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창문 너머 유일반과 눈이 마주친 순간 태영은 냅다 복도로 달려 나갔다.
운동장을 뛰면서 무단 조퇴는 벌점이 몇이더라? 아주 살짝 걱정됐지만, 그땐 이미 교문을 벗어나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후였다.
“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왜 집에 왔냐? 어디 아파?”
현관문을 열자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오빠 놈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너 이제 내 오빠 아니야!”
“뭐? 인마, 너 미쳤냐? 내가 팔로워 30명이나 늘려 줬더니만.”
“누가 니 맘대로 올리래? 왜 올려 왜!”
태영은 아까 복도에서 저를 화난 얼굴로 쳐다보던 일반이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태영은 발을 동동 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으이이 어떡하냐구우 이제 맞팔도 못 하구 걔가 나 싫어하구 그렇게 잘생긴 애랑 처음 친해진 건데에 다 망해써 망해따구 으앙!”
우느라 뭉개진 발음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기괴하게 쳐다보던 태혁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항복 항복. 너 용기 없어서 못 올리고 있던 셀카 몇 장이랑 웬 로봇 사진 하나 올린 거 때문이면 내가 미안했다. 그만해라. 나 지금 너무 무섭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태혁은 초조한 기색으로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태영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엉금엉금 기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책상 위엔 아침에 그렇게 찾아 헤매던 핸드폰이 고이 놓여 있었다. 메모지 한 장과 함께.
팔로워 떡상하면 짜계치 100번 대령해라.
― 오빠님
망할 인간! 태영은 씩씩거리며 메모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잽싸게 핸드폰을 들어 SNS에 접속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빠 놈이 올린 사진을 몽땅 삭제하는 것.
“미쳤어 미쳤어. 이것도 올렸어? 모태혁 이 나쁜 놈! 올리려면 예쁘게 나온 것 좀 올리지. 이게 뭐야.”
게시 글을 하나씩 지워 나가던 태영은 혈압이 마구 상승했다. 마지막으로 로봇 사진까지 다 삭제한 후에야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동시에 띠링,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해니였다.
[모탱, 지금 사진 내려 봤자 늦었어. 대전 들어가 봐.]
대전이라 함은 ‘명원고 대신 전해 드립니다’ 계정을 말한다. 평소 그곳에 잘 들어가지 않던 태영은 해니의 문자를 보자마자 링크를 눌러 접속했다.
“망할. 이걸 고새 캡처했다고?”
태영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게시 글을 들여다봤다.
[킹받네. 이거 어디서 퍼 옴? 저 로봇에 비친 거 유일반 선배 맞음? 같이 있는 여잔 누구?]
[2학년 2반 모태영이라고 함. 이과 꼴찌임.]
[유일반 선배, 그 꼴찌 언니랑 사귀지 마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일반이 모태영 되게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다는 거임.]
태영이 심각한 얼굴로 사진에 달린 댓글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이 진동했다. 태영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최니. 나 대전 봤어. 이거 내려 달라고 못 하나?”
― 계정 관리자가 누군지 알아야 내려 달라고 하지. 그나저나 어떤 년일까? 로봇 사진을 누가 확대해서 제보한 거냐고. 아니, 로봇에 비친 사람 진짜 유일반이랑 너 맞아? 모탱, 듣고 있어? 너 맞냐니까?
“나 맞아. 맞는데…….”
― 맞다고? 너 이거 언제 찍었어?
“왜 있잖아. 저번에 동아리방 갔을 때. 근데 그때 유일반이 올리지 말고 나만 보라고 찍게 해 줬거든.”
― 아…… 그래서 유일반이 아까 잔뜩 화나서 교실로 찾아온 거구나? 넌 도망갔고? 이제 어쩔?
“몰라. 나 오늘 학교 안 가. 미안해서 그 얼굴 어떻게 봐. 게다가 대전에 이건 뭐냐고. 나 땜에 괜히 유일반까지 애들이 뭐라 그러고.”
― 모탱, 유일반 걱정은 내려놓고, 거기 달린 댓글이나 보지 마. 앗, 나 수업 시작한다, 끊는다!
갑자기 전화가 끊어지고 조용해지자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태영은 다시 댓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꼴찌 모태영 욕이었다.
유일반이랑 사귀는 거 자랑하려고 일부러 사진을 올렸다는 둥 뭐 그런 유의 댓글들.
태영이 한참 동안 댓글을 읽으며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띠링.
DM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연애 너튜버 쑤쑤인데요. 출연자 섭외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이게 꿈이야 생시야? 태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등굣길, 수군거리는 애들 때문에 그저 땅만 쳐다보며 교실로 향하던 태영은 누군가의 가슴팍에 쿵, 하고 머리를 박아 버렸다.
“아얏!”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자 태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송바위였다.
평소엔 학교도 잘 안 나오던 애가 오늘따라 왜 온 거야? 게다가 입술은 또 왜 터졌대? 누구랑 싸웠나? 됐어. 내가 알 게 뭐야.
태영은 평소처럼 송바위를 무시하고 그냥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는데.
“진짜 사귀냐?”
송바위가 태영의 손목을 낚아챘다. 태영은 빨간색 손목 보호대를 한 녀석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놓고 말해. 그리고 내가 누구랑 사귀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인데?”
“정신 똑바로 차려. 유일반 걔 너 이용하는 거니까. 이 멍청한 계집애야.”
송바위가 난데없이 욕을 지껄이며 태영의 손목을 허공 위에 내던지더니 쌩하니 가 버렸다.
