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18화 (19/67)

[18화]

“그럼 이따 저녁에 명원대 사거리에서 만나자!”

수업을 마친 후 오래간만에 태영과 해니 그리고 수아까지 세 사람이 뭉쳤다. 내일모레 있을 소풍을 대비해 같이 쇼핑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권쑤! 너도 올 거지?”

“응. 나도 소풍 때 입을 만한 사복이 없어서 사야 되거든.”

“내가 골라 줄게!”

태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수아가 태영의 손을 잡고 내려 두며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

“태영아 괜찮아. 난 해니한테 맡길게.”

“치이.”

“아, 그럼 난 학원 간다. 이따 봐.”

“수아야!”

가방을 챙겨 들고 나가려는 수아를 태영이 붙잡았다. 그러곤 양손으로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러자 수아가 피식 웃으며 교실을 나갔다.

“둘이 화해했나 보네?”

“우리 안 싸웠거든?”

“웃기시네. 언젠 수아랑 유일반이랑 같이 있었다니까 막 얼굴이 하얗게 질린 주제에.”

“그건……. 최니, 나 사실 수아가 유일반 좋아하는 줄 알았어.”

“아니래?”

“응. 오히려 싫어한대. 유일반은 항상 1등이고 자긴 만년 2등이라 유일반은 적일 뿐이래.”

“아…… 하긴 그럴 만도 하네.”

“그리고 유일반이…….”

태영은 어제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누구처럼 귀여운 여자 좋아한다고.’

그 누구가 누굴까? 혹시 나일까? 나?

태영의 두 뺨이 발그레해졌다.

“모탱, 나 간다. 우리 유권이 밖에서 기다려.”

“자, 잠깐!”

태영이 황급히 해니를 붙잡았다.

“아, 왜?”

“최니, 니가 봤을 때 나 어때? 내가 솔직히 예쁜 편은 아니잖아. 그럼 귀여운 편인가?”

“굳이 따지자면 그쪽에 가깝긴 하지. 니가 말했듯이 넌 예쁜 쪽과는 좀 거리가 멀잖아.”

“많이 멀어?”

“응.”

“우씨.”

“대신 넌 귀여워. 귀엽다고. 됐냐? 나 가도 되지?”

“억지로 대답 듣자고 물어본 거 아니거든?”

역시 녀석이 말한 귀여운 누구는 내가 아닌가 보다. 태영은 시무룩해졌다. 그럼 대체 녀석은 누굴 보고 귀엽다고 한 거야? 우선 수아는 아니라니까 제외…….

“모탱!”

뒤늦게 해니의 목소리를 들은 태영이 대답했다.

“안 갔어?”

“안 되겠어. 너 오늘은 나랑 같이 가자.”

“주유권이랑 간다며.”

“셋이 가자. 너 오늘 좀 이상해.”

“내가 뭘.”

“솔직히 말해 봐.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어쩌면 유일반과 관련된?”

태영은 뜨끔했다.

“어? 이 반응은 뭐지? 내 말이 맞지? 유일반 무슨 일 있지? 걔 요즘 완전 딴사람이던데. 그러고 보니까 너랑 사귀고 나서부터 이상해졌어. 애가 통 웃지도 않고, 말도 싸가지 없게 하고, 수업도 거의 안 들어온대.”

“그게 사실은…….”

뭐라고 둘러대지? 아니야.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지, 그랬다간 이번엔 녀석한테 딱밤이 아니라 죽빵을 맞을지도 몰라.

“알았다!”

해니가 예리한 눈초리로 태영을 쳐다봤다.

“너 때문이지?”

“어?”

“니가 시켰지? 사귀는 동안 딴 여자한테 눈길도 주지 말라고. 오올 우리 모탱, 연애 처음이라면서 조련 쩌네? 보통이 아니야. 난놈일세.”

“하하하. 너한테 배운 거지 뭐.”

“그른가? 내가 또 우리 주유권이를 잘 키워 놨지. 근데 너 그거 정말 잘한 것 같아. 유일반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간 여자애들 하나둘씩 다 떨어져 나갈걸?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

“뭔데?”

“스타일. 헤어도 그렇고 옷 입는 센스하며 스타일링이 전보다 한 100배는 간지 폭발. 그래서 그런가? 요새 유일반 미모가 장난 아니던데?”

“야. 넌 왜 남의 남친을 그렇게 자세히 관찰하냐?”

“남의 남친이 아니지. 내 친구 남친이지. 내 남친의 절친이기도 하고. 암튼 나 간다! 이따 봐!”

“잘 가! 얼른 가!”

“아참참.”

이제 진짜 가는가 싶던 해니가 또다시 돌아왔다. 태영은 애초에 해니를 잡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를 하며 심드렁한 얼굴로 책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너 쑤쑤 님 촬영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으악!”

태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떡해. 연락하기로 했는데 나 까먹고 있었어.”

“헐. 그걸 까먹냐?”

“그러니까. 나 완전 어떻게 그걸 까먹고 있었지?”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야. 요새 녀석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잖아.

“모탱쓰 하는 거 보니까 쑤쑤 님 찬스는 날아간 것 같고. 급한 대로 팔로워 수나 올려. 유일반한테 맞팔 해 달라고 얘기는 해 봤어?”

“아직. 사귀자마자 그런 말 하긴 좀 그래서 기회를 보는 중이긴 한데…….”

원래의 유일반이라면 말하기 쉬웠을 텐데, 지금의 유일반은 맞팔 해 달라는 말 꺼내기도 전에 ‘그딴 걸 왜 해.’라고 할 게 뻔했다.

맞팔 얘기도 못 꺼낸 주제에 촬영 얘기는 어떻게 꺼내냐고. 그놈의 기억만 돌아오면 모든 게 다 완벽해질 텐데.

