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반과 2반 사이-5화 (6/67)
  • [5화]

    “무슨 문제?”

    “내가 아니라 나 플러스 유일반이야. 쑤쑤 님은 우리가 커플로 출연했으면 하더라고. 대전에 올라간 사진 봤나 봐.”

    “근데? 그게 뭐가 문제야? 어쨌든 너희 지금 커플 맞잖아. 현 분위기상 명원고 공식 커플. 둘이 키스까지 했다며.”

    “야!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게다가 너 그거 비밀이라니까!”

    태영이 해니의 입을 틀어막으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해니가 공책에 마구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명원시 청소년 기자단 접수 D―20

    글자를 확인한 태영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 *

    어제에 이어 결국 또 이곳을 오고야 말았다.

    태영은 오늘 일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솔직하게 진실된 마음을 담아 고백하기로 했다. 제발 나와 함께 너튜브에 출연해 달라고!

    끼익.

    이런! 아직 마음의 준비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동아리방 문이 열리고 말았다. 일반이 나와 버리고 말았다.

    “먹어!”

    태영은 너무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빵과 딸기우유를 일반을 향해 불쑥 내밀었다.

    “땡큐. 잘 먹을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일반은 당황하지 않고 빵을 먹었다. 그러곤 아까부터 입도 뻥긋 못 하는 태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또 무슨 일인데? 혹시 나랑 사귄다고 소문나서 곤란한가?”

    “아니! 그건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좋아. 너무너무 좋아.”

    덕분에 너튜버 쑤쑤 님께 출연 제의도 받았으니.

    “좋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애들이 너 괴롭히지 않아?”

    “있잖아…….”

    “역시 괴롭히는구나? 누군데?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말해.”

    “그게 아니라, 나 사실 반에서…… 아니, 전교에서 꼴찌야.”

    “아…… 그, 그래? 근데?”

    “너도 알다시피 내 꿈이 기자거든. 근데 공부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이라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게 SNS 만드는 거였거든? 요샌 SNS도 스펙이라잖아. 그래서 그거라도 잘해 보려고 했는데 영 쉽지 않더라고. 근데 너랑 사귄다는 소문이 나면서 유명한 너튜버한테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같이 나가 줄까?”

    “어?”

    “같이 나가자. 컨셉이 뭔데? 고딩 커플인가?”

    와, 역시 머리 좋은 애들은 다르구나. 아직 말도 다 안 끝났는데, 게다가 되게 개떡같이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다니.

    태영은 일반을 존경스럽게 쳐다봤다. 그러자 일반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출연 전에 사전 미팅 그런 것도 해야 하지 않나? 날짜가 언제야?”

    “넌 언제가 좋아?”

    “난 오늘도 괜찮아. 저녁 8시쯤?”

    “그래? 그럼 내가 그분한테 물어보고 바로 알려 줄게.”

    “좋아. 만약 괜찮다고 하면, 중앙 공원 분수대 앞에서 7시에 만나자.”

    “응응! 고마워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

    “니가 좋아하니까 나도 기분 좋네.”

    일반이 위로하듯 태영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머리카락에 닿은 일반의 손길에 태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태영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일반을 올려다봤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아니, 나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유일반, 있잖아…… 내가 생각해 봤는데, 그러니까 내가 너 좀, 그니까 그게…….”

    “응?”

    “우, 우리…… 그냥 사귈래?”

    나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뭐랄까, 지금 뇌가 고장이 난 것만 같았다. 왜냐면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그냥 막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만해. 이건 아니야. 아니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그냥 사귀는 건 어때?”

    “좋아.”

    “잉? 좋아? 어…… 그, 근데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오일남 흉내야? 기억 안 나면 내가 다시 말해 줄게. 우린 오늘부터 진짜 사귀는 거고, 이따 저녁에 미팅 끝나고 데이트하자.”

    “데이트? 그게 뭔데? 아니, 방금 한 말 취소. 나 데이트 알아. 근데 너랑 나랑 데이트를?”

    “응.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먼저 돌을 던진 태영은 오히려 제가 돌에 맞은 사람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곤 믿을 수 없다는 듯 일반을 쳐다봤다.

    일반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태영은 일반의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하면서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 * *

    동아리방 창문 틈새로 저녁노을이 들어왔다.

    커다란 로봇 뒤에 앉아 노트북으로 코딩을 하던 일반은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6시가 훌쩍 넘었다. 뒤늦게 태영과의 약속이 생각난 일반이 노트북을 접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

    고개를 내밀어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한 일반의 두 눈동자가 급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니가 여긴 왜 왔어?”