태영은 너무 기가 막혔다. 누가 누굴 이용한다는 건지. 오히려 내가 괜히 맞팔 하려고 동아리방에 갔다가 이 사달이 난 건데.
젠장. 유일반이 로봇 사진 찍기만 하고 절대 어디 올리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 SNS에 올린 것도 모자라 전교생이 다 보는 계정에 떡하니 올라갔으니 나 어떡하지?
이제 유일반 얼굴 어떻게 보지? 아니지, 얼굴을 안 보는 게 상책인 건가?
홀로 자책하던 태영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 *
“똑똑. 실례합니다!”
옥상에 올라온 태영은 동아리방을 향해 외쳤다. 아무래도 유일반에게 정식으로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꽉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 앞을 서성이던 태영은 포기하고 이만 돌아가려고 몸을 틀었는데.
“오늘은 도망 안 갈 거야?”
문이 열리고 일반이 밖으로 나왔다. 그를 확인하자마자 태영이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미안. 진짜 미안해. 진짜 진짜 너무너무 미안해. 사실 그게 내가 올린 게 아니라, 우리 오빠가…….”
“괜찮아. 너도 크게 신경 쓰지 마. 사진은 이미 올라갔고, 돌이킬 수 없으니까.”
미치겠다. 차라리 화를 내지. 저렇게 웃어 주니까 더 미안하잖아.
태영은 죄지은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괜찮아? 그 확대된 사진 땜에 우리 사귄다고 소문도 나고…….”
“그건 좀…….”
“거봐 너 괜찮지 않은 거잖아. 내가 어떻게 할까? 니가 시키는 거 뭐든 다 할게. 아예 방송반 마이크에 대고 공개적으로 해명이라도 할까? 우리 사귀는 거 절대 아니라고 오해라고.”
“정말 뭐든 다 할 거야? 내가 시키는 건 뭐든?”
“응! 뭐든 말해. 내 목숨 다 바쳐서 니가 시키는 거 다 할게!”
“목숨까지 바칠 필욘 없고.”
짓궂게 웃으며 말하는 일반과 달리 태영은 진지했다.
“태영아, 그럼 부탁인데 애들이 나랑 사귀냐고 물으면…….”
“물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 줘.”
“알았어! 그냥 가만히 있을……. 어? 가만히 있으라고?”
일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그러자 태영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시키는 거 뭐든 다 들어준다며. 그니까 이유는 묻지 말고 그렇게 해 줘. 알았지?”
그 이유가 뭔지 대단히 궁금했지만, 태영은 죄인이기에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알았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러자 일반이 어딘지 모르게 약간 쓸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땐 알 수 없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 * *
“니가 그 사진 속 걔니? 헐. 유일반이 이런 애랑 사귄다고?”
“너 진짜 유일반이랑 사귀는 거 맞아?”
이번 쉬는 시간은 3학년 선배들까지 태영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머리가 크다느니, 멍청하게 생겼다느니 별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태영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쾅!
창가 쪽 맨 뒷자리에서 누군가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일어났다.
“시끄러우니까 2반 아닌 애들 다 꺼져!”
송바위였다. 눈빛 하나로 3학년 선배들까지 한 번에 다 복도로 내쫓다니. 태영은 새삼 녀석이 이 학교에서 주먹으론 1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이런,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먼저 시선을 피한 건 송바위였다. 녀석은 저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가방을 메고 복도로 나가 버렸다. 오늘도 수업을 쨀 모양이다.
“분위기 왜 이래? 또 1학년 여자애들 왔다 갔어?”
“이번엔 3학년.”
“오올, 우리 모탱 인기 많아졌는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유일반이 공개 연애는 이번이 처음이잖아. 나 같아도 궁금해서 구경 오겠다.”
“너 내 친구 맞냐?”
“너야말로 내 친구 맞냐? 유일반이랑 언제부터 사귀기로 한 거야? 그 썰이라도 좀 풀어 봐 봐. 궁금해 죽겠어.”
태영은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 설마 팔로워 수 올리려고 입 다무는 거야? 맞지? 둘이 안 사귀지? 야, 그런 거라면 완전 대박이야. 방금 보니까 너 100명 넘었던데?”
“뭐? 진짜? 아깐 99명이었는데.”
다물었던 입이 절로 벌어졌다. 태영이 설레는 얼굴로 계정을 확인하고 있는데, 마침 DM이 도착했다.
[태영 학생, 쑤쑤예요. 안 한다고만 하지 말고 좀 더 생각해 봐요. 아니면 우리 만나서 얘기한 다음에 결정하는 건 어때요? 날짜와 시간은 언제라도 괜찮아요.]
태영의 고뇌에 찬 눈빛을 해니가 흘끔 보더니 남몰래 태영의 액정을 훔쳐봤다.
“쑤쑤 님? 야, 모탱!”
메시지를 확인한 해니가 배신감이 깃든 얼굴로 태영을 쳐다봤다.
“너 쑤쑤 님이랑 아는 사이야? 이 사람 연애 너튜버 맞지? 겁나 유명하잖아. 거의 준연예인!”
“아는 사이는 아니고, 자기 채널에 출연해 달라고 연락 와서 안 하겠다고 했거든.”
“뭐? 안 해? 왜 안 해? 너 쑤쑤 님 채널에 출연하면 팔로워 수 떡상은 기본이라고.”
“그게 문제가 있거든.”
“무슨 문제?”