“모탱, 너 청소년 기자단 접수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알지. 너무 잘 알지.”

어쩌면 내 미래가 바뀔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인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난 왜 그 녀석을 생각하느라 정신 못 차리고 있었을까? 한심하다 한심해, 모태영!

자책하던 태영은 그대로 가방 위에 철퍼덕 엎드려 버렸다.

* * *

“절대 포기 못 해!”

집으로 가는 길, 태영은 청소년 기자단 서류 통과를 위한 SNS 팔로워 수 올리기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 하루에 다섯 개씩 SNS에 게시물을 올릴 것.

반 아이들과 맞팔 할 것. 필요하다면 모태혁과도 맞팔 할 것.

마지막으로 그 녀석과는 반드시 맞팔 할 것.

태영이 다부진 눈빛으로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내일은 그 녀석한테 맞팔 해 달라고 꼭 말해야지.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사정사정하면 들어주겠지? 내가 아주 무릎을 꿇어서라도 꼭 맞팔 하고 만다!

“이번엔 기필코 팔로워 수 올리고 말 거라고!”

태영은 굳은 의지를 다지며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러곤 핸드폰을 꺼내 너튜버 쑤쑤에게 DM을 보내려고 창을 열었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닫아 버렸다.

사실 출연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다. 그 전에 녀석에게 먼저 거절당할 게 뻔하기도 했고, 일단 현재 녀석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런 녀석을 데리고 무슨 촬영을 한단 말인가. 그건 내 욕심이겠지.

“하지만 너무 좋은 기횐데…….”

태영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물어나 볼까? 혹시 모르잖아. 그 녀석 의외로 촬영하고 막 그런 거 좋아할지도.”

괜히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태영은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이럴 줄 알았다. 내 전화 안 받을 줄 알았지.

태영은 빠른 포기를 하며 집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 그러니까 송바위네 집 앞에 고급 세단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차에 기댄 채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태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여자는 태영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바로 너튜버 쑤쑤였다!

태영은 미친 속도로 쑤쑤를 향해 달려가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하필 집에서 송바위가 나온 것이다.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인지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뭐야? 여친인가?”

송바위가 웃는 모습을 오래간만에 본 태영은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옛날엔 나한테도 저렇게 잘만 웃어 줬는데. 나쁜 놈.

“어머, 혹시 명원고 모태영?”

멀리서 송바위를 지켜보며 입을 삐죽 내밀고 있던 태영은 갑자기 쑤쑤가 고개를 돌려 저를 알아보자 화들짝 놀랐다. 쑤쑤가 활짝 웃으며 태영에게 손짓했다.

“태영 학생, 잠깐 이리 좀 와 봐요.”

“쟤는 왜?”

“너 아는 애야? 친구?”

“모르는 애야.”

태영이 쪼르르 다가가 쑤쑤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번엔 정말 너무너무 죄송했습니다. 갑자기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어머, 너 너무 귀엽게 생겼다. 실물이 훨씬 낫네.”

“네? 귀, 귀여워요?”

“응. 귀여워!”

쑤쑤는 태영을 너무 귀여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귀엽다는 말에 태영의 광대는 승천하고 있었다. 반면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송바위의 표정은 썩어 가고 있었다.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나 바위 사촌 누나거든. 송설원이야.”

“네? 사촌 누나요? 야, 송바위! 너 사촌 누나도 있었어? 아빠 쪽이랑은 교류 없어서 사촌들이랑 연락 안 한다며.”

“연락을 하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아니 너희 아버지…….”

“입 다물어. 어디서 아는 척이야? 니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아버지 얘기에 예민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망신을 주다니. 태영은 송바위를 원망스레 쳐다봤다.

“자자. 두 사람 그만 싸우고. 암튼 태영아 만나서 반가워. 나 사실 너 섭외 안 돼서 우리 바위 섭외하러 왔거든. 근데 이 녀석이 여친이 없다네. 진짜니?”

“얘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많은데 본인이…….”

태영은 또 주접을 떨려다가 송바위가 째려보자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에서 당황하던 설원이 바위의 등짝을 퍽 하고 내리쳤다.

“왜 때려?”

“넌 이제 들어가. 난 태영이랑 얘기 좀 더 하게.”

“무슨 얘길 하려고? 너튜브 출연 그거? 쟤 말주변 없어서 그런 거 못해. 초딩 때 발표하다가 울면서 집으로 뛰쳐나간 애라고.”

“야! 지금 언제 적 얘길 하는 거냐? 나 이제 안 그러거든? 말 잘하거든?”

“너 내가 경고하는데, 하지 마라.”

“뭘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특히 그 새끼랑은 아무것도.”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송바위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낀 태영은 녀석의 말을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지? 너도 그렇고 유일반도 그렇고 왜 그렇게 서로 싫어하는 거야?”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지.”

“대체 니가 아는 게 뭐냐?”

“그래! 나 아무것도 모른다. 체고 갈 수 있었으면서 포기하고 일반고에 온 너도 모르겠고, 내가 그렇게 어울리지 말라는 일진 애들이랑 몰려다니면서 오토바이나 타는 넌 더더욱 모르겠고. 맞네. 나 아무것도 모르네. 근데 그거 알아?”

“…….”

“너도 나에 대해 아는 거 하나도 없잖아. 나 유일반이랑 너튜브 출연할 거야. 나한텐 두 번 다신 없을 기회거든. 나 말주변 없다 그랬지? 그것도 극복할 거야. 그래야 내 꿈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으니까. 그니까 넌 방해하지 마.”

태영은 송바위에게서 등을 돌린 후 설원을 향해 크게 외쳤다.

“저 출연하고 싶어요!”

“그럼 나야 좋지만…… 남친도 동의한 거지?”

“동의받아 올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태영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바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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