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20화 (21/67)
  • [20화]

    매우 충동적으로 녀석을 안긴 했는데, 대체 언제쯤 손을 풀어야 할까? 태영은 얼굴은 물론 목까지 새빨개진 상태로 엉거주춤 녀석의 머리를 품에 꽉 안고 있었다.

    “숨 막혀.”

    “어? 어.”

    이때다 싶어 태영이 얼른 녀석을 놓아줬다. 정말 숨이 막혔던 건지 녀석의 얼굴도 새빨개져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 맞다. 이거 너 줄게.”

    태영은 괜히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녀석은 태영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꺼낸 티켓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게 뭔데?”

    “박물관에서 잘했다고 이것저것 챙겨 줬거든. 이건 로봇 박물관 프리 패스권.”

    “아…….”

    “받아 둬. 박물관이 전국에 50군데나 넘게 있대. 이거 있으면 다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나 뭐라나.”

    “너 쓰지 날 왜 줘?”

    “다양한 로봇들을 보면 너 로봇 수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 혼자 가라고?”

    “친구들이랑…… 아, 너 친구 없지. 그럼 내가 같이 가 줄게.”

    “같이 가자는 말을 되게 길게도 하네.”

    “그게 아니라…….”

    “근데 너 아까 나 왜 안았냐?”

    “그, 그냥!”

    태영은 부끄러워서 괜히 더 뻔뻔한 척 굴었다. 그게 귀여웠던 녀석은 짓궂은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냥 안았다고? 왜?”

    “몰라. 암튼 너 다신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마. 119 아저씨도 박물관 사람들도 다 나 칭찬해 줬는데 왜 너만 나한테 뭐라고 하냐고.”

    “그 사람들은 그냥 불이 꺼진 게 중요한 거야. 난 니가 중요했고.”

    “…….”

    “너 소화기 못 찾아서 불 못 껐으면 어쩔 뻔했어? 소화기 찾다가 갑자기 불 옮겨붙어서 건물에서 못 나왔으면 어쩔 뻔했냐고.”

    “119가 도착해서 구해 줬겠지. 암튼 몰라. 그놈의 소화기만 빨리 찾았으면 그깟 불 금방 끌 수 있었는데.”

    “내 말 안 듣지?”

    일부러 더 안 들리는 척 못 들은 척 태영이 자기 할 말만 늘어놓았다.

    “너 어플 같은 거 개발할 생각 없어? 내가 아이디어 하나 줄게. 어플 이름은 ‘요기소화기’ 소화기 위치를 찾아 주는 어플인 거지.”

    “뭐? 요기 뭐?”

    “요기, 소화기! 라임 죽이지 않아? 너 나중에 이거 쓸 거면 나한테 저작권료 내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집에 언제 가는지나 좀 담임한테 물어봐. 지친다.”

    “가긴 어딜 가. 이제 시작인데. 강에서 배도 타고 기념사진도 찍고…….”

    “손.”

    “?”

    태영이 못 알아듣자 녀석이 태영의 손목을 잡아끌어 제 옆에 앉혔다. 그러곤 손가락에 상처가 난 것을 보더니 주머니에서 노란색 스마일 스티커 하나를 꺼내 태영의 손가락에 붙였다.

    “그게 왜 거기서 나와?”

    “일단 임시로 붙였으니까 편의점에서 밴드 사서 다시 붙여.”

    녀석이 평소답지 않게 저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하자 태영의 얼굴이 또 새빨개졌다. 이제 이렇게 옆에 앉아만 있어도 심장이 뛰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 * *

    소풍 다녀온 다음 날 등교하자마자 물리 선생의 호출을 받아 교무실로 달려간 태영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사진 두 장을 내밀었다.

    “이거 땜에 부르신 거 맞죠?”

    “이거 땜에 부른 건 아닌데 모태영이 넌 이걸 왜 이제야 내니?”