    일반의 물음에도 그 누군가는 아무런 대꾸 없이 일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노을에 비친 검은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일반의 얼굴은 경직되었고.

    파바밧!

    순식간이었다.

    정체 모를 이의 발이 로봇과 연결된 아주 복잡해 보이는 선에 걸렸고, 그 때문에 뭔가 잘못 작동된 로봇이 기울어졌다. 일반은 그를 막으려고 필사의 힘을 가했다.

    퍽! 쾅!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로봇은 쓰러졌고, 일반은 그 밑에 깔리고 말았다.

    거대한 로봇에 깔려 정신을 잃은 일반의 머리에선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지이잉 지이잉.

    그런데 그때였다. 책상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일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하나뿐인 내 동생]

    액정에 표시된 발신자를 확인한 침입자는 그대로 동아리방을 뛰쳐나갔다.

    * * *

    “비키세요!”

    다급하게 열린 응급실 문 사이로 스트레쳐카를 끌고 구급대원이 들어왔다.

    “외상 환자고요. 출혈이 있긴 하지만 심한 상태는 아닌데요. 문제는 바이탈이 좀 불안정합니다.”

    구급대원이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의사는 직접 환자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지혈하느라 붕대를 감은 머리를 제외하곤 멀쩡했다.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내 말 들려요? 환자분!”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의사는 포기하지 않고 환자가 입고 있는 교복에 달린 명찰을 보더니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유일반 학생! 유일반!”

    더 이상 안 되겠는지 의사는 일반의 상의를 벗겨 청진기로 이리저리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돌연 표정이 굳어졌다.

    “이 환자 지금 당장 CT실로 이동해. 아, 보호자는?”

    “보호자 지금 도착했습니다.”

    간호사가 누군가와 함께 달려왔다.

    집에서 연락받고 급하게 나온 모양인지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보호자.

    의료진들은 그 보호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다들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에게 이 환자와는 어떤 관계냐고 감히 물을 수가 없었다.

    * * *

    다음 날. 명원고.

    담벼락을 넘어 운동장으로 향하던 그는 제 교복에 달린 명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유일반…….”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제 앞에 우뚝 서 있는 학교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까 교문에서부터 운동장까지 따라오던 말 많고 시끄러운 여자애도.

    ‘못 꺼져! 왜? 난 니 여친이니까.’

    ‘너 기억 안 나? 우리 어제 사귀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어제가 1일. 오늘은 2일…….’

    거의 울 것 같은 표정과 진심 어린 얼굴. 그게 자꾸 떠올라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설마 진짜 여자 친구?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닌 게 아닌가?

    아, 몰라. 내가 알 게 뭐야. 그나저나 교실이 저 건물이랬지.

    그는 아까 태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유일반 학생!”

    본관에 들어서자마자 대머리 할아버지가 버선발로 달려오더니 제 앞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역시나 낯선 얼굴.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등산복 차림을 보아하니 선생님은 아닌 것 같고.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인가?

    “아이고, 우리 일반이가 요새 많이 피곤한가 보구나?”

    할아버지는 평소 인사성 바른 일반이 인사도 없이 저를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자 멋쩍게 웃었다.

    “허허. 그러게 내가 하지 말랬잖아. 세계로봇대회 준비도 바쁜데, 체육 대회 주장은 왜 맡아선. 오죽 힘들었으면 우리 인사성 1등 일반이가 인사도 까먹을까. 역시 안 되겠어. 체육 대회 주장은 없었던 걸로 하자고.”

    “체육 대회요?”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반응하는 녀석을 할아버지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드시 우승하겠다며 의욕이 넘쳤던 일반이었는데.

    “죄송한데 사양할게요. 체육 대회 그거 안 하겠습니다. 바빠 죽겠는데 주장은 무슨.”

    할아버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 안 하겠다고? 어젠 개교 이래 이과가 단 한 번도 우승한 적 없다면서 꼭 그 기록 한번 깨 보겠다고 그렇게 우겨 대더니만.”

    “아니에요. 안 합니다. 운동 딱 질색이에요. 근데 할아버진 누구세요?”

    “할아버지? 일반 군, 우리가 아무리 친해도 그런 농담은 못써요.”

    “아, 늦었다. 전 이만 교실로.”

    얘기가 더 길어지면 들통날 것 같았던 그는 서둘러 할아버지를 피해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거기 스탑!”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화난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너 유일반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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