 어떨까? 응?”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동생을 어이없게 쳐다보던 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넌 친구가 그렇게 없냐? SNS 만든 지가 언젠데 아직도 팔로워 수가 그 모양이냐? 너 찐따지?”

“그래, 나 찐따다! 넌 찐따 오빠라서 좋겠다?”

“이게 어디서 하늘 같은 오라비한테…….”

“으, 시끄러! 근데 오빤 대체 뭘 올렸길래 일반인 팔로워가 만 명이나 넘어?”

“내 잘생긴 얼굴.”

태혁이 제 얼굴을 가리키며 씨익 웃자 태영은 ‘우웩’ 진저리를 치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곧장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태영은 침대 위로 몸을 내던졌다.

한참을 엎어져 있다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핸드폰을 꺼낸 태영은 SNS를 열어 심각한 얼굴로 들여다봤다.

“대체 뭘 올리지?”

* * *

“모탱, 유일반 등교했다는데?”

4교시 시작 전 녀석의 등교 소식을 들은 태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수업 시작종이 울렸고, 지옥의 물리 시간이 찾아왔다.

“모태영! 얼른 자리에 앉아!”

또 나만 앉으래. 지금 반 아이들 절반이 넘게 서 있는데 말이다. 태영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해니를 향해 작게 물었다.

“유일반 봤어?”

“난 못 봤고, 유권이는 봤대. 동아리방 갔다던데?”

태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오전 내내 또 안 보여서 결석인가 싶었는데 녀석이 나왔다니. 어제 협박한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태영은 설레는 마음으로 얼른 수업이 끝나기만을 고대하며 책상 밑에서 손거울을 꺼내 제 얼굴을 들여다봤다.

입술이라도 바를까?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제 얼굴이 못나 보이는지 태영은 너무 속이 상했다.

* * *

“어? 왜 문이 잠겨 있지?”

철컹, 철컹.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계단을 올라온 태영은 옥상 손잡이를 마구 돌려 보기도 하고 주먹으로 문을 두들겨 보기도 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띠링.

그때 톡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해니였다.

[모탱, 유일반 급식실에 있음.]

톡을 확인한 태영은 황당했다. 뭐야. 지 혼자 밥 먹으러 간 거야? 그 녀석 은근 급식은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다니까.

태영은 중얼거리며 급식실로 향했다.

배식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한 곳은 맨 구석이었다. 하여튼 말 진짜 안 들어. 유일반은 중앙에 앉아야 한다니까 왜 저기서 혼자 먹어?

태영은 혀를 내찼다. 원래 유일반 주변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서로 유일반 옆에 못 앉아서 안달이었는데, 지금은…… 녀석이 앉은 테이블엔 아무도 없다. 예전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요새 유일반 선배 좀 이상해진 것 같지 않아?”

“맞아. 인사도 안 받아 주더라.”

“소문엔 엄청 스윗하다더니, 완전 반대던데? 개무서워.”

“유일반 쟤 로봇 만들다 미친 거 아니야? 저 새끼 요새 인사를 안 하더라.”

후배며 선배며 온통 녀석을 향한 험담 플러스 의구심뿐이었다.

태영은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정말 저 녀석 어쩌려고 이러나 싶었다. 기억이 돌아오면 지금까지 자신이 한 행동들 다 후회될 텐데. 그렇다고 기억이 영영 안 돌아오기만을 바랄 수도 없고.

기억이 돌아와도 문제, 안 돌아와도 문제.

정말 난제였다.

“모태영. 얘기 좀 해.”

태영이 식판을 들고 녀석에게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송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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