    “쌤이 계속 출장 가서 안 계셨잖아요! 그리고 어젠 소풍 땜에 까먹고 있다가…….”

    “흐흠. 이건 왜 구겨졌을까?”

    물리 선생이 괜히 트집을 잡으려고 꼬깃꼬깃한 송바위의 사진을 가리켰다. 차마 유일반이 구겼다고는 말도 못 하고 태영은 그냥 대충 둘러댔다.

    “원래 그랬어요. 암튼 저 이제 벌점 없는 거죠?”

    “앞으로 잘해라.”

    “네!”

    태영은 또 무슨 트집을 잡힐까 두려워 후다닥 교무실을 나가려고 뒤로 휙 돌았는데.

    “잠깐!”

    “안 뛸게요.”

    “그게 아니라, 내 얘긴 듣고 가야지. 모태영이 잠깐 이리 와 봐.”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그러나 싶어 태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곤 물리 선생에게 다시 돌아갔다. 그러자 물리 선생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요새 유일반 무슨 일 있니?”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니가 여친이라며. 학교에 소문 다 났던데. 역시 소문은 소문인 건가? 너 유일반 여친 아니지?”

    “맞거든요? 여친.”

    태영이 당당하게 외쳤다. 그러자 물리 선생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여친이면 잘 알겠네. 오늘 유일반 결석했다던데 이유가 뭘까?”

    “결석이요?”

    “1반 담임 쌤이 병가 내셔서 어제부로 내가 담임이잖아. 근데 하필 오늘 딱 유일반이 결석을 했네? 그것도 무단으로다가? 뭐 아는 거 없어?”

    태영은 어제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치솟는 불을 보고 금방이라도 질식해 죽을 것처럼 비틀거리던 녀석.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연신 기침을 해 대던 녀석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증발해 버렸다. 그 후로 연락도 안 되고…….

    “모태영!”

    “네?”

    태영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자 물리 선생이 걱정스레 물었다.

    “너 어디 아프니?”

    “아뇨. 아니에요. 암튼 유일반한테는 제가 연락해 볼게요.”

    “그래.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연락 되면 나한테 바로 알려 주렴.”

    “네!”

    태영은 대답하고 서둘러 교무실을 나왔다. 그러곤 심각해진 얼굴로 교실로 향했다.

    이 녀석 이대로 학교도 안 나오고 잠수 타 버리는 건 아니겠지?

    안 되는데……. 오늘은 꼭 말해야 되는데. 너튜브 촬영 같이 해 달라고. 아니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떡해. 지금 너튜브가 중요한 게 아닌…… 아닌 게 아닌데, 나한텐 무지 중요한 일이잖아. 어떻게든 녀석과 연락해서 만나야겠어!

    그때 태영은 알지 못했다. 너튜브는 핑계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 * *

    “미치겠다.”

    태영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을 생각 없는 태영을 옆에서 지켜보던 해니가 넌지시 물었다.

    “왜? 아직도 유일반이랑 연락 안 돼?”

    “응. 톡이랑 문자 다 씹힘.”

    “전화해 봐.”

    “이제 소리샘 아줌마 목소리만 들어도 토 나옴. 아오, 몰라. 나 열받아. 밥이나 먹을래.”

    이 와중에도 식판 위 밥과 반찬은 산더미처럼 쌓아 온 태영은 수저로 밥을 푹푹 떠서 입안에 구겨 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계속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에 향해 있었다.

    지이잉.

    그때였다. 갑자기 진동이 울리자 태영이 수저를 내팽개치고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 함을 살폈다. 근데 무슨 일에선지 텅 비어 있었다.

    “쏴리. 내 거야.”

    해니가 핸드폰을 들고 흔들며 멋쩍게 웃었다. 킥킥거리며 누군가와 즐겁게 문자하는 해니를 태영이 흘겨봤다.

    “야. 그럴 거면 그냥 뒤에 가서 주유권이랑 먹어.”

    태영이 뒤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바로 뒤에선 주유권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래. 수아도 없고 유일반도 없이 너 혼자 먹잖아.”

    “그냥 혼자 먹는 게 낫겠어. 앞에서 킥킥 뒤에서 킥킥. 이게 더 기분 나쁘거든? 야, 주유권. 그냥 여기 와서 같이 먹어.”

    태영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은 유권이 곧장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식판을 들고 해니 옆에 앉았다.

    “그럼 실례 좀 할게.”

    “별말씀을. 그럼 나 밥 먹을 테니까 적당히 방해해라.”

    “넵.”

    태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니와 유권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서로 반찬을 떠먹여 주며 애정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태영은 이제 하도 봐서 이골이 났는지 묵묵히 밥만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다.

    “나쁜 놈!”

    “!”

    수저를 밥 위에 꽂아 버린 태영 때문에 화기애애하던 유권과 해니가 화들짝 놀랐다. 두 사람은 살짝 떨어져서 경건한 자세로 태영의 하소연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연락 한 통 없이 잠수를 탈 수가 있어? 너네도 그런 적 있어?”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치? 없지? 이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기다리는 한쪽은 얼마나…….”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기억도 없는 그 녀석 이대로 사라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답답하고, 불안하고, 너무 걱정돼.

    “우리 모탱 많이 속상하구나? 이거 먹고 기분 좀 풀어.”

    해니가 유권의 식판 위에서 계란말이를 집어 태영에게 양보했다. 유권이 잔뜩 서운한 얼굴로 해니를 쳐다보자 해니가 조용히 웃으며 주먹을 내보였다. 그러자 유권이 곧장 깨갱, 물을 마시며 먼 산을 쳐다봤다. 그러다 뭔가 좋은 수가 떠올랐는지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았다.

    “아! 그럼 우리 학교 끝나고 유일반 집에 가 볼래?”

    “유권이 너 유일반네 집 알아?”

    “당연하지.”

    “가 본 적 있어?”

    “아니. 근데 주소는 알아. 교실에 비상 연락망 있거든.”

    해니와 유권이 주거니 받거니 좋은 생각이라며 잔뜩 들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태영의 표정은 점점 어색하게 변해 갔다.

    “모탱, 들었지? 학교 끝나고 유일반 집에 같이 가 보자.”

    “아냐아냐. 무슨 집이야. 뭘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해야지. 남친이 연락도 없이 무단결석했는데. 너 혼자 갈 용기 없는 거 다 아니까 우리가 같이 가 줄게. 쳐들어가자!”

    해니가 공격적인 얼굴로 나섰다. 태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쳐들어가다니 어딜. 큰일 날 소리.”

    그 녀석 성격에 해니랑 주유권까지 줄줄 달고 집에 갔다가 또 무슨 소릴 들으려고. 게다가 이 두 사람 눈치는 오죽 빨라? 그러다 녀석이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들키기라도 하면? 말은 또 얼마나 많으냐고.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얘들아 나 오늘 저녁에 가족 모임 있어서 못 갈 것 같아.”

    “그럼 우리 둘이 갔다 올게. 유권아 넌 시간 괜찮지?”

    “당연하지.”

    두 사람을 불안하게 쳐다보던 태영은 될 대로 되라 미끼를 마구 투척하기 시작했다.

    “너희 둘 내가 오늘 맛있는 거 사 줄까? 피자 어때?”

    “너 가족 모임 있다면서?”

    “피자 먹고 가면 되지.”

    “그럼 피자 포장해서 유일반 집에서 먹자.”

    절대 포기를 모르는 해니와 태영의 신경전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종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 * *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표정으로 태영은 해니의 손에 이끌려 명원시 부촌이라 불리는 동네로 향하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되게 좋은 동네에 사는군.”

    “당연하지. 유일반 입고 쓰고 다니는 거 죄다 명품이잖아.”

    해니와 유권이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골목을 쭉 둘러봤다.

    “저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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